그 옛날 묵호는 지긋지긋한 가난이었다
동해시 묵호진동 논골마을 전경 | |
“그때는 묵호의 모든 것이 그랬다//묵직한 슬픔들이 상한 오징어 다리로/길고 가느다란 골목길을 여기저기 흘러다녔다/검게 그을은 도시의 벽들 사이로/오징어 먹물들이 서서히 번져가는 걸 보며// 아이들은 어달리 선창가에서 흘러나오는/꽁치 비늘에 도배된 채 눈빛만 가늘게 빛났다/아랫도리를 벗고 뛰노는 아이들은/ 유난히 검고 반짝이는 붕알 하나씩 달고 다녔다//아랫도리를 잃은 도시/그곳은 아버지의 도시였다/수년 만에 주소도 없는/동해 한 끄트머리에서의 재회/그건 기쁨이 아니라 다시 막힘이라는 걸/어린바람만 무성한 문짝도 없는/아버지의 집에 가서야 알 수 있었다/떠돌아다니는 바람의 감옥//~중략//어린 시절 오징어 뒷다리처럼 질기게 버텼던/삶의 뒤쪽으로 아직도 먹바람이 불고 있었다” - 장영주 作詩 `아버지의 도시1' 中 |
60~70년대 풍경이 오롯한 달동네 / 오징어 손수레가 흘린 물로 늘 질퍽
'마누라나 남편 없이는 살수도 /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그곳
심상대 소설 '묵호를 아는가'의 무대 / 뱃사람들의 신산한 삶의 이야기
연작시처럼 그림 속에 듬뿍 녹여낸 / '논골담길' 벽화 마을의 역사 대변
최근 배낭족들 여행지로 급부상
가난한 사람들의 기항지였던 묵호는 묵호항이 내려다보이는 남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피해 검은 묵호(墨湖)로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다시 그 가난을 피해 분탄처럼 휘날려, 어떤이는 바다로, 어떤 이는 멀고 낯선 고장으로, 어떤이는 무덤 속으로 떠났다.
가끔은 돌아오는 이도 있었다. 문득 무언가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거나, 바다가 그리워지거나, 흠씬 술에 젖고 싶어지거나, 엉엉 울고 싶어지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술과 바람의 묵호를 찾았다.
동해시 묵호진동은 1960~1970년대 풍경이 오롯한 달동네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41년 어업전진기지인 묵호항이 개항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산꼭대기까지 판잣집이 지어졌고, 언덕길은 오징어 손수레가 흘린 바닷물로 언제나 질퍽했다. 가까운 바다에서도 풍성한 어획고를 올렸고 밤이면 오징어배의 불빛으로 묵호의 바다는 벚꽃처럼 현란했다. 아낙네들은 오만가지 사투리로 욕설을 해대며 오징어 가랑이에 겨릅대를 끼웠고 집집마다 오징어가 만국기처럼 널려 있었다. 후미진 구석마다 쌓여 있던 생선 내장의 악취, 비온 다음날의 시뻘겋게 상한 오징어, 건조장 바닥에서 떨고 있던 개, 양동이로 머리를 후려치며 싸우던 공동수도의 아낙네들, 욕설과 부패, 묵호의 모든 것이 그랬다.
묵호진동 주민들은 명태와 오징어를 담은 고무 함지박을 지게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고단한 육체를 이끌고 마을에서 가장 높은 묵호등대 주변 덕장을 오르내렸다. 흙길은 함지박에서 흘러넘친 물로 늘 질퍽거려 장화를 신고 다녀야 했다. `마누라나 남편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도 논골이라는 지명도 길이 논처럼 질퍽거린 데서 유래됐다.
작가 심상대의 소설 `묵호를 아는가'의 무대인 묵호진동 논골마을이 배낭족들의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잃어버린 묵호를 재발견하자는 취지로 마을 주민들이 2010년부터 담과 벽에 묵호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벽화로 그리는 사업을 통해 뱃사람들의 고단하지만 소박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논골담길' 프로젝트에 따라 언덕바지 붉고 푸른 지붕들이 낮은 담장 위로 빼끔히 고개를 내밀고 거미줄같이 얽힌 골목길 속 담벼락마다 다양한 내용의 벽화가 그려졌다. 스케치는 미대생 출신들로 구성된 `공공미술 공동체 마주보기' 회원들이, 채색은 60~70대의 마을 노인들이 맡았다. 단순히 낡은 집을 그림으로 가린 게 아니라, 한평생 바다와 함께한 마을 사람들의 신산한 삶의 이야기를 연작시처럼 그림 속에 듬뿍 녹여 냈다.
밤바다를 수놓은 오징어잡이배의 불빛, 빨랫줄에 매달아 놓은 오징어, 억척스럽게 살아온 논골마을 아낙들을 상징하는 원더우먼, 화사하게 피어난 매화, 해뜨는 동해, 마을 사람들이 신고 다니던 빨간 장화, 고무 함지박에 담은 오징어 명태 연탄, 옛 논골상회에 그려진 아이스케키 냉동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묵호벅스 등의 그림이 마을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묵호진동에 논골담길 벽화가 생기면서 많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묵호에 대한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어지면서 잿빛 하늘만이 드리워진 묵호에 웃음소리와 온기가 돌고 있다. 떠나가던 사람들의 뒷모습뿐이었던 마을이 어느덧 찾아오는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아랫목과도 같은 따뜻한 마을로 변화하고 있다.
논골담길 프로젝트를 통해 논골3길, 논골2길에 스토리 벽화 60점, 마을 문화지도 큐알코드가 제작되었으며 올해에도 스토리 벽화 30점, 바람개비 언덕 조성으로 창조도시 골목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동해시는 올해부터 5연차 사업으로 62억원을 투입해 묵호지역 기반 구축과 묵호 관광화 명소사업을 추진한다. 기반구축사업으로는 게구석~산지골을 연결하는 도로 개설, 수산물유통센터 건립, 수산물 가공시설 현대화 등을 실시한다. 묵호 관광명소화 사업으로는 논골담길 벽화 4, 논골담길 스토리텔링, 묵호 음식개발, 묵호북어 명품화사업, 논골담길 도보길 개설, 포토존 등으로 묵호진동 일대를 관광명소화시켜 주민 소득을 높일 예정이다.
묵호진동은 동해시가 출범한 1980년도에 주민 수가 1만5,393명(어업종사자 2,279명)의 큰 마을이었지만 현재는 3,515명이 살고 있으며 이 중 33%인 1,162명이 60세 이상으로 621명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박종찬(62) 묵호동통장협의회장은 “삶의 희망을 찾아 모여든 가난한 이들로 넘쳐나던 묵호가 급격한 어획량 감소, 산업화, 천곡동 신시가지 건설로 하나둘 떠나면서 쇠락을 거듭하다가 벽화사업을 통해 유명세를 타고 있다”며 “고기가 많이 잡히고 많은 사람이 묵호동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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