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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야기/여 행

전세계 울트라 산악 마라톤

by SL. 2013. 11. 3.

울트라 러닝 대회 중 가장 험난하다는 '고어텍스 트랜스 알파인 런.' 유럽 최고봉 몽블랑을 260km 달리는 코스를 한번 완주하면 인생의 그 어떤 도전도 만만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전세계 울트라 산악 마라톤 중에서 가장 험한 것으로 정평이 난 '고어텍스 트랜스 알파인 런.'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4국을 관통하며 달린다. 대회는 독일 남동쪽 루폴딩Ruhpolding에서 출발해서 오스트리아를 지나 이탈리아 젝스틴Sextin까지 300km를 달리는 코스와 독일 남서쪽 오베르스트도르프Oberstdorf를 출발해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지나 이탈리아의 라치 임 빈슈가우Latsch im Vinschgau까지 260km 코스를 매년 번갈아가며 진행한다. '노스페이스 몽블랑 울트라 트레일 런' 대회와 함께 알프스의 대표적인 트레일 러닝 대회로 전 세계 러너들에게 인기가 높다. 대회는 2인1조 팀으로만 참가 가능하며 하루에 25~40km를 달리는 '스테이지 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올해 2013년 대회는 총 260km를 달리는 코스다.

 

 

 

 

이번 대회는 전세계 37개국에서 700여 명이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나와 송기석 상무가 유일하며, 아시아는 싱가포르팀이 참가했다. 끊임없는 상승과 하강이 이어지는 코스 덕분에 매년 참가하는 이들도 있다.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만큼 정신과 신체의 강인함을 요구한다. 8일간의 코스는 공인된 전문가가 사전에 답사했고, 많은 경기를 통해 검증된 코스다. 특히 3일째 코스는 모든 면에서 하이라이트다.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국경에 걸쳐 있는 이 코스는 35km 내에 3,000m의 산이 두 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를 느끼게 할 만큼 혹독하다. 또한 6일째 코스 또한 발군이다. 스위스 협곡을 지나는 풍경이 장관이기 때문이다. 사실 어느 것 하나 힘들지 않은 코스가 없다. 매일 매순간,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를 자문하게 했다. 8일간의 대회 체험기는 그래서 고통과 고뇌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

 

 

서두르지 않고 페이스 찾는 첫 코스


2013년 8월 31일 아침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어느 순간을 잊겠냐만 대회 첫날이라 그 긴장감은 최고였다. 첫 코스에 임하는 자세는 다소 비장했다. 심호흡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처음 달릴 때 무리해서 달리지 말고, 자기 페이스를 찾으라는 이야기를 사전에 들었던 터이다. 대회 완주 자체가 목표인 나에게 경기 운영을 위한 전략 따위는 없었다. 몸을 풀거나 동료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다른 참가자들에 비하면 긴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주변의 참가자들은 앞으로의 고난과 시련을 짐작하고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이날 코스가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되지 않는 나로서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난감했다. 코스는 이곳 독일 오베르스트도르프를 출발해서 오스트리아 레히 암 알베르크Lech am Arlberg까지 달린다. 총 34,6km이며, 봉우리는 최고 2.083m까지 이른다. 드디어 출발. 초반부 발걸음은 가벼웠다. 거리는 꽤 있었지만 높이가 완만한 편이라 만만하게 생각했다. 처음이니까 의욕 충만 아니겠는가.

하지만 갈수록 험악해지는 코스는 사람의 의지를 조금씩 꺾어놓았다. 산길의 거리 감각이 없는 상태여서 더 그랬다. 몇몇 km 정도 왔겠지 생각했지만 그보다 짧은 거리를 표시한 이정표 앞에서 자주 절망했다. 이런 좌절감은 첫 코스에서 잦았다. 완주 자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사실 '포기'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떠올린 날이기도 했다. 힘든 정도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완전 무방비상태였기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그러니
한걸음 한걸음
이 얼마나 힘들었겠나. 하지만 포기라는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결단을 끝까지 틀어쥐고 있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첫날 경기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온 나와 파트너 송기석 상무는 말이 없었다. 사막 마라톤 4곳을 완주한, 베테랑 러너인 송상무도 퉁퉁 부은 다리를 침대에 걸쳐놓고 멍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아, 이건 생각보다 쉽지 않구나' 라고 얼굴에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그래도 그는 "내일은 좀 나을 거예요. 오늘 몸을 적잖게 적응시켰으니까."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대해볼 수밖에 없었다. 대회는 매일의 스테이지가 있고, 사전에 코스 정보를 받는다. 코스의 거리와 높이를 명시한 것이다. 그것으로 내일의 경기를 짐작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코스에 대한 감각을 익히기에는 무리였다. 첫날 대회를 끝내고 나서야 겨우 해독해낼 정도였다. 종이 한 장에 담긴 코스 정보를 온몸으로 겪기는 했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할 듯했다.

 

 

 

 

둘째 날 맛본 예상치 못한 절망감


아침 8시. 오스트리아 레흐Lech에서 세인트 안톤 암 알베르크St. Anton am Arlberg까지 24,7km의 코스다. 거리는 짧다. 하지만 경사가 만만치 않다. 전날 경기로 인한 후유증은 대단했다. 온몸은 몽둥이찜질을 당한 듯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출발선에 섰다. 설 수밖에 없었다. 긴장한 탓에 잠도 설쳤다. 밤새 시간의 질감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누워 있었다. 피곤하다 말해서 뭣하겠는가. 함께 출발선에 선 다른 참가자 또한 마찬가지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런 처지를 아는지 슬쩍 웃어준다. 조용히 파이팅을 외쳐준다. 배당을 체크하기도 하고 모자를 고쳐쓰기도 한다. 출발 전의 현장은 이렇듯 분주하다. 경기 시작 벨이 울리자, 참가자들은 위험을 만난 짐승처럼 우루루 뛰쳐나간다. 두 다리가 잘 버텨줄까 걱정이 앞섰지만, 이 고통의 레이스에 잘 맞춰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속도를 내어 달릴 수 있는 평지는 그래도 좋았다. 하지만 곧 오르막이 나타났다. 스키장의 급경사가 초반부터 막고 서 있었던 게다. 2,339m의 뤼피코프Rufikopf 정상까지 그렇게 올라가기만 해야 한다. 내리막은 바라지도 않았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평지가 나오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코스는 한 번도 평지를 내주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기계가 되었으면 했다. 스스로 '나는 기계다' 라고 읊조리면서 올라갔다. 오른발, 왼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척척척척! 이 얼마나 아름다운 리듬감이며 박동감인가. 하지만 몸은 그러지를 못했다. 자세는 흐트러지기 일쑤였고, 입에서는 욕지기가 무한대로 쏟아졌다. 이런 도전을 한 자신에게, 함께 참가하자고 한 파트너에게, 코스 디자이너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통증으로 인한 고통은 나를 집어먹을 기세였다. 첫 번째 고지를 넘어섰다. 그리고 내리막. 그렇게 기다렸던 내리막이다. 하지만 무릎이 문제를 일으켰다. 10여 분을 내려가니 이내 통증이 시작되었다. 옆으로 비스듬하게 걷기도 했지만, 통증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참고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이 순간, 정신력이라는 것은 또 얼마나 허망한 단어인가 생각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이 내리막에서 속도를 냈다. 이곳에서야말로 시간을 벌 수 있는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젊은 친구, 여자들, 심지어 나이든 분들도 나를 추월해갔다. 절망감이 조금씩 누적되어 갔다. 통증도 그에 따라 더 참을 수 없는 게 되어갔다.

그렇게 2시간을 걸어 내려가서 다다른 '푸드존.' 이곳에서 음료와 간단한 행동식을 먹는다. 잠깐 쉴 수 있는 시간이다. 게걸스레 음식을 집어먹는다. 이온수와 물을 배낭에 채웠다. 이제 두 번째 고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조금은 쉬웠으면 하는 마음을 중얼거려봤다. 그런 바람을 들어줄 리는 만무하다. 얼마 가지 않아 오르막이 나왔다. 첫 번째 산을 넘어간 만큼의 시간과 노고가 들었다. 두 번째 산은 첫 번째보다 높았다. 2,543m. 시간은 참 더디게 간다. 통증은 온몸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영역 표시를 했다. 포기라는 말이 3분에 한 번씩 떠올랐다. 그 밖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욕지기도 지쳤다. 원망해봐야 별 수 없다. 두 번째 정상. 곧 내리막이다. 그리고 내리막이 시작된 3km 지점에서의 '푸드존.' 이곳에서 음식과 식수를 제공받기도 하지만, 이후 코스를 계속할 수 있는지 체크하는 기능도 한다. 나는 이곳에서 첫 번째 '컷오프'를 당했다. 제한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산속에는 어둠이 빨리 찾아오기 때문이다. 만감이 교차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무릎이 더 이상 버텨줄지 확신이 없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