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1
회사원 정모씨는 2년 전 4억6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사면서 은행에서 3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 기존에 살던 집이 좁기도 했고, 마침 정부에서 대출 규제를 풀어줘 좀 무리는 됐지만 집을 살 수 있었다. 당시 2% 중반대의 변동금리 대출을 받은 정씨는 매달 원금과 이자로 160만원씩을 갚고 있다.
다행히 집을 구매한 후에도 금리가 계속 떨어져 이자율이 2%대 초반까지 내려왔는데, 최근 미국에서 금리를 올린다는 소식에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슬금슬금 오르고 있어 걱정이 적지 않다. 정씨는 “금리가 오르더라도 한꺼번에 확 오르지는 않겠지만 아직 남아 있는 대출금이 많아 은근히 걱정된다”고 말했다.
저금리에 기댄 돈 잔치가 드디어 끝날 것인가. 미국이 다음 달 기준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장기간 지속돼온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릴지 주목되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국내 금리와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금리가 오르면 당장 13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거나 생활을 유지해온 가계가 지금보다 불어난 이자상환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빚으로 연명해온 한계기업들은 또 다른 뇌관이다. 채무불이행 증가, 소비 위축, 기업 도산, 경기침체와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2008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국채 매입을 통해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를 단행했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휘몰아쳤지만 이미 미국의 기준금리 수준이 연 0~0.25%까지 내려가 더 이상의 경기부양 수단이 없게 되자 꺼내든 카드였다.
이후 시중에 풀린 충분한 자금을 바탕으로 마이너스였던 성장률이 플러스로 회복되고 실업률이 하락하는 등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나자 미 연준은 2014년 10월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기준금리를 0.25~0.50%로 한 차례 인상했다.
하우스푸어들 집 급매 처분 가능성
하지만 2016년 들어 새해 벽두부터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이 폭락하고 국제유가가 급락하는 등 세계 경기가 다시 얼어붙으면서 연준은 추가 금리인상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는 연준의 금리정책을 비난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 연준이 타이밍으로 보고 있던 12월 금리인상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 후 예측은 빗나갔다. 트럼프 당선인이 국채 발행을 늘려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하자 미국 국채를 비롯한 글로벌 채권 금리가 치솟았다. 트럼프의 정책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유발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래 수익률이 고정된 채권 가격은 계속 하락(금리 상승)하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변동이 없는데도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2%를 넘어섰다. 기준금리와 시중금리가 이처럼 괴리된 데에는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더 이상 초저금리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돼 있다.
미 연준에서도 금리인상 신호를 강하게 내보내고 있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최근 상·하원 합동경제위원회 청문회 출석에 앞서 낸 성명에서 “이달 초에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위원회는 금리인상이 비교적 이른 시점에 적절해질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연방기금 금리선물 시장에서는 미 연준의 12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100%로 보고 있다. 타이 후이 JP모건자산운용 아시아 수석 시장전략가는 11월 24일 여의도에서 열린 ‘2017년 글로벌 시장 전망 간담회’에서 “미국이 내년 기준금리를 두세 차례 인상해 내년 말 1.0∼1.5% 수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하지 않을 수도
미국의 금리인상은 태평양 건너에 있는 한국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현재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는 각각 0.25~0.50%와 1.25%인데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한·미 간 금리 차가 좁혀진다. 고수익을 노리고 국내에 투자한 외국인 자금이 머물 요인이 약해지면서 외국인 자본 이탈과 원·달러 환율 급등(원화 약세)을 초래할 수 있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외국인에게 거의 100% 개방돼 있어 외국인 자금이 들락거리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다. 그만큼 다른 신흥국에 비해 금융시장의 출렁임이 큰 편이다. 이미 미국 국채 금리 급등세로 국내 증시와 채권시장에서는 외국인 자본이 크게 빠져나갔다. 이를 방어하려면 한국은행도 결국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금리가 오르면 어떻게 될까. 우선 빚이 1300조원에 달하는 가계의 이자부담이 커진다. 이미 국내 시중금리는 미국 국채 금리를 따라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은행의 대표적 고정금리 상품인 혼합형 주택담보대출의 신규 금리는 최근 연 5%에 육박한다. 한국신용정보원이 지난해 6월 기준 전 금융권 대출보유자 1800만명의 대출정보를 전수조사한 결과 36~60세 중장년층 대출보유자의 1인당 평균 대출잔액이 8000만원에 달했다.
이자부담이 늘어도 소득이 같이 늘어나면 문제가 없지만 가계의 실질소득은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계 실질소득 증가율은 지난해 3분기 이후 5분기째 0% 안팎을 맴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의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가계소득이 5% 하락하고 금리는 1%포인트 상승하면 가계의 평균 원리금 상환액이 2015년 기준 1140만원에서 1300만원으로 14% 늘어난다고 예상했다.
특히 주택 구매액의 대부분을 대출로 조달하거나, 은행의 대출심사 문턱을 넘지 못해 금리가 높은 상호금융·저축은행 같은 제2금융권을 이용한 대출자들의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 금융당국이 고정금리형으로 분류하는 주택담보대출은 대부분 5년간 고정금리 적용 후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혼합형 상품이라,
낮은 고정금리로 원리금을 상환하던 가계가 금리상승기에 변동금리로 전환되면 이자 상환을 감당하지 못해 채무불이행이 늘어날 수도 있다. 하우스푸어들이 집을 급매물로 내놓으면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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