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10년…오늘도 대박을 꿈꾼다
허황된 꿈·사행성 조장 비판도 많지만
열살 된 로또, 일주일 간의 행복티켓으로 자리 잡아
요즘 세상에 일확천금은 로또 빼고는 다 사기
이번 주말도 당첨명당 가게 앞은 서민들 줄로 장사진
나는 2002년 12월 2일 태어났어. 사람들은 대개 내가 가진 숫자 1~45 중 6개에다 칠을 하지. “자동요”라면서 그냥 기계가 해주는 대로 사는 사람도 있지만.
토요일 밤이 되면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자신이 선택한 숫자의 공이 나오기를 기대하지. 그런데 1등 당첨 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야.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으니까 숫자 6개를 전부 맞히기란 정말 정말 어렵지.
처음에 나는 인기가 별로 없었어. 발매 첫회 36억원어치밖에 팔리지 못했거든. 1등도 나오지 않았어. 그런데 7~9회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자 내 인기는 하늘을 찔렀지. 10회 판매금액은 2600억여원, 1등 총 당첨금은 835억9000여만원까지 치솟았어. 1등이 13명이나 됐지.
2003년 4월 드디어 ‘대박’이 터졌어. 19회 추첨에서 1등 당첨금액(407억여원)을 1명이 가져간 거야. 당첨자가 강원도 춘천에 근무하는 경찰관으로 알려지면서 춘천은 물론 전국이 들썩였지. 이후 사람들은 나를 마구 사들이더라고. 전국에 ‘로또 광풍’이 휘몰아쳤어.
카드대란이 일어나면서 신용불량자들이 거리에 넘쳐나던 때였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매출을 기록하자 내가 사행성 조장의 온상으로 지목됐어. 사회 분위기를 더 어수선하게 만들었다는 거야. 나를 놓고 사람들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싸우고 속이고, 나 원 참.
있잖아, 빚에 시달린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주머니 속에 내가 수십 장이나 들어 있을 때도 있었어. 2003년 전체 복권 판매액 4조2331억원 중 3조8031억원이 나였어 나.
사정이 이렇게 되자 정부가 나설 수밖에. 이월 횟수를 5회에서 2회(2003년 2월)로 줄였고, 게임 가격도 2000원에서 1000원(2004년 8월)으로 낮췄어.
그래도 안 좋은 일만 일어나면 나를 들먹이더라고. 대박, 인생역전은 그나마 들을만해. 변별력이 없는 수능 ‘로또 수능’, 부동산 광풍 때 분양 ‘로또 분양’ 등등.
사람들은 잘 알아야 해. 나를 사는 이유가 대박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 복권은 사행심을 이용하긴 해. 너희도 알잖아. 그러면서 나만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사람들이 만들어냈으니까.
복권은 즐거움이야, 그리고 나눔이야. 내가 태어나면서 조성한 기금액이 해마다 1조원에 달해. 지금까지 총 11조363억원이 모였어. 소외계층에, 문화사업에, 임대주택 건설에, 나는 사람들한테 다시 돌아가고 있어. 1등 당첨자도 2948명이나 돼.
나를 한번 사봐. 가장 많이 나온 번호는 40이야. 그렇다고 많이 사지는 말고. 그러면 1주일이 기쁠거야. 대박은 바라지 말고, 나눔의 기쁨을 누려봐. 행운은 열심히 사는 사람의 것이니까.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은 1947년 너희가 먹고살기 어려울 때 런던올림픽 선수단의 참가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올림픽 후원권’이란 사실을 잊지 마. 안녕.
서민들의 ‘일주일 행복티켓’ 로또 10년의 明暗
나는 토요일에 가장 많이 팔려. 나 때문에 인생역전된 사람이 많지. 가정이 풍비박산난 사람도 있고. 난 다음 달 2일이면 열 살이 돼. 내가 누구냐고? 로또야, 로또복권.
나는 2002년 12월 2일 태어났어. 사람들은 대개 내가 가진 숫자 1~45 중 6개에다 칠을 하지. “자동요”라면서 그냥 기계가 해주는 대로 사는 사람도 있지만.
토요일 밤이 되면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자신이 선택한 숫자의 공이 나오기를 기대하지. 그런데 1등 당첨 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야.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으니까 숫자 6개를 전부 맞히기란 정말 정말 어렵지.
처음에 나는 인기가 별로 없었어. 발매 첫회 36억원어치밖에 팔리지 못했거든. 1등도 나오지 않았어. 그런데 7~9회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자 내 인기는 하늘을 찔렀지. 10회 판매금액은 2600억여원, 1등 총 당첨금은 835억9000여만원까지 치솟았어. 1등이 13명이나 됐지.
2003년 4월 드디어 ‘대박’이 터졌어. 19회 추첨에서 1등 당첨금액(407억여원)을 1명이 가져간 거야. 당첨자가 강원도 춘천에 근무하는 경찰관으로 알려지면서 춘천은 물론 전국이 들썩였지. 이후 사람들은 나를 마구 사들이더라고. 전국에 ‘로또 광풍’이 휘몰아쳤어.
카드대란이 일어나면서 신용불량자들이 거리에 넘쳐나던 때였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매출을 기록하자 내가 사행성 조장의 온상으로 지목됐어. 사회 분위기를 더 어수선하게 만들었다는 거야. 나를 놓고 사람들이 서로 자기 것이라고 싸우고 속이고, 나 원 참.
있잖아, 빚에 시달린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주머니 속에 내가 수십 장이나 들어 있을 때도 있었어. 2003년 전체 복권 판매액 4조2331억원 중 3조8031억원이 나였어 나.
사정이 이렇게 되자 정부가 나설 수밖에. 이월 횟수를 5회에서 2회(2003년 2월)로 줄였고, 게임 가격도 2000원에서 1000원(2004년 8월)으로 낮췄어.
그래도 안 좋은 일만 일어나면 나를 들먹이더라고. 대박, 인생역전은 그나마 들을만해. 변별력이 없는 수능 ‘로또 수능’, 부동산 광풍 때 분양 ‘로또 분양’ 등등.
사람들은 잘 알아야 해. 나를 사는 이유가 대박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 복권은 사행심을 이용하긴 해. 너희도 알잖아. 그러면서 나만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사람들이 만들어냈으니까.
복권은 즐거움이야, 그리고 나눔이야. 내가 태어나면서 조성한 기금액이 해마다 1조원에 달해. 지금까지 총 11조363억원이 모였어. 소외계층에, 문화사업에, 임대주택 건설에, 나는 사람들한테 다시 돌아가고 있어. 1등 당첨자도 2948명이나 돼.
나를 한번 사봐. 가장 많이 나온 번호는 40이야. 그렇다고 많이 사지는 말고. 그러면 1주일이 기쁠거야. 대박은 바라지 말고, 나눔의 기쁨을 누려봐. 행운은 열심히 사는 사람의 것이니까.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은 1947년 너희가 먹고살기 어려울 때 런던올림픽 선수단의 참가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올림픽 후원권’이란 사실을 잊지 마. 안녕.
소소한 일상의 행복인가? 일상에 녹아든 한탕주의인가?
누적 판매액 총 26조9387억원
국민 5명당 1명꼴로 구매한 셈
개인이 모든 것 해결해야 하는 사회
로또는 좌절먹고 자란 시대의 괴물
도박 아닌 건전한 오락 되려면
예측가능한 사회부터 만들어야
사람들은 1000원으로 일주일간의 행복을 샀지만, 로또는 ‘위험사회’의 불행을 먹고 자랐다. 지난 2002년 12월 ‘인생역전’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로또가 국내에 처음 선보인 지 10년. 언제 ‘깡통인생’이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경제위기의 시대, 로또는 사람들의 좌절을 먹고 괴물처럼 자라났다.
1회부터 지난 17일 추첨한 520회차까지 로또의 누적 판매액은 총 26조9387억원에 이르렀다. 회당 평균 518억원어치가 팔렸다. 2004년 8월부터 게임당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낮아진 가격을 적용하면 회당 5000만번의 게임이 이뤄졌다. 1인당 5게임을 구매한다고 치면, 회마다 국민 5명당 1명꼴로는 로또를 샀다는 얘기다. 가족 중 한 명은 매주 로또에 ‘인생 한방’의 꿈을 거는 셈이다.
경제가 불황에 빠질수록 복권이 잘 팔린다는 이야기도 들어맞았다. 로또 등장 다음해인 2003년엔 3조8031억원이었던 판매액이 2007년 2조3646억원으로 4년간은 해마다 9~10%씩 줄었지만, 2008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서 지난해엔 2조8120억원까지 늘어났으며, 올해는 게임당 값이 1000원으로 내린 8년 만에 처음으로 3조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크다.
연간 로또 판매액이 늘기 시작한 2008년은 고유가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및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때다. 회당 1등 당첨확률 814만분의 1. 삶이 불행해지고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사람들은 0에 가까운 수학적 확률을 아직 실현되지 않았을 뿐인 100%의 종교적 확신으로 대체한다. 이때 1000원짜리 ‘심심풀이 오락’은 당첨금 수십억, 수백억원을 노린 ‘도박’이 된다.
서영표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위기뿐 아니라 불평등지수가 높고 부의 양극화가 심하며, 신분 상승 기회가 봉쇄된 사회적 조건이 로또 같은 ‘한탕주의’와 ‘일확천금의 꿈’을 키운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의료와 교육뿐 아니라 관혼상제 등 개인의 모든 일상이 상품화되고 국가의 복지나 안전망보다는 개인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환경에서 사람들은 보험이나 복권, 사행산업에 집착하게 된다”고 풀이했다.
상위 1%가 부를 독식할 뿐 아니라 계층 간 이동이 불가능한 ‘닫힌 사회’에서 ‘내 삶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심리는 한탕주의를 더욱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노동만으로는 주택과 의료ㆍ교육 문제 등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없고, 이자 소득과 주식ㆍ펀드 등 금융상품 및 부동산 시세 차익으로 인한 부의 축적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복권 열풍은 필연적인 결과다. 로또는 학벌과 직업ㆍ재산 등에 상관없이 1000원만 있으면 참여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게임’인 셈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열심히 일해서는 소득을 불릴 수 없고, 최소한의 안락한 삶도 이룰 수 없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막연한 환상에 기대게 된다”고 말했다. “가족 중 누군가 아프거나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되는 상황처럼 개인이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때 사람들에겐 뭔가 의존할 것이 필요하다”는 게 곽 교수의 분석이다. “굉장한 기업조차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미래가 예측 불가능한 사회에서 ‘한탕주의’를 꿈꾸게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람들은 거리의 인형뽑기를 ‘투자’라고 생각하거나 내 미래가 걸려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또를 유원지의 다트나 사격처럼 ‘심심풀이 오락거리’로 즐기는 사회는 건강하다. 하지만 매주 몇천원이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투자’가 되고 수십억원의 당첨금을 노린 ‘베팅액’이 되는 나라는 불행하다. 그때 ‘로또’는 사람들의 좌절과 불행을 착취하는 ‘달콤한 환영’이 되고, 수익금의 ‘공익적 사용’은 ‘악어의 눈물’이 될 것이다.
서 교수는 “로또 같은 합법적 사행산업이 오락이냐, 도박이냐를 가르는 기준 역시도 결국 그 사회의 평등과 복지 및 사회안전망의 정도가 될 것”이라며 “노동에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고, 이를 통해 최소한의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로또분양·로또수능·로또골…대한민국은 ‘로또 공화국’
2002년 12월 국내에서 시작된 ‘로또(lotto)’는 주택복권 올림픽복권 등 다른 복권과 달리 최고 당첨금액의 제한이 없어 론칭 초기 국민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렸다. 특히 여러 차례 당첨자를 내지 못해 이월 당첨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으면서 ‘로또계’ ‘로또공화국’ ‘로또팰리스’ 등의 신조어를 유행시켰다.
로또와 함께 시작된 것이 바로 ‘로또계’. 적게는 수명에서 많게는 수십명의 계원이 일정 금액씩을 내고 여러 개의 로또를 사, 이 중 하나라도 1등을 포함한 일정 등수에 당첨되면 상금을 나눠갖는 계(契)다. 꾸준히 로또에 도전할 수 있고, 당첨 확률도 높아져서 초기부터 직장 등에서 ‘로또계’를 결성하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이렇게 로또를 위해 계까지 만드는 등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았고, 로또를 추첨하는 매주 토요일에는 판매점마다 로또를 사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이 같은 사회 현상에 빠진 우리나라를 언론 등에서는 ‘로또공화국’이라고 꼬집었다.
로또 출범 초기 누가 1등에 당첨됐는지가 세간의 관심이었다. 언론은 1등 당첨자의 행보를 낱낱이 보도했고, 대부분 당첨자는 당첨금을 받아 서울 강남의 최고급 아파트인 도곡동 타워팰리스로 이사 갔다. 때문에 사람들은 타워팰리스를 ‘로또팰리스’라고 불렀다. ‘로또공화국’ ‘로또팰리스’, 두 단어는 로또 론칭 이듬해인 2003년 발간된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수록됐다.
로또는 본래 갖고 있던 복권의 의미를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한탕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사회 각계로 번져 ‘로또수능’ ‘로또분양’ 등 또 다른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로또수능’은 대학입시 수험생 사이에서 구전(口傳)된, 자조 섞인 단어다.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 난이도가 해마다 들쑥날쑥하면서, 잘하는 영역이나 과목이 어렵게 출제돼 표준점수나 등급이 높아지는 것을 수험생들은 ‘로또 맞았다’고 불렀다.
최근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로또분양’이라는 단어도 관심을 끌고 있다. 낮게 분양받았던 아파트 값이 급등하면서 분양자들이 이를 되팔아 상당한 양도차익을 취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은 가격이 많이 떨어졌지만 경기도 성남 판교신도시의 경우 대부분 아파트에 분양가만큼 웃돈이 붙으며 ‘로또 판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스포츠계에서는 로또가 ‘행운’의 의미로 통용된다. 야구나 축구에서 갑자기 터지는 홈런이나 종료 직전 터지는 골을 두고 ‘뜬금포’나 ‘버저비터’ 대신 ‘로또포’나 ‘로또골’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30대 변호사도 로또 사다니…814만분의 1 환상에 빠진 사람들
서초동 로펌 막내변호사 조모 씨
틈날 때마다 로또사며 일상탈출
당첨되면 집 한 채 사는 게 꿈
100번 샀는데 최고 당첨액은 15만원
조모(34) 씨는 올해 로스쿨을 졸업하고 서초동 소규모 로펌에서 일하고 있다. 막내 변호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조 씨에게는 한 가지 스트레스 해소책이 있다. 바로 로또 구입이다. 처음 로또가 시작된 2002년부터 10년 동안 매주는 아니지만, 틈날 때마다 구입하는 로또는 조 씨에게 그야말로 일상의 탈출구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시기였어요. 그 때만 해도 1등 당첨금이 어마어마했잖아요? 만약 1등에 당첨되면 ’인생 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때부터 조금씩 구입하기 시작했어요”라고 조 씨는 처음 로또를 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고시공부를 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 해소에도 로또가 도움이 됐다고 조 씨는 말했다.
“로또에 당첨되면 고시공부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다만 좀 더 편안하게,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로또는 말 그대로 횡재수이고, 제가 가진 꿈, 하고 싶은 직업에 대한 도전은 별개라고 생각했죠. 일주일에 한 번 로또를 구입할 때마다 기분좋은 상상을 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어요”라고 조 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시간이 지나 로스쿨에서 공부를 할 때도, 로펌에 취직해 모두가 부러워하는 변호사가 된 지금도 로또 구입은 조 씨에게 일상이다.
“변호사가 되고 서초동 법원을 왔다갔다 해 보니 별의별 사람을 만나요. 엄청난 부자도,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도 만나죠. 그럴 때마다 ’돈이 뭐길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지금도 로펌을 다니지만, 격무에 시달리는 봉급쟁이잖아요? 만약 1등 당첨이 되면 일을 그만두지는 않겠지만, 좀 더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평안을 얻지 않을까 해서 계속 구입하고 있죠. 요즘이야 워낙 당첨금이 얼마 안 돼서 가족이 살 만한 집 한 채 구입하는 것이 꿈이에요”라고 조 씨는 웃으며 구입 이유를 말했다.
조 씨는 덧붙여 “일주일에 만원, 무조건 자동으로. 구입 요일을 정하지 않고 생각나는 날 구입하는 것이 제가 정한 룰이에요. 흔히 말하는 명당이라는 곳도 찾아가 본 적이 없어요. 로또에 목을 매고, 당첨되길 일주일 내내 바란다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까요?”라며 “로또는 일종의 오락으로 생각해야지, 삶의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못해도 100번은 넘게 했지 않겠냐는 조 씨의 최고 당첨금은 얼마일까?
“4등. 15만원짜리 한 번. 제 최고 당첨금액이에요. 1회에 2000원할 때 일이죠. 오래 됐어요. 요즘은 5000원짜리 5등 몇 번 당첨된 것이 전부예요. 제가 큰 운은 없나 봐요”라며 웃는 조 씨는 “앞으로도 스트레스 해소 용도로 로또 구입을 계속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불안한 현실 한줄기 위안…명당은 절대 안 지나치죠…1등 돼도 계속 구매할 것
“로또를 구매한 뒤 ‘당첨되면 뭘 할까’라며 기분 좋은 상상을 합니다. 이렇게 일주일을 버티죠.”
2003년 6월께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던 당시 스물넷 청년 김현우(가명ㆍ33) 씨는 돈이 절실히 필요했다.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이었기 때문.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학교 주변을 배회하다 우연히 로또방을 봤다. 김 씨는 자신도 모르게 로또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 로또 6000원어치를 구매했다. 그는 로또를 책상에 올려놓고 추첨일인 토요일 저녁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친구들에게 로또를 샀다고 말하며 ‘당첨되면 사고 싶은 것을 다 사 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로또를 첫 경험한 김 씨는 한 달에 두어 번 로또방에 갔다. 그는 “군 입대를 앞두고 금전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로또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씨는 2006년 취직을 했다. 서울 강남의 모 엔터테인먼트 업체에서 보컬트레이닝과 작곡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현재까지 7년간 그는 매주 로또 2만~3만원어치를 구매했다. 한 달에 10만원을 로또에 투자하는 셈이다.
“음악하는 사람은 생활이 불규칙해요. 10만원이면 하루 술값 정도인데 로또를 산 뒤 얻는 즐거움에 비하면 비싼 게 아니죠.”
그는 로또가 자신의 인생에서 안정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수입이 일정치 않은 만큼 그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그런데 로또를 사면 이런 불안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나갈 돈은 많고 목돈을 들여 투자하는 것은 위험성이 크죠. 결혼하려면 집과 차가 있어야 하는데 저 혼자 힘으로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죠. 그래서 로또를 사요. ‘이번에는 당첨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면 힘이 나죠.”
20대 초반의 김 씨는 로또에 당첨되면 놀고 먹는 데 모든 돈을 다 쓰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초창기 로또 당첨금이 수십억원을 넘어 허황된 꿈을 꾸는 편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나만의 사무실을 갖겠다’ 등 현실적인 꿈을 꾸게 됐다”고 말했다.
로또는 주로 동네에서 구매하지만 가끔 로또 명당에 가기도 한다. “일부러 로또 1등이 많이 나온 명당을 찾으러 다니는 것은 아니예요. 하지만 ‘1등 몇 번 당첨된 집’이라고 적혀 있는 곳은 지나치지 않고 한 번씩 들르는 편이에요.”
아직 큰 당첨금을 받은 적은 없다. 당첨금 7만원인 4등이 딱 한 번, 5000원인 5등은 2~3주에 한 번씩 나온다. “로또 1등에 당첨되더라도 로또를 계속 구매할 거예요. 로또는 매주 저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죠.”
저소득층 내집마련·다문화가정 한글교육…로또는 ‘나눔의 대명사’
10년간 누적 기금액 11조363억원 규모
기금 조성률, 로또 판매액의 41% 달해
65%가 저소득층 공익사업에 활용
재정수입 주요 수단 稅부담 완화 효과도
로또복권이 진화하고 있다.
2002년 국내에 선보인 로또는 사행성이 강했다. 하지만 복권은 어느 정도의 사행심을 전제로 국민에게 건전한 오락을 제공하고, 복권 판매로 조성된 재원을 공익사업에 활용하면서 국민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게 주요 목적이다.
우리나라 복권기금은 대부분 판매 수입금으로 조성된다. 판매수입금의 50% 정도는 당첨금으로 쓰여지며, 10%는 복권의 발행과 판매 등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나머지 40% 정도가 복권기금사업의 재원으로 조성되고 있다. 로또 발매 이후 지금까지 조성된 기금은 11조363억원. 기금 조성률은 판매액의 41.0%에 달한다. 절반 가까이 다시 우리한테 돌아오는 셈이다.
조성액은 로또 광풍이 몰아친 2003년 1조31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월 횟수를 줄이고, 게임 가격을 낮추면서 이후 판매액은 2조원대로 떨어졌지만, 조성률을 높이면서 해마다 1조원 안팎의 기금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기금의 35%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등 10개 기관에 일정비율 배분(법정배분사업)된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 국민체육진흥공단, 근로복지공단, 중소기업진흥공단, 제주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산림조합중앙회, 보훈복지의료공단, 문화재청 9개 기관과 전국 16개 광역단체가 총 3612억원의 기금을 받았다.
이 기금은 지역의 실정과 형평성을 고려해 과학문화 확산사업, 운동장 및 생활체육 시설 지원, 영유아 보육료 지원 등 33개 사업에 사용된다. 올해도 이 기관들에 4259억원이 배분됐다.
65%는 공익사업에 쓰인다. 올해 배정된 금액은 ▷임대주택 건설 등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 지원사업 4880억원 ▷국가유공자에 대한 복지사업 177억원 ▷저소득층, 장애인 및 성폭력 피해여성 등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사업 2804억원 ▷문화예술진흥 574억원 ▷기타 4억원이다.
주거안정 사업으론 ‘도심에 사는 저소득층에 내집 마련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복권위원회는 “현재 서울에 6600가구가 한 평 남짓 쪽방에서, 5000가구의 이웃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다”면서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주거이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또는 다문화 시대를 맞아 관심이 필요한 외국인에게도 지원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기금이 지원하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한글 무료 교육과 우리 전통예절, 다문화사회 이해 등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외국인이 한국에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한다. 방문서비스도 실시 중이다.
문화소외계층을 위한 전시ㆍ공연 나눔도 활발하다. 지난해 기금 지원액은 480억원. 노인이나 장애인, 한부모가정 등 저소득층 30만여명이 문화예술 체험의 혜택을 받았다.
복권의 긍정적 역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 볼 때 복권은 유용한 재정수입 수단이다. 조세저항이 적어, 국민의 세금부담을 완화시켜주고 있다. 또 당첨자에게 기쁨을, 낙첨자에게 사행심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면서 요행을 바라는 인간의 욕구를 건전하게 해소해 주며, 불법 도박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복권기금은 로마황제들의 놀이에서부터 전쟁비용, 국가 중요 사업의 재원까지 폭넓게 활용돼 왔다.
우리나라의 첫 복권은 1947년 런던올림픽 참가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올림픽후원권’. 이후 이재민 구호자금(1949년)과 박람회 개최 경비(1962년과 1969년)를 마련하기 위해 복권이 발행됐다.
따라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발행비용이 늘어나게 된다. 공공기금 마련의 효율성이 떨어진 데 대한 타개책으로 등장한 게 바로 로또. 이제 로또는 사행성을 넘어 ‘나눔’과 ‘기부’라는 복권의 진정한 의미로 한 발씩 다가가고 있다.
트레져헌터 당첨금 지급률 65%…로또는 국내서 가장 짠돌이 복권
2012년 11월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복권은 모두 12종이다. 여기에 유사복권으로 분류되는 스포츠토토(체육진흥투표권)를 추가할 수 있다.
▶로또만 있는 게 아니다=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복권은 크게 ▷온라인 복권 ▷인쇄복권 ▷전자복권(인터넷복권)으로 분류된다. 온라인 복권에는 최고 인기제품인 ‘나눔로또6/45(이하 로또)’가 있고, 인쇄복권엔 추첨식으로 당첨자를 발표하는 ‘연금복권520’과 즉석식인 ‘스피또 시리즈(500ㆍ1000ㆍ2000)’가 있다. 전자복권 역시 추첨식 상품(‘스피트키노’, ‘메가빙고’, ‘파워볼’)과 즉석식 상품(‘트리플럭’, ‘트레져헌터’, ‘더블잭마이더스’, ‘캐치미’)으로 나뉜다.
판매 가격은 대부분 1000원이지만 ‘스피또500’과 ‘트레져헌터’는 500원, ‘스피또2000’은 2000원이다.
로또 판매액은 지난해 복권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당첨금을 연금처럼 매달 나눠서 받을 수 있는 연금복권도 지난해 7월 출시된 이후 높은 판매율을 이어가고 있다.
당첨금 지급률이 가장 높은 것은 트레져헌터(64.8%)이며, 다음은 더블잭마이더스(64.7%)다. 반대로 지급률이 가장 낮은 것은 로또로, 복권 판매액의 50%만 당첨금으로 지급된다. 트리플럭은 60%, 스피드키노는 평균 58.3%(게임 방식에 따라 56.4∼60.4%)다. 파워볼과 메가빙고는 당첨금 지급률이 60%다.
스피또2000과 스피또1000이 60.0%, 스피또500이 56.0%다. 연금복권은 분할 지급 방식이어서 이자율에 따라 1등 당첨금(240개월간 매월 500만원)의 현재 가치가 달라지므로 계산하기 쉽지 않으나, 이자율 4%로 계산하면 약 8억원에 해당하고 이를 반영하면 지급률은 약 60%로 다른 복권들과 비슷하다.
▶65년 복권 역사=광복 이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행된 복권은 1947년에 나온 ‘올림픽 후원권’이다. 이듬해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장당 100원에 140만장을 발행했다. 이후 복권은 가난한 정부가 경제 개발을 위한 자금이 필요할 때 수시로 발행됐다.
지금처럼 정기적으로 꾸준히 발행되는 복권은 1969년 한국주택은행이 발행한 주택복권이 도입되면서 등장했다. 당시 한국주택은행은 무주택 군경 유가족과 국가유공자, 베트남전쟁 파병 장병들의 주택 마련을 위해 주택복권을 발매해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1990년대에는 동전으로 긁어 그 자리에서 바로 당첨 여부를 확인하는 즉석복권이 인기를 끌었다. 대전국제무역박람회 개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1990년 9월부터 3년간 발행된 엑스포복권이 첫 즉석복권이다. 체육복권, 기술복권, 복지복권 등이 그 뒤를 이으면서 1995년 전체 복권시장의 66%를 즉석복권이 차지했다.
복권의 인기가 높아지자 각종 복권기관이 난립하는 가운데 판매도 되지 않고 곧바로 폐기되는 복권도 나타났다. 2000년대 초까지 사라진 복권만 체육복권, 기술복권, 복지복권 등 9종에 달했다. 복권의 종류가 크게 늘자 정부는 구조조정에 나서 2004년 복권 및 복권기금법을 시행, 복권 발행기관을 복권위원회로 단일하고 복권 종류수도 현재 수준으로 정착됐다.
“학비없어 자퇴 결심한 날 덜컥 당첨…먼저 부모님 빚부터 갚았죠
당첨금 탕진·자살 등 극단적 사례는 소수…
대부분 ‘꿈같은 행운’에 감사
고장난 차 바꾸고 하루에 커피 한잔 더…
소소한 사치 누리며 행복 만끽
지난 8월 로또 1등 당첨자 김모(43) 씨가 목욕탕에서 목맨 채 발견됐다. 잇단 주식 실패와 사업 부진으로 상금 18억원은 5년 동안 철근에 녹슬 듯 모두 소모됐다. 무일푼이 된 김 씨는 부인이 친척에게 빌려온 돈으로 연명하다 공중목욕탕 탈의실에서 노끈으로 목을 맸다.
#경북 포항남부경찰서는 작년 25일 로또 1등에 당첨된 손위 동서를 칼로 찔러 죽인 혐의로 이모(52) 씨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살해된 김모 씨는 로또 당첨금 15억원을 받은 뒤 일을 그만뒀고, 이혼 절차를 밟고 있었다.
우리는 로또 당첨자의 삶을 비극으로 상상하는 데 더 익숙하다. 일확천금으로 인생 역전을 이룬 승리자가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가족과도 불화해 삶의 패배자가 된다는 ‘스토리’는 우리네 밥상머리 교육의 주된 소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 1~2회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극단적인 예가 매년 400명씩 배출되는 1등 당첨자 모두의 인생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의 삶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배트맨ㆍ슈퍼맨보다 더 자신을 꼭꼭 숨기고 살기에 당첨자의 삶을 엿보는 열쇠는 오직 그들 손에만 쥐어져 있다. 어렵게 이들 ‘평범한 행운아’ 3명을 만나 인생역전의 기승전결을 들어볼 수 있었다.
#1. 43세ㆍ남자ㆍ회사원ㆍ미혼의 경우
“이게 로또 영수증이고, 당첨번호 프린트본, 상금이 입금된 농협 통장이에요.”
정주용(43ㆍ가명) 씨는 파일에 정리해온 증거물을 보여주며 말을 꺼냈다. “괜한 의심을 사기 싫어서 준비해 왔다”고 했다. 푸근한 인상이지만 깔끔한 옷차림과 깨끗이 정리된 파일에서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이 드러났다. 한때 미술학도였고, 지금은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올해 1월 정 씨는 로또 1등에 당첨돼 19억원(실수령액 13억원)을 받았다. 로또 1회차부터 매주 빠지지 않고 2만원어치를 사온 지 10년 만이었다.
그는 부모님이 사기를 당해 5억원의 빚을 떠안으면서 매달 180만~200만원의 월급과 아르바이트비로 빚을 갚으며 살고 있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미술은 물론 결혼도 포기했다. 오직 ‘빨리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당첨금을 받자마자 이틀 만에 남은 빚 3억원을 갚았다. “채권자에게 ‘왜 완납증 빨리 안 끊어주는 거냐’며 큰 소리도 쳐봤어요.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정 씨는 로또에 당첨되기 전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렸던 채무청산ㆍ주택구매ㆍ노후연금ㆍ창업준비ㆍ기부활동 다섯 가지를 모두 실현에 옮겼다.
“부동산 경기가 어려워서 주택 구매는 좀 망설였지만, 부모님 몸이 안좋으셔서 경기도에 2억원대 집을 샀어요. 차를 한 대 뽑은 것 외에 계획에 없던 소비를 한 적은 없어요. 그것도 원래 타던 국산 중고차가 고장나 같은 기종으로 구입했어요.”
월 생활비는 40만원에서 60만원으로 늘었다. “옷을 좀 사고, 제가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 하루에 한 잔이 늘어서 그렇네요.”
정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방에 작은 카페를 열고 취미로 미술을 하며 사는 것이 그의 꿈이다. 가능하다면 결혼도 하고 싶다.
#2. 24세ㆍ남자ㆍ대학생ㆍ미혼의 경우
송현종(24ㆍ가명) 씨가 로또에 당첨된 한 주는 말 그대로 극적이었다.
“그 다음주 월요일 대학 자퇴서를 내려고 했는데 덜컥 당첨이 된 거예요.”
그는 앳된 얼굴을 반짝이며 자신도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송 씨는 대학을 그만두고 취업을 준비하려 했다.
“생산직은 대졸보다 고졸을 선호하거든요.” 울산이 고향인 그는 H자동차의 하청업체에서 스무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로또도 같이 일하던 형이 사기에 따라서 사기 시작한 거예요.”
그는 지난 7월 1등에 당첨돼 총 16억원을 받았다. 제일 먼저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주방 보조로 일하며 살림을 꾸려왔지만 생활비가 부족해 3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남은 돈은 NH농협 PB의 추천으로 회전식 정기예금에 묶어뒀다. 한 달 이자로 나오는 270만원 중 절반은 생활비로 쓰고, 절반은 적금을 붓는다.
아직 나이가 어린 송 씨는 당장 이 돈을 쓸 계획이 없다. 그는 대학을 다니면서 취업원서를 넣고 있다. 올해 지원한 회사의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며 속상해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이 시대의 20대다.
그는 “그래도 마음에 여유가 생긴 건 사실”이라고 했다.
#3. 58세ㆍ남자ㆍ일용직ㆍ기혼의 경우
김수오(가명ㆍ58) 씨는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가난의 덫에 걸린 기분이다. 재활치료만 수년째 받았지만 아직 한 쪽 다리가 부자유스럽다. 남부럽지 않았던 직장에선 잘렸고, 일용직으로 입에 풀칠을 하며 살고 있었다.
지난 10월 로또 1등에 당첨돼 26억원을 수령한 그는 연방 싱글벙글이었다.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아 들뜬 기분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그는 사람 좋게 웃으며 “장인장모를 10년째 모시고 있는데 어르신예게 잘해서 복받은 게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당첨 2~3일 전 꿈에 나타나 “가족과는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물었던 게 예지몽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실수령한 18억1000만원 중 빚 2000만원을 갚고 통장을 두 개로 쪼개 각각 10억원과 8억원을 넣어두었다. 당장 무엇을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며 부인과 상의하고 있다고 했다.
로또로 13억원을 갖게 된 정주용 씨의 생활은 13억원의 자산을 가진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로또로 인생이 망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나와 비슷할 것 같다. 어떻게든 지키고 싶다.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우연히 부유하게 태어나고, 어떤 이는 곤궁한 집에 태어나듯이 로또의 행운도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온다. 복권 당첨자는 하늘의 선택을 받은 이들이지만, 앞으로의 삶을 꾸려가는 건 개인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평범’했다.
성취된 꿈에 도취돼 있을 것이 아니라 ‘꿈의 실현’을 ‘지금의 일상’으로 재빨리 변화시키는 태도가 필요해 보였다.
“통장엔 13억 선명…절제 못할까 겁나 신용카드는 거절”
1등 당첨됐다 말하자 VIP엘리베이터로 안내
체크카드만 발급받고 PB추천 예금 가입
농협직원 “주변에 알리지 마세요” 충고도
오늘은 로또 1등 당첨금을 타러 가는 날. 월요일에 가려고 했는데, 연휴여서 오늘은 수요일이다. 운전대에 손을 얹었다. 떨리지도 흥분되지도 않았다. 가슴이 두근거려 운전을 못하는 것 아닐까 싶었는데 손은 능숙하게 핸들을 움직였다.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우리 집은 경기도 파주의 무너져내릴 것 같은 판잣집. 몸이 불편한 부모님과 미혼인 내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로또 477회 1등에 당첨돼 19억1901만원을 받게 됐다. 행운의 번호는 14, 25, 29, 32, 33, 45. 총 8명의 당첨자 중 직접 숫자를 선택한 사람은 나 뿐이다. 서울 중구 충정로1가 NH농협은행 본점에 도착했다. 주차장 안내요원에게 “로또 때문에 왔다”고 조심스레 말했더니 옆 건물로 가라고 일러준다.
옆 건물인 신관은 주차권을 뽑을 때부터 안내요원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는다. “당첨금 때문에 왔다” “몇 등이냐” “1등이다”는 짧은 대화가 오가고 건물 입구에 차를 세웠다.
검은 정장을 입은 보안요원이 다가와 용건을 확인하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얼마후 엘리베이터에서 직원 한 명이 내려와 인사를 건넸다.
그는 VIP 엘리베이터로 나를 안내하고 4층 버튼을 눌렀다(올해 5월부터 15층에 복권상담실을 따로 마련). 엘리베이터는 혼자 타야 한다고 했다. 농협 본관에 ‘죽치고 있다’고 소문이 무성하던 조직폭력배나 각종 복지단체 사람은 없었다. 이날 이후로도 개인정보 유출이 의심되는 사례는 없었다.
문이 열리자 흔한 사무실 풍경이 나타났다. 직원 수십명이 칸막이에 둘러싸여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중나온 직원과 함께 복도를 따라 작은 방에 도착했다. 소파 하나, 책상 하나. 조촐했다.
당첨금 지급 담당자가 문을 두드렸다. 신분증과 로또복권을 확인하고 당첨 확약서를 작성했다. “농협 통장이 있느냐” “없다” “입금해드리겠다”고 했다. 당첨금 19억원에서 33%의 세금을 떼고 13억1873만8269원이 선명히 찍힌 새 통장이 내 손에 쥐어졌다. 체크카드도 발급받았다. 스스로 절제하지 못할까 무서워 신용카드 발급은 미뤘다.
담당자가 “자금운용에 대한 특별한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자 “PB(프라이빗뱅커)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다. NH PB센터에 등록하고 포트폴리오를 추천받았다. 정기예금에 넣어두면 월 이자만 200만원 가까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뒤로도 NH농협 PB와 지속적인 연락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PB를 통해 노후연금으로 3억원을 묶어두고, NH를 통해 2억5000만원짜리 적금을 붓기로 했다.
당첨 확인과 당첨금 지급, NH의 상담까지 모든 절차가 끝났다. 담당자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자리를 떠났다. 수많은 로또 당첨자를 지켜봐왔을 그가 “주변에 알리지 말라”고 했던 조언이 기억에 남는다. NH 측의 마지막 말은 “행복하세요”였다.
美·유럽 로또는 수천억원 돈폭탄…당첨되면 진짜 ‘인생잭팟’
경제대국 미국 로또의 천국이자 지옥
메가밀리언스·파워볼 당첨금 천문학적
공동구매 많고 외국서 원정까지 진풍경
세계 최초의 로또는 伊‘5/90게임’
유로 밀리언·유로 잭팟등 수십종 달해
미국은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자 자유주의ㆍ자본주의 나라답게 로또의 천국이자 지옥이라 할 만하다.
각종 복권이 다양하게 발매되며 대부분 1달러의 저렴한 가격에 주2회 추첨하기 때문에 복권 중독에 빠지기 쉽다. 가장 당첨금액이 크고 인기가 많은 로또는 미국 44개 주와 워싱턴DC 등 46개 지역에서 판매하는 메가밀리언스이다. 지난 3월 말 세계 복권 역사상 최고 당첨금인 6억4000만달러(약 7250억원)의 대박이 터져 3명이 당첨됐다.
당첨자는 총액의 25% 선인 각종 세금을 공제하기 전 금액을 기준으로 26년간 분할 수령하면 2억1300만달러(약 2411억원)를 받고, 일시금으로는 1억510만달러(약 1189억원)를 받게 된다.
현재 당첨자 중 캔자스 주에서 당첨된 사람이 변호사ㆍ재무설계사를 대동하고 나타나 당첨금을 수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메릴랜드 주 당첨자는 공동구매 건을 놓고 소송이 벌어지면서 수령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로또 당첨금액이 천문학적이어서 나눠 가져도 인생역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럿이 공동구매하는 로또계가 성행하고 있다. 메가밀리언스 로또는 기본 당첨금은 1200만달러지만 자주 이월되기 때문에 당첨금액이 많아 인기가 높다. 당첨금이 높은 이유는 낮은 당첨 확률 때문이다. 1~56 사이의 숫자 5개와 이와 별도로 메가볼이라 불리는 1~46 사이의 숫자 1개를 모두 맞혀야 하기 때문에 1등 당첨 확률이 1억7571만분의 1에 불과하다. 때문에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자주 이월되고 당첨금이 치솟으면 전 세계에서 로또를 사려고 원정까지 오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지난 3월 말의 6억4000만달러 대박도 18차례나 이월되면서 만들어졌다.
메가밀리언스와 쌍벽인 파워볼은 59개의 숫자 중 5개를 맞히고, 동시에 파워볼 35개 중 숫자 1개를 맞혀야 당첨된다. 이 역시 한국의 6/45 방식 로또보다 확률이 훨씬 낮다.
미국에서 로또가 국가적 사업으로 시작된 건 독립 후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 장관의 아이디어였다. 독립전쟁 후 재원 마련을 위해 로또를 만들면서 상금은 무척 높고 당첨 확률은 최대한 낮게 고안해서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미국은 이 돈으로 전후 인프라 복구 사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로또는 금세기까지 하버드대학도 발행할 정도로 모금 수단으로 성행했고 주정부나 각종 자치단체, 대학, 기금에서도 발행했었다. 대부분 로또 수익금은 공공 목적을 위해 사용하고 있어 로또에 대한 비난 여론이 크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남북전쟁 전에는 흑인 노예를 경품으로 주는 노예 로또가 성행했고,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도 죽기 전에 참회했지만 노예 로또를 발행한 전력이 있다.
유럽은 ‘로또의 고향’답게 로또의 종류도, 당첨자의 사연도 다양하다.
이탈리아는 1530년대 세계 최초의 로또 ‘5/90 게임’을 선보인 로또 종주국으로, 지금도 로또 열풍을 이끌고 있다. 이탈리아가 1997년부터 발행한 ‘슈퍼 에날 로또(Super Enal lotto)’는 1등에게 복권 판매액의 49.5%를 몰아주는 슈퍼 로또다. 매주 3회 추첨을 진행하며 이월 횟수에 제한이 없어 당첨금이 엄청나게 불어날 수 있다. 지난 2010년 10월에는 109차례의 이월 끝에 1등이 무려 1억7770만유로(약 2452억원)를 가져갔다.
스페인의 ‘엘 고르도(El Gordo)’는 국민의 90% 이상이 구입하는 인기 로또다. 1812년 시작돼 2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로또는 매년 12월 22일 추첨을 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통한다. 같은 번호의 복권이 여러 장 발행돼 1등이 여러 명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에는 인구 2000명의 작은 마을 그라넨에서 40만유로(약 6억원)를 받는 1등 복권 1800장을 싹쓸이해 화제가 됐다. 농업을 주로 하는 이 마을 주민들은 불황의 여파로 상당수가 실업자로 전락했는데 뜻밖의 행운이 찾아와 희망을 갖게 됐다.
‘유로 밀리언(Euro Millions)’은 지난 2004년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스위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로화 사용 9개국이 연합해 만든 유럽 최대의 로또다. 1등이 이월되는 것은 가능하지만 당첨금은 최대 1억9000만유로(약 2622억원)로 제한된다. 매주 두 번 추첨을 하는데 올해 6월부터 15회 동안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8월이 되자 당첨금이 상한액까지 올랐다. 유럽 복권 사상 최대의 이 행운은 영국의 한 당첨자에게 돌아갔다.
지난 3월 시작된 ‘유로 잭팟(Euro Jackpot)’은 현재 독일 핀란드 덴마크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네덜란드 에스토니아 스웨덴 등 8개 나라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향후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도 참여할 예정이다. 1등 당첨금은 최대 9000만유로(약 1242억원)까지 이월된다.
섹스·마약·도박에 탕진…재산 노린 친척에 피살도
3억1490만弗 당첨 美 휘태커씨
손녀·딸 마약중독으로 죽고
자신은 마약·폭행으로 신문 오르내려
19세에 백만장자 됐던 英 캐럴씨
방탕한 생활로 몇년만에 재산 탕진
부인은 떠나고 두차례 자살 시도
로또 당첨금액이 천문학적인 미국의 당첨자들은 모두 행복하게 잘살까. 물론 아니다. 다른 나라 당첨자들과 마찬가지로 일확천금을 탕진하거나 가족간에 불화를 겪고 비참한 말로로 끝나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미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당첨자들이 당첨금을 노린 친척들에게 피살되거나 스트레스로 약물중독사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미국 복권 사상 가장 화제를 모은 당첨자는 지난 2002년 12월 25일 웨스트버지니아 주에서 3억1490만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사상 최고액의 파워볼에 당첨된 앤드루 잭 휘태커가 꼽힌다. 그는 크리스마스 날에 당첨되면서 하느님의 가호가 있었다고 기뻐했지만 기쁨은 잠시, 당첨금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바로 음주운전으로 걸렸고 몇 달 후 차량 강도가 55만달러가 든 돈가방을 훔쳐갔다. 돈을 나눠가진 가족들은 흥청망청 쓰다가 다음해 손녀딸이 마약중독으로 사망했고, 2009년에는 딸도 약물중독으로 뒤를 이었다. 그 자신은 50만달러의 현찰 가방을 들고 다니며 스트립 쇼를 전전하다가 음주운전과 마약, 폭행 등으로 자주 신문 지면을 오르내렸다.
뉴저지 주에서 지난 1985년과 1986년에 2년 연속 로또에 당첨돼 전국적인 화제를 뿌린 이블린 애덤스도 충격적 결말로 유명하다. 총 550만달러를 받은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손을 벌리는 통에 스트레스를 못 이겨 애틀랜틱 시티에서 도박에 모든 돈을 탕진하고 트레일러 차량에서 근근이 살고 있다. 그녀는 “내 인생 최대 비극은 단 하나의 단어, 바로 ‘안 돼(No)’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이라며 주변 사람들이 돈을 나눠달라는 통에 모든 것이 파괴됐다고 말했다.
1988년에 펜실베이니아 주 로또에서 1억6200만달러에 당첨된 윌리엄 포스트 씨도 비슷한 처지로 전락했다. 그는 당첨되자 마자 전 여자친구가 소송을 제기해 당첨금 절반을 빼앗겼고 친동생이 유산을 노리고 청부살인극을 벌이는 등 목숨의 위협까지 당하며 당첨 1년 후에는 100만달러의 빚더미에 앉게 됐다.
1966년 일리노이 주 로또에서 2000만달러의 당첨금을 받은 제프리 댐피어는 이 돈으로 플로리다 주 탬파에서 명품 팝콘 회사를 차려 대성공을 거뒀으나 2005년 처제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유산을 노리고 납치 살해하면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로또의 저주’일까. 유럽 또한 최고의 행운을 거머쥔 이후 나락으로 떨어진 로또 당첨자들이 적지 않다.
영국 북동부 타인사이드 출신의 로런스 캔들리시(36)는 지난 1997년 550만파운드(약 95억원)짜리 로또에 당첨됐다. 그는 당첨금으로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 37만파운드를 들여 주택 7채를 구입, 가족ㆍ친척들과 한 동네에 모여 평화롭게 살았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2000년 폭력배들이 캔들리시의 집과 가족의 차에 불을 지른 데 이어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캔들리시 가족은 이후 영국을 떠나 스페인의 휴양지 베니돔으로 이주해 새 둥지를 틀었지만 불운은 계속됐다. 거액의 돈은 모래알처럼 빠져나가 자신과 어머니, 누이의 집은 은행에 압류당하고 운영하던 술집도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2009년에는 그가 사준 집에서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일어났다. 빈털터리가 된 캔들리시는 2010년 영국으로 돌아왔다.
영국 노퍽에 사는 마이클 캐럴(28) 역시 비운의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2002년 로또에 당첨돼 970만파운드(약 167억원)라는 거액을 거머쥐었다.
19살의 어린 나이에 백만장자가 된 그는 성매매, 섹스 파티, 마약 등 방탕한 생활에 빠졌고 불과 몇 년 만에 재산을 탕진했다. 2004년 코카인 소지와 음주운전 혐의로 징역을 살고 나오자 부인은 아이들을 남긴 채 떠났다. 정부 보조금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던 캐럴은 지난해 자살을 시도했다가 친구에게 발견돼 겨우 목숨을 구했다. 두 번째 자살 시도였다. 건강을 회복한 그는 페인트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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