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15
최고수들만의 관심사 ‘땅’
지난 5월 국토교통부는 깜짝 놀랄 만한 발표를 했다. 실수요자가 아니면 땅을 사지 못하는
토지시장의 대표적인 규제인 ‘토지거래 허가구역’을 대폭 해제한 것이다
1978년 12월에 도입된 토지거래허가제는 그간 토지시장에 버블이 낄 때마다 반대방향에서 이를 막는 완충제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구역 지정도 들쭉날쭉이었다. 토지시장이 바짝 올라 너도나도 거래에 뛰어들면 대규모로 지정했다가 수요가 없어 지가가 빠지면 대규모로 해제하는 식이다. 실제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토지거래 허가구역을 전면 해제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땅값이 다락같이 오르자 다시 대규모로 허가구역을 지정하기도 했다.
2008년 기준으로는 전 국토의 19.1%가 허가구역으로 묶였을 정도다. 이번에 정부가 대규모로 허가구역 해제에 나선 것은 단기간에 토지시장이 급등할 여지가 없어 규제를 완화해도 버블이 오지는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래 한산, 최고수들만 투자
이번에 거래 허가구역에서 풀린 땅은 서울시 전체 면적(605.21㎢)보다 약간 넓은 정도다. 분당신도시(19.6㎢)와 비교하면 약 31배나 되는 거대한 땅이다.
남은 토지거래 허가구역은 전국 10개 시·도의 482.371㎢로 전 국토의 약 0.5%에 불과하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투기 억제를 위해 허가구역으로 묶었던 땅은 2만60.6㎢에 달했지만 일곱 차례에 걸쳐 차츰 해제하면서 이제는 남은 곳이 별로 없게 됐다.
토지거래허가제의 파워는 막강하다. 토지 매매계약의 법적 유효성 여부를 결정할 정도로 강력하다.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지정된 땅은 개인끼리 토지 매매계약을 하더라도 허가를 받지 못하면 계약 자체가 무효 상태로 간주된다. 소유권 이전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허가받기도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토지를 산 이유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 이유가 구체적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단순히 사놓고 시세차익을 볼 목적으로는 거래허가를 받을 수 없다. 땅에서 농사를 짓거나 전원주택을 개발하려는 등 분명한 목적을 밝혀야 한다.
기준도 깐깐하다. 일정기간 이상 현지에서 거주해야 하고 거래 후에는 허가받은 목적대로 일정기간 의무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한마디로 실수요 목적이 아닌 투자 용도로는 땅을 사지 말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이번에 이 규제가 풀리면 땅에 돈을 묻어놓고 달콤한 시세차익을 얻는 것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토지시장 반응이 뜨겁지는 않다. 규제를 풀었지만 거래가 활발하지는 않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이번에 해제된 토지거래 허가구역 절반 이상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들어간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당장 땅을 사도 쓸데가 없다는 말이다. 그린벨트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수십 년 돈을 묻어둘 수 있는 장기투자자나 관심을 보일 만한 땅이다. 돈이 넘쳐나는 부자들이나 토지시장의 최고수들에게만 입질을 허락하는 분야다.
지자체별로 이번 허가구역에서 해제된 리스트를 간략히 살펴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단 각종 개발사업에 보금자리주택 건설 등으로 땅값이 오른 하남시에만 32.216㎢가 풀렸다. 동탄2신도시 개발로 주목을 받고 있는 화성시도 12.72㎢가 해제됐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가장 먼저 주목받을 지역 중 하나인 파주시도 32.39㎢가 해제됐다. 서울은 강서구(21.97㎢) 노원구(20.96㎢) 은평구(13.86㎢) 등에서 해제된 곳이 많다. 강남구(6.24㎢)와 서초구(3.91㎢) 역시 일부 땅이 해제됐다. 하지만 하남시의 경우 풀린 땅의 대다수가 당장 개발이 힘든 임야인 경우가 많다. 강남구와 서초구는 대다수가 국유지다. 강서구 소재 김포공항 인근 주말농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지 중 허가구역에서 풀린 곳이 있어 일부 문의가 오고 있지만 이 역시 거래가 활발하지는 않은 상태다.
다른 원인 하나는 지금 토지시장이 극도로 침체돼 있다는 점이다. 토지시장은 환금성 측면에서 부동산 상품 중 가장 떨어지는 축에 속한다. 아파트 등 주택에 비해 찾는 사람도 적고 거래빈도도 훨씬 덜하다. 부동산 시장의 중심축인 주택시장마저도 침체된 마당에 투자수익을 내다보고 토지에 관심을 갖는 일반인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부동산 투자를 보는 관점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시세차익에서 임대수익으로 급격히 선회했다. 이런 측면에서 봐도 토지시장은 가장 불리한 위치에 놓인 것이 사실이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최근 돈 많은 자산가들조차 매월 손에 현금을 쥐어줄 수 있는 오피스텔·도시형생활주택 등 수익형 부동산을 선호한다”라며 “토지시장에서 단기간 안에 과거 활황기가 다시 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현금과 수익형 부동산에 쏠린 관심
일단 전문가들은 “장기적 관점이 아니면 토지시장에 뛰어들지 말라”는 조언을 하고 있다. 토지시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인내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오세윤 광개토개발 대표는 “개발계획이 있는 땅을 미리 매입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기고 단기간에 빠지는 것은 침체된 토지시장에서 불가능할 뿐더러 개인투자자로서는 더욱 요원한 일”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수년 전까지 쓸모없는 땅을 잘게 쪼개 개발이 가능한 것처럼 속여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기분양을 하던 기획부동산업자가 판을 치면서 이를 막기 위한 정부 규제가 겹겹이 쌓여있는 상황”이라며 “실수요가 아닌 목적으로 땅을 보러오는 움직임 자체가 없어 단기간 시세차익을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예 땅에 대해 관심을 갖지 말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토지는 인플레이션을 방어하는 가장 효율적인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 여윳돈을 가지고 먼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 방식을 선호한다면 토지 시장에 뛰어들어 이익을 낼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다.
실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별 가치 없는 땅 주변에 기업이 몰려들거나 도로가 뚫리며 지가가 올라 단숨에 수십억~수백억 원대 자산가가 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 토지는 그 쓰임새에 따라 가격 변화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소위 ‘대박’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지 가치를 올리는 형질변경 등 작업을 통해 지가를 끌어올릴 여지도 남아있다.
박종철 골든리얼티 대표는 “토지지목, 경사도, 맹지 여부, 도로 개설 가능성, 입지 등 토지를 살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아 일반인이 이를 모두 알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며 “경험이 많은 전문가 여럿에게 조언을 듣고 매수 여부를 결정해도 결코 늦지 않다”라고 말했다. 단기간에 주식 차트처럼 시세가 변하는 아파트와 달리 토지는 매입을 장기간 숙고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는 얘기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정해진 시세가 있는 아파트와 달리 토지는 가격 변동성이 커서 시세를 가늠하기 힘들다”며 “대략적인 가격대를 알려면 인근 중개업소 여러 곳을 들리거나 주변 토지 같은 지목의 대략적인 경매낙찰가를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땅 특성에 따라 어떤 곳은 시세가 공시지가를 밑돌 수도 있고 다른 곳은 시세가 공시지가의 수백 배에 달할 수도 있다”며 “현장에 가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땅 시세”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추가로 규제를 풀어야 극도로 침체된 토지시장이 살아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비사업용 토지 양도세 중과 폐지가 대표적이다.
사업 목적이 아닌 땅을 매각할 경우 기본세율(6~38%)을 크게 밑도는 60%의 중과세를 물어야 한다. 올해 말까지 중과가 유예되고 있는 상태다. 과거 토지시장에 버블이 꼈을 때 나온 규제로 땅값이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이다.
[홍장원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4호(2013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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