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독배일까 성배일까’
ㆍ미·일 자본, 영종도에 3곳 설립 추진
ㆍ“일자리·경제 활성” “도박도시 안돼”
카지노 자본은 본질적인 악의 이미지를 감추기 위해 종종 구원자의 가면을 쓴다.
유럽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스페인에서 그랬다. 스페인은 실업률이 26.6%까지 치솟았다. 청년실업률은 무려 56.5%에 달했다. 외자유치가 시급했다.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야 했다.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업계의 실력자 셸든 아델슨 샌즈그룹 회장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25조원을 들여 수도 마드리드 교외에 ‘유로베이거스’를 만들겠다고 했다. 26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마드리드시는 손톱 밑의 가시를 모두 빼주었다. 세율을 45%에서 10%로 낮췄다. 자금세탁방지법을 완화하고, 금연법과 노동법을 풀고, 고도제한까지 낮췄다.
장소와 등장인물, 규모는 다르지만 똑같은 이야기가 영종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두 개의 외국 자본이 3개의 카지노 설립을 추진 중이다. 라스베이거스 최대의 카지노 업체인 시저스엔터테인먼트와 인도네시아 리포그룹의 합작법인은 이달 말 외국인 전용 카지노 사전심사를 신청할 예정이다. 정부의 심사기준을 충족해 적합 판정을 받으면 실시설계를 거쳐 곧바로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빠르면 2015년 카지노가 개장한다. 특실 90실과 일반실 450실 규모의 호텔과 레지던스, 공연장 등도 들어선다.
일본의 빠찡꼬 업자 오카다 가즈오가 운영하는 유니버설엔터테인먼트는 영종하늘도시와 인천공항공사의 국제업무단지(IBC-Ⅱ) 2곳에 복합리조트를 건설할 계획이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와 테마파크가 중심이다. 이들 역시 샌즈그룹처럼 탐욕은 감추고, 구원자의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영종도는 2003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외국인 투자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영종하늘도시 아파트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입주율이 절반 수준에 그쳤다. 시저스와 오카다가 카지노를 허가해주면 영종도에 거액을 투자하고, 일자리도 창출하겠다고 했다. 벼랑 끝에 몰려 있던 영종도에 내려온 구원의 밧줄이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ifez)은 이들 프로젝트로 직접 일자리만 5만개 이상 창출되고, 20조원이 넘는 경제파급 효과가 기대된다고 보고 있다. 2018년엔 관광수입만 3조원 이상 되고, 2024년엔 연간 세수만 3000억~4000억원 증대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승주 경제청 투자유치본부장은 “영종도 프로젝트는 국가적으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로 지역 및 국가 경제 활성화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영종 경제청 투자전략과장도 “카지노는 전체 투자 계획의 5% 정도밖에 안된다”며 “복합엔터테인먼트와 힐링, 쇼핑, 관광이 어우러진 서비스 중심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숙박업소와 해변 식당들 외에는 이렇다 할 수입원이 없던 조용한 섬 영종도가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 같은 도박과 오락, 서비스 도시로 탈바꿈할 거라는 얘기다. 라스베이거스의 슬로건(What happens here, stays here)이 연상시키는 비밀과 유혹으로 가득 찬 도시 말이다. ‘영종도에서 일어난 일은 영종도에 묻고 가라.’
그러나 카지노는 ‘벌레가 가득 든 캔’. 술과 담배, 마약, 매춘과 같은 죄악재이면서 그 모두의 온상이기도 하다. 한 번 뚜껑이 열리면 그 캔에서 어떤 벌레가 기어나올지 누구도 모른다.
카지노, 외국인 전용으로 시작했다가 내국인 출입 허용까지 갈까
‘내국인 개방’ 음모론 논란
영종도에 들어서는 카지노는 외국인 전용이다. 하지만 발은 외국인 전용으로 들여놓되 궁극적으로는 내국인 시장을 노리고 있다는 우려와 경계의 시선도 날카롭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카지노 자본이 마음이 천사 같아서 우리 경제를 도와주기 위해 오는 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돈을 벌려고 들어오는데 외국인만으론 한계가 있다. 내국인 시장이라는 커다란 먹거리가 있으니까 그걸 보고 들어오는 걸로 봐야 한다.”
▲ “외국 거대 카지노 자본들
마음이 천사 같아서 한국 경제 도와주러 오겠나
일단 진출 후 ‘내국인 출입’ 로비
숨은 발톱 드러낼 것”
당국선 “말도 안돼…절대 불가능”
국내 외국인 카지노 시장은 그리 크지 않다. 서울과 부산, 인천, 강원, 대구, 제주 등지에 16개 업체가 있지만 흑자를 내는 곳은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있고, 절반은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16개 업체 전체 매출액 규모가 2011년 기준으로 1조1200억원 수준이다.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인 강원랜드 한 곳의 매출액(2011년 1조18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영종도에서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는 파라다이스의 경우 2011년 745억원의 매출에 17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2012년에도 매출 780억원, 당기순이익 160억원(이상 추정치)에 그쳤다. 평일 게임 테이블 점유율은 30%대에 머물고 있다.
서 소장은 “라스베이거스나 일본 자본이 이 정도 시장을 노리고 진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카지노 업계 관계자도 “외국인 전용 카지노로 손익분기점 가려면 힘들다. 솔직히 내국인 바라보고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샌즈 그룹이나 MGM 같은 라스베이거스의 거대 카지노 자본들은 “내국인 시장만 열어주면 한국에 수조원을 퍼부을 준비가 돼 있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내국인 시장 개방을 한국 진출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것이다.
서 소장은 “지금 당장은 몰라도 막강한 로비력을 갖춘 외국 카지노 자본들이 단계적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면 2020년 정도에는 내국인 금지를 고수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들 피해 없도록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는 말에선 운명론 분위기까지 묻어난다.
양일용 제주관광대 카지노경영과 교수도 “외국 카지노 자본이 들어오게 되면 십중팔구 내국인 오픈을 요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강원랜드 내국인 카지노도 후유증이 심각한데 2500만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 영종도에 내국인 카지노가 허용될 경우 그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카지노 허가권을 쥐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나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이런 ‘숨은 발톱론’에 대해 “반대자들의 말도 안되는 음모론”이라고 일축한다. 김진곤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산업팀장은 “내국인 오픈 금지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라며 “설령 경제자유구역이라고 해도 내국인 오픈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승주 경제청 투자전략본부장도 “내국인 출입 허용은 의료보험을 사보험으로 바꾸는 것과 같다. 어느 대통령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겠느냐”면서 “우리나라 정치구조, 국민정서상 외국 자본이 요구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저스엔터테인먼트 측 관계자는 “내국인에게도 오픈하려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누가 봐도 쉬운 절차가 아니다”라며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일에 혹시나라는 기대를 갖고 투자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내국인도 들어오는 카지노를 염두에 뒀다면 훨씬 더 큰 프로젝트가 됐을 것”이라며 “5억달러 규모가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 맞는 적정 투자 규모라고 판단해서 이 정도 규모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시장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양측 의견은 엇갈린다.
정영종 경제청 투자전략과장은 “쇼핑도 하고, 테마파크도 가고, K팝 공연도 보고, 먹고, 자고, 마시고 다 할 수 있는 복합엔터테인먼트리조트 단지를 만들면 신규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저스 측 관계자는 “중국, 일본이라는 거대 시장이 1시간 거리에 있다. 한류도 있고 해서 중국 관광객이 더 늘어나면 외국인만으로도 경쟁력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카다홀딩스는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중국 여행사까지 인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복합카지노리조트 클러스터 효과에 대해 낙관하고 있는 것이다. 시저스 측은 이미 향후 연도별 예상 관광객과 카지노 방문 인원, 그에 따른 예상수익에 대한 검토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쪽 기류는 다르다. 파라다이스 인천 카지노의 한 관계자는 “우리 1년 매출이 780억원 정도 되는데 3곳이 더 생긴다면 지금보다 시장 규모가 4배 이상 커져야 하는데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확실한 것은 경쟁이 가열되고 수익성은 악화될 거라는 사실뿐”이라고 말했다. 역시너지 효과에 대한 우려다.
카지노협회 측도 “외국인 전용은 VIP 마케팅이 핵심이기 때문에 단순한 관광객 증가가 수익성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면서 “오히려 제주도의 경우처럼 과당경쟁에 따른 만성적자 도미노 현상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과 대만 등 주변국들이 카지노 개방을 준비 중인 것도 변수다.
서 소장은 “엄청난 투자를 해놓고 손실을 보거나 수익성이 미미할 경우 정부에 손 벌리고, 압력을 넣을 게 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외국 카지노 자본의 내국인 시장 개방 압력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아직 음모론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그 근거가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 관료들이 내세우는 원칙도 그렇다.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인천시 > 영종도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지노포함된복합리조트두곳영종도·인천공항에 (0) | 2013.02.05 |
---|---|
카지노 들어서는 영종도… 환상과 탐욕 두 얼굴 드러내나 (0) | 2013.01.31 |
외국인 카지노 봇물 내국인 출입 안 된다 (0) | 2012.11.23 |
미단시티는? (0) | 2012.11.20 |
한국판 라스베이거스?.. 317兆 조달 실패땐 한낱 '신기루' (0) | 2012.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