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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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흥도 연안 풍경. 저기 섬(지명은 '꽃섬')을 어떤 이는 쌍둥이 섬, 어떤이는 부부섬, 어떤이는 자매섬, 어떤이는 형제섬으로 볼 것이다. 멀리 인천대교와 영종도 공항 ⓒ20140309 세상을향한넓은창 - 서울포스트 양기용 |
바다가 보고 싶어, 내달려 간 곳이 서해바다 오이도에서 시화방조제를 지나
대부도,선재도,영흥도까지다. 90년대 초 방조제 공사를 막 시작한 무렵 친구들과 낚시를 했던 곳. 오이도는 이미 매립돼 섬의 기능이 사라졌다.
이전 1988년 신춘문예 '시(오이도 烏耳島)'를 통해 알게 되었고, 작가가 그 시를 쓸 당시 섬이었는지 육지로 되었는지도 모르며, 그래서
섬으로서의 오이도는 더더욱 모른다.
그러나 도(島) 지명은 아직도 존재해, 전설의 이어도 만큼 혹은 아틀란티스 처럼 내 기억속에
상상의 섬으로 남아, 언젠가 다시 찾고 싶은 곳이었다. 게다가 흔한 소 귀, 말 귀 라면 몰라도 '까마귀 귀떼기' 섬이라는 데서 흥미도 끈다.
오늘 아주 오랫만에 찾은 대신, 오이도를 대신할 지리적 확장이 이 버스투어다. 영흥도까지 가면 시처럼 나직히 가라앉은 시상을 느낄 수 있을까?
아쉽게도 이효숙 이라는 그 시인은 아직까지 시집을 내지 않았다.
대신 한가해진 전철에서 난 헷세 의 수필집을 꺼내 들었다.
맞은편에 앉은 소녀는 스마트폰 에 연신 이마살을 찌푸리거나 보조개를 지어 보인다. 사람의 혼을 빼앗아 간 첨단 노리개. 난 내가 스마트 해 질
때까지 저런 것을 쓰지 않을거라 진즉부터 마음 먹었다. (컴퓨터게임 도 그렇다. 매일 수 시간 PC에 머물지만 고스톱 이나 포커 놀이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아까웠고, 차라리 공상을 하거나 사람과 잡담을 하거나, 멍 때리거나 싸돌아 다니는 것보다 못했다. 개인생각으로,
트위터,카톡,페북 등에 혼을 빼앗긴 사람과는 깊은 대화가 안되며 공감이 어렵고 또 신뢰도 가지 않는다. 혼잡한 전철이나 거리에서 그 창에 열중인
것은 흡연만큼이나 본인과 타인에 위해적이란 생각도 고착됐다.)
덧붙여, 선입견이지만 모양이 더 나은 아이폰 사용자는 스마트 해 보이고,
국산폰 을 사용하는 사람은 고루해 보인다. 이는 과거 삼성,금성 레코더 의 음질이 소니,아이와 벽을 넘지 못했던 기억만큼 강하다. 며칠 전
세계적 전문가들 사이에서 모바일 기기의 전망이 엇갈렸다. '더 진화한다' vs '올때까지 왔다'. 후자들은 시장에서 컨텐츠 보다는 '디자인'이
승부를 가를 것으로 전망했다. 내가 언젠가 쓴 '디자인은 기술, 기술은 예술'이라는 글도 대부분의 제품은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봤다. 과거,
굴러가는 데 목적만 둔 우리 자동차 시장에서도 난 멋진 모양을 강조했는데, 지금은 오로지 그 부분에 신경쓴 기업이 이를 증명한다.
그건 그렇고, 하일지 소설 '경마장 네거리에서' 식이라면 나도 건너 소녀에 대해서 매우 진보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문제는 요즘
부쩍 내 나이를 너댓살 더 얹어 60줄로 보는 사람이 많다. 육십줄 사람들은 내 눈에 50중반으로 보이는 기현상이다. 내 인생 60부터 신화를
그들이 앞당겨 준 것일까,생각들지만 난 아직도 20대를 보면 가슴이 벌렁거린다. 괴테 가 그랬던 것 이상일 것이다.
방조제에
진입하면서 할머니가 옆자리로 와 앉았다. 정류장에서부터 구충제와 치과진료 등의 대화로 보아 뒷좌석에 보건소 의사로 짐작된 사람과 소통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용무가 정리된 후 할머니에게 물었다.
"대부도에 가신가요, 영흥도에 가신가요?"
"응, 영흥도...
서울 아들 녀석 집에 갔다가..."
"곱게 연세 들어 보이십니다. 몇이신가요?"
"올해 여든"
단아한 차림의 고운 이미지의
할머니시다. '근데, 댁은 어디가는 거여?' 할머니가 물으셨다.
"영흥도요. 바람 쐬러 갑니다."
"집사람은 놔두고?"
"예, 살아가는 취향과 관점이 완전히 달라서요... 바람 쐬러는 혼자 다니는 것이 젤 좋습디다. 걸거친 것 없이 왔다갔다 하니까요."
"그건 그려... 나이가 한 육십?"
(으잉...!!) 오십 아홉이라고 대답했다. 얼마전 누나도 내 얼굴이 말이 아니라고
하더니... 하긴 지금이 최악의 상황임이 확실하다. 이놈의 최악의 상황... 언제나 확실한 최악의 상황.
'아이들은 몇? 결혼
시키고?, ...우리 부부는 한번도 싸운 적이 없어. 어디 가면 손 꼭잡고 다니고, 지금도 사이가 너무 좋아...' 아니나 할머니 스타일에서
그렇게 느껴졌다. 군산에서 공주로 시집와서 제주도에서 살다가 영흥도에 들어 온 사연. 길쌈했던 시절, 누에치던 일... 죽으면 나무토막보다 못한
것이 사람이라는 철학도 일러 주셨다.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드리고 영흥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대부도는 안산시에 속하고 선재도와
영흥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한다. 여기 세 섬도 어김없이 부동산투기에 몸살을 앓았단다. 갯내음에 짧게 돌아본 곳에서 사람을 그리워 한 조나단
후예들도 만나고, 짭찌름한 석화도 따 먹고 예쁜 조가비도 주워 챙겼다. 날물 갯바위에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도.. 그래, 바다는 다 드러냈을
때 더 보기 좋은 것이여!
오이도(烏耳島)
-이효숙
1.
섬의 뿌리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멀미를 겨워하던 이웃들은 하나씩 짐을 꾸렸다.
비워낸 자궁처럼
더 이상 불빛이 보이지 않는 빈집의 문들은
어둠 속에서 저 혼자 펄럭이고
허기진 별들은 버려진 그물
더미를 갉아먹으며
궁색한 밤을 비워내고 있었다.
아무와도 약속하지 않았던 새벽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새벽의 근처에서 싸늘한
바다를 물어뜯던 까마귀떼.
죽음 몇 뿌리 헹궈내던 그 바다에서
양식(糧食)처럼 자라나는 굴들의 어린 살과
해초의 푸른
머리칼로 밥상 위를 가늠하던
아, 아 지금은 울부짖다 목이 쉰 침묵의 섬.
바다 위로 우우 몰려가며 가래 끓던 바람소리도
아주 가버리거나
절벽 아래서 검붉게 피멍든 채로 누워버렸는지
사방은 허물어진 소문과
플라스틱 문패 속에 버려진
이름들이 나뒹굴고
등지고 돌아누운 아버지의 잠 속에서
한 때 은빛 조기떼의 달아오른 깃발이 드날리는데
이제 제발로 떠난
뱃길로 다시 나아가지 않으리라.
2.
문 닫은 횟집 앞에서
나는 흔들리는 세상과 술을 마신다.
잔 속에서
흐물거리는 낮달의 지느러미.
낡은 발동선이 햇볕에 바짝바짝 말라가는 풍경을 보며
볕나는 목젖에 조개국을 흘려넣으면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석유 냄새에
역하게 진저리를 친다.
바라보면 바다는 한 장의 푸른 손바닥.
가끔은 오이도(烏耳島)의 뺨을
치며 일깨우기도 했건만
도시의 불빛이 밀물 끝에 밀려오던 때
그 불빛을 등지고 떠난 어족의 날카로운 예감은
이웃들의
가벼워진 고향을 끌고
어디일까, 새 물살이 그리운 나라로 몰려가버리고
위태롭게 수평선의 외줄을 타고 오던 봄도
기다림 속에
남아 있지 않은데
이제 떠나야 할 땅에서
마지막 남아 있는 정직한 절망은
녹슨 닻에 걸려 풀잎 몇 줄기 쏟아놓는다.
3.
들리는가.
깊은 잠의 언저리를 다가오며 흐느끼는 저 소리,
거센 폭풍이 바다를 휘감고
찌그러진
양은 대야가 낮은 지붕을 넘나들 때
나의 탯줄을 잘라주던 그날의 섬이
말라붙은 젖줄을 더듬으며 우는 소리가,
건넌방에서
귀없는 아버지가 짐을 챙겼다.
뒤척이는 선잠 속에서
묻어야 할 이웃들의 흰 뼈가 굴러다니고
베개 밑으로 밀려온 염전의
바닥을 긁어
나는 눈물만큼
한 움큼의 소금을 씹어보았다.
파래 속 같은 가슴을 지니고 남아 있던 몇몇 사람들과
새벽배에 오르면서
우린 내내 안개 속에 가물거리는 오이도를 바라보았다.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우리들의 끼니를 걱정하면서,
드문드문 보이는
기억 속의 겨울 이빨을 하나씩 뽑아내면서,
바다의 싱싱한 살점으로 퍼득이던 오이도여.
아버지의
젊은날의 왕국이여.
아득히 멀어지면서
나는 지도 속에 단단하게 굳어진
서해 바다의 눈물 한 점을 지우고 있었다.
언제고 먼저 찾아올 건강한 바닷새들의
나직한 둥우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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