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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야기/생각해보면

어느 만화가의 샐러리맨을 위한 5가지 훈수

by SL. 2013. 2. 28.

샐러리맨을 위한 5가지 훈수 -- 인용

 

어느 날 종합상사 사원 장그래가 기원을 찾아온다. 장그래는 사범에게 신사업 찾기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어렵네요. 바둑의 신수(新手)를 찾는 것처럼요." 그러면서 장그래는 바둑판에 흑돌 하나를 놓는다. 사범의 응수가 뜻밖이다. "신수라…이렇게 두면 신수가 되나." 사범은 장그래가 놓은 흑돌 위에 백돌을 쌓아 올렸다. 장그래는 피식 웃었다. "에이, 이건 바둑이 아니죠." "지나치게 신수에 집착하는 얘들이 보여. 묘수건 꼼수건 신수건 바둑이 되게끔 하는 게 먼저인데 말이지." 그 순간 장그래는 깨닫는다. "신수, 신사업에서 신은 빼야겠군요. 허황된 것에 집착하지 않고 결국 되는 사업을 찾기 위해." 신(新)에 집착해 사업의 본질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이었다. 만화 `미생(未生)`의 한 장면이다. 만화 미생은 바둑과 기업의 현실을 연결해 기업의 전략, 리더십, 샐러리맨의 처세 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미생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매일경제신문 MBA팀은 최고 스토리텔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미생의 작가 윤태호 씨(44)를 만났다. 그에게 팍팍한 현실을 사는 샐러리맨을 위한 다섯 가지 정수를 들었다.

◆ [1수] 삶은 언제나 미생이다

-미생은 아직 살아 있지 못함을 뜻한다. 제목이 왜 미생인가.

"사람은 기본적으로 미생이다. 샐러리맨들 삶은 완생(完生)일 수 없다. 퇴직에 대한 공포, 자녀 교육에 대한 불안감 등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이 제목은 매우 적절하다. 재벌 오너도 미생인 것은 마찬가지다. 완생이면 왜 그렇게 욕심을 내면서 살겠는가."

-미생을 보면 4명으로 구성된 팀 역시 미생이라고 독백하는 장면이 있다. 팀이나 회사도 미생인가.

"바둑돌 4개면 한 집만 난다. 두 집이 아니면 미생이다. 4명으로 구성된 팀도 그런 뜻에서 미생이다. 물론 회사는 개인보다는 완생에 가깝기는 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미생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은행도 망하지 않았나." 

 

 

◆ [2수] 성공보다 성장이 중요하다

-출판사에서 제안한 제목은 `고수`였다고 들었다.

"바둑 고수 눈을 통해 샐러리맨 처세법을 다루자는 게 출판사 측 취지였다. 그러나 나는 고수 등 성공한 사람에게는 호기심이 없다. 그래서 바둑 입단에 실패해 종합상사에 인턴으로 취직한 장그래를 주인공으로 했다."

-실패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정한 데는 작가의 경험도 한몫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20대에는 대입 실패에 따른 분노를 안고 살았다. 타인에게 내 분노를 투사하곤 했다. 주인공인 장그래를 통해 그런 점들을 반영하고 있다. 분노 때문에 남들에게 했던 실수 등을 기억하며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같은 자기 반성이 장그래에게 녹아 있다."

-미생을 그리면서 스스로 성장한다고 말하는데.

"그런 느낌 많이 받는다. 그림을 그리고, 콘티를 짜고, 페이지를 연결해보면 처음 기획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독자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면 `이 에피소드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많은 의미를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미생을 그리며 나도 성장한다."

-성공보다 성장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도 그래서인가.

"성공할지 못할지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 않나. 성공이라는 결과까지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면 끊임없이 실패를 맛볼 것 같다. 사람은 성공을 추구하는 과정에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 [3수] 가족 없인 완생을 향하지 못해

-미생에는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장면이 꽤 있다. 맞벌이 여성인 선 차장 일화가 그렇다. 선 차장은 얼굴 없는 엄마 모습을 그린 아들의 그림에 한숨을 쉰다. 며칠 후 출근길, 선 차장은 아들 얼굴은 외면한 채 회사 전화를 받으며 집을 나선다. 그 순간 선 차장은 아들이 왜 얼굴 없는 엄마 모습을 그렸는지 깨닫는다. 항상 일에 바쁜 뒷모습만을 아들에게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선 차장은 돌아서서 아들 앞에 무릎을 꿇고는 `다녀오겠습니다`라며 배꼽인사를 한다. 이 장면은 많은 워킹맘들을 눈물 짓게 했다.

"미생의 테마 중 하나가 가정이다. 회사에서 일하는 이유는 가정을 위해서다. 가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행복해질 수 없다. 직장인들이 야근을 많이 하는데 일이 넘쳐서 야근하는 날은 별로 없다. 상사 눈에 오래 띄어야 할 것 같고,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아서 야근을 한다."

-배꼽인사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나.

"우리 집 아파트 1층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다. 오후 5시쯤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어슴프레한 거실에서 아이들 여러 명이 나오더라. 자기 부모가 왔나 싶어 뛰어나온 것이다. 속상했다. 아이들이 그 나이에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이들이 받아 마땅한 사랑을 주지 못할 만큼 회사가 가치가 있나. 배꼽인사 아이디어는 어린이집 아이들을 보면서 얻은 것이다."

◆ [4수] 멍청한 초보라는 자세로 배워야

-독자들은 미생의 리얼리티에 놀란다.

"처음 만화를 시작할 때는 과장과 부장 중에 누가 높은지도 몰랐다. 그러나 독자들이 미생을 읽으면서 `이건 우리 회사 얘기네`라는 느낌이 들게 하고 싶었다."

-자료는 어떻게 얻나.

"인터뷰를 오래한다. 굉장히 무식하고 멍청한 질문부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인터뷰는 4~5시간씩 하게 된다. 요르단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주한 요르단대사를 6시간 인터뷰했다. 종합상사, 물류회사 등에 다니는 취재원들이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앉고 시도 때도 없이 물어본다."

◆ [5수] 철저히 현실에 기반해야

-장그래는 정사원이 되나.

"그것은 지나친 판타지다. 장그래 행동을 따라 가면서 만화를 보면 `장그래가 큰일을 할 수 있겠거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회사의 논리는 다르다. 예를 들어 장그래가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요르단 사업은 2012년도 10대 실적에 끼지도 못했다. 장그래는 고졸이고, 별다른 특기도 없다. 사업보고서를 자기 힘으로 쓸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바이어 전화를 혼자 처리하지도 못한다. 정사원이 안 되는 게 현재 상황에서 옳다. "
-만화든 경영이든 철저히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뜻인가.

"미생은 특히 그렇다. 직장인들에게 자기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리얼리티는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말이 판타지로 가면, 리얼리티를 배신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