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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시장의 세대론

by SL. 2013. 3. 20.

부동산시장의 세대론

 

- 아버지와 아들의 대결 구도는 성립하는가?

 

2007년 여름, 우리나라 20대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새 이름이지만 이름에 담긴 뜻은 상큼하지 않았다. 이른바 ‘88만 원 세대’, 비정규직 평균 급여와 20대 평균 급여를 조합해 나온 금액으로 대표되는 세대라는 뜻이다. 2010년대로 접어들자, 좀 상쾌해 보이는 이름 하나가 추가되었다. 베이비붐세대의 자녀세대라는 의미의 ‘에코세대’ 가 그것이다. 베이비붐세대의 은퇴가 현실화되어 인구학적 개념의 세대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덩달아 생긴 패찰이다. 그러나 이때의 ‘에코’는 베이비붐세대의 많은 인구가 메아리치듯 그들의 자식세대도 양적으로 많아졌음을 뜻할 뿐이므로, 경제활동 참여자로서 청년세대에 대해서는 ‘88만 원’이 상징하는 속성은 유지된 채 동일 세대 내 경쟁자가 많다는 사실만을 부연해주고 있다(이하, 이러한 맥락에서 베이비붐세대의 상대항으로는 동일한 인구학적 개념인 에코세대 대신 88만 원 세대라는 용어를 사용함).

 

퇴직으로 경제생산 영역에서 물러나는 부모-베이비붐세대, 그리고 높은 청년실업률1)과 비정규직으로 사회진출을 시작하는 자식-88만 원 세대는 현재 사회 전반의 화두이기도 하지만, 주택/부동산시장에서도 전례 없이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이슈이다. 이들은 부동산시장에서도 대립구도를 형성하며 세대투쟁을 하고 있는가? 이 글은 그간 많은 논의가 진행되었던 2000년대 후반의 ‘세대론’이 부동산시장에서는 어떤 양태로 펼쳐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베이비붐세대와 88만 원 세대의 특성

 

일반적으로 부동산시장과 관련하여 세대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세대별 인구/경제적 특성을 바탕으로 그들이 직면한 주거 및 부동산 문제를 기술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이 단순화할 수 있다.

 

① 베이비붐세대는 1955년~1963년 전후 출산율 증가 시기 태어난 세대로 전체 인구수 대비 14.5%(약 700만 명)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자산을 부동산으로 가지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는 2000년대 주택가격 급증 시기에 무리하게 대출을 이용해 주택을 구매(경제적 특성)한 결과 현재 하우스푸어로 고통받고 있다는 점이 이슈가 되고 있다.


② 88만 원 세대는 베이비붐세대의 자녀세대로 1979년~1992년에 태어나 현재 총인구의 19.9%(약 950만 명)를 구성하고 있으며, 평균적으로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사회진출이 늦고 비정규직으로 시장에 진입하여 현 소득수준 및 미래의 기대소득이 낮아 주택구매 여력도 의사도 희박하다. 월세 또는 전세 거주자가 많아 렌트푸어로 고통받고 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세대별 특성’을 넘어 ‘세대 간 갈등 구조’를 보면

 

세대론은 특정 시기 사회 전반의 상황을 공유하는 어떤 나이대, 즉 ‘세대’를 발견해내 이름을 붙이고 이를 통해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세대별 특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구성원이 순차적으로 탄생과 성장을 반복하는 이상, 어느 시대 어디에서나 존재하며 이에 의한 갈등도 항시적이다. 따라서 최근과 같이 세대론이 특별히 부상하는 시기는 세대 간 특성의 차이가 유독 단절적으로 나타나 사회적 갈등을 일으킬 때이다. 즉, 세대 간 관계와 갈등은 세대론이 소환되는 이유이자, 세대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베이비붐세대와 88만 원 세대를 통해 부동산시장을 볼 때 각 세대별 특성을 넘어 세대 간 갈등양상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최근의 문제/현상은 세대론으로 설명되는 것이 적절한가?

 

88만 원 세대론의 경우 2000년대 후반의 한국의 20대가 겪는 문제를 주로 노동시장에서 중장년층과 대치시키는 구도를 통해 드러낸다. 이는 ‘중장년 세대와의 불공정한 경쟁’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청년 세대의 정치적 세력화 요구’로 요약할 수 있다. 세대 간 이해상충은 정책 분야에 대응시켜 생각해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대표적으로 최근 기초노령연금 확대 과정에서의 논란과 같이 한정된 국가 재정을 두고 각 세대가 제로섬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부동산 자산시장에서 세대 간 갈등은 이와 동일한 구조로 일어나고 있을까? 하우스푸어가 대거 포진해 있는 베이비붐세대와 렌트푸어의 주요 피해자인 88만 원 세대의 갈등은 각 ‘푸어’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세대 간 갈등 구도를 일단 성립시킨다.


하우스푸어로서는 향후 부동산 가격의 상승/유지가 가계파산을 막기 위한 절체절명의 조건이며, 렌트푸어는 가격 하락조정이 이어져 구매 가능한 수준까지 내려가기를 바란다. 또 다른 한편으로, 은퇴로 인해 고정수입이 사라진 상황에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자 베이비부머는 전세를 월세로 전환, 전세공급 축소로 인한 전세금 상승을 가속화하여 렌트푸어의 고통을 심화하고 있다. 각 세대의 이득을 위한 방향이 서로 배치되고 있는 양상은 기존의 세대론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세대 갈등의 양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확인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 먼저, 실제 각 세대 내 ‘푸어’의 비율이 세대 간 분명하게 대립적으로 나타나는 가이다. 2012년 금융연구원에 따르면2) 하우스푸어의 비중은 40대가 가장 많고, 50대에서 60대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다. 연구기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하우스푸어 가구 중에 중장년층의 비중이 높은 것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이다.


그러나 세대를 중심으로 보면, 세대 전체 가구 수 대비 각 세대 하우스푸어의 비율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금융연구원의 기준에 의한 각 연령대별 하우스푸어의 수(2011년 기준)와 2010년 센서스 가구통계를 통해 연령대별 하우스푸어의 비중을 대략적으로 구해보면, 3~5% 선(표1)으로. 하우스푸어의 세대별 절대 수가 많아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와는 별개로 세대별 비중과 그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세대별 연대나 세대 간 갈등이 발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표 1> 연령대별 가구 수 대비 하우스푸어 수 비율   

 

렌트푸어 문제도 세대문제로 바로 독해하기는 어렵다. 소형평형에 대한 높은 전·월세전환율을 고려했을 때, 보증금 상승에 의한 부담 수준의 증가가 소형/저가 전세에 거주하는 다수의 청년세대(2010년 센서스 기준 1억 원 미만 2030세대 42% 110만여 가구)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택규모와 금액이 커질 경우 보증금 상승분의 절댓값이 커져 체감하는 부담 수준과 리스크를 단순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세대 분포를 통해 렌트푸어의 문제를 곧 장년 세대의 월세전환에 따른 청년세대의 부담 증가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두 번째, 부동산으로서 주택은 생애 주기(life cyle)에 따라 구매-처분이 이루어진다는 특성을 고려하여 세대문제를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4)에 따르면 젊을수록 하우스푸어 지원에 대해 찬성하는 비율이 오히려 높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젊을수록 하우스푸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해, 88만 원 세대의 주택구매 의사가 낮아졌다고는 해도 이는 현실적인 소득 수준을 감안한 의사일 뿐, 여전히 대다수는 생애 주기에 따른 주택구매의 관성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즉, 청년세대는 현시점에 임차가구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 상당수도 나이가 듦에 따라 부채를 통해 집을 구매하는 하우스푸어가 될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푸어’로 대변되는 주택시장의 문제들은 어떤 한 시기의 횡단면을 봤을 때 세대별로 극명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애 주기의 흐름에 따라 이 문제들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전되기 때문에 세대 간 갈등을 형성하기 어렵다.

 

 

‘세대 간 갈등’보다는 ‘세대 내 경쟁’이 심화될 것

 

요약하자면, 부동산시장에서는 현시점의 세대별 특성 및 시장에 대한 영향을 거론할 수는 있지만, 본격적인 세대갈등 구도의 세대론을 적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부동산 자산 시장에서는 자산의 보유가 아닌 거래 시에 실질적인 이득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산의 축소/처분을 원하는 베이비붐세대로서는 가장 강력한 잠재 주택소비자 계층인 결혼적령기 및 가구원수확장기인 88만 원 세대의 소득수준이 증가하여 거래상대자로 하루빨리 성장해주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적어도 부동산시장에서는 세대간 갈등보다는 오히려 세대간 공조를 이루는 것이 각 세대가 자신 세대의 이득을 위해 단기적,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글 제목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자면,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갈등 구조는 명확하게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대론은 부동산시장에서 정말 무용(無用)한가? 기존의 88만 원 세대론에 대한 비판처럼, 주택/부동산 시장 문제의 핵심은 세대를 가로지르는 ‘소득과 자산’ 문제로 해석하는 것이 적실해 보인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역설적으로 88만 원 세대론이 제시한 ‘세대 내 경쟁의 심화’라는 결론은 더 강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시장소득의 지니계수는 0.3 수준이지만 자산소득의 지니계수는 0.6~0.8이다. 소득불평등 보다 자산불평등이 훨씬 심한 사회에서 상속받을 자산이 없는 가구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은 가구의 자녀들과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세대 내 경쟁은 끝없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과거 고도성장기에 가능했던 자산축적의 기회는 성장정체기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으며, 소득으로 상쇄하기에는 ‘88만 원’이라는 금액이 힘겨운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소득과 자산축적에 대한 기대 없이는 주택수요의 핵심요인인 항상소득의 증가도 물론 어렵다. 결국, 부동산시장의 미래는 이들의 중위 항상소득을 어떻게 증가시킬 수 있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