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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을 품은 신선의 땅, 정선의 가을로

by SL. 2012. 9. 27.

동강을 품은 신선의 땅, 정선의 가을로

 

 

셋, 둘, 하나… 출입문 개방!”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눈앞을 가로막은 철문이 열린다. ‘덜커덩’ 소리와 함께 몸은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추락하던 몸은 잠시 뒤 하늘로 치솟고, 쏜살같이 하늘을 달려나간다. 눈앞에 펼쳐지는 병방산의 광활한 풍경. ‘짚 와이어’에서 만난 강원도 정선의 첫인상은 그렇게 강렬했다.

■ 정선의 하늘에서 신선이 되다

‘정선의 하늘은 세 뼘’이란 말이 있다. 높은 산이 많아 하늘을 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실제로 정선에는 해발 1000m 이상의 명산이 22개나 있다. 산에 형성된 석회암 동굴은 37개, 경승지는 35개다. 몇 걸음 걸으면 그곳이 곧 관광지다.

 

높은 산이 정선 풍경의 뼈대라면 동강은 살과 같다. 형형색색의 ‘뼝대’(석회암 절벽) 아래로 동강이 흘러들면 비경이 완성된다. 오장폭포와 백석폭포, 구미정, 몰운대 등 정선의 명승지들은 대부분 동강을 끼고 있다. 걷는 것만으로 운치 있고 멋스러운 곳. 이곳에선 누구나 풍류가객이 된다.


▲ 병방산의 명물 짚 와이어 한반도 지형 한눈에
아라리촌 시간여행 옛 금광 화암동굴도 절경


정선에는 유난히 탈 거리가 많다. 동강에선 래프팅과 스노클링, 인근 리조트에선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여량면의 레일바이크는 주변 경관이 좋아 정선의 인기 코스로 자리잡았다. 허브농원에선 숲 속 모노레일
을 즐기고, 민둥산에선 말타기를 할 수 있다.

병방산 ‘짚 와이어’는 최근 뜨고 있는 탈 거리다.
안전장치
가 돼 있는 의자를 타고 하늘을 ‘달릴’ 수 있다. 이곳은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해발 607m의 높이에서 경사도 30%, 최고속도 시속 120㎞로 하늘을 내달린다. 1분 남짓한 사이에 정선 ‘한반도 지형’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들어갈 수 있다. 조양강이 휘돌아 만들어낸 이 독특한 지형은 정선 여행의 얼굴이 된 지 오래다.

하늘을 날아가며 보는 풍광은 산 위에서 보는 것과 차이가 많다. 산에서 보는 풍경이 2D라면, 날아가며 보는 풍경은 3D다. 같은 장소라도 다가갈수록 수천개의 각기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보는 이가 움직이면
나무가 움직이고 산이 다가온다. 살아있는 듯 장엄한 풍경, 예전이라면 ‘신선’만이 누렸을 특별한 순간이다.

■ 향수에 젖어드는 아라리촌의 하루

“옛날 강원도 정선 땅에 가난한 양반이 살았다. 그는 현명하고 정직한데다 책읽기를 즐겨 신임 군수들조차 방문할 만큼 인격이 높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경제적 능력이 떨어졌다. 관가의 곡식을 빌려 연명했는데 어느덧 그 환곡이 1000여섬에 이를 지경이었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 <양반전>은 정선에서 시작한다. 정선에는 <양반전>의 무대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부락이 있다. 정선읍 애산리 ‘아라리촌’이 그곳이다.

기와집과 초가집, 담장 등을 배경으로 <양반전> 속 인물들이 황금빛 동상이 돼 연기를 펼친다. 빚을 갚아주겠다는 부자 앞에 넙죽 엎드린 양반, 돈을 못 벌어 마누라에게 구박받는 양반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시간을 뛰어넘은 우리네 모습이다. 같이 온 부부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아라리촌은 원래 정선의 옛 생활모습을 재현해놓은 곳이다. 굴피(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덮은 굴피집, 200년 이상 된 소나무 널판으로 지붕을 만든 너와집, 대마 껍질을 벗겨낸 줄기로 이엉을 엮은 저름집 등을 볼 수 있다. 집안도 옛 모습 그대로다. 눈이 많이 오는 산간지역에선 마당이 집 안으로 들어와 ‘봉당’이 됐다. 어릴 적 제기를 차고 공기를 던지며 놀았던 이들은 추억에 젖을 법하다. 봉당과 부엌 사이에는 겨울철 불씨를 보관하는 장소인 ‘화티’가 재현돼 있다. 예전엔 ‘시집온 며느리가 불씨 보관을 못하면 소박맞는다’는 말이 있었다. 부엌 한 구석의 조그만 이 공간이 우리 어머니들에겐 잊지 못할 장소다.

아라리촌의 전통 가옥에서는 숙박을 할 수 있다. 전통 가옥 하면 떠오르는 화장실 걱정은 접어도 된다. 화장실과 욕조는 깔끔한 수세식이며, 냉장고와 선풍기도 구비돼 있다. 집 바깥에서 고기 등을 굽는 건 가능하지만 실내 취사는 불가능하다. 마을 내 간이주막에선 콧등치기 등 정선 전통음식을 즐길 수 있다. 아라리촌 내에는 야생화 공원과 동강을 낀 산책로도 있어 호젓한 휴식을 맛볼 수 있다. 정선아리랑제가 열리는 문화예술회관과도 가깝다. 10월1일부터 4일까지 이곳은 아리랑 가락으로 떠들썩해진다.

■ 황금빛 꿈, 이제는 관광산업으로

사금을 찾아 돌아다니는 ‘금마니’들 사이에 정선은 전설의 땅으로 불린다. 1920년대 정선군 동면 몰운리 일대 지층에는 상당한 금맥이 있었고, 풍화작용으로 금이 강까지 흘러들었다. 광산에도 금, 강물에도 금이었다. 한국판 골드러시, ‘노다지’(노터치)의 꿈은 그렇게 시작됐다.

화암면에 위치한 ‘화암동굴’은 정선의 황금빛 꿈이 절정을 이룬 곳이었다. 이곳엔 일제시대 대표적 금광이었던 천포광산이 있었다. 하지만 금맥 굴진 중 우연히 천연동굴이 발견돼 운명이 바뀌었다. 3000여㎡(900여평)에 이르는 거대한 석회석 광장, 동양 최대의 유석폭포가 세상에 드러나자 관광객들이 몰렸다. 노다지의 꿈은 그렇게 반전했다.

이 동굴에 들어가면 ‘신세계’가 펼쳐진다. 높이 8m에 달하는 대형 석순과 석주는 색색의 조명에 물들고,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사방에 울려퍼진다. 중앙의 석회석 광장 우측에는 황금 형상의 유석폭포가 종유석, 동굴산호와 함께 장관을 이룬다. 종유석이 고드름처럼 매달린 천장은 이세계(異世界)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서늘하지만 나른한 느낌, 꿈을 꾸는 듯 몽환적인 공간이다.

예전에 금을 캐내던 천포광산은 테마파크로 재정비됐다. 일제시대 광산 내에 있던 대장간·휴식처 등을 고스란히 복원하고, 채굴·제련 등 금 발굴 과정을 밀랍인형을 이용해 재현했다. 금을 찾아 파내려간 갱도들도 보존돼 있다. 일제에 징용당한 조선인들이 수직으로 파올라간 갱도가 눈길을 끈다. 아찔한 그 모습에 가슴 한편이 서글프다.

화암동굴 바깥으로 나오면 인근에 소금강, 몰운대 등 명승지들이 즐비하다. ‘화암 8경’으로 불린다. ‘화암’(畵巖), 말 그대로 바위로 만든 그림이다. 계곡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신의 캔버스는 행인들의 눈길을 붙잡고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가을철이 되면 정선의 유혹은 절정을 이룬다. 민둥산엔 억새가 바람에 흩날리고, 소금강 절벽 위 나무는 붉게 치장한 채 지나가는 여행객을 유혹한다. 이제 문턱에 다가온 정선의 가을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 길잡이

■ 서울에서 정선까지 승용차로는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영동고속도로 새말IC에서 42번 국도를 타면 정선읍내에 진입할 수 있다. 짚 와이어는 정선터미널 인근에 있다. 터미널에서 북실리 방향의 ‘아리힐스 리조트’ 주차장에서 20분 간격으로 짚 와이어행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짚 와이어 이용요금은 1인당 4만원이다. 덕우삼거리에서 424번 도로를 타고 화암면 방향으로 가면 화암동굴 등 ‘화암 8경’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화암동굴 입장료는 5000원(성인 기준)이다.

■ 정선읍내는 숙소 사정이 좋지 않다. 사북 일대에서 숙소를 찾는 게 좋다. ‘하이원리조트’(1588-7789) 등 리조트·호텔·모텔·펜션들이 즐비해 쉽게 숙소를 잡을 수 있다. 전통가옥의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아라리촌’(061-261-3848)
체험 숙박을 해볼만 하다. 귀틀집, 너와집 등에서 1박이 가능하다. 크기는 13평(4명 수용)부터 47평(10명 수용)까지 다양하다. 가격 10만~30만원대.

■ 정선의 대표적인 음식은 단연 곤드레밥이다. 곤드레나물과 들기름을 넣어 지은 밥에 고추장과 자박장을 비벼먹는 맛이 일품이다. 정선읍내 싸리골식당(033-562-4554) 등이 이름난 곳이다. 보양식 ‘향어백숙’은 씨알 좋은 향어에 황기·인삼 등 20여가지 한약재를 넣어 끓였다. 국물이 비리지 않고 구수하다. 동면에 있는 ‘할머니횟집’(033-563-2785)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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