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대관령목장.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먹이를 찾는 녀석들은 여전히 울부짖고 있었지만 기자는 다시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대관령목장 정상. 수백만 평으로 추정되는 드넓은 초원과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해의 일출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 서둘렀다. 지난 번 찾아왔을 때의 기억으로는 걸어서 두 시간을 올라가야 했는데, 이번에는 그럴 만한 시간도 없고 해서 차로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 길가다 만난 뜻밖의 행운. 저 아름다운 석양이 지는 자리에 기자가 있었다. |
대관령목장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스포츠용 차량(SUV·Sports Utility Vehicle)을 몰고 와야 한다고 안내 문구를 본 적이 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이 새벽에 확인하게 된 것이다.
▲ 대관령목장의 두 모습. 사람이 다가가도 꿈쩍하지 않는 양이 인상적이었다. |
카메라와 트라이포드 그리고 카메라 가방까지 둘러메고 길을 오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아직 어두운 새벽인데다 어제 저녁부터 먹이(?)를 찾아 "휘에~~엥~ 휘~~엥~"거리던 녀석들을 내가 직접 부딪쳐야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무서웠다.
대관령의 바람은 정평이 나있다. 정상 부근에 우리 나라 최초(?)로 알려진 풍력발전소가 건설되고 있을 정도다. 지난 번 찾아 왔을 때도 몇 기의 풍력발전기가 있었지만 이를 상업적으로 생산한 것은 처음이다. 어제 저녁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목장으로 들어오던 길 한편에 풍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현장사무소가 마련돼 있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 바람이 세다.
한편 엄청나게 불어오는 바람은 무서운 소리와 함께 드넓은 초원의 나뭇가지와 풀들을 쓸었다 되돌렸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차에서 걸어 올라간 지 얼마 안된 곳에 괜찮은 촬영 포인트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 새벽에 엄청난 바람을 맞으면서 정상까지 갈 수는 없다며 스스로 핑계대면서 목장 초입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목장의 새벽을 촬영하며 두 번째 날은 밝아오고 있었다.
▲ 대관령 정상. 고개를 넘어가면 대단히 숨가뿐 길이 기다리고(?) 있다. |
아 ~ 하늘 아래 온통 배추 세상이구나!
구불구불 위험천만인 대관령 옛길을 내려와 대관령박물관에 잠시 들러 목을 축인 후 곧바로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로 향했다. 이곳은 지난해 기자가 취재차 찾았던 곳으로 고랭지 채소밭의 풍경이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곳이다. 강릉시에서 40여 분 거리에 위치한 이 마을에서 꼭 들러야 하는 곳은 단연 대기4리.
평창, 진부에서 노추산을 넘어 강릉으로 향하는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하늘 위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풍경을 연출한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한 경이로운 풍경의 하늘 마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 하늘 아래 온통 배추 천지란 말이 틀리지 않을 정도로 이 높은 곳에서 목격한 채소밭의 존재는 상상조차 불허하는 놀라움 그 자체다.
▲ 경이로운 풍경의 하늘마을. 강릉 왕산면 대기4리. |
손에 잡힐 듯 펼쳐지는 신비한 풍경 앞에서 한동안 넋을 잃고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나 행복했다. 아마도 이런 게 고위층(?)에서만 느낄 수 있는 웰빙 풍경이 아닐까 싶었다.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는 평창, 진부에서 올라가는 길은 힘들고 어렵지만 강릉에서 찾아가는 길은 다소 수월하다. 강릉에서 혹은 대관령 옛길을 다 내려와 35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다 415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20여 분 달리면 대기4리로 향하는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다. 이정표에서 우회전해 15분정도 산을 향해 오르면 경이로운 신천지에 도달할 수 있다.
바다 그리고 추억... 내 안에 있다
▲ 정동진 해수욕장 1. |
35번 국도를 빠져나와 7번 국도에 들어선 차는 강릉과 안인진을 지나 자연스레 정동진에서 멈춰 선다. 지금은 많이 변해 버린 곳이지만 수많은 추억과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곳 정동진.
잠시 바다를 바라보며 기억은 8년 전 어느 여름날로 이어진다. 이슬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바닷가 정동진역. 바닷바람에 이내 몸이 휘어 버린 채 쓸쓸히 서있는 소나무 한그루. 위험하다며 선로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던 역장님. 경산에서 왔다던 연인들을 포함해 몇 명 보이지 않던 한적한 역사. 거센 파도치던 바닷가 마을 정동의 풍경은 지금 이곳에는 남아 있지 않다.
▲ 정동진역 '고현정' 소나무. |
차는 어느새 다시 기차가 다니기 시작한 망상해수욕장과 망상역을 지나 동해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텅빈 여객선 터미널. 사람이라곤 엄마 손을 잡은 꼬마아이와 사진 촬영을 하러 가는지 만만찮은 장비를 둘러멘 어르신 두 분이 고작이다. 하지만 표도 끊을 수 없고 표 끊는 사람도 없는 비어 있는 매표소가 배 편이 많지 않고 쉽사리 찾아갈 수 없는 곳임을 암시한다. 이곳은 울릉도와 독도 배편이 마련된 묵호항 여객터미널이다.
▲ 독도로 가는 뱃길. 묵호여객터미널. |
7번국도의 백미? 여기야 여기
▲ 맹방해수욕장의 시원한 풍경. |
혹시 이글을 보고 여행 경로를 답습하는 여행자에게 끝없이 펼쳐진 맹방의 눈부신 백사장과 아기자기하고 비취빛 바닷물이 포근한 용화해변, 쓸쓸하지만 운치 있는 장호해변까지 느긋하게 꼭 감상하면서 돌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빗방울이 하나 둘씩 내리기 시작할 무렵 차는 다시 7번 국도에 합류했다. 차는 신남, 임원, 호산, 나곡, 부구, 후정, 양정, 봉평 그리고 울진 등 수많은 해수욕장을 눈요기하며 지나치고는 세계친환경엑스포가 열린다는 울진을 지나 대게의 고장 영덕을 향해 내달린다. 시간은 벌써 5시를 넘겨 반을 가르고 있는데, 이정표는 영덕까지 아직 십수 킬로미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 7번 국도를 달리다 바라본 동해안 해수욕장. |
이틀이 남아 있는 빠듯한 일정상 적어도 포항까지는 도착해야 할 듯 보였다. 그리고 동해에 왔는데 일출은 보고 가야지 하는 생각도 한몫했다. 그렇게 오늘의 목적지로 포항 호미곶이 결정됐다. 마침 호미곶은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기자가 가보지 못한 곳이여서 더욱 욕심이 생기는 목적지였다.
7번국도 강구. 간만에 느껴보는 포만감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기분 좋은 음악들은 여행의 재미를 배가 시키고 있었다. 게다가 석양 무렵 좌우로 펼쳐지는 바닷가 야경은 탄성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도로 좌측의 동해 바닷가에서는 오징어잡이 배들이 환한 빛을 발산하며 어두운 밤바다를 밝히고, 도로 우측 서산의 석양은 전혀 다른 느낌의 붉은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라도 셔터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대단한 풍경이었다. 포항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국도를 벗어나 차를 세우고 한참 동안 그 순간을 사진에 담아내느라 정신 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대관령의 바람, 대기리의 하늘 풍경, 추억 어린 정동진, 분위기 있는 바닷가 맹방, 장호 해변 그리고 잊지 못할 해질녘 동해의 풍경과 석양의 모습까지 7번국도는 여행 이틀째를 맞고 있는 기자에게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에 느낄 수 있는 말할 수 없는 추억을 안겨 주고 있었다.
▲ 길 위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 자연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색감... 누가 흉내 낼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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