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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야기/여 행

‘땅끝’으로 갔습니다

by SL. 2013. 11. 20.

 2013년 11월 20일

 

화려함, 모두 내려놓고 ‘비움’ 만나러 갑니다

‘땅끝’ 전남 해남 ‘길끝’ 암자 순례

 

▲  전남 해남의 두륜산 남쪽 봉우리 두륜봉의 눈썹 아래쯤에 있는 구름다리. 기묘한 바위가 이쪽과 저쪽의 암봉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대흥사에서 구름다리를 건너 두륜봉에 올랐다가 북미륵암 쪽으로 내려서면 두륜산의 산내 암자를 거의 다 둘러보게 된다.

‘땅끝’으로 갔습니다. 가을 단풍의 행로를 따라 한반도의 남쪽 끝 전남 해남까지 내려간 길입니다. 두륜산 대흥사로 드는 숲길의 마을에 붙여진 이름이 해남군 구림리 ‘장춘동(長春洞)’입니다. 차량들은 그 길이 굽어서, 걷는 이들은 길이 거느린 숲이 아름다워서 좀처럼 속도를 낼 수 없습니다. 가을볕 환한 그 길을 느릿느릿 걸어갑니다.‘봄이 길다’는 이름을 가졌으되 그 길에 긴 게 어찌 봄뿐이겠습니까. 걸음도 느리고 계절도 느리니 그 길은 한없이 길 따름입니다. 지금 그 길에 환한 볕의 가을이 오래 머물고 있습니다.

대흥사를 품고 있는 두륜산은 다시 땅끝을 향해 달마산의 지맥으로 이어집니다. 두륜산은 거대한 품으로, 달마산은 창끝처럼 날카로운 암봉으로 서서 제각기 발치에 대흥사와 미황사를 품고 있었습니다. 푸근하고 깊은 정취의 대흥사. 그리고 맑고 향기로운 느낌의 미황사. 이 두 절집은 모두 사람들의 발길과는 멀어진 산중에 고즈넉한 암자를 거느렸습니다. 뒤로 멀찌감치 물러 앉아서 수도와 정진으로 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곳. 사람들의 발길이 띄엄한 땅끝의 산중 암자야말로 세상과의 문을 닫아걸고 스스로 유배를 자처하는 자리입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적요한 땅끝의 암자를 찾아가는 여정을 권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숲의 끝에서 손바닥만 한 마당과 그 너머로 따스한 남쪽 바다를 두르고 있는 곳. 속세에 등돌려 앉아 무심하게 가을을 보내는 암자로 향하는 길입니다. 절 밖의 세상과 생각을 주고받는 큰 절들이야 편히 오갈 수 있지만, 수도의 공간인 암자로 가는 길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신우대 청정한 산길을 오래 걸어야 하고 바위로 이어진 아슬아슬한 구름다리도 건너가야 합니다. 허벅지가 저릴 정도로 팽팽하게 일어선 오름길도 있고, 아찔한 암봉 사이를 조마조마 건너가야 하는 길도 있습니다. 이렇게 찾아간 암자의 마당에서 만날 수 있었던 건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오래 머물던 가을이 단풍과 함께 져가는 모습. 수도자의 오랜 손길로 닳은 나무기둥. 부도에 게와 물고기를 새긴 이의 마음. 무심하게 세월을 건너가고 있는 노스님과의 차 한잔. 암봉 끝으로 둥실 떠오르는 달….

 

‘지심귀명래(至心歸命禮).’ 불교 예불문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입니다. ‘지극한 마음을 다 바쳐서 귀의한다’는 뜻이지요. 귀의하는 것이 어찌 사람뿐이겠습니까.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모두 다 돌아가는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신록과 녹음을 지나온 나무들은 이제 무성한 잎을 붉은 정염으로 불태운 뒤 내려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 내려놓고는 빈손이 됩니다. 늦가을의 여정으로 암자행을 권하는 건, 거기서 ‘텅 비어 있음’의 시간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실타래 같은 산길을 따라 서걱이는 낙엽을 밟으며 암자로 가는 길. 세간의 욕망을 벗어나고, 큰 절의 분주함에서도 떠나와 당도하는 길 끝의 암자는 지금 비어 있음으로 충만하답니다.

해남 = 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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