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7년전인 1989년
군대를 막 제대하고 시골이 고향인 전 지인의 소개로 서울에 직장을 잡았죠..
휴일엔 딱히 아는 사람도 없던 저는 당시 큰누님집에서 가까운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땐 큰 누님집에 언쳐서 살았거든요.
그렇게 한달여의 시간이 지날즘 한 여자를 알았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서 보던 우리는 두번 세번 만나면서 정이 들었죠..
그렇게 우리만의 사랑이 1년여의 시간을 두고 무르 익을무렵
저의 직장문제로 전 대구로 발령이 나고 대구로 내려온지 3개월여가지났을 어느주말 그녀가 찾아왔더군요..
당시만 해도 삐삐나 휴대전화가 없었던 지라 우린 가끔 전화로 통화하던게 전부 였는데..
뜻하지 않는 그녀의 방문에 넘도 방갑고 행복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알려온 임신사실..3개월인가 되었다는..
우린 그렇게 자연스럽게 동거에 들어갔어요..
그렇게 한 1달여가 흘렀을쯤 이번엔 서울 큰 누님이 오셨더군요.
전 의례것 동생이 있으니 걱정되서 찾아온줄 알았는데 누님은 전혀 상상밖의 말을 하더군요..
그녀의 지난 과거얘기..
당시 함께 교회를 다니던 어느 집사와의 관계등..
처음엔 누님도 믿지 않았는데 같은 동네에 있던 교회인지라 말들이 많았던 모양이였습니다.
그럴리 없다고..또 그런건 다 지나간 얘기니 상관할거 없지 않냐고..
누님을 설득 했지만 누님의 반대는 수그러들진 않았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태여나고..
그렇치만 누님의 반대로 우리는 결혼식마져 쉽게 할수 없을 지경이였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2년여를 살아오던 어느날 난 묻지 말아야 할것을 묻게 되었습니다.
도데체 어떻게 하고 다닌거냐 왜 교회사람들이 그럼 말들을 하느냐~
그녀도 그동안 힘들었는지 말을 하더군요..
솔직히 당시 그녀는 많은 말을 했지만 제가 기억하는말은..
그놈이.. 그놈이랑..하지만 딱 한번 뿐이였다고..했던말..
물론 모든걸 용서한다는 전재하에 말을 했지만 솔직히 전 쉽게 그말들이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물론 동거전에 저또한 순결을 지키진 못했지만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멀어졌습니다..처음엔 몸이 그리고 마음이..
그후 결국 우린 5년여의 부부로써의 인연은 달랑 서류 두장으로 남더군요.
딸아이는 엄마가 맏기로 하고 우린 해여졌지요..
해여지던날..법원에서 간단한 신원조회후 이혼 판결을 받고 우린 마지막이될 서로에게 미안하다란 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저에겐 조강지처인 그녀를 보네고 3년의 시간이 흐른후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제 지난 과거를 모두 안아주는 정말 착한사람이였죠.물론 아낸 초혼이구요.
저 또한 지나간 과거가 있기에 더욱더 일과 가정에 충실하며 살아가려 노력했구요.
아이도 어느세 딸하나 아들하나..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역시 뿌린대로 거둔다고 가끔씩 던지는 아내의 말한마디가 때론 비수처럼 다가 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조금씩 변하더군요.
그러드니 이젠 어느세 제 위에 있습니다.
저흰 맞벌이를 합니다. 집앞에서 자그마한 장사를 하는 아내는 늘 바쁘죠..
그래서 아침준비 이외의 모든일은 제 담당이 되어 버렸구요.
집안청소,설것이,빨래,아이들 과제검사밑 준비물 챙기기..
저 정말 한 성질하던 넘이였는데..
왜 이렇게 변했는지 저도 모르겠네요..
오늘도 아내는 장사 마치고 친구들 만나러 간다 하네요..
그런 전 집에서 아이들 저녁 먹이고 숙제검사하고 준비물 챙기고 청소하고 재우고 드라마 보면서 아내 돌아올 시간 기다려야 하는..
정말 제가 생각해도 웃기지도 않을 일을 해야 할거 같네요..
이게다 제 죄인듯 싶습니다..
세벽에 술에 취해들어오는 아내를 보고 있자면 화도 나고 정말 줘 패버리고 모든걸 끝네버리고 싶지만..
또 다시 아이들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기에 참고 있긴 한데....
때론 미칠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내가 왜 이렇게 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져 제가 지은 죄..옛말에 조강지처 버리고 잘되는넘 없다드니....
이 말을 되세기며 오늘도 참고 삽니다..
이제 곧 퇴근 시간이네요..
동료들 같이 한잔하자 하지만 전 그럴수가 없네요.
빨리 집에 들어가 할일이 너무도 많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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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사업이 잘돼 잘나가던 시절 조강지처와 자식들을 버린 남편 A(67) 씨와 버림받았던 부인 B(64) 씨가 법정에서 마주 섰다. ‘버린’ 남편은 그 후 사업 실패로 알거지가 다 됐고, ‘버림받은’ 부인은 부동산 투자 성공으로 수백억 원대의 자산가가 됐다. B 씨가 홀로 키운 20대의 두 자녀도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이 재판은 이날의 마지막 재판이어서 법정에는 이들 가족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족 재판’이었던 셈이지만 법정 분위기는 싸늘했다.
“20년 전 이혼할 때 땅을 넘겨준 것은 제 정신으로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서 넘겨준 것이므로 무효입니다. 저 사람(부인)은 그 땅 가지고 많은 돈을 모았는데 이제 내가 굶어죽게 생겼다는데 거들떠도 안 봅니다.”
말쑥한 옷차림에 귀부인 티가 나는 B 씨는 재판 내내 말이 없었다. B 씨는 고급 외제 승용차(렉서스)를 타고 법정에 나왔다.
강 부장판사가 B 씨에게 말을 건넸다.
“전 남편인 원고(A 씨)의 ‘과거’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래도 오갈 데 없는 원고를 위해 작은 도움이라도 준다면 그 ‘복’은 뒤에 앉은 자식들이 받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보세요.”
1985년, A 씨와 B 씨는 부부였다.
A 씨는 사업이 크게 성공해 많은 돈을 벌었다. A 씨는 바람을 피우다가 새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조강지처인 B 씨는 A 씨에게서 버림받았다.
A 씨는 이혼 요구에 응해 주는 조건으로 B 씨에게 충남 당진군의 임야 1400평과 서울 구로구 개봉동의 대지 42평을 넘겨줬다.
당시 이 땅은 보잘것없었지만 이후 두 사람의 인생을 뒤바꿔 놓았다. 땅 주위에 공장 등이 들어서면서 땅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B 씨는 땅 중 일부를 처분해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고, 20여 년간 수백억 원을 벌었다.
반면 A 씨는 거듭된 사업 실패로 재산을 탕진했고 함께 살던 여자와 새로 얻은 자녀들에게서도 버림을 받았다.
끼니조차 잇기 어렵게 된 A 씨는 B 씨가 큰 부자가 된 사실을 알고 “이혼할 때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땅을 넘겨줬으니 그 땅을 돌려 달라”며 B 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B 씨와 자식들은 단호했다. 조강지처와 어린 자식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나가 20년 만에 알거지 신세로 소송까지 걸어 돈을 요구하는 뻔뻔함에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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