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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야기/세상살이이야기

10대서 50대까지..꿈을 저당잡힌 한국인

by SL. 2016. 3. 19.
2016.3.11

22만 공시족 노량진 별곡

지금까지 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단 한 번도 주변 사람들과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공무원시험 준비생 강 모씨·28)

3월의 첫 근무일이자 대학의 새 학기를 시작하는 지난 2일 오전 7시 서울 노량진역. 꽃샘추위가 한풀 꺾여 포근한 날씨가 예상된다는 기상청 예보는 아침부터 빗나갔다. 

오전 강의를 듣기 위해 노량진 전철역(1·9호선) 출입구 9곳에서 물밀듯이 빠져나온 공시족(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수천 명이 내뱉는 입김 속에서 추위보다 더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한때 노량진 명물이었던 육교는 지난해 10월 철거됐다. 하지만 지상에서 횡단보도 신호등을 기다리는 도중에도 공시족들의 시선은 한 손에 쥔 강의 자료나 프린트물을 향해 있었다.

학원 수업이 본격 시작하기 전인 오전 8시. 한 대형 공무원시험 학원 옆에 있는 패스드푸드점에는 3~5명씩 무리를 지어 스터디를 하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말을 붙이기에는 너무나 진지했다. 오전 8시 30분쯤 스터디를 마치자마자 300~400석 강의실의 앞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그들은 걸음을 재촉했다.

30만~40만명으로 추정되는 공시족 중 상당수는 다음달 9일 국가직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을 앞두고 있다. 이번 시험에는 22만1853명이 신청해 지원자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불과 5년 전인 2011년(14만2732명)에 비교하면 응시자 수가 55%나 늘었다.

'2016 노량진별곡'의 주인공들은 10대에서 50대까지로 사실상 전 세대를 아우른다. 

바야흐로 공무원시험은 '국민 시험'이 됐다. 일찌감치 공시족이 된 10대(18~19세)도 3156명(1.4%), 은퇴 후 노후생활을 염두에 둔 50세 이상은 957명(0.4%)이 참여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혹은 대학졸업장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대학 재학생들도 공시족에 합류했다.

노량진의 청춘(靑春)들에게 봄은 왔지만 봄을 느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고시촌의 원조 격인 신림동 고시촌이 외무고시에 이어 사법고시 폐지 결정으로 명맥만 유지하는 가운데 노량진은 국내 최대 고시촌으로 부상했다. 공무원시험을 비롯해 임용고시 등 모든 시험 준비생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청춘의 꿈도 함께 영글고 있는 노량진, '2016년 노량진별곡'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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