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마루호' 船上에서
'한민족史 탐방단' 태운 日크루즈선… 5박6일 머물다갈 한국 손님들 위해
황태국 물김치, 韓食 독학한 조리장, '한국인은 고향사람 같다'는 지배인
'윗사람 공경' 배운 필리핀인 도밍고… 한배 타며 이해와 교감의 끈 맺어…
비빔국수 갈치조림 황태구이 잡채 쇠고기뭇국 두부찌개 물김치…. 일본 크루즈선 후지마루호(號)의 저녁 뷔페 차림은 서울 어느 한식 뷔페를 옮겨다 놓은 듯했다. 아침상엔 시원한 조개콩나물국이나 황태국이 오르곤 했다. 주방에 분명 한국인 요리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모든 게 쉰네 살 조리장 이와모토 마쓰히로씨 솜씨였다.
그는 2008년부터 후지마루호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한국 음식을 전혀 몰랐다. 그러다 많아야 한 해 네 차례 후지마루를 세내는 한국인 승객들을 위해 한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부산과 인천에 갈 때마다 음식점을 돌아다녔다. 한식을 맛보며 사진 찍고 메모했다. 일본에서도 한국 식당 음식을 싸 와 연구했다. 한국 요리책을 스무 권 넘게 구해 들여다봤다.
처음엔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풋고추가 너무 매워 가늘게 채 썰어 냈더니 다들 웃었다. 한국 사람들이 그 매운 걸 통째로 먹는다는 얘기에 놀랐다. 생선회에 초고추장만 곁들이기도 했다. 이제는 일본식 니쿠(肉)우동에 한국 불고기를 얹어 한·일 퓨전 요리를 구사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는 한식과 친해진 지금도 매운 것은 잘 못 먹는다고 했다. 매운 음식을 만들 때마다 얼마나 맵게 해야 하나 고민한다. 그래서 배추김치와 깍두기는 아예 부산에서 잔뜩 사 실었다. 상추·마늘과 함께 일식이든 양식이든 끼니마다 상에 올려줬다. 덕분에 후지마루호 식탁에선 음식에 물릴 새가 없었다.
이와모토씨는 많게는 600명분 음식을 준비하느라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자정에 잠든다. 승객들이 상륙해 배가 비는 점심 전후해 네 시간 쉬었다가 다시 저녁상을 차린다. 그는 "한식은 몸에 좋은 요리가 많아 약(藥) 같다"고 했다. "매운 음식만 있는 게 아니라 맵고 심심한 음식들의 균형이 잘 맞는다"고 했다.
지난달 '일본 속의 한민족사(史)' 탐방단 556명에 끼어 부산에서 후지마루호에 올랐다. 고대 이래 일본에 전해진 한민족 문화의 흔적을 찾아가는 5박 6일 역사 여행이다. 조상들이 일본을 오갔던 세토내해(內海) 물길 따라 규슈·오사카·아스카·나라·교토를 둘러봤다. 조선일보와 신한은행·GS가 전국 초·중·고 선생님들을 위해 마련한 일정에 일반 역사 탐구자들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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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이철원 기자
마쓰모토씨는 1988년 초기 탐방단을 실어 나른 선샤인후지호 시절부터 승선해 한민족사 탐방과 인연을 맺었다. 1997년 IMF 금융 위기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탐방단이 일본 방문을 거른 것만 빼고 25년을 이어 온 인연이다. 그는 "한국 사람은 싫고 좋고가 분명하고 솔직 화끈해서 내 스타일과 맞는다"고 했다.
그의 고향은 시코쿠(四國)섬 고치(高知)현이다. 메이지유신을 이끌어낸 사카모토 료마를 배출한 곳이다. 마쓰모토씨는 고치가 임진왜란 후 조선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라는 얘기를 어려서부터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 드물게 생마늘과 도토리묵을 먹었다. 고치 사람들이 술잔을 비워 권하는 것도 한국인과 꼭 닮았다. 그는 "한민족사 탐방단이 배에 타면 고향 사람 만난 것 같다"고 했다.
고객 서비스를 지휘하는 쉰 살 선임 승무원 히노데 요시미씨는 한국어 교재도 보고 승객 대화도 귀동냥하며 한국말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4년 공부하고 벼른 끝에 재작년 승객 안전 교육을 한국말로 진행했다. 발음이 이상했던지 사람들이 킥킥 웃었다. 조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끝까지 했더니 모두가 손뼉을 쳐줬다. 탐방단과 함께한 후지마루호 12년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다.
후지마루호 승무원 133명 중에 95명이 필리핀 사람이다. 필리핀 용역 회사 소속으로 승선해 궂은 일을 도맡는다. 마흔일곱 살 프롤리안 도밍고씨는 "엿새를 함께 지내다 헤어지는 게 슬퍼 손을 붙들고 눈물 흘리는 분들에게 감동한다"고 했다. "한국인이 윗사람 잘 모시는 것을 보며 많이 배운다"고도 했다. 그 역시 몇 년째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후지마루호 식구들을 다시 만나기 어렵게 됐다. 후지마루가 그간 쌓인 적자를 버티지 못해 6월 말 운항을 멈추고 팔 곳을 찾기 때문이다.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은 1987년 조선일보가 시작했고 이듬해 신한은행이 참여했다. 지난 26년 1만5000여 선생님과 참가자가 한·일 고대사 현장을 밟았다.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랑과 자랑을 키우고 일본을 좀 더 깊이 알게 됐다. 그래서 한민족사 탐방은 소통의 여행이기도 하다. 한국 승객과 후지마루 승무원들부터가 한배를 타며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 이해와 교감의 끈을 맺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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