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케네디 골목'
2013.05.23 03:01
내가 아들아이처럼 20대 초반이었던 1960년대 때만 해도, '패션'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인 화제에 오를 일은 거의 없었다. 그때 나왔던 우리 옷엔 그저 기능만 있었다. 감성 같은 건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따라서 '패셔니스타'니 '시크하다'느니 같은 표현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건 물론이다.
하지만 멋을 내고픈 욕망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다른 스타일을 갈망하던 멋쟁이들에겐 나름 그 욕망의 분출구가 따로 있었다. 남대문 시장 안에 있던 '케네디 골목'이었다. 외국에서 온 구호물자 중에서 괜찮은 옷들을 가져다 팔던 곳이었다. 독특한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을 자랑하다 보니 옷의 가격이 만만치는 않았다. 당시 올챙이 성우였던 내 수입으론 감당하기 버거웠다. 그래도 어렵사리 돈을 모아 체크무늬 남방과 면바지를 사서 나름 멋을 부리고 다녔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원조 반항아 제임스 딘이 입었던 청재킷에 매혹돼 비슷한 것을 찾아 기웃거리기도 했다. 내 젊은 시절의 유일한 사치이자 호강이었다.
우리 세대만의 '패션 메카' 케네디 골목에 요즘의 인터넷에선 절대 찾을 수 없는 특유의 낭만이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내가 그만큼 옛날 사람이 됐다는 얘기일까.
어쨌든 주문만 하면 도깨비방망이처럼 원하는 물건이 배달되는 세상이지만, 오늘은 아들 녀석에게 들려주고 싶다. 서툰 솜씨로 손빨래까지 할 정도로 옷을 아껴 입었던, 그 궁핍함 속에서 건졌기에 더 소중할 수밖에 없는 그때 그 추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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