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의 속도전, 이대로 좋은가
한국 사회는 지금껏 속도전을 장려해왔다. 모든 사회가 속전속결로 돌아갔다. 맨땅에 경부고속도로 428㎞를 닦는 데 겨우 2년5개월이 걸렸다. 정부는 ‘한국의 속도’를 자랑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완공한 후 기념탑을 세웠다.
한국의 속도는 지금까지의 경제성장을 이룬 원동력이었다. 전쟁 직후 67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60년도 되지 않아 2만달러를 돌파했다. 한국은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됐다. 한국 사회 전체가 쉴 새 없이 달리고 또 달려온 결과다.
한국은 지금도 세계 최고의 속도를 자랑한다. 10초도 안 걸려 부팅이 완료되는 노트북이 출시됐고, 맥주 캔을 5분 만에 시원하게 해주는 냉장고가 나왔다. 하루가 멀다하고 더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휴대전화가 출시된다. ‘빠름~빠름~빠름~’이라는 광고 후렴구는 올해 최고 유행어다.
그러나 한국인 대부분은 행복하지 않다. 2010년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이 30명을 넘어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10대 사망원인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도 자살이다. 죽음조차도 빠른 사회다. 반면 결혼율과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가임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은 1.24명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빠른 것을 원할수록 속도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사회 전체에 피해를 입힌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바쁘다. 속도전을 통해 축적한 그 많은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제 제동을 걸어야 한다. 페달에서 발을 떼도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는다. 다시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다리로 버티고 서서 주위를 둘러봐야 할 시점에 왔다. 경향신문이 창간 66주년을 맞이해 ‘한국인의 속도’를 이야기한다
2, 빠름 경쟁’에 매몰된 한국, 이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지난해 2월13일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던 피자 배달원 김모군(18)이 교통사고로 그 자리에서 숨졌다. 50㏄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신호를 위반하고 교차로로 들어오던 시내버스가 김군을 덮쳤다. 2개월 전인 2010년 12월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피자 배달을 하던 최모씨(24)가 사망했다. 최씨는 교통신호가 바뀌자마자 출발했다가 이를 보지 못한 택시와 충돌했다.
당시 피자업계에서는 ‘30분 배달제’가 유행이었다. 최씨가 일하던 업체는 빠른 배달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주문 뒤 30분 안에 피자를 배달하지 못하면 제값을 받지 못했다. 배달원들은 몇푼 안되는 시급에 목숨을 걸고 오토바이 속도를 높여야 했다.
두 달 간격으로 발생한 피자 배달원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속도 경쟁’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30분 배달제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일부 업체들은 비난 여론이 들끓자 30분 배달제를 그만뒀다.
제프리 존스 주한 미국 상공회의소 전 회장은 2000년 출간한 책 <나는 한국이 두렵다>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한국 사회는 무척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한국 사람들은 단지 그 변화의 속도를 느끼지 못할 뿐이다. … 나는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처럼 변화에 대한 부담(혹은 두려움)이 적은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휴대폰, 컴퓨터, 자동차 등 다른 나라에서라면 5~10년 족히 쓸 물건도 한국에서는 1~2년만 되면 골동품이 된다. 한국 사람들은 그만큼 변화에 익숙하며 변화를 좋아하고, 또 즐기기까지 한다.”
존스 전 회장의 말은 한국을 향한 찬사에 가깝다. 한국인의 속성과 경제성장 비결을 간결하게 연결시킨 표현이기도 하다. 유독 강한 한국인의 ‘속도 사랑’은 외국인 눈에 ‘한국의 힘’으로 비쳐졌다.
사실 그랬다. 속도는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경부고속도로로 대표되는 ‘속전속결’은 그 상징과도 같았다. 1968년 2월1일 착공한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 7월 개통됐다. 장장 428㎞를 뚫는 데 2년5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정부는 ‘세계 고속도로 건설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이 고속도로를 자랑하기 위해’ 추풍령 휴게소에 기념탑을 세웠다.
경부고속도로를 단숨에 닦아냈듯이 한국인들은 모든 면에서 쉴 새 없이 달렸다. 1954년 이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6.8% 성장했다. 1953년 67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2007년 2만달러를 돌파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선진국 문턱으로 진입하는 데 5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1세기 들어 한국인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그 기반이 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의 이동전화 가입자수는 5250만7000명으로 인구수보다 많다. 가구 인터넷 보급률은 81.8%로 정점을 찍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국 어디에서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한국인이 유독 속도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환경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인구밀도는 1㎢당 497명(2011년)으로 세계 20위다. 그러나 산악 지형을 감안하면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고밀도 사회에서는 속도 경쟁이 불가피하다. 제한된 자원으로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속도만한 것이 없다. 모든 행동을 ‘빨리 빨리’ 일사불란하게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었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빨리 빨리”를 외쳤는지,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뒤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외국 관광지의 호객꾼들은 “쌉니다, 싸요” 말고 “빨리 빨리”도 덩달아 배웠다.
2008년 4월 당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4대강 사업과 관련해 공식 석상에서 “전광석화처럼 시작하고 질풍노도처럼 밀어붙여야 한다. 속도전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런 인식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다.
일상에서도 ‘속도 경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공회대 우석훈 교수는 2008년 출간한 <직선들의 대한민국>에서 한국의 자전거 문화를 이렇게 묘사했다.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자전거는 모두 친구이고 반갑지만, 같은 방향으로 가는 자전거는 전부 경쟁자다. 특히 아줌마에게 추월당한 20대는 때로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속도주의와 성과주의에 중독된 한국 자본주의의 내재화된 문화가 자전거로 매체가 바뀌었다고 해서 쉽게 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속도와 성과와 경쟁을 숭상한다. 몇 킬로미터까지 속도를 냈는가. 하루에 몇십 킬로미터를 주파했는가, 몇 대를 추월했는가에 매달리는 행태가 자전거 문화에서도 동일하게 벌어진다.”
한국인은 속도에 ‘중독’돼 있다. 좀처럼 브레이크를 걸지 못한다. 달리는 자전거가 브레이크를 거는 순간 멈추거나 넘어지듯이 국가도 무너질 것이라 생각한다. 속도를 늦추기는커녕 더 강하게 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4.6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수준이었다. 반면 취업자당 노동생산성은 OECD 국가 중 23위였다. 한국인의 ‘속도전’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던 국제경쟁력이 힘을 잃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결혼과 출산율, 자살률은 현재 한국인들이 처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1.24명으로 1970년(4.53명)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반면 인구 10만명당 자살자수는 1995년 10명을 넘어서더니 2010년에는 31.2명에 이르렀다. 대표적 사망원인인 위암(20.1명)과 간암(22.5명)을 넘어섰다. 당연히 OECD 국가 중 1위다.
이러니 한국인은 행복할 수가 없다. OECD가 삶의 만족도, 미래에 대한 기대, 실업률, 자부심, 희망, 사랑 등 인간의 행복과 삶의 질을 포괄적으로 고려해 산출한 ‘국가별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36개국 중 24위였다. 학력, 학업성취도 등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고용, 노동시간, 환경 등에서는 낮게 평가됐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한국인을 질식시키는 속도 전쟁’이란 칼럼에서 결혼·출산율 하락, 자살률 증가를 놓고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근본 원리의 효용성이 그 어떤 한계에 다다랐다는 걸 말해주는 신호”라고 이미 2년 전에 해석했다.
이제 한국인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계속 달릴 것인가, 아니면 브레이크를 밟을 것인가. 참고자료 하나, 지난 5월 도로교통공단이 2011년 이후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3명 이상 사망, 20명 이상 사상)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원인은 ‘과속’이었다
3, ‘10초 부팅’ 노트북, ‘5분 급랭’ 냉장고…느린 가전·통신은 생존불가
전자제품의 속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는 지난해 흥미로운 자체 조사를 진행했다. 국내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2010년 한 해 동안 올라온 정보기술(IT) 관련 글을 전부 모아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해 보려는 시도였다. 이른바 ‘빅 데이터’ 분석이다. 수십만건의 글을 수집해 분석한 결과 삼성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전자제품은 무조건 빨라야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4일 “삼성 반도체사업부는 전자제품의 기본이자 핵심인 부품을 만드는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이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실시했다”면서 “느린 제품에 대한 불만이 대부분이었으며 용량보다 오히려 속도가 빠른 제품에 관한 호평이 두드러졌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는 이 조사결과를 활용해 제품 속도 향상에 총력을 다했다. 하드디스크를 대체하는 반도체 제품 가운데 SSD가 있다. 한마디로 메모리반도체인 낸드플래시 덩어리로 CD 형태의 저장장치를 대신하는 개념이다. 기존 제품은 하드디스크보다 읽기·쓰기 속도가 2배가량 빨랐지만 삼성은 이 성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10월에는 하드디스크 대비 속도가 3배인 SSD를, 지난달에는 5배짜리를 출시했다. 기존 하드디스크 환경에서는 사진 100장을 한꺼번에 띄우는 데 최소 3~4초 이상 걸리지만 최신 제품을 장착한 PC는 0.7초 만에 사진이 열린다.
용량보다 속도에 더 호평 한국 소비자들의 특성이
삼성·LG 등 경쟁력 키워 마케팅에도 ‘빠름빠름’ 열풍
반응은 뜨거웠다. 회사 관계자는 “삼성전자 SSD 신제품을 사서 직접 하드디스크 대신 끼워넣는 소비자가 급증했다”며 “ ‘속도전’에 주목한 결과 PC 최신 저장장치가 기업간거래(B2B)에서 소비자시장거래(B2C)로 확장되는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말했다.
속도에 대한 한국인들의 요구는 전자제품 쪽에선 가히 ‘종교적’이라고 부를 만하다. 조금만 반응속도가 느려도 국내 누리꾼들 사이에서 ‘쓰레기’란 악평이 따른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업체들이 세계적인 위상으로 올라선 데는 이런 국내 시장의 특성이 적잖게 기여했다. 속도면에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내놓아야 당장 안방 시장에서 ‘화’를 면할 수 있다보니, 이 제품들은 해외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요즘 전자제품의 ‘대세’인 스마트폰도 속도가 생명이다. 통화기능뿐 아니라 PC도 대신해 인터넷 콘텐츠를 활용하는 기기로 사용되니 더욱 그렇다. 애플이 주도한 아이폰 시리즈는 사용자환경 측면에서 혁신적이었지만 국내 업계는 빠른 구동 등 ‘스펙’으로 맞섰다. 삼성전자는 자체 구동칩(AP)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속도를 구현했고, 결국 이런 기술력은 스마트폰 점유율 세계 1위 달성으로 이어졌다. 갤럭시S3와 갤럭시노트2 등 신제품은 모두 두뇌가 4개인 칩(쿼드코어)을 사용한다. LG전자의 옵티머스G도 퀄컴의 쿼드코어를 쓰며 속도경쟁에 나섰다. 미국 애플의 아이폰5가 두뇌 2개짜리(듀얼코어) 제품인 것과 대조적이다.
10초 전쟁이 벌어진 제품도 있다. 국내 노트북 부팅 시간은 10초 안으로 당겨졌다. LG전자의 ‘울트라북’ 신제품은 전원 버튼을 누른 뒤 단 9초 만에 부팅이 완료된다. 삼성 ‘시리즈9’은 9.8초 만에 부팅되고, 대기모드에서 작업 전환시간은 단 1.4초에 불과하다. 기다리는 데 인색한 국내 환경에 맞추다보니 100m 달리기처럼 신기록 경쟁이 펼쳐지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제품 경쟁력으로 연결된 것이다. 여전히 해외 제조사들은 10초 벽을 깨지 못하고 있다.
속도에 집착하는 국내 소비자들을 겨냥한 아이디어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맥주캔을 5분 만에 시원하게 만드는 LG전자 ‘5분 급속’ 냉장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카메라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탑재해 찍은 사진을 SNS에 바로 올릴 수 있는 삼성전자의 ‘스마트 카메라’도 있다.
국내 통신사들도 차세대 통신망인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를 지난해 일찌감치 도입했다. 기존 3세대 네트워크에 비해 5~7배 빠르고 와이브로보다 2배가량 빠른 전송속도를 자랑한다. SK텔레콤은 지난해 7월 국내 최초로 롱텀에볼루션 서비스를 상용화한 이후 지난 1월 세계 최초로 100만 고객을 돌파했다.
속도 마케팅은 브랜드 파워를 좌우하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최근 KT의 ‘빠름 빠름’ 광고는 타사보다 롱텀에볼루션 전국망 구축이 뒤처진 것을 뒤집기 위해 기획됐다.
KT 관계자는 “대다수 통신망 사용자들이 속도를 가장 중시하고 있어 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광고를 만들게 됐다”며 “빠름이란 가사와 그림 일부를 번지게 하는 ‘모션 블러링’ 아이디어가 그래서 탄생했다”고 밝혔다.
이런 기법을 통해 해당 광고는 한 설문조사에서 66.9%의 인지도를 보여 통신3사 롱텀에볼루션 광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 1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국내 전체광고에서 18.8%로 1위를 차지해 2위인 갤럭시S3 광고(8.6%)를 크게 앞지르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속도에 관한 국내 소비자들의 갈망을 브랜드 이미지로 연결한 사례”라고 자평했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은 제품과 통신망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속도 경쟁력을 확보했다. 자연스럽게 세계 시장에서도 통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와 스마트폰, TV 등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LG는 액정화면(LCD), 세탁기 등에서 세계 1위 자리에 올랐고 TV 등에서는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시장의 위상도 달라졌다. 소비자들이 워낙 속도에 민감하다보니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한국을 주요 ‘테스트 마켓’으로 삼고 있다.
지난달 방한한 구글 에릭 슈미트 회장은 “한국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이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온 동네에 스마트폰이 존재한다”며 “정보기술 혁명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라고 평가했다
인터넷 속도 세계 최고…LTE서비스도 최초로 전국망 갖춰
한국인 가운데는 해외여행이나 출장 때 인터넷 속도가 느려 답답함을 경험한 이들이 많다. 그만큼 인터넷 속도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광통신망을 활용한 초고속인터넷(광통신LAN) 가입자는 100명당 20.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3위인 스웨덴(9.7명)과 비교해도 두 배가 넘는 수치다. 미국(1.9명), 독일(0.2명)은 우리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나마 2위 일본이 17.2명으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전체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1위는 스위스로 39.9명이다. 한국은 35.4명이다. 하지만 초당 100Mbps급 속도인 국내 네트워크와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4일 “다른 선진국은 인터넷망 속도가 실질적으로 10~20Mbps급인 데 비해 국내 이용자들은 인터넷 가입자의 86%가 100Mbps급 인터넷망을 사용한다”며 “세계 어느 국가보다 인터넷망 속도는 빠른 편”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인터넷망 관련 신기술이 나오면 업계에서 먼저 나서 보급했다”며 “속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10년부터 수도권 일부 아파트단지 등을 지정해 시범적으로 기가 인터넷 사업도 펼치고 있다. 여기에 보급된 인터넷망 속도는 기존 초고속 광통신보다 10배 빠른 1Gbps 수준이다.
국내 인터넷망은 1982년 서울대와 한국전자기술연구소 사이에 1.2Kbps 전용회선이 깔리며 첫선을 보였다. 그러다 1994년 PC통신으로 불리는, 전화선과 모뎀을 통한 인터넷망이 보급되면서 채팅과 각종 모임방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후 인터넷망 속도는 나날이 발전했고, 이를 활용한 커뮤니티와 미니홈피 등 독특한 네트워크 문화가 생겨나기도 했다.
무선통신망도 급속도로 고속화하고 있다.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는 세계 최초로 전국망을 갖췄고 이미 가입자 1000만명을 돌파했다. 롱텀에볼루션 시장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스마트폰 제조사 LG전자는 세계시장에서 이 서비스 보급 속도가 느려 답답해하고 있을 정도다. 전 세계에서 롱텀에볼루션 시장이 열린 곳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뿐이다
4,조금만 늦어도 짜증 …오늘도 목숨을 걸고 ‘번개 출동’한다
배달의 속도
지난달 27일 만난 중식집 배달노동자 최범주씨(32)는 오후 2시에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3시가 넘어야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이날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사가 잘 안돼 점심시간이 당겨졌다. 중식집은 점심시간에 가장 바쁘다. 배달원 한 명당 하루 평균 30번의 배달을 가는데, 그중 10번 이상이 낮 12시부터 1시 사이에 몰려 있다. 최씨는 이날 6번 배달했다.
최씨는 배달일을 7년째 하고 있다. 좋아하는 오토바이도 타고 돈도 벌겸 일을 하고 있지만 배달일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손님들의 ‘하대’와 ‘급한 성질’ 때문이다. 최씨는 “좋은 손님은 좋지만 막말하는 사람과 성질 급한 손님들 때문에 싸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일이다. 주문이 평소의 2~3배나 많은 주말 점심 시간대였다. 배달원 6명이 힘 닿는 대로 주문을 처리했지만 어쩌다 보니 한 곳에 배달이 1시간이나 늦어지게 됐다. 오토바이의 가속페달을 최대한 밟아 도착했으나 손님은 딱 한마디만 했다. “꺼져.” 최씨는 중간에 주문 취소도 하지 않은 손님에게 속으로 화를 내면서도 음식을 도로 가져갈 수는 없어 받아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결국 음식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 배달노동자 72% 사고 경험 패스트푸드와 경쟁서 촉발
▲ 인구 도시 집중화로 심화 공짜배달 노동착취 이어져
한국은 음식배달 문화가 유난히 발달한 나라다. 중국음식과 피자, 치킨,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는 물론, 설렁탕, 해물탕 등 일반 음식까지 배달이 안되는 음식이 없다.
흔히 배달의 ‘생명’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과거 고려대 앞 중식집에 ‘번개’라는 별명을 가진 배달원은 어느 장소든 가장 빠른 시간에 음식을 배달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한양대 인근 중식집에서 일하는 배달 경력 6년의 배달노동자 정슬기씨(27)는 “특정 시간에 주문 물량이 몰려 있기 때문에 항상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다닌다”며 “밥 먹는 것도 빨라졌고 일상생활도 빠릿빠릿해졌다”고 말했다.
사실 식사를 하는 것이 초를 다투는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람들은 음식을 배달시키면 무조건 빨리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문한 음식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다시 전화를 걸어 재촉하고, 심지어 주문을 취소하거나 음식을 되돌려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음식점들은 최대한 신속하게 배달한다는 것으로 손님을 끌고 있고, 이 과정에서 배달원들은 교통사고 등 각종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1 음식배달 근로자 실태조사’를 보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조사 대상 음식점 344곳 중 35.2%인 121곳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사고가 난 음식점은 3년 동안 평균 4건의 사고를 경험했다. 조사 대상 배달노동자 471명 중 130명(27.6%)이 교통사고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자 배달노동자 교통사고율이 37.3%로 가장 높았고, 이어 중식 배달, 치킨 배달 등의 순이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음식배달 노동자 4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교통사고를 경험했다는 노동자가 306명으로 72.7%에 달했다. 1분이라도 빨리 밥을 먹겠다는 사람들의 욕구에 배달노동자들은 생명을 걸고 있는 셈이다.
서울 자양구의 한 치킨 체인점에서 배달일을 했던 하병철군(18)도 두 달 전 큰 사고를 당했다. 밤 11시쯤 급하게 배달을 나갔는데 뚝섬역 근처에서 신호위반을 했다가 자전거와 부딪친 것이다. 그나마 큰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핸들을 꺾어 자전거 탄 사람은 손목만 삐는 경상을 입었다. 하지만 하군은 광대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어 1주일간이나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완치되려면 6개월은 걸린다고 했다. 가게에서 피해자와 합의를 해줬는데 대신 하군의 병원비는 절반만 내줬다. 산업재해 보상은 꿈도 꿀 수 없다.
배달노동자들의 사고가 잇따르자 여론의 비판도 일고 있다. 얼마 전 모 피자 체인업체가 30분 내에 배달하지 못하면 음식값을 받지 않겠다는 마케팅 전략을 내세우자 “배달원들만 죽어난다”는 여론의 비판이 봇물쳤다. 업체는 결국 이 전략을 철회했다.
지금은 한국 사회에서 보편화된 음식배달 문화가 과거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의대 외식산업경영학과 우문호 교수는 “1979년에 ‘테이크아웃’(음식을 포장해서 들고 가는 방식)이 되는 패스트푸드점이 한국에 처음 들어오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배달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1979년 이전에는 거의 배달을 하지 않던 중식집들이 이른바 ‘철가방’을 들고 배달의 선두주자로 나서면서 배달 문화가 급속히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해외 패스트푸드점과 국내 요식업체가 경쟁하는 과정에서 배달 문화가 발전했다는 얘기다.
문화평론가인 경희대 이택광 교수는 한국에서 배달이 성행하는 이유로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진행된 인구의 도시집중화를 꼽는다. 이 교수는 “많은 사람이 좁은 지역에 살게 되고 자영업자들이 늘어나면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짜로 빨리 배달하는 문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배달 문화가 보편화된 사회임에도 배달노동자들에게는 적절한 비용이 지불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배달을 시킨 사람들이 집에서 빠르고 편하게 식사를 할수록 배달노동자들의 처우는 악화된다. 한국노동연구원 실태조사를 보면 배달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9시간 이상씩 주 6일을 일한다. 5명 중 1명 이상은 하루도 쉬지 못한다. 근무 중 쉬는 시간이 정해진 경우는 10명 중 1명(5.9%)이 안되고, 절반 이상은 배달이 없을 때가 쉬는 시간이라고 답했다. 38%는 아예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한다.
이택광 교수는 “공짜배달은 자본을 가진 사람들만 이익을 얻는 구조를 만든다”며 “피고용자들의 노동착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5,물건 사면 ‘무료 배달’…미국·캐나다선 상상도 못해
캐나다에서는 배달을 찾아보기 힘들다. 피자와 혼자 들기 힘든 가구를 제외하고는 배달 가능한 품목이 거의 없다.
5년 전 캐나다로 건너간 김진오씨(30)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캐나다의 슈퍼마켓을 찾았을 때 놀랐다고 말했다. 배달이 안되는 것도 한국과 다른 낯선 점이었지만 점원과 손님이 이웃처럼 대화를 나누는 여유로운 풍경도 색달랐다.
캐나다 상점의 점원은 손님의 이름을 기억해 근황을 묻고 상품을 추천하는 등 대화를 하며 천천히 물건값을 계산한다. 김씨는 “캐나다의 상점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물건을 사러 온 손님과 유대감을 형성해 좋은 경험을 남기는 데 무게를 둔다”며 “한국은 빠르고 정확한 서비스를 중요하게 여겨 각종 배달 서비스가 발전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10년 전 미국으로 이민간 오혜선씨(41)는 지난여름 한국을 방문해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고 감탄했다. 주문한 다음날 오전에 책이 도착했고, 배송업체는 배송진행과정을 문자메시지로 일일이 알려줬기 때문이다. 오씨는 “한국에서는 배달과정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며 “한국의 택배서비스는 정말 빠르고 정확하다”고 말했다.
오씨는 한국의 음식배달 서비스도 미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미국에 사는 아줌마들의 로망이 한국에서처럼 다양한 음식을 배달해 간편하게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여름 한국에서 머문 7일 동안 3번 이상 치킨과 맥주를 배달시켜 먹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한국의 빠른 배달은 분·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는 바쁜 한국인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교통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배달시간을 정해 배달하는 분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판매자들이 모든 물건을 무료로 빠르게 배달해주는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말한다. 외국에서는 배달이 별도의 서비스이기 때문에 배달되는 품목도 적고, 배달상품의 값은 더 비싼 것이 일반적이다.
전 세계에 체인점을 가진 다국적 기업 맥도널드도 한국 등 일부 아시아·아프리카 국가에서만 배달을 실시하고 있다.
세종대 외식경영학과 정유경 교수는 “맥도널드는 본거지인 미국에서는 뉴욕 맨해튼의 극히 일부 체인점만 배달서비스를 하지만 한국에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달을 전면적으로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국처럼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화를 경험하고 있는 중국에서도 배달 문화가 발달하고 있다
6,인생은 10대에 결정된다’는 조급증에 초등생부터 속도에 치여
죽음의 속도 - 빠르게 늘어나는 10대 자살
서울의 한 외국어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ㄱ군(16)이 지난달 20일 한강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한강에 투신하기 직전 죽음을 암시하는 메모를 남겼다. 경찰은 ㄱ군이 남긴 메모와 유족들의 진술을 토대로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결론지었다. ㄱ군은 2학년에 올라가면서 1학년 때보다 성적이 조금 떨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학교 2학년인 ㄴ군(14)도 지난 2월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ㄴ군은 몸을 던지기 전 온라인에 “공부가 어렵다. 학원 다니기가 힘들다”는 글을 남길 정도로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대구에서는 지난해 12월 이후 10개월 동안 중·고교생 1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의 자살원인으로는 성적비관과 학교폭력 등이 꼽혔다. 지난달 13일 자신이 살던 아파트 창문으로 뛰어내려 숨진 ㄷ군(18·고3)도 수능시험을 앞두고 성적 때문에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0대 자살이 가파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10대(10~19세)는 373명에 달한다. 10년 전 223명에서 67.3%나 증가한 수치다. 자살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10대 사망원인 1위는 사고나 질병을 제치고 자살이 차지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10대 청소년들이 죽음의 속도전에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 효율·속도 중시하는 사회 학력·학벌만이 ‘사다리’
▲ 초교 사교육·고입 재수까지 죽음을 탈출구 삼을 정도로
10대들 과도한 경쟁 시달려
한창 꿈을 키워 나가야 할 10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왜 자꾸 늘어만 갈까.
전문가들은 각종 통계와 상담 경험을 근거로 “초·중등생까지 내려온 학업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청소년 통계’를 살펴보면 2011년 한 해 동안 1번이라도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청소년(15~19세)은 10.1%에 달했다. 자살을 생각한 학생들 중 절반이 넘는 53.4%가 ‘학업성적·진학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죽음을 탈출구로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학업 스트레스는 지금까지 고등학생들에게만 국한됐지만 최근엔 초·중학생까지 그 연령대가 낮아졌다. 2010년 기준으로 초등학생의 86.6%가 좋은 성적을 목표로 사교육을 받고 있다. 청소년 백서와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통계를 분석한 결과 전국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초등학생은 2002년 6만4557명에서 2011년 79만5734명으로 12.3배나 증가했다. 이 중 학업과 진로 때문에 상담을 받은 초등학생은 17%에 달했다.
10대는 중학교에 입학해도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고교입학 재수’도 불사한다. 2010년 전체 고등학교 입학생 중 재수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0.77%로 2006년의 0.32%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교육현장 종사자들은 10대들이 과도한 학업 경쟁에 내몰리는 것은 효율성과 속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경쟁 분위기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김삼호 대학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국 사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등 기득권 범주와 비기득권 범주가 분명하게 구별돼 있는데 한 번 기득권 범주에서 밀려나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 입시 등에서 한 번 탈락하면 극심한 차별을 받는다고 판단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탈출구로 높은 학력을 요구하다 보니 10대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선진 경기 연천군 전곡중학교 교사는 “정부가 선생님들까지 경쟁시키니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경쟁으로 몰아넣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교과부가 학생 중도 탈락률과 학업성취도평가에서 기초미달된 학생 수 등으로 교사·학교를 평가하면서 교사들조차 경쟁구도 안에 매몰되면서 아이들에게 경쟁심리를 심어주게 된다”고 설명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린 10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어른들이 과도하게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사회구조를 완화시켜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홍성태 상지대 사회학과 교수는 “위계질서화된 교육체제는 사회적 선택으로 결정된 만큼 채용과 승진, 임금 등에서 학력과 학벌로 차별하지 않는 법안을 마련해 사회 구성원에 대한 차별체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도 “경쟁에서 탈락해 실직·해고 상태에 놓이더라도 다시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복지체계를 확보하는 거시적 접근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학교 안에서 경쟁을 부추기는 제도도 개선돼야 한다. 이 교사는 “학업성취도평가를 없애고 일부 학교에서 아이들의 학업성적에 따라 선생님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제도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오승근 명지전문대 청소년교육복지학 교수는 “동아리 활동을 학업성과로 인정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특기와 적성을 찾는 활동을 입시에 반영하는 등 다양한 인재 양성의 틀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7,“학교도 배움도 선택…‘내가 원하는 삶’ 준비하고 만들어”
‘제도권의 길’ 거부한 10대들
명문대와 고소득 직장으로 이어지는 소위 ‘성공 코스’를 벗어난 10대들이 있다. 이들은 입시를 위한 공부를 거부하고 대신 자신의 정체성과 꿈을 찾는 공부에 열심이다. 국내에서 대안학교는 실험단계이지만 10대들은 이곳에서 제도권 교육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최훈민군(17)은 디지털 특성화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지난 5월 ‘희망의 우리학교’를 설립했다. 최군을 포함한 10명의 학생들은 이 학교에서 공동체 예술과 독서·사회 토론, 영어, 한국사 등을 공부한다. 학생들은 포토샵, 철학 등 자신 있는 주제를 다른 학생에게 직접 가르치는 1인 1강의도 진행한다. 학교 운영은 학생들의 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현직교사·작가·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재능기부 형태로 이들의 수업을 돕는다. 교사가 아닌 학생이 중심에 선 새로운 교육실험이다.
최군은 “현재의 입시 제도 아래서 학생들은 단순히 시험 하나로 상·중·하 계층으로 나뉜다”면서 “학생의 개성과 사고를 존중하고, 주류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과는 다른 삶을 꿈꾸기 위해 학교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대안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김정산군(19)은 남들보다 한 학년이 느리다. 지난해 인도에서 자원봉사를 하느라 1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인도에서의 자원봉사는) 내 삶에 어울리는 색깔이 무엇인지 찾는 시간이었다”면서 “남들보다 조금 늦거나 빠른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안학교 졸업생들은 어떨까. 그들도 자신의 꿈을 가꿔 나가는 데 의미를 부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배우는 김민영양(19). 남들과 비슷하게 대학을 진학했지만, 적어도 대학을 선택한 이유는 달랐다. 인권 문제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쌓고 싶어 대학에 진학한 그는 “대학은 목표가 아니라 삶의 한 수단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양은 대안학교에 다니는 동안 인권영화제와 필리핀 자원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친구들은 매일 밤 12시까지 학원과 독서실을 다니며, 모의고사에서 틀린 문항 개수를 확인했다. 그런 친구들을 볼 때마다 김양은 “ ‘나만 뒤처진 채 살아가는 게 아닐까’라는 불안감과 매일매일 싸웠다”고 했다. 대학에서도 친구들이 스펙쌓기에 열중하는 걸 보면 여전히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다. 김양은 그러나 “남들보다 스펙은 한참 뒤처질지 모르지만 적어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대안 고등학교 졸업 이후 진학했던 대학을 포기하고 음악강사로 일하는 이재욱씨(26)도 자신만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이씨는 마을 살리기 사업을 구상 중이다. 그는 “입시 교육, 경쟁 위주의 교육에서 놓쳤던 부분이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나 묻지마 범죄 등으로 표출되고 있다”면서 “한국 사회에 굳어져 있는 ‘성공’의 기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찾아가는 실험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8,신제품 나올 때마다 소비욕 “헤어나기 힘들어요”
소비의 속도 - IT기기 교체 취미 최형환씨
직장인 최형환씨(31)는 휴대폰이 두 개다. 갤럭시S3와 아이폰4다. 개인용과 업무용을 구분한 것이 아니다. 둘 다 개인용이다.
정치인이나 회사의 최고경영자(CEO)처럼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휴대폰을 2개 사용하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최씨 같은 젊은 직장인이 휴대폰을 2개 들고 다니는 이유가 궁금했다.
최씨는 포스코 광고대행사 포레카에서 뉴미디어를 담당하고 있다. 첫 직장에서 디자이너 일을 하다 이곳으로 옮겼다. 맡은 일이 소셜미디어 분야여서 업무 효율상 휴대폰을 2개 쓰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새 정보기술(IT) 제품이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사용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이러다 보니 쓰고 있던 멀쩡한 기기도 새 제품을 사는 즉시 중고시장에 내다 팔거나 장롱 속에 처박히게 된다.
▲국내 출시된 아이폰 전 제품 다 사용해 본 ‘애플 애호가’
▲“제품들 자주 바꾼다고 해서 풍요롭거나 고효율은 아냐”
최씨는 어려서부터 정보기술 기기에 관심이 많았다. 용돈을 모아 워크맨을 사고, CD플레이어를 구입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으면서 최씨는 휴대폰 2개, 아이패드, KT에서 나온 ‘에그’ 단말기를 주섬주섬 꺼냈다. 에그는 와이파이 신호를 와이브로 신호로 바꿔 주는 장치다.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하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노트북은 레티나 맥북프로를 쓰고 있다. 300만원 가까이 주고 한달 전에 구입한 것이다.
최씨가 갖고 있는 휴대폰의 이력을 알아봤다. 아이폰4는 지난해 9월, 갤럭시S3는 지난 8월 구입했다. 아이폰은 1년 남짓, 갤럭시S3는 구입한 지 한달 정도밖에 안된 셈이다. 지금은 아이폰5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폰5에 대한 정보 검색은 모두 끝냈다. 최씨는 아이폰5에 대한 기대감으로 벌써부터 들떠 있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2에 대한 호기심도 아주 컸다.
“전에 쓰고 있던 정보기술 기기들을 충분히 더 쓸 수 있는데도 처분해 버리고 새것을 삽니다. 특히 휴대폰은 중고 처분 비용에다 추가 비용을 조금만 더 들이면 새로 나온 제품을 쓸 수 있거든요. 한정된 월급에 부담이 없진 않지만 새것을 다른 사람보다 일찍 써 보는 기회 비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씨의 휴대폰은 교체 주기가 1년 정도다. 휴대폰 제조사가 전략적으로 내놓는 플래그십 모델을 기다려 휴대폰을 바꾼다. 또 휴대폰을 2개 사용하면서 좋은 기종이 나오면 그때그때 바꿔 쓴다. 휴대폰 2개를 동시에 쓰면서 1개를 길어야 1년 정도 사용하고 있으니 휴대폰 교체 주기는 사실상 평균 6개월 정도인 셈이다. 더구나 갤럭시S3를 산 지 한달밖에 안됐는데도 아이폰5를 구입한다고 하니 한달 만에 휴대폰을 바꾸는 상황이 된 것이다.
새로운 정보기술 기기에 대한 호기심은 그를 여러 가지 커뮤니티로 이끌었다. 현재 휴대폰 정보 교환 커뮤니티인 클리앙과 애플 기기 사용자 모임인 애플 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다. 두 곳에 가입한 지 10년이 넘었다. 거기서 전자기기에 대한 정보를 아주 빠르게 얻고 있다. 기회가 되면 정보기술 기기 체험담을 공유하는 블로그를 운영할 계획이다.
최씨의 제품 교체 시기는 전자기기 특히, 휴대폰의 경우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더욱 빨라졌다. 2009년 아이폰이 국내에 처음 출시된 뒤 모든 제품을 사용해 봤다. 자칭 애플 마니아라고 부를 정도다.
2005년 애플에서 나온 아이팟 나노를 처음 사용한 그는 제품이 한국에 상륙하기 전에 미국에 직접 주문을 해 제품을 구입했다.
“저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슨 물건이든 소비 주기가 너무 빠른 것 같습니다. 제품 출시 주기가 빨라서 소비 주기가 빠른 것인지, 아니면 소비 주기가 빨라 제품 출시 주기가 빠른 것인지 분명하진 않지만요. 소비가 있기 때문에 새 제품이 그만큼 빨리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최씨는 자신의 소비 행태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빠른 소비의 긍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내수에서 소비가 뒷받침돼야 경기도 좋아지는 것처럼 ‘소비의 선순환 효과’ 같은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최씨는 그러나 새 제품을 자주 바꾼다고 해서 삶의 질이 풍요로워지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새 제품이 나올 때를 기다려 구입하는 이유 가운데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효율이 높아져도 일하는 시간은 줄어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첨단의 새 제품으로 무장해 맡은 일을 빨리 끝내놓고 나머지 시간에 취미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어떨 때는 집에서도 회사 일을 하느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릴 때가 있습니다.”
최씨는 빠른 소비의 굴레에서 좀처럼 헤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물건을 버리거나 새 물건에 대한 호기심을 자제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오랜 습관에서 쉽게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빠른 소비가 가져다준 부작용으로 ‘인간소외’도 경험했다.
“휴대폰이나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PC를 들고 다니면 상대방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화하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결례를 범하는 것 같아 반성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사람 만날 때는 휴대폰을 안 보는 원칙을 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소비의 속도전’에 발을 깊이 담갔다고 생각하는 최씨는 새 제품만을 좇는 자신의 소비 행태를 ‘실속없는 소비’나 ‘과소비’라고 지적했다.
“저 같은 방식의 소비를 올바른 소비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휴대폰을 24개월 약정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피부로 못느끼고 있지만 외상으로 사는 것 아닙니까. 오늘 마침 일반 신용카드와는 다른 체크카드를 만들었습니다. 통장에 잔액이 없으면 결제가 안되는 카드이니 무조건 새 제품을 사고 보자 하는 마음이 줄어들 수 있겠지요.”
정확한 금액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최씨는 새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매달 들어가는 할부금이 월급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한다고 고백했다.
새 제품이 나오면 사고 보는 습관을 바꿀 의향이 있는지를 묻자 최씨는 이렇게 답했다.
“내년 말이면 결혼할 예정인데 서서히 습관을 바꿔야겠지요. 새 제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현명한 소비를 위해 노력해보려 합니다.”
9,한국 휴대폰 교체주기 일본의 절반… 10명 중 7명이 약정 만기 전에 바꿔
연간 구입비용 12조원
‘당신은 휴대폰을 얼마나 자주 바꾸십니까.’
휴대폰은 가전제품과 정보기술(IT) 기기를 통틀어 교체 주기가 가장 짧은 제품으로 꼽힌다. 최형환씨가 활동하는 커뮤니티 클리앙은 최근 휴대폰 교체 주기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다. 클리앙은 휴대폰 등 정보기술 기기에 대한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고 휴대폰을 거래할 수 있는 사이트다.
설문조사 결과 휴대폰 교체 주기는 6개월 미만 6%, 6개월~1년 미만 15%, 1년 이상~2년 미만 46%, 2년 이상~3년 미만 27%, 3년 이상 3%로 나타났다. 휴대폰 약정 주기가 보통 2년인 점을 감안하면 10명 중 7명이 약정 만기 또는 만기 이전에 휴대폰을 바꾸는 셈이다.
일반 가정의 냉장고 교체 주기는 통상 10년으로 알려져 있다. 클리앙 설문 조사를 보면 가정에서 냉장고 1대를 바꿀 때 휴대폰 사용자들은 같은 기간에 5대, 많으면 10대를 바꾸는 것이다.
한국인의 휴대폰 교체 주기는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다. 일본인 교체 주기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통신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를 휴대폰 교체 전쟁의 계절로 예상한다. 지난 9월과 이번달에 아이폰4, 갤럭시S 이용자들의 2년 약정이 끝나 새 제품으로 바꿀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사들은 올 하반기에만 300만대 이상의 휴대폰 교체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유력 단말기 제조사들이 이에 맞춰 갤럭시노트2와 옵티머스G 등 신형 단말기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한국인들의 휴대폰 교체 시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다 보니 국민들의 휴대폰 구입 비용만 연간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이 최근 이동통신 3사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동전화 단말기의 빈번한 교체와 고가의 스마트폰 구입 비용 등으로 인해 가계통신비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권 의원은 “스마트폰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2009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42개월 동안 이동통신 3사 단말기 매출을 전체 가구수로 나눠 가구당 단말기 구입 비용을 산출한 결과 단말기 구입 비용이 연간 12조원이나 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서 휴대폰 단말기 제조사는 주로 80만원 이상의 고가 스마트폰을 출시해 출고가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은 한국의 출고가가 국외 판매가에 비해 평균 20%(아이폰 제외)가량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소비자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보기술 기기들이 판매량이 증가하면 성능은 개선되고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에 비해 스마트폰은 많은 판매량에도 출고가는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권 의원은 “최근 10만원짜리 갤럭시S3 논란에서도 드러났듯, 정보력과 구매 시기 등에 따른 단말기 구입가의 편차가 과도한 상황”이라면서 “단말기 가격 정상화와 올바른 정보 제공으로 합리적인 단말기 소비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간이야기 > 세상살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 파리 모터쇼 소개 (0) | 2012.10.05 |
---|---|
느림의 삶. (0) | 2012.10.05 |
잘 나가던 세종시 아파트·택지 분양 `주춤 (0) | 2012.10.05 |
歸村 최고 인기 지역은 남양주·파주·용인 (0) | 2012.10.04 |
수익률 하락세속에서도 (0) | 2012.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