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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령 없는 '노인천국' 175년 장수기업

by SL. 2012. 10. 19.

퇴직연령 없는 '노인천국' 175년 장수기업

 

세계 농기계 1위 업체 존 디어, 혁신에는 누구보다 젊은 기업

 

존 디어의 공장지대가 있는 미국 아이오와주 워털루까지는 시카고에서 차로 5시간 이상 걸렸다. 코트라(KOTRA)가 시카고에서 개최한 글로벌 기업들과 한국 중소기업간 구매 상담회가 끝난 뒤 참석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존 디어의 공장을 견학할 기회를 얻었다.

존 디어라는 회사는 한국에 생소하다. 올해 미국 경제지 포춘이 선정한 미국 500대 기업 가운데 97위, 글로벌 500대 기업 가운데 190위에 오른 대기업이지만 한국에선 어쩐지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알고 보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기업이 존 디어다. 세계 농기계시장 1위이자 중장비와 디젤엔진에서 세계 1위라는 캐터필러와 경쟁하는 이 회사가 한국 중소기업에서 부품 구매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3년간 연구개발 공동 진행한 뒤에야 부품 공급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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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디어의 로고가 선명하게 보이는 제품
존 디어는 25년간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삼성공조에서만 트랙터에 들어가는 부품을 구매하다 최근 들어 한국의 부품 공급업체를 10여곳 이상으로 늘렸다.

존 디어가 부품 공급업체를 선택하는 기준은 가격만이 아니다. 장기간 연구개발을 함께 하며 기술력과 품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 있는 동반자가 될 수 있는지 잠재력을 중시한다.

코트라가 개최한 구매 상담회에 참석한 중장비 부품회사인 건화의 김병영 부장은 "3년 전부터 존 디어의 중장비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이미 6년 전부터 연구개발을 함께 진행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번 부품을 구매하기 시작하면 관계를 오래 지속하는 것이 존 디어다. 한국 중소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존 디어를 구매선을 개척한 삼성공조의 김동근 해외영업팀 부장은 "올해로 25년째 존 디어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데 진심으로 협력 동반자 관계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구매전략은 경영전략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학 교수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포터 교수는 잰 리브킨 하버드대학 교수와 함께 '포춘' 10월호에 기고한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기업이 해야 하는 일'이란 글에서 공급망을 개선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실천하고 있는 기업들로 중장비업체 캐터필러와 오토바이 업체 할리-데이비슨과 함께 존 디어를 꼽으며 공급업체와 공동 연구개발을 칭찬했다.

◆퇴직연령 없어 능력만 되면 70대에도 근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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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이오와주 워털루에 위치한 트랙터 공장 생산라인
존 디어의 본사는 일리노이주 몰린이란 곳에 있지만 제품공학 센터와 주조공장(파운드리), 동력전달장치 제조공장, 서비스 부품 공장, 트랙터 조립공장, 엔진 제조공장 등 공장지대는 인근 아이오와주 워털루에 자리하고 있다.

처음 방문한 곳은 엔진 제조공장.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한국 방문객을 맞았다. 이 분들은 존 디어에서 50~60년씩 근무하다 퇴직해 자원봉사로 존 디어 방문객들의 공장 견학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다.

50~60년씩 근무한다니 놀라워 안내하는 할아버지에게 "존 디어는 퇴직연령이 몇 살이냐"고 물어봤다. "퇴직연령이란게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일하고 싶을 때까지 일할 수 있냐"고 다시 물었더니 "연금을 받기 위해 대부분은 60대 후반쯤에 퇴직한다"고 말했다. 엔진 제조공장 안에도 50세는 족히 넘어 보이는 남녀 엔지니어들이 공정 라인에 참여해 일을 하고 있었다.

노인들에게도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 존 디어는 지난 2006년에 미국 은퇴자협회(AARP)가 선정한 50대 이상이 근무하기 좋은 50대 직장에 포함되기도 했다. 그 뒤로는 대학교와 사회단체 등에 밀려 50위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직원들에게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기계적으로 퇴직시키는 시스템이 없어 노인들이 일하기 좋은 여건은 여전하다.

노인들이 퇴직을 늦게 해 젊은 직원 충원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엔진 공장 다음으로 찾은 트랙터 공장에서만 매달 25~35명씩 직원들을 뽑고 있다. 퇴직하는 인력을 보충해야 하는데다 농산물 수요가 늘면서 농기계 경기는 호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인 직원들이 많은 존 디어는 회사 자체도 나이가 많다. 미국 대기업 브랜드 중에서는 듀퐁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837년 존 디어라는 대장장이의 대장간에서 시작해 올해로 175년이 됐다.

◆175년 장수기업의 비결은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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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이오아주 워털루에 위치한 트랙터 공장 앞에 전시된 제품
존 디어는 역사는 오래됐지만 혁신에서는 어떤 기업보다도 젊다. 공장을 함께 방문한 실린더 제조업체인 정아유압의 곽창순 사장은 엔진 공장에서 크랭크축에 3차원 바코드가 부착돼 있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곽 사장은 "3차원 바코드에 이 크랭크축의 모든 정보가 저장돼 있다"며 "크랭크축에 문제가 생기면 그 크랭크축의 전 제조공정과 담당자의 이름을 즉각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엔진 공장 다음으로 찾은 트랙터 조립공장에서도 이런 혁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90여개사에서 공급하는 7000여개 부품이 사용되기 때문에 부품 관리가 보통 일이 아니다. 타이어만 하더라도 300개 종류가 넘는다. 존 디어는 이런 다양한 종류의 부품에 시리얼 넘버를 부착해 적기에 올바른 조립 라인에 도착하도록 컴퓨터로 관리하고 있다.

존 디어가 175년간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업환경에서 혁신을 계속해왔기 때문이다. 존 디어는 이러한 혁신 중에서 가장 핵심인 기술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에만 하루에 200만달러, 1년에 7억3000만달러, 우리 돈으로 약 8000억원을 쏟아 붓는다.

존 디어의 '디어(Deere)'는 공교롭게도 사슴을 뜻하는 '디어(Deer)'와 발음이 같다. 이런 이유로 존 디어는 '사슴(디어)만큼 달릴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누구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은, 농기계라는 첨단과는 멀게 느껴지는 제품에서도 혁신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