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25
섬마을 소녀 문지현 양…"외국에서 관광업 종사 어학연수 뒤 꿈 생겼죠"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여름. 한국전력 정책개발부에 근무하던 남호기 부장은 부사장 집무실 앞에서 노란색 메모지를 들고 몇 분째 바라보고 있었다. 남 부장의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 요동치고 있었다. "영흥도 전체를 매입하라". 당시 한국전력 이종훈 부사장에게 건네받은 쪽지였다.
산업화 직후인 1980년대 수도권 전기 사용량은 급증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절반 이상을 수도권에서 썼다. 그때까진 수도권 전기를 충청남도 이남에서 끌어 왔는데, 송전 과정에서 많게는 30% 정도 유실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기사용량 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수도권 인근에 대용량 발전소 건설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북위 37도 이상인 지역에 발전소를 짓는다는 건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더욱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북한과 가까운 곳에 발전소를 지었다가 행여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암묵적인 정책 방향 때문이다.
한국전력 사장을 지낸 이종훈 씨는 "지리적으로 북한과 가까워 유사시 발전소가 쉽게 파괴될 수 있다는 심정적 여론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발전소는 북한에도 중요한 시설이기 때문에 설령 전쟁이 나도 발전소를 파괴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머지않은 미래에 통일이 되었을 때를 고려하면 37도 이상 지역에 발전소를 짓지 못하도록 한 규제도 풀어야 한다고 정부를 설득했다"고 덧붙였다.
끈질긴 설득으로 한국전력이 1995년 정부 승인을 받아내고, 영흥도로 발전소 입지를 선정하자 다음 문제는 주민들의 동의를 받는 일이었다. 석탄발전소가 들어선다는 건 외부와 접촉이 드문 영흥도 사람들로선 청천벽력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영흥도에서 태어나서 자랐다는 심순화 영흥도 부녀회장은 "하루에 한 번 배가 들어오고, 몸이 아프면 병원도 못 갈 정도로 세상과 단절된 곳이었다"며 "발전소가 들어온다는 것에 대해 당시 주민 10명 중 9명은 결사반대했다"고 전했다.
남동발전의 끈질긴 주민 설득 노력으로 결국 영흥화력이 들어섰고 이제 영흥도 주민들에게 영흥화력은 없어서는 안될 '보물'이 됐다.
우선 경제적인 이득이 직접적으로 주민들에게 돌아갔다. 영흥화력 1·2호기를 착공한 1999년 3.3㎡당 3만6030원에 불과했던 땅값이 지난해엔 51만4800원으로 14배가량 급등했다. 일자리 역시 늘어 기존 배를 타거나 농사를 지어 생업을 꾸려가던 영흥도 주민들은 이제 영흥화력에 직접 고용되거나 파생되는 일자리에 종사해 소득 역시 크게 늘었다.
한국전력 사장을 지낸 이종훈 씨는 "지리적으로 북한과 가까워 유사시 발전소가 쉽게 파괴될 수 있다는 심정적 여론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발전소는 북한에도 중요한 시설이기 때문에 설령 전쟁이 나도 발전소를 파괴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머지않은 미래에 통일이 되었을 때를 고려하면 37도 이상 지역에 발전소를 짓지 못하도록 한 규제도 풀어야 한다고 정부를 설득했다"고 덧붙였다.
끈질긴 설득으로 한국전력이 1995년 정부 승인을 받아내고, 영흥도로 발전소 입지를 선정하자 다음 문제는 주민들의 동의를 받는 일이었다. 석탄발전소가 들어선다는 건 외부와 접촉이 드문 영흥도 사람들로선 청천벽력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영흥도에서 태어나서 자랐다는 심순화 영흥도 부녀회장은 "하루에 한 번 배가 들어오고, 몸이 아프면 병원도 못 갈 정도로 세상과 단절된 곳이었다"며 "발전소가 들어온다는 것에 대해 당시 주민 10명 중 9명은 결사반대했다"고 전했다.
남동발전의 끈질긴 주민 설득 노력으로 결국 영흥화력이 들어섰고 이제 영흥도 주민들에게 영흥화력은 없어서는 안될 '보물'이 됐다.
우선 경제적인 이득이 직접적으로 주민들에게 돌아갔다. 영흥화력 1·2호기를 착공한 1999년 3.3㎡당 3만6030원에 불과했던 땅값이 지난해엔 51만4800원으로 14배가량 급등했다. 일자리 역시 늘어 기존 배를 타거나 농사를 지어 생업을 꾸려가던 영흥도 주민들은 이제 영흥화력에 직접 고용되거나 파생되는 일자리에 종사해 소득 역시 크게 늘었다.
이 같은 기적은 영흥도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초등·중학교를 졸업한 뒤 영흥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문지현 양에게도 찾아왔다.
최근 매일경제신문 기자와 만난 문양은 "중학교 3학년 때 남동발전 지원을 받아 필리핀 어학연수를 가면서 외국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며 "이제 내 꿈은 외국에 나가 관광산업에 종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양이 세계를 무대로 일하겠다는 포부를 갖게 된 건 사실 그동안 영흥도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곳엔 고등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토박이라도 어쩔 수 없이 중학교 졸업 후 육지로 나가야 했을 뿐만 아니라 학창시절 외국 땅을 밟아본다는 건 영흥도 주민으로선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흥화력 역시 주민과의 '상생'에 미래가 있다는 판단 아래 여러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주민복지 향상을 위해 노인들이 병원진료나 이미용을 할 수 있는 경로효친카드를 발급해주고 전기요금 보조비, 주민자치센터 운영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 영흥도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학자금을 수여하거나 어학연수를 보내주는 등 교육지원 사업에 197억원가량 지원금을 감당한다. 특히 영흥도에 역사상 처음으로 2012년 고등학교가 세워져 영흥도 주민들이 더 이상 중학교를 졸업하고 육지로 나가 학업을 이어가야 하는 불편함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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