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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야기/세상살이이야기

어디선가 날아와 당신을 찍는다면?

by SL. 2012. 10. 6.

드론의 습격

 

무인 헬기, 민간용으로 확산 - 군사용으로만 쓰이던 드론 작고 가벼워지며 대중화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조종 30만~40만원대 제품도 나와

파파라치 신무기로 악용? - 재난지역·시위 근접 촬영 '드론 저널리즘'으로 진화
美·유럽선 연예인 몰래 찍어 사생활 침해 골칫거리로…

 

 

도심지 고층 빌딩 창가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는 장면을 무선조종 헬기가 건물 밖 공중에서 다가와 촬영하고, 시위나 집회 상황을 무인 헬기에 장착된 카메라가 생중계한다. 머리 위로 웅웅거리는 소형 드론(drone·무인 항공기)이 떠다니며 범죄 현장을 감시한다. 공상과학 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군사용으로만 사용되던 드론이 소형화·경량화되면서 민간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엔 스마트폰으로 간단하게 조종할 수 있는 빈 피자박스 크기와 무게 정도의 무인항공기까지 등장했다. 항공촬영 전문가들이 수천만원대 RC(Radio Control) 항공기로 하던 일을 이제는 일반인들이 30만~40만원대의 멀티콥터(프로펠러가 여러개 달린 헬리콥터형 항공기) 제품을 이용해 손쉽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랑스 패럿사(社)는 'Fly Record Share(날고 녹화하고 공유하라)'라는 모토로 자사의 에어드론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 캠퍼스에서는 앞쪽과 아래쪽을 비추는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 두 대가 캠퍼스 상공을 날고 있었다. 이 학교 신문방송학과 이민규 교수가 패럿사의 에어드론을 이용한 항공촬영 및 보도 시범을 보이는 중이었다. 지상의 조종자는 10m 높이에서 뚝 떨어져도 부서지지 않는 가벼운 플라스틱 재질에 날개 4개가 달린 이 드론을 통해 카메라에 잡히는 영상을 와이파이로 연결된 아이패드에서 바로 볼 수 있었다. 아이패드는 영상을 확인하는 모니터인 동시에 조종기이기도 했다. 이 교수가 아이패드를 옆으로 기울이자 드론 역시 같은 각도로 기울어지며 방향을 바꿨다. 촬영이 끝나면 즉석에서 영상을 유튜브나 홈페이지에 올릴 수도 있었다. 이 교수는 "앞으로 드론을 이용한 저널리즘이 새로운 보도의 한 영역으로 부상할 것"이라며 "1인 미디어나 기존 신문·방송사에서 도입한다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각도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여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이민규 교수가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 캠퍼스에서

내장 HD카메라를 장착한 에어드론을 조작하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카메라가 찍은 영상은 실시간으로 아이패드에 전송되고 조종자는 이 영상을 보며 드론을 조종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보도 기법을 '드론 저널리즘'이란 새로운 용어로 소개하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지난해 폴란드의 노동자 시위 현장을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이 새로운 저널리즘적 가치를 갖는 것으로 소개됐다. 드론은 시위대의 머리 위로 날아가 시위대의 이동 상황을 보여주고, 다시 자리를 옮겨 진압하는 경찰 쪽의 움직임을 보여줬다. 기존 방송 카메라는 잡지 못하는 각도에서 잡은 역동적인 현장 영상에 사람들은 매료됐다. 촬영자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기존 미디어 중에는 '더데일리'와 ABC방송이 드론을 재난 지역 취재 등에 도입했다.

국내에도 항공촬영을 즐기는 마니아층이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 동호회에는 헬기를 이용해 찍은 영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무거운 DSLR 카메라를 장착할 수 있는 수백만원대의 고출력 무선조종 헬기를 취미로 구입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무선조종 헬기 전문 판매업체 '헬셀' 유창범 차장은 "3년 전만 해도 항공촬영용 무인 헬기는 날개 회전 반경이 2m 정도로 큰 금속 재질 항공기여서 사람들의 머리 위로 띄우거나 근접 촬영이 불가능했지만, 1~2년 전부터 등장한 보급형 드론은 크기가 작고 플라스틱 재질이어서 훨씬 안전하다"며 "국내에선 에어드론 1500대, 멀티콥터 3000대 정도가 보급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중의 손에 들어간 드론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는 새로운 골칫거리가 될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드론의 가치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파파라치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접근할 수 없는 할리우드 별장 지대나 고급 휴양지 상공으로 드론을 날려보내 패리스 힐튼 등 유명인들의 뒤를 쫓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도심에 카메라를 장착한 무선조종 헬기들이 출몰할 전망이지만,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법은 아직 없다. 국내에서는 고도 100m를 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무선 항공기를 날리는 데 제약이 없다고 한다. 미국은 오는 2015년까지 관련 법규를 제정할 방침이다. 이민규 교수는 "기술의 발달에 따라 드론의 크기는 더욱 소형화되고 촬영하는 영상의 해상도는 점점 높아지게 될 것"이라며 "드론에 의한 사생활 침해와 각종 안전 사고를 막기 위한 논의도 함께 시작할 단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