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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규제완화, 서민에겐 '조감도 속 아파트'

by SL. 2014. 7. 12.

2014.06.24

 

박근혜정부 2기 경제팀을 이끌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대표적 부동산 규제로 꼽히는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완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업계에서는 침체된 부동산시장의 '대못'이 빠진다며 환영하는 반면, 시민단체 등 일각에서는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부동산가격이 상승해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민 주거안정을 강조해온 정부가 꺼내든 히든카드에 정작 서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봤다.

 

 

 

◆내집 마련 마지막 기회… "한번 잡아봐?"

"일단 내 집을 마련할 수 있게 해준다니까 좋긴 하죠. 백범 김구 선생님의 소원이 '통일'이었다죠. 저 같은 서민들의 평생소원은 바로 '내 집 마련'입니다."

경기도 부천 A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부 김모씨(39)는 규제완화 소식에 화색을 띤다. 석달 후면 전세계약이 만료되는데 집주인이 전셋값을 얼마나 올려달라고 할지 벌써부터 걱정하던 차였다. 월세로 살아볼까도 했지만 현재와 비슷한 조건의 인근 아파트를 알아보니 월셋값은 100만원을 웃돌았고 결국 포기했다.

장기적인 부동산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김씨처럼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서민들은 여전히 많다. 지난 6월17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부동산시장 관련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성인남녀 1006명 중 51.6%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하더라도 내 집 마련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2월 조사결과(43.1%)보다 더 늘어난 수치다. 반면 하우스푸어가 되면서까지 내 집 마련을 하지는 않겠다는 의견은 56.9%에서 48.4%로 감소했다. 여기에는 주택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에 정부가 꺼내든 부동산규제 완화카드는 부동산거래량 증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LTV와 DTI 규제를 완화하면 은행에서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게 돼 집을 사기 쉬워질 것이고, 이로 인해 부동산거래량이 증가하면 집값도 동반상승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물론 어느 정도 현실성은 있어 보인다. LTV와 DTI의 규제를 완화하면 서민들의 주택구입 능력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정경진 건국대 부동산·도시연구원 연구원의 '서민주택금융제도를 통한 주택지불능력에 관한 연구' 논문이 대표적이다.

이 논문은 지난 2012년 정부의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대상(1만9700가구)을 소득에 따라 1∼10분위로 나누고 이 가운데 수도권에 거주하는 무주택 가구 3674가구를 표본으로 삼았다. 논문에 따르면 DTI를 현재 40%로 설정하고 70%까지 점차 완화하면 소득 1∼5분위의 서민·중산층의 주택구입능력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1분위에서 집 살 능력을 갖춘 가구는 전체 가구 수의 9.5%에서 14.6%로 늘었고 2분위는 7.2%에서 11.2%로, 3분위는 12.8%에서 19.3%, 4분위는 15.4%에서 28.2%, 5분위는 41.7%에서 42.4%로 모두 증가했다.

하지만 서민들의 걱정은 정작 따로 있다. 과연 집값이 상승할 수 있을지 여부다. 올해 결혼을 계획 중인 유동민씨(가명·32)는 "집값이 오른다는 확신이 있으면 대출을 좀 더 받아 신혼집을 마련하고 싶은데 확신이 서지 않는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유씨는 규제완화에 맞춰 집을 샀다가 추후 집값이 떨어지면 여지없이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연구위원은 이와 관련해 "LTV와 DTI 규제가 완화되면 유효 수요층이 늘어나는 만큼 얼어붙은 부동산시장에 활기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투자자보다는 실수요자가 움직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거래량이 증가하더라도 가격은 박스권에서 머물 것"이라고 조언했다.
 
◆내 집 마련하고 '늘어난 빚'은 어쩌나

"DTI·LTV? 결국 대출 받아서 집 사라는 거잖아요. 글쎄요. 그렇게 와 닿지 않네요. 지금도 갚아야 할 빚이 산더미에요. 여기서 더 빌리라니요? 어차피 뒷감당은 본인들의 몫일 텐데 너무 무책임한 정책 아닌가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거주하는 박모씨)

규제완화 소식에 울분을 토하는 박씨(32)다. 이는 결코 박씨 만의 주장이 아니다. 전·월세로 사는 서민들에게 빚내서 집을 사라는 것 아니냐는 게 주변의 공통된 반응이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이미 위험수위에 올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 가계부채 규모는 1025조8000억원에 달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가구소득은 연평균 4.6%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가계부채는 연평균 8.4%나 늘었다. 부채증가율이 소득증가율의 2배 가까이 되는 셈이다.

DTI와 LTV 규제를 완화한다 해도 서민들은 집을 살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전문가들은 늘어난 부채를 감당할 수 있도록 가계소득 증대를 통한 내수활성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수현 새정치민주연합(충남 공주) 의원은 가계부채를 확대하고 부동산가격을 상승시켜 경기를 부양한다는 판단은 그저 '반짝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서민들의 호주머니 돈으로 경기를 살리려는 '빚내서 집사라 2탄'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힐난했다.

일각에서는 DTI와 LTV의 규제가 풀리면 자칫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표현도 나왔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DTI와 LTV가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와 연결돼 있어서다.

판도라의 상자에 손을 대려는 박근혜정부의 2기 경제팀. 과연 그들이 내건 정책이 서민을 웃게 할지 울게 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