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공화국을 고발한다
· 내수침체, 빈부격차...부동산거품이 만드는 해악들
· 대통령은 '투기와의 전쟁', 정부부처는 투기 방조?
· 정부 무지가 판교를 집값 급등의 불쏘시개로 만들어
· 재경부 3급 이상 관료 90% 부동산 부촌에 살아
· 아파트 값 빠지면 내수침체? 사실은 정반대
· 선진국 10분의 1인 보유세 10% 올린다고 아우성?
· 정부, 건설경기 부양에 주거 안정은 뒷전
· 국내 '공공임대주택'은 공공임대주택이 아니다?
· 서민 위한다는 임대주택, 건설업체와 집부자에만 혜택
· "판교 공영개발하면 1석5조 효과"
· 건교부 공영개발반대, 설득력 없는 6가지 이유
“건교부 집값 잡는 해법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고, 알고도 안 한다. 집 없는 서민들 위한다는 말은 단지 사탕발림일 뿐이다. 30년 부지런히 일해서 건설업체들이 터무니 없이 올려놓은 아파트 살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어놨다. 평생 죽으라고 일해서 대기업 아파트 건설업자들만 배불리는 구조에서 못 빠져나가게 만들어 놓았다. 이것이 형태만 바뀌었지, 조선시대의 부패한 관료아 양반들이 사회하층민 노동력 착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미디어다음 ‘부동산공화국’ 토론방에 4일 올라온 글이다. 다음이름 ‘로맨스조로’님이 쓴 이 글은 상당히 과격한 표현이 포함돼 있는데도 모두 7명의 추천을 받는 등 호응을 얻었다. 또 이 글에는 “이렇게 가다간 10년 안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인간의 기본권인 (의식주 가운데) 주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희망을 잃은 사람은 그 무서운 역사를 되풀이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토지정의를 확립하라”는 댓글이 붙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국민들은 심한 박탈감에 사로잡혀 땅값과 집값의 안정을 바라는 데도 집값은 왜 요지부동일까. 혹자는 흔히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자산 가격의 하방 경직성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 같은 하방경직성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현상들이 너무 많다. 정부는 끊임없이 건설경기 부양론을 통해 부동산 가격 유지 신호를 보내는데다 서울 강남과 분당 등은 올들어 호가가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집값에 거품이 잔뜩 끼어있다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인식인데도 매매 없는 호가 급등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한 부동산컨설팀 업체 직원 남모씨(42)는 “지난해는 침체였지만 올초부터 각종 건설경기부양 신호가 이어지면서 땅을 중심으로 다시 거래가 활기를 찾고 있다”며 “최근 몇 년처럼 부동산 값이 급등하지는 않겠지만 정부의 태도를 보면 부동산이 금방 떨어질 것 같지도 않다는 게 이쪽 업계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집값 상승이 내수침체와 빈부격차 확대의 주범임이 명확해졌는데도 정부가 집값 거품을 빼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부동산업계의 인식인 셈이다.
학계 "한국은 일본을 능가하는 토건국가"
불필요한 건설공사 지속적으로 만들어내
새만금사업 방조제 보강공사 현장[사진제공=연합뉴스]
이 때문에 앞에 인용한 네티즌의 글처럼 많은 이들은 정부가 집값을 못 떨어트리는 게 아니라 안 떨어트리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부동산 정책의 주무 부처인 건교부의 강동석 전 장관은 지속적으로 집값을 상향 안정화시킨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던져왔다. 건교부만이 아니라 건설산업연구원 등 건설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연구기관은 집값 거품이 끼지 않았다며 집값이 추가 상승할 여지가 있음을 시사하는 보고서를 내놓는다. 언론은 ‘정부의 규제책이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며 규제책을 무장해제하라는 내용을 보도한다.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인데다 집 부자가 오히려 세금을 적게 내는 보유세 실태를 보도하기보다는 정부의 생색내기식 보유세 강화 정책에도 금방 재산세 파동이 날 것처럼 보도해왔다. 보유세가 10만원 오르는 사이 집값이 몇 억원이나 올랐다는 사실은 쉽게 전면에서 사라진다.
이처럼 잠깐만 훑어봐도 한국은 집값 하락을 원하지 않는 강한 기득권 구조가 형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기득권 구조를 학계에서는 ‘토건국가 현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연간지 ‘민주사회와 정책연구’는 올초 소장학자들의 토론을 거쳐 ‘한국, 또 다른 토건국가’라는 제목의 특집을 내고 한국의 각종 개발현상을 토건국가 현상의 맥락에서 분석하기도 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가 한 인터뷰에서 설명한 내용을 통해 ‘토건국가’의 개념을 파악해보자. “개번 맥코멕이라는 사람이 쓴 ‘일본 허울뿐인 풍요’라는 책이 있다. 거기서 현대 일본을 분석하면서 ‘토건국가’라는 개념을 썼는데, 토건 업체, 지방 토호, 국회의원, 정부가 한 통속으로 묶여서 개발사업을 계속 벌이면서 돈을 벌고, 그런 식으로 굴러가는 사회 시스템을 가리킨다. 땅값 상승, 부동산 투기에 대한 기대심리로 일반인들도 이것을 방관하거나 여기에 편승한다.”
학자들은 국내의 경우 일본보다 토건국가적 성향이 더 강하다고 지적한다. OECD국가 중 토건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5%로 가장 높다는 점이 이를 웅변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콘크리트 구조물 덩어리인 아파트가 도시 주택의 60~70%를 차지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는 점도 토건국가의 사례로 꼽힌다.
토건국가적 현상은 수십년동안 형성돼온 구조다. 학자들은 박정희 개발독재시절을 지탱한 것은 군부 독재와 함께 토공, 주공, 수자원공사, 농업기반공사 등 각종 개발공사들이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이들 개발공사들을 축으로 건설업계와 강한 유착구조를 형성해 각종 개발사업을 통해 취약한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시대가 더 이상 개발주의식 외형적 성장 방식이 통하는 시대가 아닌데도 개발주의 시대의 낡은 구조가 온존해 한국의 선진사회 도약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토건국가를 지탱하는 구조는 끊임없이 불필요한 토건 사업, 심지어는 만들수록 해악만 끼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 대표적인 사례가 새만금개발사업이다. 새만금개발사업은 추진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의심됐고,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쌀 시장 개방이 확정됨으로써 경제적 타당성이 없음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결론난 사항. 심지어 유종근 전 전북지사의 보좌진 가운데 한 사람도 “새만금사업은 정치적 효과 때문이지 사실 경제적 타당성은 전혀 없는 사업”이라고 기자에게 털어놓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지자체는 ‘낙후된 전북 개발’이라는 구호 아래 지금까지 계속 이를 끌고 왔다. 또한 개발공사 가운데 하나인 농업기반공사는 ‘수십년간 공사를 지탱할 사업’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으며 사업 지속을 요구하고 있고, 관련 주무부처인 농림부도 이를 옹호하고 있다. 언론은 이 같은 새만금개발사업의 중지를 요구하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국책사업의 지속 여부를 국민적 관점에서 따지기보다는 오히려 ‘시민단체가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는다’고 선동한다.
예산 낭비, 환경 파괴, 인적 투자 위축...토건국가 폐해 엄청나
첨단산업 구조로 바뀌었는데 예산은 여전히 건설 통한 경기부양 치중
속리산 문장대온천 개발 현장. 개발주의 논리 아래 시작됐다가 10년째 중단된 이 공사는 예산낭비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환경 파괴라는 폐해를 낳았다.[사진제공=녹색연합]
문제는 이 같은 불필요한 토목공사가 엄청난 사회적 낭비와 폐해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또 다시 새만금상의 예를 들면, 최소 수조원의 국민 혈세가 불필요한 사업에 낭비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새만금 사업 현장 어민들의 생계 터전이 파괴된다. 지역 어민들 속에서 살아 있던 지역 문화도 파괴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 과정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수명을 다한 농업기반공사와 공사를 맡은 건설업체, 일부 지역 토호 및 지역 정치인들뿐이다. 국민의 혈세와 소중한 자연자원을 소수의 토건국가 세력을 위해 상납하는 꼴인 셈이다.
이처럼 불필요하거나 오히려 해악을 주는 토건사업들을 우리는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문을 닫으면서도 한 쪽에서는 계속 지방공항 공사가 진행된다. 수천억원을 들인 고속철 광명역사는 거대한 철골 구조물로 전락했고, 웬만한 규모의 도시에는 모두 들어선 종합운동장은 이용율이 10%도 안 된다. 각 지역의 문예회관은 어린이들의 학예회 공간으로 변했다. 1인당 도로포장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됐어도 여전히 개발의 명분 아래 한적한 농로까지 콘크리트 도로로 포장된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건설업체들이 결코 손해볼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진 민자 SOC사업 등의 예산낭비 사례 등 공공건설사업의 예산낭비를 지적한 감사원 보고서는 계속 줄을 잇고 있다.
이런 토건사업들에 들인 예산은 단순히 낭비되는 것만이 아니다. 국가의 한정된 자원을 불필요한 곳에 과도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제대로 예산이 쓰여야 할 곳에 돈이 가지 못해 국가 전체의 성장잠재력과 복지 인프라를 갉아먹는다. 각 지자체들이 문예회관이나 각종 공연장, 조형물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올리는 데는 매년 수백억, 심지어 수천억원을 예사로 쓰면서도 그 공간을 채울 프로그램 진행자를 채용하고 교육하는 데 쓰거나 지역 예술문화단체를 지원하는 데 쓰는 예산은 수억원도 안 되는 경우들이 많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미술가는 “매년 지역 미술인들이 함께 전시회를 하기 위해 지원을 부탁해도 거절당하기 일쑤”라며 “매년 문화 인프라를 만든다며 콘크리트 건물 올리는 데 쓰이는 예산의 100분의 1만 인적 자원에 써도 우리의 문화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토건국가 현상은 전체 경제 구조를 봐도 얼마나 국가적 낭비인지 명확하다. 지난 10여년동안 한국 경제는 전통 산업에서 IT산업 등 첨단산업 위주로 구조가 급격히 재편됐다. 첨단산업은 전통산업과 달리 연구개발과 고급 기술인력 양성 중심으로 예산이 편성돼야 하는 산업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여전히 ‘건설경기 부양’을 명목으로 ‘한국판 뉴딜정책’을 펴겠다고 한다. 산업구조는 변했는데 예산 편성은 여전히 건설 등 전통산업 중심으로 편성해 단기적인 경기 자극에 매달려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국가 자원 배분이 우리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있음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경제정책의 수장이 경기 활성화를 위한 정책의 하나로 골프장을 무더기로 인허가 하겠다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올초 숨진 고 임길진 박사(전 한국개발연구원 원장)는 “골프장 건설을 경제 정책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정책”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토건국가, 민간영역에서는 아파트값 거품으로 수백조원 사회적 부담 초래
한경변 아파트 단지. 도시 주택의 60~70%가 아파트로 가득 채워진 나라는 세계에서 유례가 드물다. 미디어다음 김준진기자
토건국가적 현상은 공공사업 영역뿐만 아니라 민간영역에서도 엄청난 자원낭비와 거품을 만들고 있다. 이게 바로 2001년부터 일어난 부동산 투기 현상이다. 경실련 김헌동 국책사업감시단장 겸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 동안 건설업체들은 대형국책사업이나 공공건설사업의 입찰에서 교묘한 방법을 동원해 배를 불려왔다. 국내의 공공발주 공사 규모는 매년 약 50조원 규모이다. 이들은 예산편성 때부터 예정가격을 30~40% 부풀린 다음 대형건설업자간의 담합을 통해 수십 년간 매년 10~15조원 규모의 불로소득을 챙기는 제도를 유지했다. 그것도 모자라 정부는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30%의 선금을 지급해 기업들이 이익금을 먼저 챙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 같은 공공분야의 관행은 민간 건설부문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99년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 조치 이후 지난 5년간 아파트 분양가는 2배 이상, 주택과 부동산가격은 500조원 가량 상승했다. 계획도 철학도 없이 이어져온 건설 및 부동산 정책은 아파트를 짓기도 전에 팔 수 있게 하는 선분양제도 등 공급자에게 특혜를 주는 제도로 가득하다. 아파트 값 폭등으로 국민들은 아우성을 쳐도 공급자인 건설업체들의 폭리를 보장해주는 제도는 바뀔 줄을 모른다. 정부와 공기업은 서민들의 농지와 택지를 값싸게 사들이거나 강제로 수용해 조성된 택지를 건설업자와 부동산개발업자들에게 값싸게 매각한다. 이들 건설업자들은 싼값에 사들인 택지에 ‘허수아비 감리’를 세워놓고 거품이 잔뜩 낀 분양가로 판매하면서도 20~30년 후에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하는 부실 주택을 만들기도 전에 소비자에게 판다. 이 과정에 동원되는 투기꾼들은 주변가격까지도 덩달아 뛰게 만들어 전 국토를 투기장으로 만든다. 온 국민을 투기장으로 끌어들이는 제도를 고치려고도 하지 않는 나라. 70년대 중반부터 약 30년간 이런 식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자들이 부패와 타성의 늪에 빠져있는 것인가.” 오랫동안 건설업계에 몸 담은 뒤 경실련 활동을 통해 한국 건설산업과 국가 자원 낭비 구조를 고민해온 김헌동 본부장의 절규에 가까운 설명이다. 그의 계산법에 따르면 매년 공공 발주 예산 가운데 10조원 이상이 낭비되고 최근 5년동안 부동산 거품을 통해 국민 전체가 수백조원의 부담을 지게 됐다는 것. 김태동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도 “부동산 거품 때문에 한국 경제는 성장기 청소년이 장정이 져야 할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김헌동 본부장은 이 같은 토건국가를 유지하는 기득권 구조를 ‘건설 5각동맹’으로 표현한다. 김본부장의 주장에 따르면 건설5각동맹은 △각종 음성적 로비와 뇌물로 특혜구조에 안주하는 건설업체 및 이들 사업자 단체 △건설업계의 로비를 받고 불필요한 각종 건설사업을 통해 개발주의식 성장 패러다임을 지속하려는 건교부 등 정부부처 △건설업계의 로비를 받고 각종 개발편의적인 법과 제도를 만드는 정치권 △건설업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각종 연구소 및 건설업계와 정부부처의 각종 용역을 받는 상당수 학자 △부동산 광고를 매개로 지속적으로 ‘부동산 세일즈 기사’를 싣는 신문을 중심으로 하는 상당수 언론 등이다. 김 본부장은 이 같은 5각 구도에서 윤활유와 접착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불투명한 건설산업 구조에서 형성되는 비자금이라고 주장한다. 김 본부장은 “각종 부패 사건의 절반 이상이 바로 건설사업과 연관돼 있어 사실상 건설산업이 바로 부패와 예산낭비의 핵심고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강고한 건설 5각구조가 바로 일반 국민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또는 정반대로 기득권 구조를 유지하는 틀”이라고 주장했다. 건설 5각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건설부패가 전체 부패의 절반 넘어"
각종 부패 사건, 적나라한 정-관-건 유착구조 드러내
△건설업계-정치권-관료들의 유착=건설업체와 정치권, 관료들의 커넥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이미 얼마든지 드러나 있다. 각종 부정부패 사건의 절반 이상이 건설관련 비리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서 일어난 사건을 열거하는 것만도 벅찰 지경이다.
지난해 검찰의 불법대선자금 수사에서도 밝혀졌지만 현대건설, 대우건설, 한화건설 등 내로라하는 대형 건설업체들은 비자금을 조성해 각종 명목으로 정치권에 제공해왔다. 역대 정권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정치권과 건설회사의 뿌리깊은 정경유착 구조 실상이 전혀 변하지 않았음이 드러난 것. 건설업체의 한 전직 간부는 “수백억, 수천억원대의 공사를 따내기 위해 수억~수십억원 정도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비용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례로 지난 대선자금 수사에서 (주)부영의 이중근 회장이 27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이 가운데 일부를 정치권 로비자금으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또 굿모닝시티 사업 인허가와 관련, 집권여당의 실세였던 정대철 의원과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또한 최근에는 상수원 보호구역과 관련된 로비를 풀어달라는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김용규 경기도 광주시장(5억원)과 지역 박혁규 한나라당 의원(8억원)이 동시에 구속되기도 했다. 이들을 상대로 로비했던 건설업체 사장은 인허가 관련 로비자금으로 무려 60억원을 사용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하기도 했다. 또 열린우리당 제 3정조위원장을 지낸 안병엽 전 의원과 국회 부의장을 지낸 김태식 전 민주당 의원은 한신공영으로부터 수천만원대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밖에도 경찰청 특수수사팀의 한 경찰이 현대건설 임원 한 사람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군 부대 공사와 관련, 로비 리스트가 나왔다. 또 한 국회의원은 국감현장에서 해당 건설업체의 비리를 언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억대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났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주택공사와 수자원공사의 사장들이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특히 지자체 공무원과 지역 건설업체의 유착구조는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실제로 현 정부 들어 자치단체장 가운데 박태영 전 전남도지사, 안상영 전 부산시장 등이 건설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었다. 안상수 인천시장의 경우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기는 했으나 주공 자회사인 한양을 인수했던 보성건설 사장으로부터 수억원대의 ‘굴비상자’를 전달받았다가 나중에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
실제로 노조의 위상 강화를 위해 공직부패 추장운동을 벌이고 있는 전국공무원노조측도 지자체의 건설 관련 부패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집중적인 모니터를 벌이고 있다. 수도권의 한 재건축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이모씨(41)의 사례도 지자체 공무원과 건설업체의 유착관계를 짐작케 한다. 그는 “최근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철근을 적게 써 아파트 1층 천정에 금이 가는 등 부실시공 정도가 심해 관련 공무원에게 신고를 해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며 “오히려 나중에는 ‘내가 건설사에 불만 있는 사람 아니냐’고 다그칠 정도”라고 말했다. 또 누구보다 건설업계의 현실을 잘 아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청계천 복원공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건설 관련 담당 공무원을 전면 물갈이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업계에서는 검찰수사에 걸린 기업은 ‘재수 없는 소수’일 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건설업계 대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다고 보고 있을 정도로 건설업계의 부패관행은 일상화돼 있다. 김헌동 본부장은 “현재 구조는 기술과 실력과는 상관없이 로비 잘 하는 업체가 엄청난 이익을 챙기게 돼 있다”며 “이 때문에 건설업체들이 비자금을 통해 마련한 뇌물은 정치권과 관료들과의 유착관계를 형성하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법정관리 대상이 된 한신공영과 남광토건 등이 업계에서 수백억~수천억원의 프리미엄이 붙는 이유는 지금 같은 특혜구조에서는 사주가 비자금만 조성하지 않는다면 매년 엄청난 이익이 쌓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의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상임위가 건교위인 것도 ‘건설 5각 동맹’과 무관하지 않다. 16대 때 건교위를 담당한 한 국회의원의 보좌관 장모씨는 “건교위 의원은 도로, 철도, 공항 등 건교부가 집행하는 각종 국책사업을 우선적으로 배정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건교부 정책에 대한 침묵과 타협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건교위에 있으면 각종 건설업계의 로비가 끊이지 않는다”며 “각종 건설업체들의 로비로 구속되는 인물들이 많았던 것도 이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관료들, 퇴임 후 자리와 부동산 재테크로 박봉 보상
주변의 부동산 땅투기 의혹으로 물러난 강동석 전 건교부장관 후임으로 추병직 장관이 취임했다. 그는 집값 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건설5각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사진제공=연합뉴스]
△관료들의 ‘퇴임 후 자리’와 ‘부동산 재테크’=건교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부처 관료들도 국민 전체보다는 건설업계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건교부는 판교 공영개발 방안과 관련, 이 방안이 서민 주거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민간 건설시장이 위축된다는 논리로 이를 반대하고 있다. 스스로 국민 주거 안정보다는 건설업계 보호를 우선 목표라고 공언하고 있는 셈이다.
관료들이 국민보다는 건설업계의 이해를 더 강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지난해말 최저가낙찰제 확대 시행 유보 결정이다. 재경부는 지난해 말 올해 100억원대 이상 공공공사에 도입키로 했던 최저가낙찰제의 시행을 유보하는 결정을 내렸다. 최저가낙찰제는 일정한 조건 아래 가장 낮은 입찰가를 써내는 건설업체에게 공공공사를 발주하는 입찰제도로 건설업체간 경쟁을 유도하고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제도. 이 제도는 사실상 운에 의한 ‘로또식 운찰제’로 바뀐 현행 적격심사제를 대체할 수 있는 글로벌스탠다드로 인식되고 있으며 국내 민간업계에서는 수십년동안 이 방식을 사용해왔다. 경실련은 이 제도가 100억원대 이상 공공공사에 도입될 경우 예산을 최소 5조원 이상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이처럼 국가 재정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제도가 대통령과 주변 경제 참모들도 잘 모르는 사이에 유예된 것이다. 특히 이 같은 최저가낙찰제 확대 시행 유보 결정은 지난해 10월 전경련과 9개 건설관련 단체의 시행 연기 요청이 나온 뒤 이뤄진 것이었다. 이헌재 전 재경장관은 이들 단체의 건의 이후 “최저가낙찰제 확대 시행 유보를 검토해보겠다”고 했고 두 달 만에 이를 공식화한 것이다. 사실상 현행 적격심사제를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해 국민 예산으로 건설업계의 배를 불리는 일을 지속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김헌동 본부장은 “관료들은 국민들의 제도 개선 요청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도 건설업계 등의 요구에는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한다”고 꼬집었다.
물론 이 같은 관료들의 판단이 자신들의 정책 소신에 따른 것일 수도 있지만 이들의 이해관계가 건설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구조가 형성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과 건설업계의 커넥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건교부 관리들의 퇴직 후 행로다. 미디어다음이 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말까지 건교부 출신 관료들의 퇴직 후 전직 현황을 조사해본 결과 상당수가 각종 건설사업자 단체의 간부나 관련 공기업의 임원 등으로 이동했다.
H 전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은 건설공제조합 전무로, C 국립지리원 4급은 대한건설협회 기술본부장으로, 또 다른 C 건교부 중앙도시계획위 지원팀장은 대한전문건설협회 산업정책본부장으로 옮겨갔다. 또 K 건교부 부산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은 대한주택선설협회 부회장, L 국토지리정보원 2급은 대한측량협회 부회장, K 건교부 차관보는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 건교부 신공항건설기획단장은 전문건설공제조합 전무로 이동했다. 또 K 건교부 포항국도유지소장은 한국건설기술인협회 사업본부장으로, S 전 철도청장은 한국도로공사 사장으로, S 건교부 3급은 한국주택협회 전무로 이동했다.
이처럼 건교부 관료들이 퇴직 후 산하 공기업이나 건설업자 단체의 주요 임원으로 이동하는 것은 수십년간 굳어져온 구조적 문제다. 건설관료 및 정치인-산하 건설 관련 공기업-건설업자 단체 간에 굳건한 인적 커넥션이 형성되는 틀이기도 하다.
김헌동 본부장은 “공기업의 주요 임원들과 건설업자 단체 등의 주요 임원은 건교부와 여권 정치권 인사로 구성된다”며 “서로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 형성과정에서 건설 공기업과 건설업체들에게 유리한 법과 제도를 만들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관료들은 민간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연봉을 부동산 재테크를 통해 보충하려는 경제적 유인에 노출돼 있기도 하다. 실제로 미디어다음이 최근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건교부와 함께 건설 및 부동산 관련 정책의 핵심 부처인 재경부 1급 이상 고위 관료들의 88% 가량이 서울 강남과 분당신도시 등 부동산 부촌에 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2001년부터 지금 사는 곳에서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면 모두 수억원대의 자산가치가 늘어났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김 본부장은 “이들 관료들이 몇 년 동안 수억원을 집값 상승으로 쉽게 벌었는데 이들이 집값을 떨어트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하겠느냐”며 “최근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이나 강동석 전 건교부장관의 사례에서 보듯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고 비판했다.
2001년 이후 부동산 광고, 신문 광고 매출 기여도 1위
"대형건설업체 담당 기자 관리팀 별도로 둬"
△부동산 광고, 신문 광고 매출의 3분의 1=언론도 건설 5각 동맹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다. 부동산 광고는 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 IT광고, 학습지 광고, 유통(백화점) 광고 등을 제치고 신문 광고 매출 기여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 신문사 광고국 직원은 “부동산 붐이 인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부동산 광고가 신문사 매출의 35% 전후를 차지해 사실상 부동산 광고가 신문사들을 먹여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아파트 동시분양 정보나 가격대 등의 정보는 고지성이나 시의성 측면에서 효과 측면에서 신문이 가장 적절한 매체로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각 신문사들은 부동산 광고을 유치하기 위해 여름 휴가철 등 비수기를 빼고는 매월 부동산 광고 특집면을 별도로 제작한다. 부동산광고가 신문 광고매출의 3분의 1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은 신문들이 부동산 투기 붐에 편승할 수밖에 없는 강한 유인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대표적인 반시장, 반소비자적인 제도로 꼽히는 선분양제 대신 후분양제를 신문들이 달가워할 수 없는 사정도 부동산 광고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광고국 직원은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건설업체 스스로의 자금력으로 70%이상 시공한 뒤 광고를 할 수 있게 돼 있어 광고 물량이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신문사 입장에서는 최대한 도입을 막고 싶은 제도가 후분양제”라고 말했다.
전직 건설업체 홍보직원의 증언을 통해서도 언론과 건설업체와의 유착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한다. “부동산 가격이 전반적으로 올라갈수록 건설업체는 분양가를 높인다. 부동산 값이 뛸수록 분양가를 높이는데도 유리하니 부동산 값을 띄우기 위한 여론 조작도 한다. 고도의 전략인데 업체가 땅을 산 지역에 대해 ‘유망개발정보’ 등의 형식으로 언론, 특히 신문에서 보도되게 한다. 건교부의 중장기 전략을 분석하는 자료를 내고 화성 동탄과 행정수도 부지 등이 터지면 얼마나 오르고 식의 정보를 계속 제공하는 거다. 이렇게 언론과의 유착관계를 만든다. 홍보팀에서 출입기자들을 만나 접대하면서 애로 있다, 도와달라고 호소하거나, 현금을 쥐어주면서 어떤 기사 나갈 때 우리 회사 부각시켜달라 이런 식으로 부탁도 한다. 물론 부탁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접대가 통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특히 대형업체들은 홍보팀을 통해 관련 기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분양가를 산정할 때 광고비를 간접비의 1~2퍼센트 정도로 산정한다. 광고비는 써도 되고 안 써도 된다. 특히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안 써도 될 텐데 반드시 광고를 내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안 해도 분양되는데 웬만하면 전면광고한다. 분양 끝난 뒤에도 사례광고를 한다. 메이저 신문은 기본이고 경제신문에도 대부분 광고한다. 언론에는 괜히 밉보이면 안 되니 광고하는 거다. 공사 프로젝트 관련해서 주위 민원도 있고 산업재해도 발생하고 회사 비리도 드러날 수 있으니 급할 때를 대비해 광고를 통해 언론사와 미리 유착 관계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건설이나 부동산을 담당하는 개별 기자들도 강한 유착의 자장권 안에 들어있다. 건설정책이나 부동산 정책과 관련된 기사에서 인용되는 ‘전문가’들 대부분이 건설산업연구원 등 건설업계의 시각을 대변하거나 부동산 컨설팅 업체 관계자라는 점에서도 이 사실은 뚜렷이 드러난다. 한 방송사 기자는 “출입처를 중심으로 한 취재 시스템 아래서는 출입처의 시각이나 입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기자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대부분 기자들이 출입처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쏟아낼 정도로 독립적이지만 건교부는 여전히 출입처와의 유착관계가 심한 곳 가운데 하나로 기자들 사이에서도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건교부 출입기자 등을 대상으로 한 건설업계의 로비가 심한 탓도 있지만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전문가들이 부족한 데다 기자들이 그런 전문가들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탓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제점은 이들이 부동산 재테크와 관련된 책을 낸 경우는 많지만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짚는 책을 낸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이 낸 ‘주택시장 분석과 정책과제 연구’ 보고서를 소개한 일간지 기사는 신문사들의 친 건설업계 편향적 시각이 어떤 오보를 만들어내는지 잘 보여준다. 대부분 일간지에서 이 보고서 내용은 ‘집값 억지로 누르면 더 튄다’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제목만 보면 정부의 부동산 경기 억제 정책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므로 억제책을 쓰지 말아야 할 것처럼 오인하게 한다. 실제로 일부 신문들은 이 보도를 근거로 정부가 부동산 경기 억제책을 맡기지 말고 시장에만 맡겨야 한다는 사설과 칼럼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보고서 내용은 정부의 ‘냉온탕식 정책이 경제 주체들의 신뢰를 잃어 경기 흐름에 따라 정부 정책이 언제든 철회될 것이라는 인식을 줘 정부의 부동산 억제책이 효과를 얻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결국 이 보고서의 주장은 정부 정책이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보고서를 작성한 차문중 연구원은 “언론의 기사 내용이 보고서 내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 같아 속상했다”며 “내게 기사 제목을 뽑으라고 했다면 ‘정부 주택정책 일관성 가져야’로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논란이 있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주택의 공공적 측면을 고려해 주택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고서의 내용과 작성자의 취지를 180도 비튼 전형적인 왜곡 보도의 사례인 셈이다. 물론 이 같은 보도는 ‘기사 자판기’처럼 빠른 시간내에 기사를 처리해야 하는 부담 아래 있는 기자들의 전문성 부족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기사를 1면 등 주요면에 배치한 것은 신문사의 평소 태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건교부, 업체 용역 받는 학계도 자유롭지 못해
건설업체 이익 대변 연구소, 언론에서 '전문가'로 인용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본부장. 그는 아파트값 거품을 빼기 위해서라도 건설 5각 동맹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디어다음 김준진기자
△인맥으로 연결된 학계, 연구소도 자유롭지 못해=정부 부동산정책과 관련된 교수나 연구소의 연구원들도 ‘커넥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학자들은 건교부에서 위촉하는 사업 계획, 사업 인허가, 설계 심사 등 건설 관련 중앙 및 각종 지방 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는 경우가 많다. 또 건교부 등이 발주하는 각종 국책사업 등 공공건설사업의 설계용역, 사업타당성 용역, 설계심의 심사, 건설사업의 설계기준이나 시공 기준 작성 용역, 정책 연구 용역, 제도 개선 용역, 기술심사 용역 등에 상당수 관련 학과 교수들이나 관련 분야 국책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런데 들어가는 예산만 매년 수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직간접적으로 건설 관련 용역이나 각종 위원회 등에 참여하다 보니 이들이 정부나 관련 업계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은 구조가 형성되는 셈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이나 학계의 동료나 선후배 교수들이 참여한 사업이 많아 안면 때문에라도 비판적인 견해를 표시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미디어다음이 고속철도나 새만금사업과 관련해 취재를 해봐도 취재를 거절하거나 취재에 응하더라도 “입장이 곤란하다”며 익명을 요구하는 비율이 어떤 분야보다도 높았다.
문제는 이들이 ‘민간 전문가’라는 명목으로 참여하는 경우 정부 관료들은 정책 실패를 이들에게 미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OO위원회를 열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이 분야의 권위자인 OO교수의 견해를 들어 이런 정책을 실시했다’는 식이다. 반면 민간 전문가들은 공무원에게 자문료를 받고 자문만 해줬을 뿐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고 비켜나간다. ‘책임 회피의 핑퐁 게임’이 벌어지는 것이다.
학계는 건설업계의 로비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대형 건설업체들의 임직원 대부분은 이들 학자들과 동문 관계로 얽혀져 있음은 주지의 사실. 특히 이들 학자들은 최근 연간 10조원 규모의 턴키, 대안입찰 공사의 사업자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설계심사 활동에 참여해 기업들의 치열한 로비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에게는 골프나 룸살롱 접대 등을 비롯한 직접 로비로부터 학내 기자재 기증과 각종 연구용역 등의 형태로 간접 로비가 이어진다. 실제로 한 대기업 건설회사의 ‘술상무’로 일하던 직원은 매주 1,2회씩 관련 학계 교수들을 룸살롱에서 접대하고 매주 골프접대를 나가다 올초 과로사하기도 했다.
설 관련 이익단체나 부설 연구소의 연구원들도 이들 학계 인사나 건설업체 임직원들과 동료, 선후배 관계로 맺어져 있음은 마찬가지다. 이들은 건설업체의 이익이나 특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각종 제도의 연구용역을 도맡아하고 있다. 주택협회 산하의 주택산업연구원이나 건설협회 부설 건설산업연구원 등이 대표적인 연구소다. 최근 건설산업연구원이 최근 “서울의 집값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덜 올랐다”며 ‘시장원리에 맡기라’고 주문하는 내용의 보고서는 이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김헌동 본부장은 “특정 분야에 대해서만 아는 일반 국민들에게 이 같은 건설5각구조는 잘 눈에 띄지 않지만 부동산 값을 지탱하는 기득권 구조”라며 “이들은 잘못된 정책과 왜곡된 정보 제공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챙기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탈리아 등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지속적인 ‘부패와의 전쟁’ 결과 정부공공발주 공사의 비용이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우리와 사정이 비슷했던 일본도 건설산업 개혁으로 주택 건설비용을 30% 이상 줄었다”며 “건설 5각 구조라는 기득권 구조를 해체하고 건설산업을 투명하게 발전시키면 국가 예산낭비를 줄이고 아파트값 거품 등으로 인한 국민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내수침체, 빈부격차...부동산거품이 만드는 해악들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사는 신모씨(34). 신씨는 아파트 때문에 한이 맺힌 사람이다. 서울 강동구 일대에서 주로 살았던 그는 당시 함께 자랐던 친구들을 만나기가 꺼려진다. 사연은 이렇다. 90년대 후반까지 그의 가족이 살던 강동구 암사동 강동아파트는 11~18평짜리 소형 서민아파트 단지로 11평 짜리가 5000여만원에 불과했다. 서민아파트 단지이다 보니 주민들도 다들 고만고만한 형편이었다.
하지만 신씨 가족이 내린 단 한 번의 선택이 이후 그와 그의 친구들의 삶을 갈라놓았다. 99년경 신씨 가족은 당시 시세 5000만원이던 아파트를 팔고 피땀 흘려 저축한 돈 5000만원을 더 보태 강동구 명일동의 삼익아파트로 이사갔다. 당시 20평짜리 아파트로 늘려가 가족들 모두 한동안 행복감에 젖기도 했다. “우리도 이런 집에 한 번 살아보는구나” 하고 감격할 정도였다는 것. 하지만 그것도 잠시. 2001년부터 재개발 재건축 붐이 불면서 강동아파트 18평짜리는 3억원을 넘어섰다. 그곳에 가만 머물러 살던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2억여원을 간단히 벌었던 셈이다.
이보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가 느끼는 박탈감은 더 크다. 암사동 이전에 살았던 강동구 고덕동 주공아파트 13평은 88년경에 불과 3000만~4000만원에 불과했다. 그 아파트들이 지금은 4억원을 넘어선다. 눈치 빠른 친구네는 한, 두 채를 더 사놔 십억대 부자가 된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반면 계속 ‘잘못된 선택’만 한 60대의 신씨 부모님들은 여전히 노후 걱정을 하고 있다. 이 문제로 심각한 불화를 겪은 것도 여러 차례다.
신씨는 “초등학교 시절 함께 살던 한 친구네는 집값이 올라 대학도 과외를 받으며 다닐 정도로 윤택했고, 외국 유학도 자비로 갔다 왔다”며 “심지어 집에서 사업 밑천도 대줄 정도”라고 말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던 친구네가 순전히 집 하나 때문에 ‘신분’이 달라졌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11일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 3차 분양 아파트의 모델하우스에 모여든 인파. 지난해 잠시 주춤했던 부동산 값이 올초부터 다시 들썩이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그는 지금도 집 때문에 시달리고 있다. 2001년부터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결국 2003년말 뒤늦게 집장만에 나섰다. 지금 사는 방화동의 22평 아파트를 1억6000만원에 산 것. 집을 살 때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아 9000만원의 빚을 졌다. 그동안 원금 일부를 갚아 7500만원의 빚을 지고 있지만 여전히 매월 50여만원을 은행 이자로 고스란히 갖다 바치고 있는 셈. 더구나 한 시중은행에 다니던 아내가 휴직하고 난 뒤에는 살림살이가 더욱 빠듯해졌다. 그는 “한 달 50여만원을 이자로 내다 보니 저축은커녕 외식 한 번 제대로 할 돈도 안 남는다”고 푸념했다. 집을 산 뒤 500만~1000만원 정도 집값이 소폭 오르기는 했지만 그동안 은행 이자와 취등록세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밑졌다는 게 그의 계산법이다.
신씨의 사례는 2005년 현재 대한민국 평범한 서민들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많은 국민들이 부동산 문제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정작 부동산 투기가 우리 사회 전반에 얼마나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정책 당국자들이 자신들의 정책 실패를 감추기 위해 이 부분을 애써 외면하고 대다수 언론도 이를 철저히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동산 투기가 경기 침체와 사회 양극화의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또 부동산 투기는 기업가의 투자 의욕과 근로자의 근로 의욕을 감퇴시켜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떨어트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부동산 투기로 인한 부작용을 하나씩 따져보자.
부동산 부채로 연간 1% 성장률 손실
김태동 위원 "카드 빚 사태보다 더 걱정되는 분야"
▲부동산 부채로 소비 위축, 내수 침체=부동산 거품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분석해온 민간 싱크탱크인 김광수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가계가 부동산 투기를 위해 은행에서 과다 차입한 돈은 약 133조원에 이른다. 한국 가계부문의 금융이자수지는 2001년 하반기부터 부동산 투기로 인한 은행차입의 급증으로 2004년 3분기 현재 -6.9조원의 적자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투기가 시작되기 전인 2000년의 금융이자수지가 약 4조원 가량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약 11조원 가량 줄어든 셈. 결국 이 11조원은 부동산 투기가 없었더라면 국내 가계 전체가 물품과 서비스 구매 등 소비에 쓸 수 있었던 돈이었다.
연구소는 가계의 금융이자수지가 1조원 감소하면 가계소비 위축으로 실질 GDP성장률은 0.28% 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2001년 하반기부터 지난해 2분기까지 약 3년 동안 부동산 투기로 인한 소비 위축으로 실질 GDP 성장률이 약 3%가량 감소한 것이다. 부동산투기 때문에 한국경제는 지난 3년간 매년 1%가량의 GDP 성장률을 손해 본 셈이다.
부동산 투기는 사실 카드 빚 사태보다 한국경제에 훨씬 더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카드 빚 문제가 주로 하류층에 국한됐다면 부동산투기로 인한 소비 위축은 소비 여력이 큰 중상류층에 폭넓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하나경제연구소가 가계수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 연구소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현재 가계 대출 433조여원 가운데 부동산 관련 대출은 57.9%인 265조 2930억여원에 이르렀다. 이 같은 부동산 대출 비중은 99년 1분기의 29.1%보다 두 배가량 높은 수치다. 이 자료에서 눈에 띄는 점은 소위 중상류층의 부동산 대출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점. 소득 수준에 따라 10개 계층으로 구분할 때 중상위 계층인 소득 상위 30~40%계층(가구당 월평균 소득 323만원)은 처분 가능한 소득의 29.4%를, 소득 상위 20~30%계층(소득 373만원)이 25.9%를 부채 상환에 쓰고 있었던 것. 상류층인 상위 10% 이상과 상위 10~20% 계층도 각각 처분 가능 소득의 23.0%와 22.6%를 부채 상환에 쓰고 있었다. 이는 부동산 투기 붐이 시작되기 전의 15% 전후와 비교할 때 각각 7~15% 포인트씩 증가한 것. 반면 카드 빚 증가는 부동산 부채에 비해 규모가 작고 저소득층에 집중된 것으로 분석됐다. 카드 빚 사태 때 최하위 2개 계층의 가계 부채 규모는 50%대를 넘었으나 상위 5개 계층에서는 부채 상환액에서 거의 변화가 없었던 점이 이를 입증한다.
하나경제연구소 배현기 금융팀장은 “2001년 이후 부동산 투기 때 발생한 중상층의 부동산 부채로 인한 소비 위축이 현재의 내수 침체를 부른 주원인으로 추정된다”며 “저소득층에서 주로 발생한 카드 빚 부담은 조정이 거의 끝난 반면 중상층의 부동산 부채 부담은 여전히 경제에 큰 주름을 안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김태동 금융통화위원은 “부동산 투기 문제가 잠재적으로 카드 빚 사태보다 더 걱정되는 분야”라며 “일본이 부동산 문제를 제대로 대처 못해 10년 이상 잃어버렸는데 우리는 부동산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선진국 꿈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이 같은 상황은 지난해 한국경제의 아이러니를 잘 설명해준다. 지난해 수출기업들은 2003년 대비 30%이상 고성장했고 경제 전체로도 4%대 후반의 괜찮은 GDP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내수경기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첨단기술산업 중심의 수출이 과거와 같은 내수 진작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이지만 부동산에 돈이 묶이는 바람에 내수 침체가 극심해졌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노력과 능력 상관없이 땅값, 집값 따라 계층 달라져
"재산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
▲빈부 격차의 주범=위에 든 신씨의 사례처럼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인한 빈부 격차도 심각해지고 있다. 한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과 상관없이 단지 땅값, 집값 때문에 계층이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최근 펴낸 책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에서 “주택가격이 비싼 지역에 고가의 아파들이 건설되면서 한국 사회의 독특한 계급불평등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2002년 시정개발연구원이 수집한 1500개 표본 자료를 토대로 소득 및 재산과 지역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을 5개 권역으로 나눴을 때 강남지역(강남, 서초, 송파, 강동구)의 소득이 평균보다 크게 높지 않았다. 강남지역의 월 평균 소득이 298만여원인데 비해 서울 전체로는 285만원 정도였다.
하지만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 재산 규모의 차이는 상대적으로 훨씬 컸다. 강남지역의 가구당 평균 부동산 재산 규모가 3억 1412만원인 반면 가장 적은 서남지역(관악, 동작, 영등포, 구로, 양천구)은 1억8673만원이었다. 서울 전체 평균도 2억1963만원에 그쳤다. 강남지역이 다른 구보다 50~70%가량 더 많은 부동산 자산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분석 자료가 강남지역 아파트 가격 폭등이 본격화하기 이전인 2002년 자료이므로 지금 상태에서는 이 같은 부동산 자산 규모의 차이가 더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또 행정구별로 세분화된 분석이 가능했다면 지역별 부동산 재산 격차는 훨씬 더 크게 나타났을 것이라고 신교수는 추론했다.
신교수는 “소득은 주로 직업을 통해 획득되지만 재산은 상속이나 증여를 통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아 노력 없이도 세습을 통해 이뤄어 질 수 있다”며 “이러한 재산은 개인의 노력에 따른 대가가 아니라 불로소득이라는 점에서 공평한 사회원리에 합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런 점에서 재산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직장 동료, 연봉 비슷해도 부동산 따라 재산 엄청난 차이
"부동산에 눈 밝은 사람이 돈 버는 사회"]
▲사회적 위화감 증폭=이 같은 불로소득에 의한 빈부격차 확대는 사회적 위화감을 급속도로 키우고 있다.
올해 나이 39인 김모씨는 30억대의 자산가다. 독신으로 사는 그는 사업을 하거나 로또에 당첨된 것도 아니고, 부모로부터 재산을 많이 물려받은 것도 아니다. 연봉 4000만원 정도를 받는 평범한 봉급생활자일 뿐. 그가 돈을 번 비결은 이렇다. 경상도 시골 출신인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다니게 된 직장 근처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15평짜리 전세를 살았다. 외환위기 이후인 98년 무렵 재건축이 되면 집값이 오른다는 주위 사람의 말을 듣고 은행 대출과 시골 부모님이 보태준 돈으로 전세로 살던 아파트를 샀다. 이후 이 아파트 가격이 오르자 그는 이 아파트를 담보로 돈을 더 빌려 근처 재건축 아파트를 하나 더 샀다. 이런 식으로 계속 추가 대출을 받아 주상복합아파트를 포함, 지난해까지 모두 5채의 아파트를 사모았다. 특히 2001년 이후 아파트 한 채에서만 5~6억원씩 뛰는 경우가 보통이었기에 그는 은행 빚을 다 갚고도 30억여원의 자산가가 된 것. 그가 이 과정에서 낸 취등록세나 재산세는 그가 번 돈에 비하면 ‘껌값’에 불과했다.
반면 김씨와 같은 직장에 다니는 강모씨(42)는 집값 때문에 가슴에 피멍이 든 사람이다. 조그만 법무법인에 다니는 그는 특수학교 교사로 있는 아내와 함께 맞벌이를 했다. 그는 서울 도봉구 우이동에서 강남 교대역 인근의 사무실로 출퇴근할 때마다 심한 박탈감에 시달린다. 10여년 살아온 20평짜리 빌라는 집값이 제자리걸음인 반면 강남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뛰었기 때문. 맞벌이를 하면서 매월 100여만원씩 저축해왔지만 평수를 늘려 집을 이사가는 일은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 같다. 그는 “주변에서 아파트 사서 몇 억씩 벌었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라며 “맞벌이로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오히려 더 가난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능력이나 노력과 상관 없이 부동산에 눈 밝은 사람이 돈 버는 사회이고 정부는 이를 방치했다”며 “아파트로 돈 벌었다는 사람을 보면 뺨따귀라도 때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500억대 자산가, 사업 적자 나도 부동산으로 돈 벌어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에 도움 안돼
▲자원 배분 왜곡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500억대의 자산을 이룬 한 중소기업 사장 배모씨. 세간에 그는 꽤 성공한 사업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이 10년전부터 해온 주력 사업에서는 사실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가 돈을 번 것은 부동산이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수십억원대에 나온 강남의 건물을 사뒀다가 이후 부동산 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100억원을 넘게 벌었다. 그는 이런 식의 부동산 투자로만 수백억원을 벌었다. 그는 요즘도 어느 땅이 개발될지, 어느 건물의 값이 오를지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서울시내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씨(63). 그는 3년전 고민에 싸였다. 3억원 가량의 여윳돈이 있어서 음식점을 더 키울 것인지, 다른 자산에다 더 투자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음식점이 잘 되는 편이어서 음식점을 넓혀도 됐지만 당시 부동산 값이 급등하고 있어서 결국 그는 부동산에 투자했다. 서울 강남의 한 상가건물에 투자한 것.
배씨와 김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부동산 투기가 일면 생산적인 영역에 투자될 돈이 부동산에 묶이는 결과가 나타난다. 돌고 돌면서 설비투자와 고용창출 등 얼마든지 생산적으로 쓰일 돈들이 부동산에 묶이게 되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로 인한 자원 배분 왜곡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각종 건설사업의 비용이 증가하고, 기업의 물류 비용과 공장 임대료 등이 연쇄적인 파급효과가 발생한다. 결국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기업 및 국가 전체의 생산성이 떨어지게 된다. 부동산 비용 때문에 기업의 R&D 지출 등이 위축돼 중장기적으로 기업과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물론이다.
한국 집값,소득 3만달러 국가들과 비슷
한국 집값 거품 가득한데 건교부는 계속 집값 부양 신호
"도대체 국민 위한 정책 펴는 건가"
강동석 건교부 장관이 이달 7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올해 업무계획을 보고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올해 집값 상승을 3% 범위 내에서 억제하겠다"고 보고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한국 집값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지난해 중반부터 부동산 가격 급등세가 한 풀 꺾였지만 한국의 집값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경제신문이 22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서울의 집값과 사무실 임대료는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인 영국 런던과 일본 도쿄 수준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도심지 중상급 주택을 기준으로 할 때 서울의 집값은 7억5000만원인데 비해 일본은 6~7억원, 런던은 7억원가량이었다. 우리의 경제력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인 셈이다.
실제로 지금 집값은 각종 투기수요 등으로 인해 평균 20% 이상의 거품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대신경제연구소가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가격의 20% 정도가 버블이라는 것. 이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2001년 3/4분기 본격적인 버블이 형성돼 지난해 5월 아파트값 대비 버블이 40.7%로 최고에 이른 뒤 지난해 말 20.0%로 낮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김태동 위원은 이 같은 상황을 “10대 청소년이 장정이 져야 할 짐을 지고 가는 것”이라고 비유할 정도다. 현재의 집값이 유지될 경우 국민들은 상당 기간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집값 거품을 빼야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속도에서는 1년 안에 20%가량을 빼서 주택시장을 실수요 시장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갑작스러운 ‘거품 빼기’가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으므로 서서히 거품을 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건설산업연구원 등 건설산업의 이해를 대변하는 연구기관에서는 “서울의 집값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덜 올랐다”며 ‘시장원리에 맡기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집값이 더 올라도 괜찮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건설산업연구원이 건설산업 전체의 이해 관계를 대변할 수는 있지만 문제는 건설교통부의 상황 인식. 강동석 건교부 장관은 3월초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업무보고에서 “올해 집값을 3% 범위 안에서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집값이 3% 정도 오르는 것은 용인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 상승률이 전국 평균보다 훨씬 가팔랐던 점을 고려하면 이론적으로는 이들 지역의 집값 상승률은 10%정도까지도 용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실련 김헌동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본부장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현재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높다고 판단하는데 건교부는 지금 집값이 정상이라고 보지 않는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며 “건교부가 도대체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김광수 소장은 “하루 빨리 부동산 거품을 해소해 가계와 기업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게 하지 않으면 내수침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장기화되고 경제 성장에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은 '투기와의 전쟁', 정부부처는 투기 방조?
· 내수침체, 빈부격차...부동산거품이 만드는 해악들
김세호 건교부 차관이 2월 17일 판교부동산 투기 방지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단지 규모가 50가구 미만이거나 용적률 증가 폭이 30% 포인트 미만인 수도권 재건축단지는 임대아파트를 짓지 않아도 된다." (3월 18일 건설교통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 개정안)
"용적률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임대아파틀 무조건 지어야 한다." (3월 23일 건교부 발표내용)
재건축 아파트의 개발이익환수와 관련한 건교부의 태도가 5일만에 확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최근 사례다. 건교부가 18일 사실상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제의 예외를 대폭 허용할 방침을 밝히자 재건축 대상 아파트 값이 곧바로 꿈틀거렸다. 이에 건교부가 다시 예외 허용 방침을 번복한 것이다.
이 사례는 부동산 투기세력이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문제는 건교부가 18일의 재건축 예외 조항 허용 확대 방침이 시장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주택정책 관련 주무 부처인 재정경제부와 건교부의 태도가 부동산 시장에 미친 영향을 이들이 몰랐다면 정책 당국자들이 무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반면 이들 부처가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면서도 그랬다면 이는 특정 집단을 위해 ‘국민을 위한 주택정책’을 희생한 정책을 펼쳤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상황이다.
이 사례는 또한 건교부 등 정부 부처가 주택정책에 대한 일관된 정책을 갖고 있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가 정책을 추진할 때에는 명확한 정책목표를 가지고 이 같은 정책목표를 달성할 효과적인 정책수단을 활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같은 정책은 충분한 기간 동안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검토를 통해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건교부는 입법예고를 한 지 닷새 만에 스스로 정책 방향을 뒤집은 것이다. 이는 건교부가 전문적인 정책 역량이 없는 가운데 여론이나 사회 분위기에 따라 춤추는 임기응변식 정책 대응을 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한다.
부동산 문제를 깊이 연구해온 박주현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은 “정부의 임기응변식 정책은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는 ‘오락가락 정책’으로 비쳐져 예측 가능한 경제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며 “특히 부동산 투기수요가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으면 투기세력들이 준동하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정부 부처의 오락가락 정책이 거의 일상화돼 있을 만큼 자주 발생한다는 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 부처는 ‘건설경기 부양’ 등을 빌미로 오히려 집값 인상을 부추기는 듯한 정책을 거듭해왔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이 같은 사례를 한 번 짚어보자.
정부 오락가락 정책이 오히려 집값 상승 부추겨
"정부 언제든 진작정책 쓸 것이라는 기대감 갖게 해"
▲오락가락 정책=“현재 부동산 투기가 가라앉고 거래가 끊기는 상황이다. 1가구 3주택 중과를 (예정대로) 내년에 시행하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주택자들은 내년에 부동산 보유세 부담이 늘어나니까 (집을 팔) 기회를 한 번 더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11월13일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발언이다. 2003년 ‘10.29 부동산 종합대책’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1가구 3주택 중과세 연기를 시사한 발언이다. 양도세 중과세 제도는 1가구 3주택 보유자가 주택을 팔 때 보유기간과 상관없이 양도차익의 60%를 세금으로 물리는 제도로 올해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다.
이 발언은 정부가 마련한 ‘10.29 대책’의 일부 내용을 스스로 뒤집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10.29대책’은 부동산 투기에 의해 일어난 시장 실패 상황을 시정해 시장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그 같은 목표가 달성되지도 않았는데 구체적 근거도 없이 이를 철회하려 했던 것이다. 물론 이 전 부총리의 발언은 이후 논란을 겪으면서 당초 계획대로 시행하는 것으로 정리됐으나 시장에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당시 이 전 부총리의 발언은 정부가 ‘10.29대책’에서 후퇴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 전 부총리는 올 초에도 이 같은 시장 혼란을 또 한 번 초래했다. 그는 1월 7일 ‘건설인 신년인사회’에 참석, “재건축 규제와 투기 지역 및 주택거래신고지역 등 투기억제제도의 는 “재건축 규제와 투기 지역 및 주택거래신고지역 등 투기억제제도는 직접 규제를 줄이고 시장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대부분 언론은 ‘부동산 투기 억제 제도를 대폭 완화할 방침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이 부총리의 발언 이후 침체에 빠져 있던 강남구와 강동구의 재건축 아파트가 몇 주 사이에 3000만~5000만원이 오르기도 했다. 이 전 부총리 발언으로 촉발된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한 강남권의 집값 상승이 ‘판교 로또’ 열풍과 겹치면서 부동산 값이 전반적인 재상승 움직임을 탔다. 이 같은 집값 급반등 움직임에 대해 일반 국민들과 청와대의 우려가 잇따르자 재경부와 건교부는 2월 17일 부랴부랴 미봉책으로 판교보완대책을 내놓았다. 사실상 이 부총리 자신의 발언으로 빚어진 부동산 값 상승의 불씨를 뒤늦게 스스로 다시 꺼야 했던 셈이다.
건교부가 지난달 2종 일반주거지역에 초고층아파트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가 이를 철회한 것도 오락가락 정책의 전형적 사례다. 건교부는 2월 4일 “대도시 주거지역의 토지이용 효율을 높이고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종 일반주거지역의 층고제한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이후 2종 일반거주지역에 속해 있던 서울 고덕, 개포지구 등에서 일주일만에 3000만~8000만원이 급등하는 등 강남발 집값 급등세가 재연됐다. 무론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제가 국회에서 논란을 겪으며 도입이 지연된 것도 이 같은 집값 급등세에 한 몫했다. 결국 정부는 2.17 판교보완대책과 함께 일반건축과 재건축의 경우 2종 주거지역 층고제한 완화 조치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 같은 정부의 갈짓자 정책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떨어트려 부동산 값 상승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지난달 말 발표된 ‘주택시장 분석과 정책과제 연구’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진작시키거나 억제하려는 정책의 효과는 계량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 쉽게 말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사실상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정부 정책이 효과가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로 정책이 경제 주체들의 신뢰를 잃어 경제 주체들은 경기 억제 정책이 시행되더라도 경기의 흐름에 따라 언제든지 정부 정책이 철회될 것이라 믿게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10.29 대책' 이후 한동안 동결됐던 주택시장이 강남 일부 재건축대상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반등할 기미를 보인 사실도 정부 정책이 일관성이 없었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지나치게 위축된 부동산경기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새로운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의 형성이 최근 강남 일부 재건축대상지역의 부동산 값 상승을 가져왔다"며 "결국 경제 주체들의 정책 신뢰도가 아주 낮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이 보고서는 “정부의 정책이 소기의 정책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적합한 정책을 적기에 실시하고, 그것이 일관성 있게 추진된다는 믿음을 경제 주체에게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차문중 연구위원은 “국민들이 부동산 정책은 언제든지 바뀐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경기가 어려워지면 억제 정책을 다시 진작 정책으로 바꿀 테니 정부가 억제 정책을 쓸 때 부동산을 사두면 나중에 차익을 볼 수 있다는 그릇된 기대를 형성하게 한 것이 집값 상승의 주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 정책에 대해 어디서 반발한다고 해서 정책을 그때마다 바꾸면 국민들이 정책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고 꼬집었다.
"정부 정책 총론은 개혁적, 각론은 구태 정책"
"국민 주거 안정 둔감한 정부, 건설업계 요구에는 금방 반응"
[표]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부동산정책 관련 주요 발언.
▲대통령은 ‘투기와의 전쟁’, 정부 부처는 투기 방조?=취임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집값 안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다. 특히 최근으로 올수록 발언의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월 25일 취임 2주년 기념 국정연설에서도 “부동산 문제만은 투기와의 전쟁을 해서라도 반드시 안정시킬 것”이라며 “투기 조짐이 있을 때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반드시 막겠다”고 밝혔다.
또 이달 7일 건교부 업무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도 “부동산 투기는 필요악으로도 용납하면 안 된다”며 “서울의 문제가 지방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고, 부화뇌동하는 투기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집값 안정과 부동산 투기 근절은 노 대통령의 핵심 과제 가운데서도 우선 순위에 올라있다”며 “이 문제에 관한 노 대통령의 의지는 갈수록 확고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통령의 의지 표명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나타내는 정책은 건교부와 재경부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정부는 ‘10.29대책’이 발표된 지 불과 몇 달만에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책을 쏟아냈다. 지난해 2월 20일 취임한 이 전 부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서비스산업 활성화 및 기업 투자 활성화를 명목으로 토지 규제 완화를 지시했다. 이후 정부 각 부처는 공동주택 건축 규제 완화, 산지이용규제, 농지이용규제 등을 완화하는 조치를 지속적으로 준비해왔다. 이 같은 토지 규제 완화는 각종 투기세력과 언론으로부터 아파트 등 주택에 고여 있던 투기 자금을 토지로 돌리라는 신호탄으로 해석됐다. 특히 올해부터 시행되는 정부의 농지법 개정안은 도시민도 사실상 무제한 농지를 소유할 수 있어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들이 농지를 ‘올해 토지시장의 가장 큰 이슈’로 꼽기도 했다.
이외에도 정부의 정책 방향은 건설 경기 부양과 부동산 규제 완화의 연속이었다. 강북 및 신도시 재개발 사업 추진 가속화, 레저형 기업도시 건설, 민간 SOC사업 확대 등이 이런 정책 사례들이다.
최근 부동산 문제의 핵심이 됐던 주택 투기 규제를 완화하는 움직임도 잇따랐다. 지난해 8월 20일 재경부 김광림 차관 주재로 열린 부동산가격안정심의위원회는 주택투기지역 57곳 가운데 7곳을 해제했다. 이 당시 재정경제부는 종합부동산세 대상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종부세 과세표준기준을 당초 6억원에서 10억원 정도로 올릴 방침을 밝힌 것.
또 지난해 11월 9일에는 다시 부산 대구 광주 울산 등 지방 투기과열지구에서 아파트 분양권 전매금지 기간을 분양 후 등기까지에서 분양 후 1년까지로 완화했다. 또 서울 송파구 풍납동 등 7개동을 주택거래신고지역에서 해제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이 같은 주택 규제 완화 정책은 올초 들어 더욱 가속화됐다. 정부가 올 들어 내놓은 일련의 부동산 관련 정책은 규제완화의 ‘시그널’로 해석하기에 충분했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 올들어서만도 △투기지역 내 소형주택 구제 △주택투기지역 8곳 추가 해제△서울시의 재건축 절차 완화△서울시 일반 주거지역 층고제한 완화 △
거래세 세율 추가 인하 검토 등이 이어졌다.
이 같은 각종 규제완화 정책은 그대로 시장에 반영됐다. 올초 강남 재개발 재건축시장을 중심으로 투기세력에 의한 호가가 급등하는 등 부동산 시장이 출렁였던 게 바로 그것. 실제로 한 기획부동산업자는 “지난해는 부동산 거래가 뜸했으나 올초부터 정부의 각종 규제 완화 신호가 잇따르면서 부동산 시장이 다시 활발해졌다”며 “특히 정부가 각종 토지 규제를 완화하고 있어 토지쪽으로 매수 주문이 옮겨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 부처가 이 같은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 내놓는 명분은 ‘침체된 건설 경기 또는 내수경기를 부양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 완화가 사실은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
이 같은 해법은 정부가 경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부동산 시장은 최근 몇 년간 투기수요에 의해 시장질서가 교란돼 단기간에 급등한 상태. 특히 이 과정에서 국내 가계의 상당수가 주택투기에 가담해 돈이 부동산에 묶이는 바람에 내수 침체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정부 스스로 부동산에 거품이 있다고 판단한 상황에서 부동산시장이 침체했다고 해서 이를 억지로 부양하겠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경실련 김헌동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본부장은 “지난 몇 년간 집값이 폭등할 때 서민들의 집값 안정 염원에는 수수방관하던 정부가 건설업계의 요구나 땅부자, 집부자들의 이해관계에는 어찌나 민감한 지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사실상 부동산 투기를 방치해 몇 년동안 부동산값이 폭등했는데 지금 침체했으니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거품을 더 만들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 노 대통령의 뜻과 정부 부처가 내놓은 실제 정책이 정반대로 움직이는 상황이 왜 벌어질까. 이에 대해 현 정부에서 국민참여수석을 지낸 박주현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건교부 등의 청와대 보고서를 보면 총론에서는 매우 개혁적이지만 각론에서는 과거에 건설업자에 의해 제시된, 건설경기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만들어진 정책 파일들이 그대로 등장한다”는 것. 건교부가 의지가 있다고 해도 주택안정이라는 관점에서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정책 파일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건설업계와의 유착관계에 의해 그 같은 정책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건설업계는 광고주로서, 정치자금 공급원으로서 언론과 정치권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이 때문에 주택정책의 최우선 목표인 주택가격 안정이 건설경기 활성화와 건설산업 수익성 확보라는 차순위 목표에 밀려나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경실련 김헌동 본부장은 후자쪽에 훨씬 더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 그는 “각종 부패의 절반 이상이 건설업계를 매개로 한 부패이며 재벌기업들이 건설계열사를 갖고 있어 정부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건설업계는 막대한 돈으로 건교부와 재경부 등 고위 관료뿐만 아니라 정치인에게 로비할 뿐만 아니라 아파트 분양 광고 등을 통해 광고주로서 언론에 압력을 미칠 수 있다”며 “소위 ‘건설족’ 또는 ‘건설동맹’으로 부를 수 있는 이 같은 굳건한 커넥션이 국민 주거 안정을 희생하면서까지 집값 거품을 만드는 배경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무지가 판교를 집값 급등의 불쏘시개로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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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을 대체할 제 2의 강남권 신도시를 판교에 만들어 투기를 막겠다."
2001년 정부는 당정협의를 통해 판교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집값이 급등하자 이를 막기 위해 판교신도시를 추진하겠다고 한 것. 당시 집값 급등의 진원지인 강남에 살려고 하는 수요자가 아파트 공급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강남급 신도시’를 만들어 공급을 늘리겠다는 발상이었다. 이 같은 발상은 정부의 투기억제책 대신 ‘시장 원리에 따른 근본 대책’을 요구한 상당수 언론의 주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을 비웃듯이 그 후로도 집값은 계속 고공행진을 거듭했음은 물론이다. 더 나아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던 집값이 올 들어 급등세로 돌아서게 된 진원지도 강남 재개발 재건축지역과 함께 판교였다. 정부는 2월 17일 부랴부랴 부동산투기방지대책을 내놨다.
이후 집값은 어떻게 됐을까. 강남 재개발 재건축 지역의 급등세는 일단 진정됐다.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개발이익 환수제 시행 △층고 제한 완화 범위 축소 △초고층 재건축 불허 등을 통해 개발이익이 생길 여지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올 초 강남권 집값이 급등한 이유도 사실은 개발이익 환수제 시행이 늦춰진데다 건교부가 층고제한 완화 및 초고층 재건축 허용 방침을 밝힌 것이 화근. 이 때문에 이를 사실상 뒤집는 정책을 내놓자 바로 급등세가 꺾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판교신도시 예정지와 인접한 경기 분당신도시 지역의 집값 급등세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급등세를 나타내고 있다. 25일 부동산 정보업체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분당 아파트 가격은 2.17부동산 대책 직후 0.58%(2월26일), 0.17%(3월 5일)로 가격 상승세가 둔화됐다. 그러나 이후 집값은 반등세로 돌아서 0.33%(3월12일), 0.66%(3월19일)로 다시 급등세를 나타냈다. 이처럼 분당 아파트 값이 계속 상승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울 강남과 분당의 중간 지점인 판교 개발로 분당 생활권이 서울 강남과 직접 연결된다는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판교 내 중대형 아파트의 고분양가 책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인식돼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분당 중대형 아파트가 같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
결국 그동안 되풀이된 현상을 보면 집값을 잡기 위해 개발되는 판교가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재료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건교부의 처방이 잘못됐음을 반증한다. 그러면 건교부의 처방은 왜 잘못됐을까. 따져 보자.
정부 공급 늘린다며 신도시 개발 때 마다 오히려 집값 폭등
"건교부, 투기수요를 실수요로 우겨"
▲건교부, 어설픈 경제원리 들이대=우선 건교부 당국자들은 판교 주변 분당과 강남 아파트 가격이 뛰는 이유를 수급원리에 따라 총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건교부의 주장은 전국적으로 균일하게 생산해 공급할 수 있는 자동차나 컴퓨터 등 공산품일 경우에는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아파트는 수요가 있는 곳에 즉시에 공급할 수 있는 성질의 재화가 아니다. 땅이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에 판교라는 특정한 지역에 공급이 한정될 수밖에 없는 셈. 반면 수요자는 전국에서 모여들 수 있다. 청약통장 등에 따라 청약자격을 제한할 수 있지만 투기세력이 이 같은 제약을 쉽게 극복한 것은 예전에도 쉽게 보아온 터다.
특히나 정부의 분양가 규제로 판교아파트에 분양되는 동시에 1억원 이상의 차액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하고 있는 상황. 결국 전국의 투기 수요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투자 목적으로 판교 아파트 분양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누가 보더라도 막대한 시세차액을 볼 수 있으므로 전국 어떤 곳에서 아파트를 분양하더라도 투기 또는 투자 수요가 밀려들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식이라면 국지적으로는 늘 수요 초과 상황이 될 수밖에 없는데도 정부는 정상적인 수급상황에서 공급이 부족한 것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주택보급률이 이제 갓 100%를 넘어서 아직 선진국 수준(110~120%)에 못 미치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을 계속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총공급과 총수요의 관점에서 봐야 할 문제를 지금 건교부가 하듯 국지적 상황에 그대로 대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실련 김헌동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본부장은 “판교에 몰려드는 수요가 누구나 투기수요인 줄 아는데 유독 건교부만 실수요라고 우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 스스로 내놓은 정책을 봐도 앞뒤가 안 맞는다”며 “정부는 작년 9월부터 아파트 미분양을 걱정하면서 투기과열지구 해제, 전매 완화 등 각종 투기조장, 분양 촉진 정책을 써왔는데 이제는 그걸 억제한다니 불과 몇 달만에 수급상황이 뒤바뀌었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정부 말대로 공급이 모자라 생기는 문제라면 2000년 이후 지금까지 건설업체들이 매년 사상 최대 규모인 50만 가구 이상씩 주택을 공급했는데 집값이 떨어져야 정상 아니냐”며 “그런데도 오히려 그 기간에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것을 어떻게 설명하느냐”고 지적했다.
"국민 세금으로 운 좋은 분양 당첨자에 몰아주는 꼴"
원주민 강제 수용한 땅으로 다른 사람 특혜 누리는 위헌 요소도
판교택지개발 예정지구 인근에 부동산 중개업소가 잔뜩 들어서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로또식’ 분양으로 형평성 문제 심각=판교신도시 개발에는 국민세금으로 조성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건교부는 판교신도시 개발에 용지비 3조1000억원과 개발비 2조8000억원, 금융비용 등 간접비 2조원 등 모두 7조 9000억원이 투입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막대한 국민 세금으로 개발되는 판교 아파트에 당첨되는 사람들은 결국 분양 아파트 수만큼에 불과하다. 문제는 판교 분양권 당첨은 주변 시세 등에 비춰볼 때 누구나 1억원 이상의 차익을 올릴 수 있는 ‘로또’로 변해 있다는 점이다. 이는 판교 아파트에 운 좋게 당첨된 사람에게 국민 세금으로 1억원 이상의 주택구입 보조금을 지급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독립적인 민간 싱크탱크인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김광수 소장은 “정부의 판교신도시 정책은 공익성과 형평성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며 “이는 서민들의 주거생활 안정이라는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 목적에 부합하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현행 방식은 서민 주거생활 안정을 위해 마련된 택지개발촉진법에 근거해 판교 원주민들의 토지를 강제수용해 다른 개인이 특혜를 누리게 한다는 점에서 위헌적 요소마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을 펼쳐온 경실련은 이를 근거로 위헌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
김헌동 본부장은 “ 아파트가 로또도 아니고 어떤 사람은 당첨되면 떼돈을 벌고, 어떤 사람은 살던 집에서 강제로 쫓겨나는 게 무슨 제대로 된 주택정책이냐”며 “돈 없는 사람에게 세금을 걷어다가 몰아다 주자고 하는 식의 발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건설업체들, 큰 위험 없이도 막대한 개발이익 보장돼
▲공공택지에 집 지어 공기업과 건설업체 배 불려=현재 판교택지개발 방식은 공기업과 민간 건설업체에게 막대한 개발이익을 안겨준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다.
경실련은 지난 8일 토공과 주공 등 공기업과 민간건설업체, 분양 당첨자 등이 모두 16조 3000억원의 개발이익을 얻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뒤늦게 간접비 2조원이 더 들어간다고 주장하며 반박했으나 공기업 등이 수조원대의 시세차익을 남기는 것은 분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구나 공기업 등 공공부문이 개발이익을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꾸로 그만큼 민간건설업체나 분양 당첨자에게 개발이익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물론 건교부나 토공, 주공 등은 “공기업이 개발이익을 남겨도 결국 다른 지역의 택지개발이나 도로 건설 등 공익적인 목적에 쓰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국감에서도 지적됐지만 이들 개발이익의 상당 부분이 토공, 주공 등 방만한 공기업의 운영비용으로 탕진된다는 점은 문제다. 또 특정한 지역의 개발로 생긴 수익을 다른 지역의 개발 비용으로 쓰는 것도 지역간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민간건설업체들은 그들 나름대로 “민간이 적절한 수익을 남기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따진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택지개발사업의 경우 수익이 100% 보장되는 구조라는 점이다. 민간건설업체가 사업을 할 때는 일정한 위험 부담(risk)을 떠안는 대신 일정한 수익률을 누리는 게 보통이다. 이 때문에 ‘저위험 저수익, 고위험 고수익’ 논리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판교 개발 사업의 경우 100% 분양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에서 정부가 각종 제도로 건설업체의 수익을 보장해주고 있다. 특히 건교부는 원가연동제 등 사실상 분양가 규제책을 도입하는 대신 건설업계의 요구대로 시공비용의 기초가 되는 표준건축비를 지난해 220만원에서 1년도 안돼 339만원 이상으로 대폭 상향조정했다. 여기에 40~50만원 정도를 더 가산할 수 있어 실제로는 표준건축비를 390만원까지 올릴 수 있게 했다. 김헌동 본부장은 “땅값 차액으로 배 불리던 건설업체들의 수익을 건축비 인상으로 보전해준 셈”이라고 꼬집었다.
건교부, 집값 상승 부추기는 분양 방식만 고집
실패한 판교식 대책, 3개 신도시 건설로 되풀이 강행
▲분양아파트가 집값 상승 부추긴다=위에서 본 것처럼 판교신도시처럼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낮게 공급하면 사실상의 ‘로또’로 변해 투기수요를 불러들이게 되는 것은 뻔한 이치다. 이 같은 투기수요가 준동하면 현재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분당과 서울 강남 등 주변 집값이 다시 올라가는 현상도 뚜렷하다.
현행 방식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집값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전월세가격이 상승하면 집값은 상승 압력을 받기 마련이다. 이는 최근 한국개발연구원이 내놓은 '주택시장 분석과 정책과제 연구'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가는 토지와 주택 매매가 등 부동산 가격에 큰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다는 것.
판교 아파트가 분양될 경우 현재 시세대로라면 전월세를 살고 있는 무주택 서민들은 도저히 살 수 없는 가격이 된다. 실제로 판교개발지구 인근에서 만난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판교 청약 1순위인 성남 구시가지 주민들은 전세 5000만~6000만원에 살고 있어 판교 분양에 당첨된다고 해도 최소 2억~3억원대의 아파트에 살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분양을 할 경우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중상층 이상의 집을 더 늘려주는 효과만 낳을 공산이 크다. 반면 서민들 입장에서는 이처럼 아파트 소유자들의 아파트에 들어가 전월세를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럴 경우 서민들의 전월세 수요는 아파트 소유자들의 임대 수입을 보장해주는 셈이어서 집값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현재 일괄 분양 방식의 판교 개발은 서민 주거 안정과 집값 안정이라는 정부 주택정책의 목표와는 상반된 개발 방식인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2.17대책’에서 고양 삼송 등 3개 신도시의 개발 계획을 발표하며 분양주택 비율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강남 대체 신도시로 판교 개발을 내세운 것과 똑같이 '판교급 신도시'로 짓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이들 3개 지구는 원래 그린벨트로 묶여 있던 곳으로 지난 정부 때 공영개발해 장기 임대주택을 짓겠다는 명목으로 그린벨트에서 해제한 지역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 다시 “장기 임대주택만 건설하면 택지지구로서 제 기능을 못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분양주택을 절반 이상 짓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헌동 본부장은 “정부가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내놓은 대책을 잘 뜯어보면 이처럼 오히려 집값 상승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은 대책”이라며 “특히 고양 삼송지구 등 위치 좋은 곳은 공기업과 건설업체들이 땅 장사를 하도록 변질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문가, 시민단체 "공공임대주택이 해법"
"정부, 무지의 소치든 악의에 의해서든 국민에게 짓는 것"
박주현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은 "공공임대주택의 건설이 판교신도시 개발의 올바른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미디어다음 김준진
▲“공공임대주택 늘리자”=건교부는 줄기차게 주택은 소유 대신 활용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판교신도시 개발과정은 건교부가 자신들의 주장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분양아파트는 기본적으로 주택을 소유할 사람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반면 건교부 주장대로 주택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가려면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짓는 것이 옳다는 것이 경실련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일치된 주장이다.
더구나 분양을 하든, 공공임대아파트를 짓든 공급 방식의 차이일 뿐 공급 물량은 같다. 따라서 분양 아파트 대신 임대 아파트를 지어도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건교부 주장에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 또 건교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건설 경기 부양’이라는 관점에서 봐도 똑같은 공급물량이 공급되기 때문에 효과에서 전혀 차이가 없다. 건설 경기 부양은 아파트 건설과정에서 나타나는 효과이지 높은 아파트 가격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무조건 분양아파트만 고집하는 건교부의 주장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
반면 ‘공공택지에는 공영개발’이라는 주장이 점점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김광수 소장은 "정부가 진정으로 부동산 가격의 안정을 원한다면 판교신도시는 100퍼센트 영구임대아파트로 가야 한다”며 “판교의 입지가 좋은 데다가 평형을 다양하게 공급해 적정한 임대료를 정한다면 전월세 수요 감소로 집값도 떨어뜨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투기 수요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주현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은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을 지속적으로 늘리되 100% 공공임대 주택 건설로만 갈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다양한 평형의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림으로써 부동산이라는 것이 소유하거나 투자하는 자산이 아니라 거주자산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는 김소장의 의견과 같다.
하지만 그는 다양한 평형의 분양 주택을 계속 공급하는 방식도 투기 억제 효과가 클 것으로 본다. 구체적으로는 임대주택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의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10~30% 낮춰 공급하는 대신 무주택 서민들에게 공공분양 할 경우 청약조건과 전매제한을 더 엄격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분양가를 낮춰 공급 물량을 늘려 가면 주위 집값이 오르는 것을 막고 집값 안정에 상대적으로 기여하게 된다는 논리다.
박소장은 이 두 가지 방식의 아파트를 공공개발 지역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비율로 짓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공영개발이라고 하면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사회주의 정책 아니냐는 분들이 있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며 "사실상 민간이 주택공급을 독점하고 분양가가 자율화된 상황에서는 정부가 일정 정도 공영개발해 가격 제어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 경제전문가는 정부의 판교 개발 정책과 관련,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그는 “현재 정부의 주택정책은 어설픈 시장주의 논리를 내세워 투기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며 “정책 당국자가 무지해서 이렇게 하는 것도 죄고, 그게 아니라 나쁜 의도를 가지고 했다면 더더욱 죄가 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재경부 3급이상 관료 60% 서울 강남권 거주
· 내수침체, 빈부격차...부동산거품이 만드는 해악들
· 대통령은 '투기와의 전쟁', 정부부처는 투기 방조?
· 정부 무지가 판교를 집값 급등의 불쏘시개로 만들어
· 재경부 3급 이상 관료 90% 부동산 부촌에 살아
건설교통부와 함께 각종 부동산 정책을 집행하는 부처인 재정경제부 3급 이상 고위 관료 3명 가운데 2명 가량이 서울 강남권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명 가운데 9명꼴로 경기도 분당신도시 등 강남권과 함께 최근 몇 년 동안 집값이 크게 오른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디어다음이 최근 입수한 재정경제부 3급 이상 고위 관료들의 3월초 현재 거주지 현황 자료에 따른 것이다.
[표]재경부 3급 이상 고위 관료들의 3월초 기준 거주지 현황.
이 자료에 따르면 재경부 3급 이상 고위 관료 34명 가운데 61.8%인 21명이 서울 서초, 강남, 송파구 등 강남권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분당신도시(9명)와 용산구 이촌동 등 일부 집값이 많이 오른 비강남권까지 포함할 경우 무려 88.2%가 최근 집값 상승으로 크게 혜택을 본 지역에 살고 있었다. 34명 가운데 안양시 3명, 과천시 1명 등 불과 4명만이 집값 상승으로 상대적으로 덜 혜택을 본 지역에 살고 있었다.
이 가운데 재경부 1급 이상 고위 관료 8명 전원은 서울 강남권(4명) 등을 포함, 모두 최근 집값이 많이 오른 곳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보면 재경부의 경우 김광림 차관, 김석동 금융정보분석원장, 이종규 세제실장, 진동수 국제업무정책관 등 4명이 서울 강남권에 살고 있는 있다. 또 이헌재 전 장관이 용산구 한남동에, 윤대희 기획관리실장이 용산구 이촌1동에, 조성익 경제자유무역기획단장과 박병원 차관보가 분당신도시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가운데는 이헌재 전 장관의 경우처럼 실제로 서울 강남권에 두 채의 집을 소유하면서도 실제 사는 곳은 비강남권일 수도 있다. 반면 강남권에 살더라도 전세로 사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달 초 열린우리당 전병헌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서 재경부 4급 이상 고위 공무원 131명 가운데 42%인 54명이 강남권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비교하면 고위급으로 올라갈수록 강남권에 사는 비율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한편 전병헌 의원은 이달 초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건설교통부 4급 이상 고위 관료 142명 가운데서도 35%인 50명이 강남권에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건교부 김세호 차관과 건설경제담당관실과장, 토지정책과장 등 부동산정책라인에 있는 대부분 인사들이 강남권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집값 하향 안정화 바라는 서민들 바람과 동떨어진 정책 펼쳐"
재경부 고위 관료들의 이 같은 ‘강남 집중’ 현상은 현재 내수 침체와 자산 양극화의 주범으로 인식되는 부동산 거품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치기 어려운 구조임을 보여준다. 강남권 등의 부동산 값이 떨어지면 이들이 소유한 부동산 가치가 감소하므로 결국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펴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
실제로 재경부나 건교부 등은 부동산 거품을 빼야 할 시기에도 ‘건설경기 부양’ 등을 명목으로 사실상 부동산 거품을 더욱 부풀리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또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을 외치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정책을 내놓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보유세 강화와 종합부동산세 도입 과정 등에서 보인 재경부의 소극적 자세나, 실거래가 신고제 도입을 연기한 것이라든지, 1가구 3주택 중과세 문제에서 보인 우유부단한 자세 등이 그 예로 거론된다. 반면 각종 기반시설이나 교통시설 등 사회적 인프라가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자되도록 정책을 유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경실련 김헌동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장은 “재경부 고위 관료들의 90%가량이 집값이 오를 때 크게 혜택을 보는 곳에 산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수치”라며 “공무원의 연봉 수준이 민간에 비해 크게 높지 않다는 점에서 볼 때 이들이 평균적으로 이재 실력이 매우 뛰어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부동산 값이 폭등할 경우 재산상의 이득이 크게 늘어날 지역에 살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런 사람들이 집 없는 서민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부동산 값을 하향 안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예로 건교부가 집값의 하향 안정화를 바라는 서민들의 바람과 달리 올해 집값 상승률을 3%까지 용인하겠다고 한 방침을 들었다. “전국적으로 3%라면 서울 강남구나 분당 등에서는 10% 이상 상승률도 용인하겠다는 것으로 이들이 서민들의 정서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것. 실제로 올 들어 분당신도시의 중대형 평형 집값은 판교발 집값 급등현상으로 30%이상 뛴 곳이 적지 않다.
김단장은 “자신들의 재산 가치 증식을 위해 걸림돌이 되는 법안에 대해서는 안 자체를 올리지도 않거나 상부의 지시나 국민 여론에 밀려 시늉만 하다가도 자산 가치를 올리는 정책은 초스피드로 처리하는 것도 이들이 사는 거주지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한편 전병헌 의원은 지난달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부동산 정책에서 관련 고위공무원들이 본인들의 주거와 상관없이 사명감을 갖고 정책집행을 한다고 할지라도 상당수 국민들은 이해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강남권에 사는 관료들이 부동산 정책 관련 직무를 맡지 못하게 하는 ‘상피제’ 도입을 주장했다.
아파트 값 빠지면 내수침체? 사실은 정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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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씨(33)는 지난달 은행 빚을 얻어 샀던 서울 마포구 공덕동 아파트를 처분한 뒤로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그는 부동산 값이 폭등하던 2003년 4월경 전세 1억 5000만원을 끼고 2억8000만원에 아파트를 샀다. 당시 이 아파트를 사는데 돈이 모자라 아파트를 담보로 7500만원의 은행 빚을 졌다.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에서 전세를 살던 그는 집을 살 형편이 아니었지만 집값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오르자 남편과 상의 끝에 집을 샀던 것. 먼저 집을 산 주위 친구들의 ‘몇 천 벌었네’ ‘몇 억 벌었네’ 하는 소리에 속이 상하기도 한 터였다. 이후 한 동안은 김씨도 집값 상승으로 재미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2003년 ‘10.29’ 대책 이후 집값이 정체 상태를 보이다 조금씩 뒷걸음질치는 기색마저 보이자 그동안 느껴지지 않던 은행 빚 부담이 크게 다가왔다. 내수 침체로 자신이 하던 아동복 가게도 제대로 되지 않는 터에 매월 50여만원씩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은행 빚이 적지 않은 부담이 됐던 것. 집값은 살 때에 비해 3000만원 가량 뛰었지만 실제 생활은 더 가난해진 것 같았다. 늘 현금이 쪼들려 과거 한 달에 두, 세 번씩 하던 외식 한 번 하기가 힘들었던 것. 결국 그는 지난달 아파트를 팔고 은행 빚을 모두 갚았다.
김씨는 “그동안 돈을 조금 벌기는 했지만 그동안 은행 빚으로 마음 고생하고 긴축하고 살았던 걸 생각하면 오히려 사서 노예 생활을 한 것 같다”며 “앞으로 빚 없이 쓸 것 제대로 쓰면서 살 생각하니 오히려 속이 다 시원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혹시나 나중에 다시 집값이 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경우는 집값 거품이 가계에 어떤 부담을 주는지, 또한 ‘부동산 손절매’를 했을 때 가계와 경제 전반에 어떤 긍정적 효과를 미칠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주변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한 강동석 전 건교부장관이 7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지금 국면은 부동산거품을 해소해야 하는 시기로 보고 있다. 가계들이 최근 몇 년 동안 부동산 투기 붐에 편승해 빚을 내 집을 사는 바람에 부동산에 돈이 묶여 내수 침체가 초래됐다는 인식 때문. 과감한 ‘손절매’를 통해 가계가 정상적인 소비 및 생산활동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 당국자와 상당수 언론은 집값 하락을 오히려 걱정하고 있다. 심지어 현 상황을 도외시하고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집값이 꾸준히 상승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강동석 전 건교부 장관이 7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연례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내놓은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올해 집값 상승을 3% 선에서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거꾸로 해석하면 집값 상승을 3%까지는 용인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말이 3%이지 전국 평균이 3%라면 서울 강남 등의 집값은 10% 이상 상승도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그러면 이 같은 정책 방침이 대통령 보고 자리에서도 스스럼없이 나오는 것일까. 정부 당국자들이 자신들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놓는 가장 큰 근거는 ‘자산 효과(Wealth Effect,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상승할 경우 이를 일정한 시점에 시현될 소득으로 간주해 소비를 늘리는 현상)’라는 것이다. 현재 주택 가격이 떨어지면 자산가치 하락으로 마이너스 자산 효과가 생기는 가계의 상실감 등으로 일본식 장기불황이 올 수 있다는 게 정부 당국의 논리. 실제로 재경부와 건교부 정책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자산 효과를 근거로 “집값을 어는 정도는 유지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내부 회의에서 자주 오갔다는 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의 전언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이런 논리라면 부동산 값 급등 시기에 국내 가계의 자산가치가 모두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자산가치 증가에 의해 소비가 더 늘어나야 정상이다. 또 지금 집값이 계속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고 정부 당국 스스로 집값 하락을 막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므로 내수가 활발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왜 그럴까. 이는 정부가 자본경제와 자산경제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한 때문이다. 현 상황은 자산경제에서 발생한 가계의 투기적 행위로 인해 부동산에 140조원 이상의 돈이 묶이면서 소비 위축이 일어나 생산경제에 큰 타격이 일어난 상황이다. 그러므로 정부 정책의 처방도 이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자산효과'를 들먹이며 이를 미루고 있다.
반면 자산효과는 기본적으로 심리적인 효과이다. 주식이나 부동산이 오르는 추세일 경우 이를 미래 어느 시점에 판다고 할 때 발생할 차익을 염두에 두고 미리 소비에 나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부동산 값에 거품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아는 상태에서는 추가적인 부동산 값 상승이 쉽지 않으므로 이 같은 자산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위에 언급한 김씨의 사례를 보면 이 사실은 명백하다. 김씨는 부동산에 자신의 돈 6500만원이 묶인 상태여서 이자 소득을 올릴 수 없는 것은 고사하고 매월 50여만원의 확정 이자를 내야 한다. 반면 아파트 값은 3000만원 가량 오르기는 했지만 앞으로 더 오를 것 같지 않은 정체상태다. 더구나 매월 손에서 빠져나가는 돈과 그에 따르는 각종 기회비용은 확정적이지만 부동산 값은 팔기 전까지는 호가만 오가는 불확실한 소득인 셈. 김씨가 지금껏 오른 부동산 호가만 믿고 소비를 늘릴 수는 도저히 없었던 것이다. 김씨의 경우가 보여주듯 현 상황은 부동산 투자로 인한 부채 부담이 자산효과를 훨씬 압도하고 있다.
김씨는 "부동산 값이 떨어질 거라는 확신만 들었으면 집을 더 일찍 팔았을 것"이라며 "거품이 낀 상태에서 부동산 값이 높은 곳에 머물다 보니 팔 사람도, 살 사람도 찾기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91~92년 집값 하락기에 오히려 내수 확대
"집값 하락 대세 확인되면 가계 손절매한 뒤 소비할 것"
[표] 91~92년 부동산 거품 하락기의 집값 및 도소매 판매 지수 변화 (국민은행 및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시민경제사회연구소가 재구성)
더구나 정부 당국의 주장은 과거 경험을 되짚어보아도 기우임을 알 수 있다. 과거 국내에서 아파트 값 하락기는 두 번 있었다. 88년 무렵부터 진행된 부동산 거품이 빠진 91~92년과 외환위기 충격으로 집값이 급락한 97~98년. 이 가운데 97~98년은 외환위기라는 사상 초유로 집값 하락이 생긴 경우여서 지금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반면 91~92년은 부동산 값이 단기 급등에 이어 하락한 시기여서 지금 상황과 비교해볼 여지가 많은 시기다.
최근 부동산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시민경제사회연구소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91~92년 아파트 가격 하락 초기 몇 달 동안은 약간의 내수 위축이 진행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집값 하락세가 뚜렷해지자 내수는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활성화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값이 단기적으로 최고점에 이르렀던 91년 4월의 아파트 가격과 도소매 판매 지수를 각각 100으로 봤을 때 4개월 후인 8월까지는 두 지수가 동시에 하락해 각각 96.1, 94.2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5개월째인 9월부터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아파트 가격지수는 이듬해인 92년 12월까지 82.5로 계속 떨어졌으나 도소매판매지수는 91년 9월 101.3으로 급반등한 뒤 92년 12월까지 약간의 기복을 보이면서도 111.3까지 상승했다.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아파트가격이 떨어진 뒤 내수가 오히려 활성화되는 방향으로 간 것이다. 물론 이 통계는 두 변수 사이의 상관관계만을 보여주는 것으로 부동산 값 하락이 내수 활성화를 촉진했다는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파트 값 하락이 내수침체를 오히려 심화할 것이라는 정부 당국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방증은 될 수 있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 홍헌호 연구원은 “90년대 초 아파트 값 거품이 빠진 뒤 일시 위축되던 내수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활성화되기 시작했다”며 “이는 빚을 지고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이 아파트 가격 안정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를 확인한 뒤 손절매에 나서 빚을 털고 소비를 늘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집을 갖고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무주택 서민들도 집값 하락으로 ‘내집 마련’ 부담이 줄어 저축 대신 소비를 늘리게 되는 것도 내수 활성화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물론 90년대초와 최근 몇 년 동안의 부동산 거품은 차이점이 있고 경제여건도 많이 다르므로 예전과 똑같은 양상을 보이리라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잘 알려져 있지만 최근 부동산 거품은 가계가 은행에 빚을 잔뜩 지고 투기에 가담해 내수 위축이 심한 상황. 2001년부터 3년동안 소득은 25% 늘어난 반면 부채상환 부담증가율은 100~150% 가량 늘어난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반면 88~91년의 부동산 거품 때 가계는 3년 동안 60%의 평균 소득 증가를 바탕으로 부동산을 샀기에 내수 위축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차이는 오히려 지금 부동산 값이 떨어지면 내수 활성화 효과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전망을 낳는다.
재정확대, 금리 인하로 거품 부양한 일본 경기 침체 심화시켜
집값 거품 빠져도 집 한 채뿐인 대다수 시민들 피해 없어
최근 새로운 하이브리드카 모델을 선보인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조 후지오 회장.일본 경제를 장기 불황에서 헤어나게 한 것은 결국 과감한 구조개혁과 민간기업의 기술 개발이었다.[사진제공=AP연합]
정부 당국은 집값이 떨어질 경우 은행의 경영상태가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파트 거품 붕괴가 진행되면 아파트를 담보로 가계에 대출해준 은행 등 금융기관이 부실화돼 자금 중개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일부에서는 90년대 초 일본이 버블 경제가 붕괴하면서 발생한 금융기관 부실화로 자금 흐름이 막히면서 기업들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추가적인 금융 부실로 이어진 상황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도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 80년대 말 거품 경제 시기에 도쿄의 부동산이 300% 이상 폭등한 데다 부동산 대출 담보율(LTV. Loan to Value)이 100% 이상 초과대출이 많았다. 이 때문에 부동산 값이 도쿄를 중심으로 몇 년에 걸쳐 60~70% 가량 폭락하자 곧바로 금융 부실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기업들이 각종 은행 빚을 내거나 주식 투자로 번 돈으로 부동산 투기를 주도해 부실률이 매우 높았다.
반면 2001년부터 진행된 국내 부동산 거품은 일본의 거품 경제시대 때와는 양상이 다르다. 최근 3~4년동안 집값 상승률이 100% 정도여서 일본의 거품 경제 시기와 비교할 때 거품 규모가 작은데다 LTV도 대부분 70~80% 선에서 유지됐기 때문. 특히 부동산 투기에 가담한 가계의 대부분이 일정한 소득을 가진 중산층 이상 가계라는 점에서 기업들이 투기를 주도한 일본 같은 충격은 맞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최악의 경우 아파트 값이 30% 이상 떨어져 수조원대의 은행 부실이 생긴다 해도 최근 몇 년 동안 막대한 누계 순익을 쌓아온 국내 시중은행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평가다. 한 마디로 현재 국내 사정은 10여년전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Bubble Burst) 같은 상황을 우려할 수준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국내 사례도 부동산 값 하락이 그다지 큰 여파를 남기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91년 4월부터 92년 7월까지 아파트값이 19% 가량 떨어졌지만 한국 경제는 1~2년간의 조정기를 거친 뒤 곧바로 과거 성장률을 회복했다.
부동산 값 하락이 가계 부문에 주는 충격도 정부 당국이 주장하는 것만큼 크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부동산 값이 20% 가량 떨어진다고 해도 실제 거래가 이뤄지지 않은 채 호가만 올랐다가 떨어진 부동산이 전체의 95% 가량을 차지하게 되기 때문. 대다수 서민들은 집 한 채 갖고 있는데 이것이 값이 오른다고 부자가 되고 내린다고 가난해지지는 않는 셈이다. 결국 자산 경제 전체로는 별 타격이 없는 셈이다.
물론 상투를 잡은 투기거래자의 손실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주식 투기로 떼돈을 벌려다 실패한 사람의 손실을 국가가 보전하지 않듯이 부동산 투기로 인한 손실 또한 보전하지 않는 것이 경제원리에도 맞다. 더구나 정부가 나서서 궁극적으로는 국민 전체에 부담이 가는 금리 인하와 재정 확대 등을 통해 이 같은 부동산 거품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경실련 윤순철 정책실장은 “국민 전체에 부담을 지우면서 인위적으로 부동산 거품을 유지해 덕을 보는 사람들은 소수”라며 “이 같은 논리대로라면 집 값이 폭등해서 생기는 발생한 성실한 근로소득자의 더 큰 피해는 정부가 왜 책임지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정부 정책,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
부동산 거품은 안 빼고 정책수단만 소진시켜
문제는 정부가 인위적인 경기 부양 등을 통해 부동산 거품을 떠받쳐 가계의 과다 부채 상태가 지속되면 오히려 일본과 같은 경기 장기 침체의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점.
그런데도 정부는 재경부와 건교부를 중심으로 지난 해 하반기부터 금리 인하와 재정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다. 내수 침체를 초래한 주범인 부동산 거품을 해소하기 보다는 이를 억지로 지탱하는 정책을 쓰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한 경제 전문가는 정부 정책을 두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거품 경제 붕괴 후 경기 침체기 때 일본의 대응이 지금 한국 정부의 대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본도 버블의 연착륙을 유도한다는 미명 아래 부실의 악순환을 과감히 끊지 못하고 0%라는 초저금리 정책과 건설 공사 등을 중심으로 재정 확대 정책을 거듭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특히 일본은 장기불황을 극복한다는 명목으로 14회에 걸쳐 약 135조엔(1400조원)의 건설경기 부양 및 소비촉진을 위한 대규모 재정확대책을 시행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의 산업구조가 90년대 IT혁명을 통해 건설산업 등 전통 산업 중심에서 재정효과가 크지 않은 첨단산업으로 변모한 때문이었다. 반면 일본 경제는 고이즈미 내각 이후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과감한 구조개혁과 일본 기업들의 기술 혁신에 힘입어 다시 재기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결국 금리 인하, 재정 확대 정책은 정책적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면서 문제 해결을 뒤로 미루는 효과만 초래한다. 돈이 부동산이라는 고정자산에 묶여서 신용창출을 못하는 상태에서는 금융정책이나 재정정책의 효과가 모두 크게 줄어들기 때문. 구멍을 막은 상태라면 독 안에 물을 채우는 효과를 낼 정책들이 별 효과 없이 땅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부동산 거품이 꺼져 경제 체력이 일시적으로 바닥났을 때 요긴하게 쓰일 정책수단들이 점점 고갈되고 혈세만 낭비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박주현 시민사회경제연구소장은 “최근 몇 년 동안 부동산 투기에 의한 가계 부채 증가가 내수 침체와 양극화의 주범"이라며 "과도한 부동산 거품을 빼는 방향으로 정책기조를 가져가는 것이 한국 경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유세 강화했다는데 비싼 집 보유세 적게 내는 실태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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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A씨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맞벌이를 통해 고생 끝에 집을 장만한 뒤 여러 번 이사하며 집 평수를 늘리는 경우. 반면 부유한 집안 자제인 B씨는 양가 부모의 도움으로 결혼과 동시에 서울 요지의 대형 평형 아파트를 사서 평생 산다고 생각해보자. 두 사람이 사는 집의 자산가치는 시가로 평균 3~4배 정도라고 치자.
지난해까지 국내 부동산 관련 세제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할 때 누가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될까. 물론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A씨일 가능성이 높다.
단순한 비교지만 이는 지금까지 국내 부동산세제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렵사리 조금씩 집 평수를 늘려나가는 사람이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한 집에서 계속 살게 되는 사람이 내게 될 부동산 관련 세금 부담이 더 많을 수 있는 것이다. 담세 능력이 훨씬 적은 A씨가 B씨와 비슷한 세금을 내게 되는 셈이다. 주택의 자산 가치로 따져도 최소 3배나 비싼 주택을 소유한 B씨가 A씨보자 적은 세금을 내게 되는 셈이다. 더구나 A씨의 경우 열심히 저축하고 모은 근로소득으로 집을 장만한 반면 B씨의 경우 양가 부모의 도움으로 집을 장만한 경우다. 가상의 예를 든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실제로 이 같은 사례들이 적지 않다.
이는 국내 부동산 관련 세제가 보유세는 매우 낮게 설정된 반면 취득세와 등록세 등 거래세는 상대적으로 높게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주택의 보유세 부담이 지나치게 낮다는 것은 승용차의 자동차세 부담과 비교해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기준시가가 4억2750만원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지난해 종합토지세와 재산세를 합산한 액수는 23만8250원. 반면 1600만원인 중형 승용차의 연간 자동차세 부담액은 50만원대다. 재산 가치에서 30배 가량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도 물게 되는 세금은 절반도 되지 않는 것이다.
보유세 실효세율 한국은 0.12%, 미국은 1.2%
"보유세 소홀히 하는 것은 중요한 결함"
▲보유세 실효세율 선진국 10분의 1에 불과=부동산 보유세의 경우 실제 재산가액 대비 세부담액을 나타내는 실효세율은 2003년 기준 0.12% 내외로 추정된다. 반면 선진국의 경우 대략 1~2% 수준이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에 따르면 토지와 건물을 합산해 과세하는 미국의 경우 실효세율이 주마다 0.3~4.0% 정도로 크게 다르지만 대체로 평균 1.15% 정도로 추정된다. 국내 보유세가 미국의 10분의 1에 불과한 셈이다. 한국조세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그나마 보유세가 지방세의 부동산 관련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8년 33%에서 2003년 23.2%로 하락했다.
반면 대부분 선진국들은 거래세에 비해 보유세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것이 일반적이다. 2003년 기준으로 독일은 64 대 36, 일본은 83 대 17, 영국은 79 대 21, 미국은 98 대 2 였다. 우리와는 정반대인 셈이다. 거래세 비중이 높으면 원활한 부동산 거래가 불가능한 반면 보유세가 적을 경우 자산가치에 의한 불로소득을 충분히 세원으로 포착할 수 없게 된다.
경제학자 출신인 한나라당 윤건영 의원은 ‘부동산 관련 조세정책의 경제적 효과와 정책방향’이라는 논문에서 “보유과세를 소홀히 하는 것은 국가 정책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결함”이라며 “반면 등록세와 취득세를 과도하게 징수하는 것도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보유세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데도 상당수 언론과 정책당국자, 정치인 등은 “보유세 증가가 조세저항을 불러온다”며 보유세 강화에 소극적이었다. 심지어 “보유세 강화가 시장 원리에 반한다”는 얘기조차 나왔다. 하지만 보유세야말로 투기를 방지하고 시장 경제 원리를 유지해주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개발연구원 차문중 연구원도 최근 보고서에서 “거래세를 낮추는 대신 보유세를 높이는 세수 중립적 세제 개편은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편익 누리는 만큼 보유세 내야
부동산 급등 막는 제도적 장치
근로소득 과세와 비교해도 형평성에 문제
[표] 기존 보유세제 하의 과세 불평등 사례 (*참여연대 자료).
▲보유세 강화 왜 필요한가=우선 사회적 편익의 차이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부동산 가격이 가장 비싼 이유는 국민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을 강남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입한 측면도 있다. 각종 명문 고등학교와 공공 시설 등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사회적 편익을 누리는 만큼 그에 걸맞은 보유세를 내게 하는 것은 당연한 셈이다.
특히 현재 국면에서 보유세 강화가 중요한 것은 부동산 투기를 막는 제동장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주택가격이 투기 등에 의해 급등할 경우 보유세가 시장가격에 연동되도록 하면 부동산 보유 부담이 커져 결국에는 주택을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시세차익만 바라보고 언제까지나 현금으로 막대한 보유세를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내에서는 기업 매출과 개인 근로소득은 비교적 투명하게 노출된 반면 최고가 상품인 부동산 거래는 투명하게 파악되지 않아 투기소득에 대한 과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부동산이 투기와 불로소득의 온상이 돼 온 것은 최근 몇 년간의 사례를 봐도 분명하다. 모두 수십억원대의 주택을 소유하고도 겨우 100만~200만원 정도의 재산세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근로 소득 등에 대한 과세와 비교할 때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도 큰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보유세의 과표가 시가를 반영하지 않는 구조여서 지역 및 계층간 조세 부담의 형평성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됐다. 시세가 훨씬 더 비싼 서울 강남권 아파트의 재산세가 강북이나 지방의 아파트보다 재산세 부담이 적은 경우가 다반사였던 것. 실제로 참여연대가 지난해 9월 각 지역의 아파트 재산세를 분석한 결과, 같은 가격대의 아파트의 재산세가 지역에 따라 최고 13.5배나 차이 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시가 5억 2천만원대의 서울 서초구 반포동 P아파트 (22평 건축연도 73년, 세율 25% 인하)는 약 8만 5천원의 재산세를 부담한 반면, 이보다 1천만원 싼 5억 1천만원대의 경기도 용인시 상현동 D아파트(73평형, 건축연도 2002년)는 109만원의 세를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같은 세 부담의 차이는 서울 강남구와 송파구 등 서울과 경기지역의 일부 자치구들이 ‘재산세 깎아주기’로 더욱 심화되기도 했다. 또한 대구 지역은 9800만원대 (22평형, 98년 건축)의 아파트가 9만여원의 재산세를 낸 데 비해 서울 서초구의 5억5000만원대 아파트(18평형, 78년 건축)가 이와 비슷한 재산세를 냈다. 자산 격차가 5.8배나 되는 데도 같은 세금을 낸 것이다.
과세 기준 이유 없이 완화
전문가들 제시안보다 1조 6000억이나 덜 걷어
"부동산 투기 막겠다던 당초 취지와는 거리 멀어"
지난해 말 국회 재경위에서 열린 종합부동산세 관련 공청회의 한 장면[사진제공=연합뉴스]
▲정부 보유세 결국은 10% 인상에 그쳐=결국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정부도 2003년 ‘10.29부동산종합대책’에서 종합토지세나 재산세 등 보유세를 강화하고 거래세는 현실화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정부 여당은 보유세제 개편방안 최종안을 마련해 올해부터 시행하게 됐다. 보유세 개편안의 내용은 현행 건물에 부과하는 재산세와 토지에 부과하는 종합토지세를 하나로 합쳐 재산세로 통일하되 보유 부동산의 가치에 따라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의 이원체계로 바꾸었다. 구체적으로는 주택은 국세청 기준시가 기준으로 6억원까지, 나대지는 국세청 공시지가 기준으로 9억원까지, 사업용토지는 40억원까지는 지방세로서 재산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 대신 이 금액을 초과하는 초과분에 대해서는 국세로서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또 과표를 현실화해서 공동주택의 경우 국세청 기준시가의 50%, 토지의 경우 공시지가의 50%로 결정했다. 또 세율 단계를 단순화해 누진도를 완화하는 동시에 세 부담 급증을 막기 위해 세율을 전반적으로 인하했다.
이 같은 정부안은 일단 보유세 강화라는 방향으로 한 발을 내딛었으며 시가 기준 과세 방식을 택해 조세 형평성을 달성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해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는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측면에서는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다는 것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종부세의 과세대상 기준이 당초 논의되던 수준보다 상당히 올라갔다는 점. 재경부는 주택의 경우 당초 5~6억원선을 거론했으나 당정협의를 거치면서 9억원까지 후퇴했다. 또 과표 현실화에 의한 세부담 증가가 우려된다며 모든 과표 구간에서 세율을 최대한 낮게 설정했다. 정부는 이에 따른 세수 증가폭을 현재 보유세 수입 3조2000억원의 10%인 3200억원 정도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보유세가 강화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7월 조세연구원 주최로 열린 ‘부동산 보유세제 개편방안’ 토론회에서 종토세와 재산세를 합쳐 5조 1000억원을 예상한 것과 비교해도 1조 6000억원이나 줄어든 셈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봐도 문제가 많다. 가장 많은 아파트가 분포한 기준시가 2억~9억원대의 아파트가 최고 세율 0.25%를 적용받아 평균적으로 기준시가 대비 0.2%의 보유세를 내게 된다. 또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인 기준시가 9억원~20억원 아파트도 기준시가 대비 평균 세율이 0.33%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행자부 자료에 따르면 서울 도봉구 또는 경기도 용인시의 대형 아파트들이 기준시가 대비 0.35~0.5%의 보유세를 내온 것과 비교해도 결코 높지 않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 홍헌호 연구원은 “보유세를 강화해 부동산 투기를 막고자 한 당초 취지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수준”이라며 “왜곡된 부동산 세제를 바로잡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간다는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소극적인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기획부동산 중개인 "종부세 피해갈 작업 하고 있다"
조세형평성 개선에서도 한계 있는 것으로 드러나
경실련 "부동산 투기꾼들 빠져나갈 구멍 투성이"
[표] 서울지역 두 아파트의 보유세 변화 상태(* 3월30일자 경향신문 자료에서 재구성)
▲종합부동산세는 '종합부동산 구멍세'?=또 이번에 마련된 종부세안은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통해 과세를 피해나갈 ‘구멍’을 남겼다. 예를 들어, 기존 종합토지세는 개인별로 전국 단위에 걸쳐 합산 과세했으나, 새로운 재산세의 경우 물건별 과세(주택의 경우)나 개인별 시군구 관내 합산 과세(나대지의 경우)로 바뀌어 현재에 비해 낮은 세율을 적용받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국에 걸쳐 나대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세금을 과거보다 적게 낼 수도 있는 셈이다. 또 주택용 토지와 나대지의 과세가 분리되기 때문에 현재에 비해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 부동산을 종합부동산세의 과세 기준에 조금씩 못 미치는 수준에서 보유해 수십억대의 ‘부동산 재벌’이 종부세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10억원짜리 주택만을 보유한 A씨와 주택 8억원과 토지 5억원, 나대지 39억원을 보유한 B씨를 비교해보자. A씨는 종부대 과세 대상이 아니지만 B씨는 과세대상이 된다. B씨가 훨씬 더 많은 부동산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종부세 대상에서 빠지는 셈이다.
실제로 토지부동산 중개인 남모씨(45)는 "올 들어 종부세 대상이 되지 않도록 부동산을 조정해달라는 요청을 여러 군데서 받았으며 실제로 2,3건 관련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 방법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새로 바뀌는 농지법이 종부세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므로 이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별로 보유세 부담이 50% 이상 늘어날 경우 50%만 적용하는 세부담 상한제도 조세 형평성을 개선하는 데서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경향신문이 30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세부담 상한제 때문에 일부 값이 싼 아파트가 비싼 아파트보다 재산세를 더 내게 돼 세부담 형평 문제가 완전히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의 경우 시세 6억5000만원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31평형)는 재산세로 23만8000원을 냈다. 반면 2000년 지어져 시세가 4억5000만원인 용산구 한남동 리버탑(42평형)은 27만 6000원을 냈다. 리버탑아파트가 2억원 가량 더 싼데도 재산세는 3만 8000원 더 낸 것. 올해는 세제개편에 따라 은마아파트는 재산세가 3.4배로 늘어 80만 8000원을 내야 하지만 세부담 상한에 따라 35만7000원만 내게 됐다. 반면 리버탑 아파트도 재산세가 2.2배 늘어 61만1000원을 내야 하지만 상한제에 따라 실제로는 41만4000원만 내면 된다. 결국 두 아파트간의 재산세 부담은 지난해 3만 8000원에서 올해 5만7000원으로 더 벌어졌다. 세금 상한제가 사실상 조세형평성을 가로막은 셈이 된 것.
최형태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소장은 “세부담 상한제 도입으로 상대적으로 많은 보유세를 부담했던 납세자는 앞으로 수년간 계속 많이 내고 상대적으로 낮은 보유세를 냈던 납세자는 계속 적게 내게 된다”며 “위헌소송으로까지 번졌던 조세부담의 불공평 문제를 국민들에게 계속 감수하라고 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또 부동산을 개인 기준으로 종합해 일괄 과세하지 않고 주택과 나대지로 구분해 과세하면 형평성에 맞는 세율체계를 만들기 어려워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 한 경제전문가는 “이 경우 급격한 세부담 증가를 완화한다는 명목으로 세율체계가 복잡해지거나 종부세 도입 취지 자체를 왜곡시킬 정도로 세율이 완화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 김헌동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장은 “개편된 보유세는 겉으로는 과거보다 진일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동산 재벌들이나 투기꾼들이 온갖 빠져나갈 구멍들이 적지 않아 유명무실한 법안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을 장기적으로 선진국 수준인 1.5% 수준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정부 관리들이 생색내기식으로 보유세를 강화한 안을 내놓고도 스스로 ‘조세저항이 우려된다’며 오히려 조세저항을 유도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일부 언론은 ‘징벌적 조세’라고 공격하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정부, 건설경기 부양에 주거 안정은 뒷전
· 내수침체, 빈부격차...부동산거품이 만드는 해악들
· 대통령은 '투기와의 전쟁', 정부부처는 투기 방조?
· 정부 무지가 판교를 집값 급등의 불쏘시개로 만들어
· 재경부 3급 이상 관료 90% 부동산 부촌에 살아
· 아파트 값 빠지면 내수침체? 사실은 정반대
· 선진국 10분의 1인 보유세 10% 올린다고 아우성?
“엄중한 부동산투기 단속은 지난 1년 동안 주택가격 안정에 기여했으나 동시에 2003년 한국 국내총생산의 17퍼센트를 차지했던 건설업종의 부진의 원인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최근 한 신문이 보도한 내용의 일부다. 정부의 부동산 안정 기조가 건설업종의 장기화된 부진을 초래했다는 비판이다. 이 같은 비판은 접하기 어렵지 않다. 문제는 재정경제부나 건설교통부 등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정부 부처들도 ‘건설경기 활성화’에 목을 맨다는 사실이다. 이헌재 전 재경장관이나 강동석 전 재경장관 등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건설경기 활성화’를 부르짖어 왔다. 내수침체가 계속되고 있으니 산업 연관효과가 큰 건설경기로 침체된 내수를 자극하자는 게 건설경기 부양론의 논리인 셈이다.
이 같은 건설경기 부양론은 이 시점에서 올바른 처방일까. 앞선 기사에서 언급했지만 현재 내수 침체를 부른 핵심 요인은 단기간의 부동산 값 급등으로 부동산에 140조원 가량의 막대한 돈이 묶여 소비 긴축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의 해법은 부동산 거품을 제거해 부동산에 묶인 돈이 시중에 다시 풀려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병의 근본 치료 피하고 진통제만 놓는 격"
부동산 부채 해소 하면 경기 부양 효과 훨씬 더 커
[표] 96~2003년간 건설업 및 주택건설업의 GDP성장률 기여도.(*시민경제사회연구소 분석 자료)
한국 경제의 전반적인 상황을 보더라도 지금은 일시적 경기 부양보다는 성장잠재력을 키워야 하는 시기라는 지적이 많다. 90년대초 대통령 경제수석을 지낸 경제전문가인 민주당 김종인 의원은 현 시기를 “한국 경제의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확충해야 하는 시기”라고 진단한다. 한국은행 김태동 금융통화위원의 인식도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정부는 2000년부터 카드 빚 거품, 2001년 하반기부터 부동산 거품을 부추겨 가계가 능력 이상의 소비를 하게 해 일시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높였다는 것이 두 사람의 공통된 상황 인식. 김 의원은 최근의 부동산 거품과 관련, “정부가 건축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면서 부동산 투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며 “거품이 일어나면 꺼지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더 이상 가계에서 능력 이상의 소비를 끌어낼 수 없으니 재정 확대 등을 통해 정부가 부채를 늘리는 방법으로 경기를 자극하려 한다”며 “경기가 나쁘면 건설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하는데 과거 (개발주의 시대의)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리해보면 지금 한국 경제는 부동산 거품이 일었다가 꺼져야 하는 시기인데 정부는 이를 또 다른 거품으로 억지로 부양하려 한다는 것. 한국 경제의 구조를 개혁해야 할 시기인데 이를 과거 관 주도의 경기 부양 방식으로 억지로 끌고 가려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이처럼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론은 현 시기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또는 애써 외면한 처방인 셈이다. 물론 경기 침체기에 일정한 수준의 경기 부양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환자의 통증이 심할 때 근본 치료에 앞서 통증을 완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처방은 근본 문제에 대한 해결은 밀쳐놓은 채 경기 부양에만 매달리고 있어 자칫 문제를 더 키울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이 때문에 한 경제전문가는 “정부 정책은 병의 원인에 대한 치료를 미루면서 통증을 잊게 하는 진통제만 놓는 식의 처방”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의 부동산 시장 침체는 정부의 투기 억제 대책 때문이라기보다는 현재의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잔뜩 끼어있음을 시장이 인식했기 때문인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실거래 수요가 돌아올 때까지 거품이 빠지지 않으면 부동산시장 침체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형국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은 부동산 버블을 이용해 막대한 불로소득을 챙긴 건설업체나 투기자들이 손실을 보지 않도록 정부가 세금으로 지원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건설산업을 통한 경기 부양의 효과도 과거와 달리 그다지 크지 않다. 공공건설사업 중심의 재정확대책은 경기부양 효과가 미약하다는 것이 2001년 이후 여러 차례 추경편성 과정에서 드러났다. 경기 부양 효과는 고사하고 불요불급한 사업에 예산만 낭비했다는 비판마저 나왔다.
이웃 일본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90년대 장기 불황을 극복한다는 명목으로 14차례에 걸쳐 약 135조엔(약 1400조원)을 건설경기 부양 및 소비 촉진을 위한 대규모 재정확대책을 시행했지만, 대부분 효과를 보지 못한 채 끝났다.
이처럼 건설경기 부양책이 큰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한국의 산업구조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 건설산업 등의 전통 산업에 비해 IT 등 첨단산업으로 빠르게 산업구조가 변했는데 과거 개발주의 시대 때 각종 개발사업을 통한 경기 활성화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건설산업이 국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 이상이었으나 최근에는 17% 전후로 축소됐다. 또 각종 건설 공사는 공사를 하는 동안에만 반짝 효과가 있을 뿐 지속되기가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고용 창출 효과 면에서도 외국인 노동자와 일용직 저임금 노동자만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국내 경제 구조가 첨단산업 쪽으로 급속히 전환하고 있는데 비중이 적어지는 전통산업에 계속 돈을 퍼붓는 것은 자원 배분 측면에서도 문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무한경쟁의 시대에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은 기술혁신에 있는데 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건설 사업 등에 돈을 쓰면 첨단산업에 필요한 연구 개발 등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 시도는 정책적 효과도 미미한데다 기업 및 경제 전체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 등 중장기적인 효과는 빼고 경기 부양 효과만 따져봐도 건설 경기 부양은 정답이 아니다. 독립적인 민간 싱크탱크인 김광수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부문의 2001년 이후 부동산투기로 인한 과다부채 때문에 소비가 위축돼 매년 GDP 성장률이 최소 1% 정도 감소해왔다. 반면 건설산업이 매년 GDP성장률에 기여하는 비중을 따져보자. 시민경제사회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부동산 경기와 건설경기가 활황세를 보인 2001~2003년 동안 건설업의 GDP성장률 기여도는 0.20~0.62% 정도였다. 더구나 주택건설업의 기여도만 따져보면 0.13~0.39% 정도였다. 그나마 건설업이 가장 활황을 보였다는 시기의 기여도가 이 정도인 셈이다. 한국 경제가 굳이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를 쉽게 알 수 있는 셈이다.
건설사들 "불황" 엄살에도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
구조 개혁 필요한 건설산업, 국민 돈 들여 지탱해야 하나
[표]97~2003년 건설업체 수 및 부도율(*시민경제사회연구소 분석 자료)
더 근본적으로는 국민 세금으로 건설경기를 부양해야 할 만한 상황인가 하는 것이다. 지난해 내내 건설업체들은 “정부의 부동산 억제책으로 건설경기가 죽는다”고 주장했지만 대형건설사들의 지난해 실적을 보면 이는 ‘엄살’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난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매출 4조6460억원으로 전년 대비 9.8% 감소했지만 영업이익과 경상이익은 3160억원과 2259억원으로 전년 대비 2.9%, 188% 늘었다. 대림산업도 산업합리화 처리계획 이행각서에 따라 오는 2006년 5월까지 처리해야 할 손실분을 지난해 4분기 실적에 반영했는데도 연간 이익 규모는 크게 늘었다. 대림산업은 매출액이 4조730억원으로 전년 대비 22.4%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32.3% 증가한 3073억원을 기록했다. 또 경상이익과 순이익도 전년 대비 가각 87%, 90.3% 증가했다. 또 삼성물산 건설부문(5.4%), LG건설(16.7%), 두산산업개발(22.8%), 경남기업(25.67%) 등의 매출액도 대부분 두 자리 수 증가했다. 영업이익이나 순이익은 이보다 더 가파른 비율로 늘어난 경우가 많았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97년 3896개이던 건설업체 수는 2003년 1만2996개로 늘었다. 7년 동안 업체 수가 3배 이상 늘었지만 같은 기간 부도 업체 수는 7.47%에서 0.37%까지 줄었다. 물론 이처럼 건설업체 수가 늘어난 데에는 흔히 ‘로또 택지’라 불리는 공공택지를 수주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페이퍼 컴퍼니’가 급증한 탓이 크다. 하지만 외환위기 전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체들이 망하지 않고 있는데도 또 다시 건설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특히 대형 건설업체들이 불황이라는 데도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것은 이들 업체가 몇 년간 수주물량을 미리 확보한 측면도 있지만 여전히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실련이 지난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각 건설회사들은 아파트 건설을 통해 최소 30~40% 이상의 폭리를 취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분양가가 자율화된 가운데 집값 거품 때문에 높게 형성되는 고분양가로 엄청난 폭리를 취한 것. 하지만 이 같은 폭리는 대부분 대형 종합건설사(원청)들에게만 돌아갈 뿐 하청업체와 공사장 인부들에게는 거의 돌아가지 않는다.
실제 경기도 부천시의 한 재건축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는 목수반장인 이모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에 따르면 원청회사는 지난 해 내내 건설현장 인부들에게 건설경기를 핑계로 노임 단가를 계속 줄였다. 하지만 이 업체가 이 지역에서 짓던 재건축 아파트 세 곳은 모두 100% 분양됐다. 이런데도 원청회사는 분양가의 50~55%에 하청을 주면서 엄청난 폭리를 챙겼다고 이씨는 주장했다.
그는 “건설경기 불황이라고 하지만 종합건설사들은 여전히 엄청난 폭리를 취한다”며 “이렇게 폭리를 취하는 가운데도 하청회사의 하청 단가와 실제 공사장 목수들의 임금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양극화가 심각하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건설 공사에 돈을 풀어도 대형 건설업체만 배 불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씨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현재처럼 건설산업의 복잡한 유통구조 등 후진적인 건설산업 구조와 산업내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건설경기 부양은 대형 건설업체의 배만 계속 불리게 될 공산이 크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국제적 경쟁력을 상실한 건설업체들은 선분양제와 분양가 자율화 등 공급자 특혜제도 아래 ‘땅값 차익’을 통한 손쉬운 돈벌이에만 골몰해 있는 상황. 또한 복잡한 하청과 재하청 구조 아래에서 실제로는 분양가의 3분의 2도 안 되는 원가로 저품질 시공을 하고 있는 게 실상이다.
경실련 김헌동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장은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퇴출당해야 할 기업들이 최근의 부동산 거품에 편승해 시장질서를 어지럽히고 분양가를 뻥튀기해 국민들의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며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 정책은 구조조정이 필요한 현재 건설산업 구조를 국민 부담으로 그대로 온존시키는 역할만 한다”고 비난했다.
건설경기 부양론에 주택 가격 안정 목표 희생 다반사
"건설업체보다 국민들 목소리 정책에 반영해야"
노무현 대통령이 2월 25일 국회 연설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이 같은 건설경기 부양론이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목표를 희생하면서 진행되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라는 점이다. 심지어 건설경기 부양을 위해 부동산 투기까지 부추겼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정도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는 경기 부양을 명목으로 분양권 전매제한을 완화하는 등 각종 부동산 규제를 완화해 사실상 부동산 거품을 통해 일시적 경제 성장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까지 내세우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건교부 등 실무 부처의 정책들은 이 같은 틀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건교부와 재경부의 수장들이 번갈아 가며 건설경기 부양론을 언급해 올초 부동산 값을 다시 들썩이게 만든 것도 이 같은 비판을 받는다.
김헌동 본부장은 “건교부는 국민들의 주거 안정은 뒷전인 채 건설업체의 미분양 아파트 물량 증가를 수시로 걱정하고 이헌재 전 재경장관은 올초 부동산 값이 뛰는 것을 경기 회복의 신호로 보고 반기기도 했다”며 “이들 정부 부처들이 국민 대다수를 위한 부처인지, 일부 건설업체들을 위한 정부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꼬집었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 박주현 소장은 “주택정책의 목표는 주택가격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한도 안에서 고용창출이 이뤄지고 건설산업의 수익성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며 “하지만 현재 경제 부처는 이 세 가지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거나 어떨 때는 경기 부양을 위해 주택가격 안정을 희생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설업계는 광고주로서, 정치자금 공급원으로서 언론과 정치권에 큰 영향력을 가진 집단”이라며 “이 때문에 실제로는 3순위인 건설산업의 수익성이라는 목표가 주택정책의 우선순위가 돼 오히려 주택가격 안정이 훼손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정부는 건설산업의 낭비요인을 제거하고 구조조정해 체질을 강화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데도 건설업계의 수익을 보장하는 것에 치우쳤다”며 “일반 국민들의 목소리가 정부 정책에 우선적으로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공공임대주택은 무늬만 공공임대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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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논란이 된 경기도 화성 동탄지구 3차 동시분양 임대아파트의 사례는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임대주택 정책이 얼마나 허구적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동탄 3차의 30~35평형 일반 분양아파트의 평당 분양가는 740~760만원. 그런데 31~35평형 임대아파트의 분양가도 평당 720~740만원선이었다. 이들 임대아파트는 5년 임대 후 분양 아파트로 전환할 수 있는 아파트들. 임대아파트 건설업체들은 청약자들이 두 가지 방식으로 계약할 수 있게 했다. 하나는 보증금과 임대료를 8대 2로 책정한 임대 방식으로 계약하든지, 아니면 2년 6개월 후 분양전환 시 추가부담 없이 청약 단계에서 분양가로 낼 수 있도록 한 것. 2년 6개월 후부터 주민들과 협의 아래 분양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 사실상 편법으로 일반 분양아파트처럼 분양한 것이다.
문제는 이들 임대아파트가 저렴한 임대아파트를 공급한다는 취지로 국민 혈세로 조성한 공공택지를 원가 이하로 싸게 분양받은 경우라는 점. 토지공사 자료에 따르면 3차 분양에 참여한 일반 분양 아파트 용지의 평당 가격은 339만원(분양평당 181만원), 임대아파트 용지의 택지가격은 평당 221만원(분양평당 155만원). 임대아파트들은 일반분양아파트에 비해 평당 118만원이나 싼 가격에 택지를 분양 받은 셈이다. 정부가 무주택 서민들의 주택난 해결을 위해 저렴한 임대아파트를 공급한다는 취지로 택지 조성원가(평당 268만원)보다 낮게 공급한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임대아파트 건설업체들은 일반분양아파트와 비슷한 수준의 ‘사실상 분양가’를 책정,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으려 한 것이다. 경실련은 3차 분양에 참여한 문제의 4개 임대아파트 건설업체들이 올리게 될 차익이 2366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국민의 혈세를 들여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택지공급을 했지만 결국 민간건설업체들의 배만 불린 셈이다.
이 같은 사례는 도드라지는 경우지만 지금껏 정부의 임대주택 정책을 보면 과연 서민을 위한 주택정책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구체적으로 보자.
"5년 임대아파트는 사실상 후분양제 아파트"
공공성 없는 민간임대주택에 각종 세제 혜택
[표]화성 동탄 3차 일반분양과 임대분양의 분양가 비교. (*경실련 분석자료)
▲무늬만 공공임대주택, 사실은 후분양제 아파트=“공공임대주택은 공공임대주택이 아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무슨 말일까 어리둥절할 것이다. 사실 논리적으로만 따지면 앞의 표현은 틀린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국내 ‘공공임대주택’의 현실을 살펴보면 앞의 진술은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임대주택에는 정부나 지자체 등 공공이 소유하면서 임대하는 것이 있고, 민간이 소유하면서 임대하는 것이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그 가운데 민간이 5년간 임대하다가 일반분양하는 주택도 공공의 영역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들 주택은 정부가 개발한 택지를 원가 이하로 싸게 공급받고 국민주택기금을 저리로 빌리고 각종 세제혜택을 받는다. 이들 주택은 법적으로 ‘공공임대주택’이어서 각종 혜택을 받는 셈이다. 대신, 전용면적 60평방미터(대강 25평형) 이하인 경우 임대료나 차후 분양가 규제를 받게 돼 있다. 하지만 이들 주택의 경우에도 25평형 이상 35평형(임대주택 평형 상한)까지는 임대료나 차후 분양가의 제한조차 받지 않는다.
이 같은 소위 ‘공공임대주택’은 입주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2년 6개월만에 분양할 수 있어서 사실상 후분양아파트라는 게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이 경우 건설업자가 2년반 동안 입주자에게 융자를 해주고 임대료를 저렴하게 해준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후분양아파트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소유하면서 저렴하게 임대하는 주택을 공공임대주택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공공임대주택’이라는 명칭을 5년 후 분양하는, 사실상의 후분양 아파트에게 빼앗긴 상태인 셈. 반면 진정한 의미의 공공임대주택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임대주택, 영구임대주택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도 “사실상 후분양 아파트인 5년 임대아파트를 공공임대주택이라고 하면 사실 기만적인 표현”이라며 “살러 들어오는 사람들도 집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생각하지 임대아파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진짜' 공공임대주택 전체의 2.4% 수준...OECD국가 중 최하위
4가구 중 한 가구 꼴로 최저 주거기준에 못 미쳐
[표] 국내 공공 분야 임대주택 현황(*건교부 자료, 2003년말 기준)
▲진짜 공공임대주택, 전체 주택의 3%도 안돼=문제는 진정한 공공임대주택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임대주택과 영구임대주택 등 10년 이상 장기 임대주택의 비율이 미미해 사실상 서민 주거안정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건교부 자료에 따르면 2003년말 현재 영구임대 19만77호, 50년임대 9만2730호, 국민임대 2만862호로 30만여 가구에 불과하다. 이는 2003년말 기준 전체 주택재고 1267만호의 불과 2.4% 수준에 불과하다. 전체 민간임대 주택 650만호와 비교해도 채 5%도 안 되는 수준인 셈이다. 전체 임대주택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5년 임대주택 64만31호를 합쳐도 전체 주택 재고의 8%도 채 안 된다.
이는 공영 임대주택 비율이 41%인 네덜란드는 고사하고 20%인 영국이나 16%인 프랑스 등에도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낮은 비율이다. 이는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 수준으로 우리나라가 ‘주거복지의 빈사상태’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경실련 분석에 따르면 95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10년간 모두 535만호의 주택이 건설됐으나 장기임대아파트는 19만호 정도만 공급됐다. 전체 주택 공급의 3.5%에 불과한 수치다.
더구나 노태우 정권 이후에는 민간만이 임대아파트 건설을 담당해 영구 또는 50년 이상 장기 공공임대아파트는 전혀 건설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98년부터 국민임대라는 새로운 명칭의 장기임대주택이 건설되고 있을 뿐이다.
경실련 김성달 간사는 “이는 공공택지에서조차 대부분 판매용 택지를 민간에게 공급하고 최소한으로 공급된 임대주택조차 사실상 무늬만 임대주택인 5년 임대주택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빚어진 기막힌 현실”이라며 “진정한 의미의 공공임대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수요가 없어서 공공이 이를 공급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실태는 눈물겨울 정도로 열악해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수요는 차고 넘친다. 실제로 지난달 한국개발연구원이 발표한 ‘주택금융 및 저소득층 주거지원정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가구(1431만 가구) 가운데 23.4%인 334만 가구가 면적 및 시설 등이 최저 기준에 못 미치는 집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 주거기준은 4인 가족 기준 면적이 11.2평보다 좁고, 시설 면에서 전용 입식부엌과 수세식 화장실, 목욕시설을 갖추지 못한 경우다.
또한 이제야 입주 기준으로 2만호 정도 공급된 국민임대아파트의 경우 서울에서만 대기자가 2만5000여명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주택 짓는다던 택지지구에 다시 분양아파트 대량 공급
"서민을 위한 주택정책 찾아보기 힘들어"
정부가 판교를 공영개발해 영구임대주택 비율을 늘리라는 요구가 높다. 사진은 판교택지 개발지구 주변에 들어선 부동산 중개업소들.[사진제공=연합뉴스]
▲정부 공공임대주택 확보 의지 있나=건교부가 지난해 수립한 주택종합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12년까지 국민임대 100만호, 공공건설임대 50만호 등 모두 150만호의 임대아파틀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정부가 이 같은 목표만 세웠을 뿐 진정으로 실제로는 달성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정부는 현 정부 출범 2년동안 국민임대 주택 16만 3000호를 착공했다고 밝히고 있다. 2년동안 목표치가 18만호였으므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목표치의 90% 가량은 달성한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올해부터다. 정부의 목표치를 채우려면 정부는 올해부터 2012년까지 매년 10만호 이상 공급해야 한다. 판교신도시의 주택 공급수가 2만7000가구 정도 되므로 매년 판교신도시 3~4배의 택지가 필요한 셈이다. 하지만 건교부는 국민임대주택을 짓겠다며 그린벨트지역을 해제해 조성한 고양 삼송과 남양주 별내 지구의 국민임대주택 공급 비율을 대폭 낮출 방침이다. 판교발 집값 폭등을 막겠다며 이들 택지지구를 판교급 신도시로 개발하겠다고 하면서 일반 분양 아파트를 대폭 늘리겠다고 한 것. 정부의 공급 일변도 정책으로는 오히려 집값 폭등만 부를 뿐이라는 사실을 앞선 기사에서 지적했지만 임대주택정책 측면에서 봐도 이번 정부 조치는 명백한 후퇴인 셈이다. 특히나 주택 공급 물량 측면에서 볼 때 분양아파트나 임대아파트나 전혀 차이가 없는데도 '부동산 투기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엉뚱하게 임대주택정책을 후퇴시킨 것이다. 한 부동산정책 전문가는 "현재 주택보급률은 100%를 달성했는데도 자가보유율이 낮은 것은 주택 다가구 소유자가 많은 반면 서민들은 집을 못 산다는 의미"라며 "정부 발표 이후 고양 삼송 등의 부동산 값이 뛰는 현상에서 보듯 부동산 투기만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판교신도시에서도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대폭 늘리자는 시민단체 등의 요구에 ‘민간 건설시장을 위축시킨다’며 반대의 뜻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인천 송도신도시의 경우 수익성 위주로 공공택지를 관리하다 보니 정해진 임대아파트 목표량이 채워지지 않자 분양아파트 용지로 용도를 전환하도록 방치하기도 했다.
경실련 김헌동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장은“역대 정부는 지난 20년 동안 모두가 공공임대주택 대폭 확충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아파트는 1년간 주택건설 물량도 안 된다”며 “건교부의 주택정책이 서민주거 안정을 이루기보다는 투기꾼과 건설업체들에게 유리한 주택정책으로 일관해왔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을 보면 다가구 주택을 보유한 사람들을 임대사업자로 전환한다는 명분으로 각종 세제 혜택을 주는 등의 정책이 서민 주거안정과 주택가격 안정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며 “주택 수요자인 서민을 위한 제대로 된 주택정책은 단 한 건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서민 위한다는 임대정책, 건설업계와 집부자에만 혜택
부동산공화국을 고발한다
· 내수침체, 빈부격차...부동산거품이 만드는 해악들
· 대통령은 '투기와의 전쟁', 정부부처는 투기 방조?
· 정부 무지가 판교를 집값 급등의 불쏘시개로 만들어
· 재경부 3급 이상 관료 90% 부동산 부촌에 살아
· 아파트 값 빠지면 내수침체? 사실은 정반대
· 선진국 10분의 1인 보유세 10% 올린다고 아우성?
· 정부, 건설경기 부양에 주거 안정은 뒷전
· 국내 '공공임대주택'은 공공임대주택이 아니다?
· 서민 위한다는 임대주택, 건설업체와 집부자에만 혜택
· "판교 공영개발하면 1석5조 효과"
· 건교부 공영개발반대, 설득력 없는 6가지 이유
· 집값 거품 떠받치는 건설 5각 구조 해부
저희도 부영아파트(32평) 삽니다. 요즘 여기 임대 가격은 일반 분양아파트 전세금보다 훨씬 비쌉니다. 저희 집을 예로 들 경우 보증금 6600만원에 월 12만6000원인데 바로 맞은편 분양 아파트 전세금은 5,500~6,000만원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냐면, 부영아파트의 경우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일 년에 5%씩 인상된다는 분명한 원칙아래 서민들이 죽든지 살든지 경기를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팔짱만 끼고 있는 김해시!!! 정말 답답합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공공임대주택, 절!대!로! 서민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업자의 이익을 극대화시켜주기 위한 정책일 뿐입니다. (다이름 ‘Rachel'님 글)
우리나라는 왜 이럴까? 서민들을 위해 20평 아파트도 중도에 임대사업자에게 분양하고 서민이 5년 후에 분양 받을 수 있는 권한도 중도에 가로채고. 일반적으로 5년 뒤에 분양 받으면 되는 데 2년 6개월 후에 분양 받으라 하면서 (돈이 없으면) 은행 융자를 받으라 하면 2년 6개월 동안 이자는 누가 주는데. 말로만 서민을 위한 임대아파트라 하고 정부 공사와 건설업체, 돈 있는 임대사업자들의 배만 부르게 하는 정책. 정말 지겨운 세상, 정부다.(다음이름 ‘일본은 가라’님 글)
2일 미디어다음 ‘부동산공화국’ 토론방에 올라온 글이다. 이들 글은 현재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이라고 규정하는 5년 임대아파트가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공익적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건설업체가 매년 5%씩 임대료를 올려 주변 일반 분양아파트의 전세금보다 더 높아진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의무 임대기간의 절반인 2년 6개월만 지나면 주민과의 협의 아래 분양으로 조기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 사실상 후분양 아파트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공공임대주택은 실제로 저소득층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한다는 취지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주택시장 분석과 정책과제 연구’ 보고서도 “5년 임대주택은 임대기간이 짧은데다 임대의무 기간의 2분의 1인 2년 6개월 후 분양 전환이 가능해 임대주택으로서 역할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10년 임대주택 보증금, 임대료가 주변 전세 시세와 같아
[표]용인 구갈지구의 민간 월세와 10년 임대주택 표준보증금,임대료 비교. 10년 임대주택의 보증금과 임대료 수준이 일반 전세와 거의 차이가 업다.
정부가 5년 임대주택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도입한 10년 장기임대주택도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현재 공급되는 10년 임대주택의 표준임대보증금과 임대료만 봐도 그렇다. 건교부가 지난해 4월 고시한 내용에 따르면 경기도 용인 구갈지역 전용 18평(약 24평)의 경우 임대보증금은 2187만원, 월 임대료는 38만원 수준이다. 건교부는 “이는 상한선이므로 사업자가 실제 공급할 때에는 임대수요, 주변 임대료 시세 및 입주자 편의 등을 고려해 지구별로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건설업체들이 정부의 이 같은 표준안을 기준으로 가격을 정할 것은 빤한 이치.
문제는 이 같은 표준임대보증금과 임대료는 용인 구갈 지대의 전세 보증금과 같은 수준이다. 한 부동산정보 사이트를 통해 용인 구갈지구의 임대료를 확인한 결과, 비슷한 평형의 아파트 월세가 보증금 3000만원에 30만원이었다. 정부의 표준임대료보다 보증금 액수는 800여만원 더 비싸지만 월 임대료는 오히려 더 싼 셈이다. 800만원에 대한 월 1%의 이자를 붙여 일반 아파트 월세를 다시 계산해보면 보증금 2200만원에 월 38만원 수준으로 똑같은 셈이다. 오히려 800만원의 목돈만 있다면 일반아파트의 전세를 드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2년마다 한 번씩 계약 하는 전세와 달리 10년간 한 곳에 살 수 있다는 안정성 측면의 장점은 있다. 하지만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임대아파트의 취지를 충분히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공성 없는 민간 임대주택 건설, 매입에 엄청난 혜택
"부동산 투기에 악용되는 경우 많아"
▲민간 임대사업자에도 각종 혜택 지원=문제는 정부가 민간사업자가 수익을 위해 시행하는 임대주택 사업 등에도 각종 혜택을 주고 있다는 것.
현재 전용면적 85평방미터 (약 35평형) 이하 주택을 두 채 이상 건설하거나 두 채 이상 매입하여 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하고 3년 혹은 5년, 혹은 10년간 임대를 하기만 하면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가 감면된다. 또 종합토지세는 분리 과세되며, 양도소득세 중과가 배제되고 법인세특별부가세도 면제된다. 임대료의 제한이나 한 사람에 대한 임대의무기간 강제도 없으며 그 기간 중에 팔지만 않았으면 된다. 또 외환위기 직후 일정한 기간에 집을 산 경우에는 양도소득세 자체가 감면돼 이 제도를 이용, 상당한 혜택을 본 부동산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부동산 투기든, 투자 목적이든 1가구 다주택자인 경우 자신이 사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 한 채 이상은 임대를 하는 게 보통. 따라서 전용면적 85평방미터 이하의 주택을 두 채 이상 무제한 구입해서 일정기간 팔지만 않으면 1가구 다주택 중과세는커녕 오히려 1가구 1주택보다 더 많은 각종 세제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부동산 중개업자 남모씨(42)는 “부동산 붐이 일었던 2001년, 2002년 무렵에 집을 여러 채 사들인 뒤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중과세를 피해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일부에서는 정부가 일부러 이런 사람들을 위해 만든 규정 아니냐는 말까지 오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 공공성 줄이고 건설업체 혜택 늘려
"국민임대주택 건설 늘리면 되지 왜 건설업체 혜택주나"
31일 건교부 차관 주재로 임대주택정책 검토위원회를 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임대주택정책은 민간의 임대주택시장 참여를 더욱 강화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사진제공=연합뉴스]
▲정부, 임대주택 세제 혜택 더욱 확대=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31일 임대주택 활성화를 명분으로 민간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혜택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집을 지어 임대하는 건설임대 아파트의 범위를 전용 면적 25.7평에서 45평( 약 55평)으로 확대했다. 건설 임대의 경우 5년간 두 채 이상 임대하면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과 1가구 3주택 양도세 중과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한 것.
집을 사들여 임대하는 이른바 ‘매입 임대주택’에 대해서도 국민주택(전용면적 25.7평) 규모로 5채 이상 10년 이상 임대하는 경우에 종부세 합산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했다.
건교부는 지난해 11월 ‘임대주택사업 활성화방안’ 보고서에서 △‘임대주택=소형=열등재’ 라는 부정적 인식 만연 △전세제도와의 경쟁관계로 인하여 민간참여를 유도할만한 수익 창출 곤란 △자본회수기간의 장기화로 분양주택에 비해 큰 사업위험 등을 임대주택 사업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건교부는 이 보고서에서 이미 임대주택을 활성화하기 위해 ‘과감한 세제지원과 택지지원, 금융지원 강화 등으로 수익성을 제고해 민간자본의 임대주택시장 참여’를 유도한다고 제시했다. 한 마디로 민간 참여를 늘리기 위해 혜택을 대폭 늘려주겠다고 공언한 셈이다.
경실련 김헌동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본부장도 “지금 현실을 보면 임대주택 건설을 위해 공공택지 등을 헐값에 줬지만 거기서 생긴 개발이익은 무주택 서민이 아닌 건설업체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며 “공영개발을 통해 장기임대나 영구임대주택을 지으면 될 것을 정부는 민간에 갖은 혜택을 주면서 임대주택시장을 활성화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정부 임대주택 지원이 집값 상승 부추겨
"종합부동산세 무력화하는 수단 될 수도"
▲정부 매입임대주택 지원, 집값 상승 부추겨=정부는 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지 않으면 수급법칙에 의해 주택가격이 재상승할 우려가 있으므로 민간에 의한 주택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간임대주택사업자에 대해 각종 혜택을 주면 계속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부풀어 있는 집값을 더욱 올려놓을 수도 있다. 정부가 스스로 수요를 촉진하면서 공급이 부족하니 다시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식의 순환식 논리로 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매입임대주택 숫자는 2003년말 기준 15만호인데, 그만큼 중소평형의 주택수요가 불필요하게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2000년 정부가 취한 임대주택사업자에 대한 각종 지원 조치가 집값 상승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시 저금리 상황에서 주택 소유자들이 임대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월세로 돌렸다. 그런데 정부가 월세임대에 대해 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하면 세제혜택을 주자 월세 비중이 급상승했다. 이 때문에 전세물이 급감하면서 전세값이 폭등했다. 이렇게 되자 전세값과 집값의 차이가 줄어들자 세입자들이 ‘아예 좀 더 보태 집을 사겠다’는 생각으로 주택 매입에 나서 집값이 폭등하는 한 원인이 됐던 것. 실제로 최근 KDI의 연구보고서도 이러한 수요창출(또는 공급 흡수)로 인해 중소평형의 가격 이 제도 도입 이후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의 이번 확대 조치는 갓 도입된 종합부동산세를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준 것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박주현 소장은 “한쪽에서는 수요억제를 위해서 종합부동산세를 만드느라 사회주의논쟁까지 치르면서 난리를 피웠는데 한쪽에서는 이들에게 태연하게 빠져나갈 문을 열어주고 있다”며 “정부의 이번 조치는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수요억제책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김남근 변호사도 “종합부동산세 면제 대상 범위를 확대할 경우 1가구 다주택 소유자에게 종부세를 피해갈 수 있는 출구가 만들어져 어렵게 도입한 종부세를 무력화하는 수단이 된다”고 우려했다.
민간 자본을 연기금 등 공적 자본과 똑같이 취급
[표] 화성동탄 임대아파트와 서울시 도시개발공사의 임대아파트 비교. 정부나 지자체가 공영개발하면 훨씬 저렴한 임대주택 공급이 가능하다.
▲연기금과 민간자본이 똑같은 지원대상?=정부가 31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향후 중형 임대주택 건설을 위한 공공택지 공급가격을 감정가 이하로 낮추고 임대주택 사업에 참여하는 연기금·보험사·사모펀드·부동산펀드 등 재무 투자자들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을 마련했다. 공공기금인 연기금과 사모펀드, 부동산펀드 등 민간 자본을 동일한 선상에 올려놓고 지원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연기금이 참여하는 경우 공영개발이 되지만 부동산펀드, 사모펀드 등 민간자본이 참여하는 경우 민영개발인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완전히 다른 두 성격의 자본을 똑같은 지원대상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박주현 소장은 “서민주거안정을 위한 근본적인 임대정책이란, 서민들에게 임대료를 싸게 줄 의무도 없고, 임대기간을 2년보다 늘려줄 의무도 없는 민간임대주택사업자에게 불필요한 세제혜택을 주는 것이나, 공공성이 취약한 소위 공공임대주택을 위해 민간건설업자에게 택지개발이익을 안겨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민간과 공공 영역이 무분별하게 뒤섞여 있는 임대주택정책을 을 바로잡아 공공영역이 공익성에 맞게 제대로 목표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판교 공영개발하면 1석5조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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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격 안정과 서민주거 생활 안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의 땅을 강제 수용한다---->토공과 주공 등이 나서 공공택지로 조성한다----->시세의 절반 가격에 민간건설업체에 공공택지를 분양한다----->아파트를 짓기도 전에 분양하는 선분양 제도와 분양가 자율화 체제 아래 민간건설업체들이 주변 시세에 맞춰 높은 분양가를 책정한다--->높게 책정된 분양가 때문에 주변 시세가 다시 뛰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최근 몇 년 동안 공공택지에서 주택이 공급돼온 방식을 설명한 도식이다. 과정을 단순화한 무리가 있지만 큰 틀에서 볼 때 용인 동백, 화성 동탄, 파주 교하 등 최근 수도권 공공택지의 주택들이 다 이런 식으로 공급돼 왔다.
이 과정을 잘 보면 그 동안 공공택지 개발 방식에 큰 문제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주택난 해소와 부동산 투기 억제, 서민주거 안정 등을 명목으로 제정된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라 정부가 토지를 강제 수용하지만 결국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기는커녕 집값 폭등만 부르고 있는 구조인 셈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개발차익은 건설업체들의 배만 불리는데 사용됐다. 경실련에 따르면 민간건설업체들이 수도권 공공택지에서만 2000년 이후 모두 7조원의 개발이익을 챙긴 것으로 분석됐다. 제대로 공영개발을 했더라면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올 혜택이 소수 민간건설업체들에게 돌아간 셈이다.
건교부, 지난해까지 건설업체 앉아서 돈 버는 '로또택지' 방치
지난해 건설 중인 경기도 용인 동백지구의 건설현장.많은 공공택지가 건설업체의 배만 불려주는 '로또택지'로 전락했었다. ⓒ미디어다음 정재윤
기존 공공택지 활용 방식의 문제점=이 과정에서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소위 '로또 택지'다. 이는 건설업체들만 공공택지를 시세의 절반 이하 가격에 독점 공급받을 수 있는 특혜에서 비롯된 것. 토공은 앞서 말한 택지개발촉진법의 취지에 따라 토지를 강제 수용해 택지를 싸게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택지분양제도는 과거 정부가 분양가를 규제하면서 건설업체에게 싼 값에 택지를 공급하는 대신 분양가를 낮추게 해 개발 이익이 국민에게 돌아가도록 한다는 전제에서 도입된 제도다.
그런데 정부는 98년 2월부터 분양가를 자율화하면서도 공공택지는 건설업체 가운데 추첨해 공급했다. 이 같은 택지는 보통 시세의 30~40%가량에 불과해 택지를 공급받으면 건설회사들은 그 자리에서 수백~수천억원을 벌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이들 택지를 가리켜 ‘로또 택지’라는 말까지 나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토공은 수도권의 경우 택지를 평당 300만원 선에 분양한다. 이렇게 택지를 분양 받은 시행사는 이 택지를 평당 700~800만원선에 다른 건설업체에 넘기거나 시공사에 하도급을 주고 분양만 대행한다. 하지만 건설업체는 이렇게 택지를 싸게 분양받고도 분양가를 주변 아파트 시세 수준에 맞추는 경우가 많아 결국 땅값만으로 엄청난 차익을 보게 되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거의 모든 주택건설업체들이 로또 택지를 서로 분양받기 위해 일종의 유령 회사인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를 경쟁적으로 만들어 택지 분양 추첨에 참가한다. 한국주택협회에 따르면 98년 1200여개사에 불과하던 주택건설업체 수는 2003년 9000여개로 늘었다. 1년에 1600개사가 늘어난 꼴이다. 그런데 이들 업체 가운데 60%이상이 아파트 공사 실적이 하나도 없는 업체들이다. 건설사들이 택지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만든 유령회사들이기 때문이다. 상당수 대형 건설사들이 지역별로 두세 개씩, 수십 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거느리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렇게 ‘로또 택지’를 먹으려는 페이퍼 컴퍼니가 늘다보니 2003년 공급된 경기 고양 풍동택지지궁의 택지 공개청약경쟁률은 186대 1까지 치솟기도 했다.
공공택지를 분양받은 건설업체는 시행사가 돼 시공사 선정 시 공공연히 개발이익 보장을 요구하기도 한다. 입찰을 통해 최고의 개발이익을 보장해주는 업체에 시공을 맡기는 것. 사실상 땅을 파는 것인데도 형식적으로는 시행사가 시공을 맡기는 형식이므로 양도소득세는 전혀 물지 않는다. 이 같은 개발이익은 보통 수백억원 대에 이른다. 이 같은 실태는 지난해 화성 동탄지구에서 택지를 수의계약으로 헐값에 공급받은 (주)명신이 웃돈 400억원을 얹어 다른 건설업체들에게 팔았던 사건에서 이미 사실로 드러난 바 있다. 이렇게 시행사의 개발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시공사는 분양가 책정시 시행사 이익을 포함시키는 건 당연하다. 이 같은 ‘유통 마진’의 증가는 최소 10~20% 분양가 인상 내지 아파트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한 전직 건설업계 간부는 이에 대해 “땅 값 안정을 위해 개발하는 공공택지의 개발 이익을 ‘재수 좋은’ 건설업체들이 불로소득으로 챙기는 꼴”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판교 개발방식은 땜질식 처방일 뿐
판교 개발방식도 집값 안정에 기여 못해=이 같은 공공택지 개발이익의 사유화가 문제되자 정부는 판교개발지구에 대해 원가연동제(전용면적 25.7평 이하)와 채권분양가 병행입찰제(25.7평 이상)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는 민간건설업체에 돌아가던 개발이익을 최초 분양당첨자에게 나눠주거나(원가연동제) 공공이 개발이익의 일부를 환수하는 방식(채권분양가 병행입찰제)일 뿐 집값 안정이나 서민 주거난 해소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최근 분당과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판교발 집값 폭등 움직임이 확산되는 조짐이 보이는 것만 봐도 이는 명백하다. 판교신도시의 평당 분양가가 900만원(원가연동제 적용 대상)과 1500만원대(중대형 아파트) 이상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봐도 판교신도시 개발방식은 결코 집값 안정에 기여하지 못하는 셈이다.
경실련은 최근 판교신도시 개발이익 규모 산정을 통해 토공, 주공 등 공공영역 10조원을 포함, 민간건설업체, 최초 분양자 등이 가져가는 개발이익 규모가 16조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물론, 정부는 이 과정에서 공공부문이 가져가는 이익규모가 경실련 주장과 달리 1000억원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실제로 기자의 취재 결과 공공부문이 가져가는 이익규모는 2조~4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총 개발이익 규모에서는 건교부가 뒤늦게 밝힌 간접비 2조원 가량을 뺀 14조1000억원 규모여서 공공부문이 가져가는 이익이 적다면 그만큼 건설업체가 폭리를 취하게 되는 셈이어서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여기에 더해 건교부는 원가연동제의 실시로 건설업계의 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자 지난달 9일자로 기본형 건축비를 평당 339만~423만원까지 대폭 올렸다. 당초 223만원이던 표준건축비를 지난해 9월 다시 288만원으로 25.3%나 올린 데 이어 다시 20~50%가량 대폭 올린 셈이다. 하지만 이처럼 건축비를 올리는 근거를 제시하지도 못했다. 실제로 각종 공사현장에서 17년가량 일해온 한 전문 건축가는 "건설업계가 철근 값 등 원자재 값이 폭등했다고는 하지만 표준건축비를 이처럼 대폭 올릴 근거는 못 된다"며 "사실 평당 건축비는 200만원 안에서 소화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지만 건설업계는 판교 아파트 시공 과정에서 건축비에서만 분양 평당 200만원의 차익을 올리는 셈이다.
판교 공영개발하면 집값 안정, 투기 방직, 연기금 안정적 운용
판교를 공영개발하면 1석 5조 효과=이 때문에 경실련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시민사회연구소와 같은 공익적 싱크탱크는 현행 공공택지 공급 및 개발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공영개발을 대안으로 내고 있다. 즉, 토공이 택지 조성을 한 뒤 주공이 시행사 역할을 맡아 아파트 분양까지 관리, 감독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반분양아파트와 장기 공공임대아파트의 비율에서는 단체마다 주장이 조금씩 다르지만 현행 정부안보다 장기 공공임대아파트의 비율이 대폭 늘어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경실련 등의 주장에 따라 판교를 공영개발한다면 어떤 효과가 발생할까. 정부는 지난 30일 판교신도시의 가구수를 당초 계획보다 2900여 가구 줄이겠다고 밝혀 정밀한 추정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난해말 경실련이 판교를 공영개발할 경우 발생하는 효과를 추정한 내용을 살펴보면 판교 공영개발로 인한 긍정적 효과가 어떨지는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경실련은 지난해 12월 당초 정부 계획에 따라 판교에서 공급되는 아파트 수를 2만5182가구로 잡고 공영개발했을 경우에 발생하는 분양원가 절감 효과 등을 추산한 바 있다. 이 추산 결과에 따르면 판교를 공영개발할 경우 민영개발 후 시세대로 분양할 경우보다 아파트 분양원가에서 모두 6조 3778억원(62%) 이상의 가격 거품을 뺄 수 있다는 것. 분양 면적당 택지비용 235만원과 건축비용 288만원(당시 건교부 고시 표준건축비)을 합해 평당 523만원의 비용으로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실련 김헌동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본부장은 "공공택지를 건설업체에게 팔지 말고 토공이 개발하고 주공이 직접 시행사가 돼 민간건설업체가 아파트를 시공하게 해 분양하면 아무리 높게 잡아도 평당 650만원 선에서 분양할 수 있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방식보다 대형 평형은 절반, 중소형은 30~40% 싸게 분양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각종 연기금 등을 활용해 20년 이상 장기임대아파트를 건설할 경우 20년간 6조829억원의 안정적인 수익도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이 처럼 공영개발 아파트를 무주택 서민 등 저소득층과 중산층 등에 임대하면 5년 동안 125만호의 공공소유주택을 확보해 현재 3.4% 수준인 장기임대주택 비율을 선진국 수준인 20% 정도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집값 안정과 부동산 투기 방지, 국민연금의 안정적 운용이라는 세 가지 공익을 달성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방안이라는 것.
일부에서는 공영개발을 하더라도 그렇게 싸게 공급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갖기도 한다.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참좋은 건설'이 울산 남구 선암동에 건설하는 390여가구의 아파트를 평당 498만원에 분양할 계획이어서 경실련의 주장이 터무니 없는 주장이 아님을 입증해준다. 참좋은 건설의 평당 분양가는 인근 다른 업체들의 평당 분양가 730만~780만원보다 230만~280만원 가량 싼 가격. 이렇게 평당 분양가를 낮추고도 충분히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이 업체의 전망이다. 수도권인 판교의 택지조성비가 울산보다는 비싸겠지만 공영개발을 할 경우 적어도 현재 방식보다는 훨씬 더 싸게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공공택지 개발 취지에 맞게 공영개발해야"
화성 동탄의 '5년 임대주택'과 서울 SH공사의 임대아파트 보증금, 임대료 비교. 공영개발할 경우 훨씬 저렴하게 양질의 집을 공급할 수 있다.
공영개발해 영구임대주택 공급시 효과=이처럼 공영개발을 통해 저렴한 가격에 대규모로 장기임대아파트 또는 영구임대아파트를 공급하면 어떤 효과가 발생할까. 우선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집값 안정이다.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분양아파트와 임대아파트가 대량으로 지속적으로 공급된다고 할 때 집값이 큰 폭으로 떨어질 것은 자명한 이치다.
하지만 민간 싱크탱크인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영개발을 통한 장기 임대(또는 영구) 아파트의 대량공급 효과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선 국내 인구가 급속히 노령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장년층 이후 세대가 임대주택에 입주하면 여유 있는 노후 소비생활이 가능해져 내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또 노후세대의 경제적 자립이 가능해지면 복지 비용 부담도 줄어 재정건전화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주택마련 자금 부담이 줄어든 만큼 돈이 증권 및 기업투자로 흘러가 경제구조가 부동산투기 중심의 자산경제에서 기업 경영 활동 중심의 생산경제로 바뀌어 경제구조가 건전화된다. 투기에 의한 불로소득자가 사라져 사회 계층간 갈등 해소에도 커다란 도움이 된다.
실제로 공영개발을 할 경우 어떤 효과가 있을 지 단초를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생겼다. 서울 SH공사(구 도시개발공사)가 6월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공급할 예정인 50년 공공임대아파트의 예를 보자. 이곳의 임대보증금을 모두 전세로 할 경우 33평형은 1억4222만원(평당 430만원), 24평형은 8987만원으로 주변 전세가에 비해 20~30%이상 저렴하다. 입주자가 원한다면 50년동안 살 수 있으므로 주거 안정성이 자가 주택과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해 주변 매매가와 비교하면 훨씬 더 싸다. 주변 기존 아파트 시세는 평당 1000만~1100만원 안팎. 단지와 붙어 있는 동부센트레빌(2003년 입주) 31평형 매매가는 3억7000만~3억8000만원선이다. 단지 건너편 경남아파트(98년 입주) 32평형은 3억~3억1000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실제로 아파트의 품질도 일반 분양아파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서울시와 시공사인 '두산산업개발'측의 주장이다. 경실련은 SH공사의 임대아파트의 분양가도 더 낮출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의 아파트만 대량 공급되더라도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예측이 틀리지 않을 것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공영개발을 통해 주택을 공급해온 싱가폴의 경우는 공영개발을 할 경우 얼마나 큰 효과가 발생하는 지를 잘 보여준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주택문제를 국가 최고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60년 주택청(HDB)을 설립, 5년마다 주택 건설계획을 추진해온 싱가폴의 경우 공영주택이 민간 주택보다 약 45%낮은 가격에 공급되고 있다. 공공주택에 거주하는 국민들의 비율은 75년 47%에서 2002년 85%까지 늘어났다. 이 동안 싱가폴은 급성장을 거듭, 소득수준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
김헌동 본부장은 "굳이 싱가폴 같은 공영개발 방식이 아니더라도 과거 우리 정부도 잠실과 과천을 공영개발 방식으로 건설했다"며 "과거에 성공적으로 한 방식을 왜 지금은 못 하겠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주거 안정을 목적으로 해야 할 공공택지 개발과 신도시 개발 사업이 공기업과 건설업체들의 엄청난 불로소득과 개발 폭리를 챙기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며 "본래 취지에 맞게 공공택지에는 국민주택기금과 국민연금 등 공공자금으로 공영개발을 실시해 공공소유 주택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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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 때문에 내수 침체와 빈부 격차가 심화된 한국 경제의 현실이나 급속히 노령화가 진행될 미래를 생각해도 공영개발은 매우 장점이 많은 개발 방식이다. 하지만 정작 주택정책의 주무 부처인 건교부와 민간건설업체들은 공영개발 방식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건교부는 공영개발과 관련, 지난해 '주택공급제도 검토위원회'에 낸 의견에서 "공영개발 방식은 택지개발이익의 완전한 회수가 가능하고 분양가 규제를 통해 서민들에게 저렴한 주택을 제공할 수 있다"면서도 "주택건설시장에서 공공부문이 지나치게 비대화돼 민간 업체의 창의성이 저하되고 주택산업 경쟁력도 약화된다"고 주장했다. 건교부는 또 "공공주택의 건설 처분 관리 등에 대한 시스템 구축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덧붙였다. 건교부는 반면 판교신도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채권경쟁입찰제 방식에 대해서는 "택지내 개발이익이 부분적으로 회수되고 분양가 상승도 우려되는 등의 단점이 있다"면서도 "민간주택건설 위축, 분양가 규제에 따른 시장왜곡 등 택지개발 이익 환수방안 마련에 따른 시장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채권경쟁입찰제를 주택공급의 적정 대안으로 평가했다.
건교부의 이 같은 주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많지만 무엇보다 주택정책의 주목표를 혼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큰 문제다.
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본부' 김헌동 본부장은 "건교부 의견을 보면 스스로 공영개발 방식이 서민 주거 안정에 도움이 되는 반면 건교부가 옹호하는 채권경쟁입찰제가 분양가 상승으로 집값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건교부 주장이 맞다고 쳐도 건교부는 주택정책의 첫째 목표인 서민주거안정을 제쳐두고 민간 주택건설의 위축을 더 걱정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비난했다. 그는 "민간 건설업체들은 자신들이 취하던 폭리가 국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되니 반대하겠지만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할 건교부가 이를 반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건교부가 정말 국민을 위한다면 공영개발 방식을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건교부와 건설업계가 공영개발 방식을 반대하는 논리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를 하나씩 짚어보자.
1."지속적인 공영개발하면 집값 거품 확 빠져"
우선 건교부는 공영개발을 할 경우 판교지구의 분양가는 크게 내려가겠지만 주변 시세와 차이가 많이 나서 투기 수요가 극심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공영개발을 판교에만 한정하고 일반분양아파트 위주로만 짓는다면 생길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은 시민단체도 인정한다. 하지만 공공이 주변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지속적으로 공영개발을 하면 민간 아파트도 지금처럼 터무니없이 값을 올릴 수 없고 공영 개발 아파트의 분양가 추이에 어느 정도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게 경실련의 주장이다. 김헌동 본부장은 "아파트의 질은 비슷하고 값은 훨씬 싸면 모두가 공기업 아파트를 사려고 하지 누가 민간 아파트를 사려고 하겠느냐"며 "지금 아파트 공급방식에 어마어마한 거품이 있다는 것을 소비자가 알면 아파트 거품 값이 확 빠진다"고 주장했다.
현재 공공소유 아파트의 비율이 3.4%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는 주택시장에서 공공의 가격 조절기능이 약할 수밖에 없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늘리면 중장기적으로 충분히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시민경제사회연구소는 주택 청약자격과 매매 요건 등을 엄격히 하면 단기적으로도 충분히 투기적 요소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주장대로 낮은 가격으로 인한 투기적 수요가 우려된다면 공공택지를 전부 장기임대주택이나 영구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하면 주택 공급 물량은 같으면서도 공공이 주택을 소유하기 때문에 개인간의 거래 대상이 될 수 없어 투기 자체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공영개발해도 시공하는 것은 민간...건설물량 변함 없어"
둘째로 건교부나 건설업계는 공영개발하면 민간 건설업체의 사업물량이 줄어든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공영개발로 민간 건설업계가 위축된다고 보기 어렵다. 매년 50만호가 신규 공급된다고 하면 절반 가량인 25만호는 연립이나 다세대, 단독주택 등으로 100% 민간이 공급하고 있다. 또 나머지 절반인 25만호가 아파트인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민간 건설업자와 제조업자, 심지어 언론사까지 다양한 사업자들이 아파트를 공급하고 있다. 결국 공영개발로 짓는 건설물량은 전체 50만호 가운데 10만호 정도로 보면 된다. 더구나 공영개발이라고 해도 주공 등이 시행사 역할을 할 뿐 실제 공사는 민간 건설업체들이 담당하므로 건설물량은 사실상 똑같다. 다만 건설업체들이 가져가는 개발이익만 대폭 줄어들 뿐인 셈이다.
3. "폭리구조 유지하는 현재 방식이 건설 경쟁력 떨어트려"
셋째로 정부와 민간건설업체들은 공영개발을 많이 하면 민간 건설업계의 창의성이 떨어져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 상황을 왜곡하는 측면이 강한 논리다. 건설업계가 하청-재하청을 거치는 복잡한 '유통단계'와 업역구분 등으로 국제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생겨난 집값 거품에 안주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건설업계 전문가들은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선분양제와 공공택지 독점 참여권 등 각종 특혜를 통해 건설업체들이 폭리를 취하는 상황을 방치함으로써 정부가 오히려 민간의 창의성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건설업의 경쟁력은 선진국의 60~70% 수준에 불과하다는 진단이 각종 연구보고서를 통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또 한미파슨스 김종훈 사장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외환위기 이후 국내 건설업의 경쟁력은 건설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져 있다"며 "한국건설이 이대로 가면 고꾸라진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은 거꾸로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김헌동 본부장은 "지금까지 민간업체에 공공택지를 헐값에 넘겨서 분양가 폭리를 취하게 해서 민간의 창의성과 기술이 개발됐느냐"며 "건설업체간 담합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가만있어도 정부가 엄청난 폭리를 보장해주며 운에 따라 공공택지를 받는데 누가 기술 개발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반대로 공영개발을 해도 아파트의 설계도면과 시방을 자유경쟁입찰을 통해 채택하고 공사를 철저히 감리감독하면 오히려 민간의 기술 개발을 촉진할 수 있다"며 "정부가 진정 아파트 품질을 업그레이드하려면 외국 설계회사 등에 시장을 개방해서 세계적인 건축물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음에도 시장을 꼭꼭 걸어 잠그면서 건설업계를 보호하는 이유는 뭐냐"고 비판했다.
4. "5년만에 신도시 만드는 우리, 싱가폴 방식 중요한 참고사례"
넷째로 정부는 공영개발은 싱가폴이나 홍콩 등 도시국가에만 통하는 방식으로 우리 나라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은 거꾸로 국내의 택지 개발 및 주택공급 방식이 유럽이나 미국식과는 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미국이나 유럽 등은 우리보다 국토가 크고 인구 밀도가 낮아 단독주택이나 다세대 주택 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실 도시 하나를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로 채워 5년만에 만들어내는 도시개발 방식은 외국에서는 유례를 찾기가 어렵다. 특히 한정된 공간에 인구 밀집도가 매우 높아 항상 집값 상승의 개연성이 높은 수도권의 경우에는 싱가폴처럼 공영개발 방식이 더 적절한 참고사례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많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 박주현 소장은 "우리나라처럼 몇 년만에 도시 하나를 아파트로 뚝딱 만들어내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싱가폴의 경우를 참조해야 한다"며 "과거 잠실이나 과천 등을 공영개발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5. "아파트 건설 물량 두 배 는다고 공영개발 못 하나"
다섯째로 건교부는 공영개발을 통해 300만평 가까운 도시의 공영개발은 어렵다고 난색을 표한다. 최근 서종대 건교부 주택국장은 한 라디오 대담 프로에 출연해 "과천은 70만평, 잠실은 50만평밖에 안 된다"며 "아파트 단지를 짓는 것은 주공이 할 수 있는데 도시 전체를 주공아파트로 짓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국장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공영개발에서 주공이 하는 역할은 민영건설업체들을 선정해 공사의 진행을 감리감독하는 역할하는 시행사의 역할을 하면 된다. 도시 설계 및 계획 등은 기존에도 토공 등이 다 했으므로 큰 문제가 될 수 없고 실제 시공도 민간 건설업체들이 다 하므로 주공의 역할이라는 것이 대단히 비대해지는 게 아닌 셈이다.
더구나 택지 면적에서는 판교와 과천, 잠실 등이 몇 배나 차이 나지만 주택 수로는 두 배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과천은 모두 1만2800여 가구를 한꺼번에 지어 개발했는데, 현재 정부가 판교에서 공급하려는 가구수는 2만6000여 가구 수준. 과천을 공영개발한 뒤 20년이 지난 지금 두 배 정도의 아파트를 공급하는 사업을 공영개발로 할 수 없다면 이는 주공의 관리 능력이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또 판교는 개발 면적이 넓어서 어렵다면 과천, 잠실 등의 규모로 개발하는 공영택지는 얼마든지 공영개발할 수 있는데도 공영개발 자체를 거부하는 건교부의 논리는 옹색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주장이기도 하다.
6. "주공 조직 방만함 줄이되 공공성은 더 강화해야"
여섯째, 건교부는 "주택건설시장에서 공공부문이 지나치게 비대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주공의 역할은 시행사의 역할을 더 하겠다는 것이어서 크게 비대화될 여지는 거의 없다는 게 경실련의 주장.
경실련은 또 "주공 조직은 줄여야 하지만 주공의 공공적 역할은 오히려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경실련은 주공의 방만한 조직은 줄여 조직 효율성은 높이되 주공이 그 동안 장기임대아파트 건설 등을 거의 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공공적 역할은 더욱 늘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20~40%에 이르는 선진국이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고려할 때 3.4%에 불과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주택시장에서 공공적 역할은 한동안은 계속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주현 소장은 "현행 방식대로라면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주택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민간에 계속 의존하는 방식으로 가게 되면 수많은 법률들을 양산하며 민간과 엄청난 씨름을 해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주택정책의 목표가 왜곡되고 오히려 분양가 규제에서 보듯 규제를 만든다고 민간이 비난하는데 왜 어렵게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공공택지는 정부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정부 권한으로 만들어낸 택지이므로 공영개발을 통해 집값 안정과 주거 안정이라는 목표를 정확히 달성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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