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란 무엇이고 왜 양성화해야 하나요?
새누리당 내에서 '창조경제' 개념이 모호하다는 논란이 일어난 데 이어 이번에는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한 개념 정립이 안 돼 시장 혼란이 가중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17일 당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정부가 잘해야지 자칫 잘못하면 '지하경제 활성화'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다시 풀어 읽는 경제기사
박근혜 새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주요 정책 목표로 선정하고, 이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는 중입니다. 한 나라의 지하경제가 지나치게 클 경우 경제활동에 불균형이 생기고, 조세 형평성이 훼손되며, 정부 재정이 악화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지하경제가 무엇이고,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어느 정도이며,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하경제는 무엇인가요?
'지하경제(underground economy)'란 한 나라의 다양한 경제활동 중에서 공식적인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분을 말합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2012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1272조원이었습니다. 이 GDP는 지난 한 해 국내에서 활동하는 가계, 기업, 정부 등 3대 경제주체가 각종 경제활동을 통해 창출한 재화와 서비스 최종 가치의 총합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론 경제적 가치가 있음에도 이 공식 GDP에 포함되지 않는 활동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밀수, 마약 거래 등 행위 자체가 불법인 활동입니다. 둘째, 수리공을 부르지 않고 직접 집수리를 하는 등 시장 거래를 통하지 않는 활동이 있습니다. 셋째, 합법적인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조세나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 소득 탈루, 위장 계약 등을 통해 거래를 은폐하거나 축소해서 신고할 수 있습니다. 광범위한 개념의 지하경제는 위 세 가지 경제활동을 모두 포함하지만, 우리 정부가 '양성화'하고자 하는 지하경제의 개념은 주로 셋째 경우를 의미합니다.
지하경제는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쓰면 큰 폭의 할인을 해줄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지만, 이렇게 현금 거래를 유도하는 이유는 매출을 은닉해 세금을 줄이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거래를 숨기기 위해 현금을 주로 사용하는 지하경제의 주요 특징 때문에 지하경제를 '캐시 이코노미(cash economy)'로 부르기도 합니다.
지하경제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탈세뿐만 아니라 각종 규제를 우회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복잡한 인허가 절차 등을 피하기 위해 무허가 영업을 하거나 최저임금제 등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기 위해 불법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 등도 지하경제에 포함됩니다. 또 제도권 체계가 불완전한 것도 지하경제가 커지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 경제개발 시대에 제도권 금융의 제약성으로 사채 시장이 확산했던 게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하경제에서의 활동은 법적 보호가 제한되고 뇌물 수수 등 각종 불법적인 행위를 수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배가됩니다.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지하경제는 겉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은닉된 경제활동이기 때문에 정확한 규모를 추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계 각국의 지하경제를 연구하는 오스트리아 린츠대학교의 프리드리히 슈나이더(Friedrich Schneider) 교수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GDP의 25%, 약 300조원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큰 편일까요?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지하경제 비중은 그 나라의 경제 발전 정도와 관계가 있는데, 경제 발전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지하경제 비중이 작게 나타납니다. 슈나이더 교수에 따르면 OECD 국가들의 평균 지하경제 비중은 18% 정도이며, 한국은 40개 OECD 국가 중에서 열째로 지하경제 비중이 높은 나라로 나타납니다. OECD에서는 스위스(8%), 미국(9%), 일본(11%) 등은 지하경제 비중이 낮은 국가들이며, 폴란드(24%), 그리스(25%), 이탈리아(27%) 등이 한국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15위권, OECD 국가 중에서는 10위권에 속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비중은 다른 나라보다 다소 높은 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가 다소 큰 이유로는 자영업자 비중이 높고, 특히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 탈루가 많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28%로 OECD 평균인 16%보다 상당히 높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비중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지하경제 비중은 2000년 28%에서 매년 0.3%씩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그동안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신용카드 활성화, 현금영수증 제도 등 정부의 다양한 과세 투명화 노력의 결실로 볼 수 있습니다.
◇지하경제의 피해는 무엇이고 왜 양성화해야 하나요?
지하경제 비중이 과도할 경우 사회적 형평성이 훼손됩니다. 우선 기회의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제도권 경제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법과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다양한 비용을 지불하는 데 반해 지하경제에서 활동하는 경우 이러한 비용을 각종 수단을 동원해 회피합니다. 이로 인해 동일한 사업을 할 경우 제도권 경제에서 활동하는 게 지하경제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불리한, 비합리적인 상황이 발생합니다.
또 다른 형평성의 문제는 조세 형평성입니다. 동일한 소득에는 동일한 세금이 부과되어야 하는데, 지하경제가 존재하면 조세 형평성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제도권 경제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공평한 수준 이상의 과도한 세금을 부담해야 하고, 지하경제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공공혜택에 비해 과소하게 세금을 부담합니다. 심각할 경우 이는 정부의 세수 부족, 재정 악화, 세율 인상, 지하경제 확대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서는 부당 행위 적발 및 징벌 강화 노력과 더불어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규제들을 완화해서 지하경제 활동을 제도권 경제로 유인하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조세 도덕성(tax morality)을 높이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납세 의무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합니다. 또 국민이 내는 세금이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도록 정부 활동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 쉽게 배우는 경제 tip
절세, 탈세, 조세 회피
세금 납부액을 줄이는 데는 합법적인 방법과 불법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절세(tax savings)는 각종 소득공제, 세액공제 등의 제도를 활용하여 합법적으로 납부할 세금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탈세(tax evasion)는 소득 누락, 과잉 비용 청구, 허위 계약서 작성 등의 방법으로 세금을 회피하는 불법적인 방법을 말합니다. 조세 회피(tax avoidance)는 조세제도의 애매한 부분이나 사각지대를 남용해 조세 부담을 경감하는 방법으로 합법적이지만 부당하게 여겨져서 ‘합법적 탈세’로 불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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