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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야기/세상살이이야기

'늙어가는 기술'

by SL. 2012. 9. 27.

늙는다는 건, 못 보던 꽃을 보는 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경기도립극단의 연극 '늙어가는 기술'(작·연출 고선웅)은 고은의 시 '그 꽃'을 연극적 서정(抒情)으로 풀어낸 11폭의 조각보다. 내려가는 인생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과 쓸쓸함이, 살아온 용기와 살아갈 두려움을 씨줄 날줄 삼아 촘촘하게 엮였다. 조각마다 품고 있는 사연을 몸으로 구현하는 배우 11명은 주·조연 구분 없이 11분의 1 몫을 해낸다. 자칫 산만하고 어수선하기 쉬운 형식을 이어간 연출적 바느질이 세심하고 꼼꼼하다.

제목만 들으면 7080 배우들이 나와서 나이 듦에 대한 넋두리나 긍정으로 포장된 합리화를 늘어놓을 것 같다. 하지만 산다는 것이 곧 늙는다는 것, 나이를 들먹이며 한탄하지 않으면서도 세월의 더께가 만져질 듯 흘러가는 것이 작품의 묘미 중 하나. 욕조, 벤치, 샌드백, 고목 등 소품이, 각자 흩어져 살아가는 인생처럼 저마다 놓여 주제와 배우에 적절히 조응한다.

오리배를 타고 데이트 중인 나이 많은 그 여자와 한참 어린 그 남자. 연극‘늙어가는 기술’은 내리막길의 서정을 보여준다. /경기도립극단 제공
평범해 보이는 11명의 직업은 은근히 다채롭다. 때밀이, 건달, 사채업자, 유한마담에 우울증 환자가 가세했다. 배우의 연기에 희곡을 입힌 것이 아니라, 배우의 개성을 바탕으로 짜인 희곡이라 상황과 대사가 동작 하나하나에 착착 감긴다. 노란 털이 보송보송한 진짜 병아리가 특별 출연하고, 힘차게 하늘로 날아가는 목마가 나오며, 별안간 무대를 가로지르는 오리 배도 등장한다. 무심한 듯 깜짝 등장하는 이미지는 늘어지기 쉬운 이야기에 생생한 탄력과 적당한 긴장을 부여한다.

18년간 몸 바친 때밀이 일을 때려치웠던 순옥씨가 다시 때 타올을 감아 쥐고 뽀드득 때를 미는 순간은 실로 당당하다. 늙는 것, 사는 것은 당면하는 대로 헤치며 나아가는 것. 그것이 꽃을 볼 수 있는 내리막길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