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만 하면 ‘황금알’ 수십조 빌려 삽질
PF자금 로비력에 의해 좌지우지 / 사업주체 아전인수격 계획 수립
인천 용유개발·파주 복합단지 등
전국 대형사업 67%가 부실화 / 건설사 직격탄 내수침체로 연결
저축銀 등 금융권으로 부실 확산
대출상환 압박에 서민도 황폐화 / 비리 차단 객관적 평가체계 시급
개발 바람을 타고 마구잡이로 추진되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이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이미 굵직굵직한 1군 건설회사 27여개사가 발목을 잡혀 무너지는 단초가 됐고, 현재 살아남은 일반 건설업체도 저승사자 앞에 선 꼴이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PF 대출 보증 덫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다.
이로 인한 1차 피해는 해당 부동산 및 건설업체이지만 공급자인 저축은행ㆍ보증업체 등 금융권 피해도 만만치 않다. 저축은행 수십개의 부실이 여기서 비롯됐다. 아울러 전문 건설업체를 비롯해 주택 전문업체, 시행사, 설계업체, 분양 대행사, 중개업소, 인테리어회사 등의 부도 도미노를 유발해 산업 자체가 무너질 처지다. 서민 일자리 창출의 대부 노릇을 해온 부동산ㆍ건설산업이 암흑기를 맞으면서 고용 시장에도 직격탄이 되고 있다.
그뿐인가. 방만하게 추진됐던 부동산 개발 사업이 파산, 널브러진 채 흉물로 변하면서 해당 지역 주민에게 파급되고 있다. 보상금만 믿고 빚을 낸 사람들이 대거 상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부동산 PF 사업의 정상화 대안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개발 사업의 구조조정을 통한 경제활성화는 물론, 일자리 창출과 산업의 리모델링이 절대 필요하다. 아울러 부동산 개발계획을 제대로 평가하고 수행 능력 여부를 점검하는 제도적 정비 역시 화급하다. ‘금요기획’으로 4회에 걸쳐 부동산 PF 사업의 정상화 필요성과 선결과제, 외국의 개발 사업 평가 체계 등을 짚어보고 바람직한 평가 체계 도입 방안을 모색해본다.
‘용산 사태’에서 보듯 수십조원대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대부분이 치밀한 사업계획 및 수행 능력 평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된다. 사업 주체가 아전인수 격으로 개발계획을 수립, 이를 기준으로 금융권에 PF를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과대 수익계상은 물론, 온갖 비리와 부정이 싹트게 된다. 해당 업체와 금융권 등은 수익 나누기에 급급하고, 로비력에 의해 PF자금이 좌지우지된다. 원초적 부실이 초래되는 셈이다. 게다가 부동산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사업 및 수지계획은 엉망으로 변해간다. 지난 1997년 이후 자리 잡은 개발(시행)과 건설(시공) 분업 체계가 도입되고, 2000년 중반 부동산 경기가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이 같은 폐단은 극에 달했다.
2008년 말 금융권 전체 부동산 PF 대출 규모가 무려 83조1376억원대에 이를 정도로 주먹구구식 민간 개발 사업이 난무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민ㆍ관 합동 개발 방식인 공모형 PF 사업이 가세, 2012년 1월 말 현재 31개 사업, 81조원대의 공모형 PF 사업이 추진돼왔다. 우후죽순 격으로 PF 사업이 추진된 반면, 시장은 역으로 급격히 침체해 부실과 부도는 꼬리를 물고 있다. 용산 국제업무단지의 파산은 빙산의 일각이다. 서울 상암DMC 랜드마크타워, 파주 복합단지, 킨텍스 복합상업시설, 인천 용유 개발, 천안 국제비즈니스파크 사업 등 대형 사업 67% 정도가 부실화되면서 업체의 발목을 잡았고, 이는 내수 경기에 심각한 악재가 되고 있다. 주민 피해만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땅과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주민들은 대출 상환 압박과 이자 부담 등으로 뿌리째 망가지고 있는 것. 파행 개발 사업의 대폭적인 수술과 정상화가 필요한 이유다.
물량 기근에 시달리는 건설업체의 구조조정용 불쏘시개로 활용하고 이를 경제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에 적극 기여토록 유도하는 제도적 정비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부동산 개발 사업의 객관적인 평가와 수행 능력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PF 사업의 부실을 막고 로비와 비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객관적 평가 체계 보완이 절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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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 평가기관은 PF경험 전무…건설사 평가에 절대적 의존 구조
총 사업비가 31조원에 달하는 용산 국제업무도시 개발 사업이 좌초위기에 처하면서 대형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 대한 사전 사업성 검토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부동산 경기 활황을 타고 장밋빛 전망이 대세를 이루던 시점에서 애초부터 객관적인 사업성 검토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과 신용평가사들 역시 PF 사업에 대한 경험이 일천한 상태에서 사실상 건설사의 신용 제공으로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PF 사업의 좌초를 가져왔다는 비판이 드세다.
▶대형 PF 사업 사전 사업성 검토 어떻게 이뤄져 왔나=통상 개발 사업의 사업성 평가는 대부분 투자자 유치 또는 금융기관의 PF 대출 신청에 활용하기 위해 개발 사업자가 평가를 의뢰하며 이뤄진다.
이를 금융기관 자체적으로 혹은 신용평가회사나 회계법인, 감정평가법인 등이 평가 업무를 담당하는 구조다. 사업 평가를 위한 기초 자료는 개발업자가 제공하고, 평가기관은 이들 기초 자료를 토대로 현황조사 등을 병행해 확인 및 평가한다. 보통 사업성 평가는 일반 PF 사업과 공모형 PF 사업으로 구분된다. 일반 PF 사업의 경우 개발업자가 부지 확보 및 개발 사업 인ㆍ허가를 취득한 후 PF 대출 신청 전에 이뤄지는데, 주 평가 내용은 대상 부지의 확보 여부, 개발 구상 및 사업 가치, 수익성, 자본건전성 등이다. 은행이 평가 주체일 경우에는 금융감독원이 제공하는 ‘부동산 PF 리스크관리 모범 규준’을 따른다. 이때 토지 매입 여부와 인ㆍ허가 여부, 건설사의 신용 보강 정도 등이 공통적으로 강조돼왔다. 이어 공공기관이 사업 부지를 제공하는 공모형 PF 사업에서는 공모 단계에서 민간 사업자가 민간 평가기관에 의뢰한 1차 평가와 공공이 민간이 제출한 사업성 평가보고서를 공모지침서 기준으로 평가하는 2차 평가로 이뤄진다. 2차 평가에서는 개발 건설계획 및 사업 운영계획 외에도 토지 가격도 평가 대상에 포함되는 게 특징이다.
▶부동산 개발 사업 평가 체계 도입 왜 필요하나=현행 개발 사업에 대한 사전 사업성 평가 절차는 구비돼 있었지만 PF 사업 평가 체계는 여러모로 허술하다. 당장 부동산 개발 사업에 대한 평가기관의 전문성이 부족하다. 금융기관은 내부에 사업성 평가 전담부서가 없는 경우도 있고, 설사 있더라도 전문성이 부족해 외부 평가기관의 사업성 분석 결과를 참조하는 정도다. 이는 결국 부동산 PF 대출의 본질이 훼손되는 결과를 낳는다. 개발 사업의 현금 흐름에 따른 대출이 아닌, 건설사의 물적 담보 및 신용 보증에 의존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
대한주택보증이 발주한 국토연구원의 개발 사업 평가 체계 도입 방안 연구에 참여했던 이병식 하나은행 부장은 “개발 사업이 활성화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각종 인ㆍ허가나 개발 사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탓에 유일하게 경험을 지니고 있던 건설사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며 현재도 평가기관의 전문성 부족뿐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평가기관 입장에서 영업 성과를 내고자 객관적ㆍ독립적으로 평가 결과를 도출하기보다 평가 의뢰자의 이익에 부합되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한마디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려는 평가에서, 수수료를 받고 평가를 해야 하는 평가기관이 사업 주체에 사업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유은철 한국감정원 부장은 “개발 사업자 측에서는 평가기관으로부터 사업성이 없는 걸로 나와버리면 결국 돈만 들이고 대출은 못 받는 구조”라며 “사업성 평가라는 것이 결국 사업 시행자가 주는 자료를 돌려 사업 시행자가 생각하는 구조로 만들어져 은행에 들어가게 되는 측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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