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iF you don't act, nothing changes.
^^공간이야기/세상살이이야기

고수익 보장한다더니.. '뇌관' 터진 분양형 호텔

by SL. 2018. 4. 28.

 2018.04.28


서울 신림동 501번 버스 종점 인근에 위치한 테이블 8개 규모의 작은 식당. 두 달 전 문을 연 이 식당의 주인이자 주방장은 퇴직공무원 이모씨다. 사실 이씨의 꿈은 식당 사장도 주방장도 아니었다. 28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친 이씨는 퇴직 후 제주도에서 노후를 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씨의 계획은 1년 만에 물거품이 됐다. 분양형 호텔에 투자한 게 화근이었다. 분양형 호텔이란 호텔 객실을 아파트처럼 투자자에게 분양해 객실별 소유권을 투자자가 갖는 수익형 부동산을 뜻한다. 대부분 분양형 호텔의 운영은 호텔 위탁운영사가 맡아 하고 수익이 나면 투자자에게 배분한다.

이씨는 “일단 분양 받으면 10년 동안 수익을 보장 받을 수 있다고 들어서 혹했다”며 “계약금만 내면 나머지는 알아서 대출해준다고 해 별걱정 없이 계약했다”고 말했다.



건설 도중에 호텔 이름과 회사도 바뀌어


2016년 이씨는 고민 끝에 한창 분양광고를 하고 있던 제주도 서귀포시의 분양형 호텔에 투자하기로 했다. 호텔 측은 수익금과 별도로 잔금을 치르면 보증금 명목으로 500만원을 곧바로 이씨에게 지급한다는 ‘당근’도 제시했다. 이씨는 구분등기가 가능한 분양 호텔에서 객실 1개를 분양 받았다. 분양 상담직원의 말대로 분양과정은 일사천리였다. 1500만원 정도의 계약금만 내면 바로 계약이 가능했다. 중도금과 잔금은 대출을 받아 치렀다.


분양계약과 달리 이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호텔 준공은 당초 예정일보다 6개월 가까이 지연됐다. 난데없이 호텔 상호가 바뀌었고 호텔 운영사 대표도 바뀌었다. 계약서도 새로 썼다. 이 과정에서 특약사항이 추가됐다. 특약을 통해 수익금 정산 날짜가 변경됐고 지급을 약속한 보증금 500만원도 호텔 사업자와 신탁사 간 정산 완료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해야 받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씨를 비롯한 대부분의 수분양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계약서를 다시 쓰면서 모르는 내용들이 추가됐다”며 “당연히 받는 것으로 알았던 보증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익금에 대한 부분도 걱정이다. 이씨는 첫 1년치에 대한 수익금을 잔금을 정산할 때 받았다. 문제는 이후 수익금을 받을 수 있느냐다. 호텔 측은 계약 당시 준공 후 2년 동안 확정 수익률 8% 지급을 약속했다. 확정 수익률은 8%이지만 실제로는 25%가 넘는 수익률이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호텔 측이 제시한 연 25.3% 수익률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투자자가 분양면적 42.88㎡(12평)짜리 객실을 약 1억5300만원(부가세 제외)에 분양 받는다. 분양 시 중도금 대출을 60% 받으면 실투자금은 3450만원이다. 보장하는 운영 수익금은 분양가의 8%로 연간 운영 수익금은 1220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대출이자 350만원(금리 3.5% 기준)을 뺀 금액을 실투자금(3450만원)으로 나눠 산출한 수익률이 25.3%다. 이씨는 “수익률이 20%가 넘는다고 해서 제주도 여러 호텔에 투자했다”며 “해지할 수도 없고 더 꼼꼼히 알아보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그나마 호텔 측에서 2년 동안 지급하기로 약속한 확정 수익금도 받지 못하게 될까 우려가 크다. 호텔 객실 가동률이 바닥이기 때문이다. 이씨가 투자한 호텔은 현재 전체 객실 70실 가운데 20실도 채우기 버거운 실정이다. 제주도를 찾는 중국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벌어진 결과다.


호텔 운영 실적에 따라 수익금을 정산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호텔 실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차후 수익은 기대하기 어렵다. 분양 받은 호텔이 이자만 잡아먹는 ‘골칫덩어리’가 되더라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수익률 보장기간이 지나면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매매 수요자도 찾기 어렵다. 이씨는 “여기 말고 다른 호텔에도 투자를 했는데 거기도 비슷한 상황이다. 정말 답답하고 다 잃어버릴 거 같아 겁난다. 노후자금도 다 날리게 됐다”고 털어놨다.


분양형 호텔은 중국 관광객 특수가 시작된 지난 2012년, 정부가 호텔 객실 분양을 가능하도록 규제를 풀면서 우후죽순 늘어났다. 여기에 저금리 기조 속 ‘괜찮은 수익상품’이라는 입소문까지 타면서 분양형 호텔 시장은 바람을 탔다. 2013년 800실에 불과했던 제주도 건축물 분양신고 건수는 3년 만에 4400실로 늘었다. 제주도에서 시작된 분양형 호텔 투자 바람은 경기도 김포와 평택, 강원도 등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분양형 호텔 사업자들은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무분별하게 공급된 분양형 호텔은 결국 탈이 났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분양형 호텔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청원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경기도 평택과 제주 서귀포, 인천 남동구 등 지역 호텔을 분양 받은 투자자들로 ‘호텔 측이 영업이 안된다는 이유로 수익배분을 하지 않고 있다’, ‘날림공사로 하자가 생겨 수익금이 한푼도 안나온다’, ‘준공 시한을 세 차례 연기하고도 준공 기미가 안보인다’는 등 분양형 호텔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의 한 분양형 호텔 투자자는 “부실공사로 호텔 벽에 금이 가고 화장실 타일이 다 깨져 운영이 안된다”며 “당초 호텔 측은 10% 넘는 수익률을 내세웠지만 이번 달에 정산 받은 돈을 따져보니 수익률은 1%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게시판에 피해 호소, 규제 시급


약속한 수익금은커녕 준공시기마저 맞추지 못한 호텔이 늘어나면서 곳곳에서는 호텔과 분양자 간 법적 분쟁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상품 특성상 분양형 호텔은 아파트와 달리 투자자를 위한 법적 보호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호텔을 짓고 있는 사이 시행사가 부도가 나면 분양대금과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셈이다. 무사히 준공되더라도 위탁 운영사에 문제가 생기거나 객실 가동률이 떨어지면 약속했던 수익률을 보장 받기 어렵다.


분양형 호텔과 관련한 피해가 잇따르면서 정부에서도 규제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월 수익형 부동산을 분양할 때 수익률 산출근거를 함께 밝히도록 하는 ‘중요한 표시ㆍ광고사항 고시’를 개정했다. 이른바 ‘아무말 대잔치’로 과장광고를 하는 분양업체를 규제해 피해를 막겠다는 취지다. 올해 7월부터는 과장광고를 하다 적발되면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맞을 수 있다. 국토교통부도 지난 1월 발표한 업무계획을 통해 수익형 부동산의 분양피해 규율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규제가 이미 뇌관이 터져버린 분양형 호텔의 폐해를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허위 과장광고를 일삼는 분양업체에 대한 처벌수위는 투자자의 피해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낮아 효과가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국토부도 분양형 호텔 관련 규율방안 마련작업에 착수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올해 업무계획에는 포함돼 있는 사안이어서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진행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 규제가 지지부진한 사이 고수익을 내세운 분양형 호텔 사업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경기도 김포시 소재 분양형 호텔의 상담직원은 “우리 호텔은 입지가 좋기 때문에 영업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며 “최악의 경우에도 10년 동안 일정 수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http://v.media.daum.net/v/20180428162307846?rcmd=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