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의 수명은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8년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매년 4.8개월씩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2012년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남성이 78세, 여성이 84.6세인데, 이게 50년 뒤에는 남성 86.6세, 여성 90.3세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더욱이 실제 사망 나이는 기대·평균수명보다 5살 정도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막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부머들(1955~1963년생)은 90세 이상 산다고 가정하고 노후설계를 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60세에 정년 퇴직한다고 해도 30년, 10만시간의 백지가 앞에 놓여 있는 셈입니다.”
최근 ‘100세 시대 은퇴대사전’(21세기북스)을 펴낸 송양민(55) 가천대학 보건대학원장은 “이제 은퇴 준비와 노후 설계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100세에 근접하는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를 아무 준비 없이 맞을 경우 장수가 축복이 아닌 위기, 더 나아가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송 원장이 우재룡 한국은퇴연구소장과 함께 펴낸 ‘100세 시대 은퇴대사전’은 ‘대사전’이라는 말에 걸맞게 5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이다. “은퇴에 관한 기념비적인 책”이라는 송 원장의 장담대로 이 책은 100세 시대의 교과서, 지침서를 지향하고 있다. 단순한 은퇴 후 재무설계뿐 아니라 웰에이징(well-aging)과 웰다잉(well-dying) 등 100세 시대 인생 설계에 필요한 정보들을 망라하고 있다.
“10년 전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로 있으면서 ‘30부터 준비하는 당당한 내 인생’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선보인 거의 첫 은퇴 전문 서적이었는데, 이게 기대 이상의 호응을 받으며 10만부나 팔렸습니다. 우리 사회에 그만큼 은퇴 준비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는 얘기죠. 이후 쏟아져 나온 은퇴 관련 책들이 100여종은 될 겁니다. ‘인생 2막’ ‘인생 2모작’ 등 수필류의 책들도 많았죠. 이번 ‘은퇴대사전’은 철저히 정보와 팩트 위주로만 꾸렸습니다. ‘30부터 준비하는 108가지 은퇴전략’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108가지 항목을 세 단락으로 나눠 300가지가 넘는 은퇴와 노후 준비 관련 핵심 정보들을 망라했습니다.”
송 원장에 따르면, 서양에서는 은퇴 후 10만시간을 ‘황금 시대(golden age)’라고 부른다. “은퇴하기 위해 일한다”고 할 정도로 평생을 기다려온 여유롭고 풍요로운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다. 한국의 노후는 각박하고 고단하기만 하다.
“최근 유엔이 전 세계 91개국을 대상으로 노인들의 삶의 질을 평가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글로벌 노화지수(global aging index)라는 걸 만들어 노인의 생활 상태를 소득, 건강, 고용과 교육, 자립적인 생활환경이라는 4가지 척도로 살펴본 겁니다. 이 평가 결과 한국은 조사 대상 91개국 중 67위에 그쳤습니다. 일본은 물론 중국보다도 뒤지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터키를 제외하고는 가장 낮았습니다. 특히 기대수명을 포함한 건강 분야에서는 8위로 상위권이었지만 연금과 빈곤율 등을 반영한 소득 분야는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90위였습니다. 노후소득 분야가 세계 최저라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송 원장은 불행한 노후를 맞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노후 자금 수요를 계산하고 철저한 은퇴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흔히 노후 자금이 6억원이니, 10억원이니 하는 말이 나오면서 처음부터 질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금융기관의 ‘공포 마케팅’이 자아낸 현상인데, 오히려 이 때문에 처음부터 노후 자금 마련은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하지만 누구든 자신의 수준에 맞게 노후 자금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송 원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들의 적절한 노후 생활비는 150만~300만원 선이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60세 이상 고령가구의 월평균 지출액은 2012년 기준 166만원. 또 보건사회연구원 등의 조사에서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대략 노후에 월 200만~300만원을 생활비로 사용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 원장은 “은퇴를 막 시작한 베이비부머들은 기존 노인들보다 생활 수준이 높고 다양한 취미·여가 생활을 즐기기를 원한다”며 “아마 은퇴 후 생활비가 기존 조사에서보다 훨씬 더 많이 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노후 생활비 마련의 핵심은 연금이라는 게 송 원장의 설명이다. “평범한 베이비부머 부부가 노후에 월 200만원의 표준적인 은퇴생활을 한다고 해도 6억원의 거액이 필요하다면 누가 이런 돈을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여기에는 국민연금, 개인연금, 주택연금, 주택 규모 줄이기 등과 같은 대책들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컨대 월 생활비로 200만원을 쓰는 부부가 은퇴 후 30년간 함께 살다가 남편 사별 후 부인이 10년간 홀로 산다고 가정하자. 이럴 경우 무려 6억4000만원의 생활비가 들게 된다.(전체 노후 자금 운용수익률 연 4%, 물가상승률 연 2%로 가정)
하지만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수령액 80만원, 주택연금 수령액 40만원(2억원짜리 주택을 연금으로 활용할 경우)의 고정수입만 있다고 가정해도 동일한 조건에서 노후자금은 2억 8000만원으로 대폭 줄어들게 된다. 송 원장은 “아파트 규모도 줄여 남은 차액을 노후자금으로 사용하면 부담을 더 줄일 수 있다”며 “노후 자금은 다양한 연금의 존재 여부, 주택연금 사용 여부, 주택 다운사이징 등에 따라 늘어날 수도 있고, 반대로 줄어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다양한 연금의 탑을 층층이 쌓아올리는 게 풍요로운 노후를 보장하는 지름길이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은 은퇴 후에 얻는 연금소득이 생애평균소득과 비교할 때 얼마 정도 되는지를 나타내는 연금소득대체율.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을 모두 합한 금액을 생애평균소득으로 나눈 백분율인데, 국제노동기구나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들은 은퇴자들이 안락한 노후생활을 하려면 이 3가지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70~80%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 연금 소득대체율이 형편없다는 것이 송 원장의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연금 소득대체율이 78.2%, 영국과 독일은 각각 68.6%, 59%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40~45%를 확보하는 수준인데, 이것도 국민연금을 40년 납부하는 경우를 가정해 산출했기 대문에 과대계상된 것으로 보입니다. 현실적으로 국민연금 20년 납부를 가정해 보면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15~25%로 낮아지기 때문에 우리 은퇴자들의 노후 생활은 궁핍하기 짝이 없습니다.”
송 원장은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소득이 중위 소득자의 50% 미만인 노인가구 비율)은 45% 수준으로 OECD 회원국들 가운데 가장 높다”며 “베이비부머들도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지금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빈곤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연금 쌓기와 함께 풍요한 노후를 맞기 위해서는 노후 자금을 깎아먹지 말아야 한다는 게 송 원장의 충고다. 대표적인 것이 자녀들을 위한 사교육비. 송 원장은 “공교육비와 사교육비를 합칠 경우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자녀 1명을 키우는 데 들어가는 교육비가 1억 3000만원에 이른다”며 “보통 사람들의 노후 생활비가 4억~5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부모들의 교육비 지출은 자식에 대한 투자 수준을 넘어 투기 수준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사교육 열풍이 심한 서울의 경우 가정 총 수입의 20~50%를 사교육비로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면 노후자금은 결코 모을 수 없습니다.”
송 원장은 “우리나라 은퇴자들은 노후 생활비를 마련할 때 50%는 본인이 조달하고 나머지 40% 정도는 자녀들로부터 지원받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청년 취업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앞으로는 이것도 기대하기 힘들다”며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가진 돈을 다 써버리는 세계 유일의 나라에서 노후생활을 곤궁하지 않게 보내려면 은퇴 후에 자녀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 대신 자녀 교육비와 결혼자금 지원액을 대폭 줄이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송 원장에 따르면 은퇴 후 삶은 대략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은퇴 후에도 건강하게 사회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활동기’와, 고령으로 체력이 하락하지만 여전히 건강한 상태인 ‘회고기’, 중병에 걸려 다른 사람의 돌봄을 받는 ‘간병기’가 일단 본인의 은퇴 후 생애주기다. 여기에 더해 평균 수명이 더 긴 부인이 남편 사망 후 홀로 사는 ‘부인 생존기’와 부인 역시 병에 걸려 돌봄을 받는 ‘부인 간병기’까지 고려해야 온전한 은퇴 후 설계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보통 60세부터 75세에 이르는 활동기는 100세 인생에서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출발점인 정년으로부터 시작된다. 활발한 취미활동을 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재취업, 창업에 나서는 이 활동기를 잘 보내야 나머지 노후 생활도 멋지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송 원장의 설명이다.
간병기의 경우는 “부부생활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가 빛을 내는 시기”다. 한국 남성의 80% 이상이 부인의 간병을 받으며 평소 거주하던 집에서 간병기를 보내기 때문이다. 남성들보다 평균 10년 이상을 더 사는 여성들로서는 남편 사후 홀로 생존기와 간병기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남성보다 노후가 더 위험하다. 과거의 경우 남편 사후 노후는 가족이나 사회의 책임으로 미루는 경향이 강했지만 이제 시대가 바뀐 만큼 남편이 죽기 전에 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 놓아야 한다고 송 원장은 충고했다.
송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가장 취약한 분야가 ‘여가’라고 지적했다. 2012년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우리나라 국민의 은퇴준비 정도를 점수로 나타낸 노후준비지수는 100점 만점에 58.8점으로 매우 낮은 편인데, 이를 구성하는 대인관계(61.1점), 건강(75.0점), 재무(47.1점), 여가(46.1점) 등 4가지 영역 중에서도 특히 여가 영역이 낮았다는 것이다. 송 원장은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재산·학력·지위와 같은 물질적 측면에 치우친 삶을 살아오다 보니 취미, 여가가 변변하지 않다”며 “재무 영역보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여가 영역에 대한 은퇴 준비에 더 자신 없어 한다”고 지적했다.
송 원장은 결국 은퇴 설계의 최종 목표는 ‘풍요로운 노후’에서 한발 더 나아가 ‘행복한 노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종 연구 결과를 보면 재산과 행복 간의 상관관계는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재무적인 준비가 어느 정도 되더라도 은퇴 후 할 일이 없어서 매일 등산이나 여행만 해야 하는 사람은 결코 만족스러운 은퇴 설계를 한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행복한 노후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따져봐야 할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일단 ‘어디서 살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유럽에서는 ‘은퇴 설계는 집에서 시작해 집에서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은퇴 설계에서 주거 계획은 핵심을 차지합니다. 귀농, 귀촌이나 전원생활을 시작했다가 무료해서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도 많고 잦은 이사 때문에 노년의 삶이 피곤해져서도 안 됩니다. 또 ‘누구와 어울려 살 것인가’도 중요합니다. 은퇴자들과 상담을 해보면 부부, 자녀, 친척, 친구들과의 관계를 의외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취미, 여가 활동이나 사회봉사, 자기계발 등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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