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08일
700년 만에 핀 연꽃이 가르친 ‘시간의 의미’
좀처럼 믿기지 않더군요. 눈앞에 피어난 꽃이 700년이란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저편에서 거슬러왔다는 게 말입니다. 경남 함안. 가야연맹체의 일원이었던 옛 ‘아라가야’의 땅입니다. 4년 전쯤에 함안의 성산산성 유적지에서 발굴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발굴 작업 도중 연못 터에서 10개의 연 씨앗이 발견된 게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연대측정 결과 연 씨앗은 700년 전쯤 고려시대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함안박물관의 요청을 받은 농업기술센터는 발굴된 연 씨의 싹을 틔우기로 했습니다. 10개 중 3개 씨앗이 기적처럼 긴 잠에서 깨어나 싹을 내고 분홍빛 고운 꽃을 피웠다는군요. 기특하기 짝이 없는 연에 ‘아라홍련’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했습니다. 아라홍련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별빛을 떠올렸습니다. 먼 우주의 별자리에서 수백 광년의 시간을 달려와 지구에 당도한다는 별빛 말입니다. 700년의 시간을 견딘 뒤에 비로소 꽃을 피운 아라홍련이 마치 수백 년 전에 어느 별에서 출발해 지금에야 당도한 별빛처럼 느껴졌습니다. 꽃을 피운 세 그루의 아라홍련은 서너 해 만에 무더기로 불어나 지난 여름 함안박물관 연못을 등불처럼 환하게 밝혔습니다.
아라홍련은 캄캄한 어둠의 시간을 견뎌낸 뒤에 꽃으로 피어나 더 각별한 느낌입니다만, 사실 오랜 시간을 건너와 지금 이곳에 당도한 것이 어디 아라홍련뿐이겠습니까. 전국의 이름난 고택이나 사찰이라면 수백 살의 나이를 먹은 범상치 않은 풍모의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쯤은 거느리고 있게 마련입니다. 수령이 1000년에 육박한다는 오래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거목도 찾아보기 그다지 어려운 건 아닙니다. 더 오래된 시간으로 태엽을 감는다면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는 공룡 발자국을 들 수 있겠습니다. 경남 고성의 상족암 일대에는 수억 년 전의 공룡 발자국이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만, 고성 땅에서 그곳보다 더 감동적이었던 곳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절집 계승사였습니다. 계승사 요사채가 앞마당으로 삼은 널찍한 바위 위에는 1억 년 전 호숫가에 퍼진 물결 문양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법당 뒤편의 바위에는 1억 년 전쯤 후드득 쏟아진 소나기 자국이 화석이 돼서 남아 있었습니다.
아라홍련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위에서 문득 스치고 지나갔던 생각 하나.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것들은 다 억겁의 시간 저편에서 온 것은 아닐까.’ 따지고 보면 그럴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 해도 그 형태만 달라졌을 뿐, 본래의 물질은 어딘가에서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일 테니 말입니다. 그러다가 발끝에 차이는 돌 하나에도 지구와 같은 시간의 나이테가 새겨져 있을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가 닿았습니다. 어디 물건만 그런 것이겠습니까.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의 만남과 인연이라는 것도 어쩌면 억겁의 시간과 우연과 인연 속에서 맺어지는 것이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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