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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야기/세상살이이야기

이 아침에 풍경

by SL. 2012. 8. 31.

인어에 대한 낭만적 노스탤지어

 

 

태초의 인간은 궁금했다. 하늘나라에는 누가 살고 있는지, 바닷속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러나 인간은 하늘이나 바닷속에 도달할 수도, 그곳에서 살 수도 없었다. 그런 궁금증과 그곳에 도달하고픈 염원은 자연스럽게 그곳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상상의 존재를 만들어냈다.

하늘로 비상하기 위해선 날개가 필요했다. 옛사람들은 양 어깨에 날개가 달린 이 초월적인 존재에게 천사(동양에선 鳥人, 즉 새인간)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지상과 바닷속을 오가기 위해선 지느러미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하반신이 물고기 모양인 인어가 탄생했다. 생물학적 용어로 얘기한다면 양서류라 할 수 있는 두 존재는 오랜 세월 인간의 시적 상상력의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됐다.

그러나 합리주의와 과학의 발달은 우리에게서 이 로맨틱한 상상의 영역을 앗아가 버렸다. 굳이 파리에 가지 않아도 샹젤리제 거리를 소요할 수 있는 이 놀라운 세상. 비밀의 문은 모두에게 빗장을 열고 말았다. 최근 미국 탬파의 ‘플로리다 수족관’에서 열린 인어 이벤트는 잃어버린 상상의 세계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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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삶의 지표로 삼는 사람들

 

 

아프리카 니제르 유목민의 삶의 방식은 독특하다. 그들은 하늘의 변화를 보며 풀을 찾아 이동한다. 건기가 지나고 구름이 몰려와 첫 비가 내리면 가축을 끌고 200㎞ 북쪽의 사하라 사막으로 이동한다. 사막에서 듬성듬성 자라는 풀에는 염분과 미네랄풍부해서 가축의 생장에 필수적인 영양소를 공급해주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가축들에게 충분히 풀을 뜯게 한 다음부터 유목민은 온종일 하늘만 쳐다본다. 원래의 녹초지로 돌아갈 타이밍을 잡기 위해서다. 짙은 먹구름이 몰려들어 두 번째 폭우가 쏟아질 때가 바로 그때다. 그렇지만 비는 수시로 쏟아지기 때문에 어느 비가 두 번째 비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순간의 오판은 엄청난 재앙으로 이어진다. 사막의 목초지는 갑작스레 말라죽어 잘못하면 가축은 물론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곳의 유목민들은 오랫동안 이 위험한 베팅이야말로 최상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기상이변이 잦은 지금 그들의 하늘 시계는 예전만큼 정확하지 못하다. 하늘을 공경하는 그들의 순박한 삶이 상처받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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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치는 마음의 여유 속에서 꽃핀다

 

 

중국 저장성의 원저우(溫州)는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다. 수백 년 된 고택이 즐비하고 운치 있는 돌담 위에는 가녀린 파초가 세월이 멈춘 듯 느긋한 자태를 뽐낸다.

그러나 이제 중국에서도 이런 운치를 맛볼 수 있는 곳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루 평균 300개의 마을이 사라진다는 중국은 지금 도시화와 함께 전통사회 해체라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원저우 사람들은 마을을 보존하기 위해 지혜로운 자구책을 내놨다. 마을을 전통문화 체험공간으로 바꾼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이 예스런 운치는 즐기되 불편함은 싫어한다는 점이다. 결국 상당수의 집들이 에어컨설치하고 샤워기를 달았다. 운치는 파초가 꽃을 피울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마음의 여유 속에서 피어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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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한 추락의 즐거움

 

 

 

인간은 오래도록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를 꿈꿨다. 그러나 그것은 신의 영역을 범하는 허황된 꿈으로 여겨졌다. 18세기 말 마침내 인간이 비행선을 타고 하늘에 도달했을 때 신들은 거처를 옮긴 뒤였다. 하늘을 누비던 인간은 이제 반대로 땅으로의 낙하를 꿈꿨다. 낙하산이 그 꿈을 이뤄줬다.

그러나 낙하산이 펼쳐지기까지의 짧은 수직 추락 시간은 심장이 멎을 것 같은 끔찍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개중에는 이 시간을 즐기는 강심장도 있었다. 그들은 이 공포의 시간을 놀이의 시간으로 바꿔 놓았다. 낙하산이 펼쳐지는 시간을 최대한 늦춰 추락의 스릴을 즐길 뿐만 아니라 한술 더 떠 그룹으로 재미있는 묘기를 펼쳤다. 그렇게 공포의 ‘낙하’는 로맨틱한 ‘스카이다이빙’이라는 스포츠로 진화했다.

며칠 전 이 집단 스카이다이빙 세계 기록이 깨졌다. 138명의 미국 스카이다이버들이 그 짧은 수직 낙하의 순간 거대한 눈의 결정을 창공에 아로새겼다. 저 멀리 신의 탄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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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가 똑똑하다는 믿음

 

 

원숭이라고 다 똑똑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원숭이 지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스위스의 저명 동물학자 아돌프 포르트만은 돌고래와 코끼리가 원숭이보다 지능이 높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비둘기의 숫자 인지능력이 원숭이의 그것을 뺨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래저래 원숭이가 지능이 높다는 신화는 무너지고 있다.

‘똑똑한 원숭이’ 신화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꼬리감기 원숭이다. 크기는 30~50㎝, 몸무게가 3㎏ 안팎에 불과한 이 깜찍한 원숭이는 도구를 다루는 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녀석은 열매를 채취하고 먹을 때 돌이나 견과류 껍질을 이용한다. 영화에서도 재치 있는 행동으로 위기에 처한 인간을 구하는 것은 다 이 꼬리감기 원숭이다. 동물 쇼에서도 녀석들은 단연 주역이다. 녀석들이 대중들 앞에서 계속 재주를 부리는 한 ‘똑똑한 원숭이’ 신화는 쉽사리 깨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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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멍구 평원의 목가적 아름다움

 

 

‘미(美)’라는 한자의 어원은 사뭇 흥미롭다. 중국의 미학자인 주조도(周釣韜)에 따르면 미는 양(羊)과 사람(大·‘큰 대’는 원래 사람을 뜻했다)의 결합으로 사람이 양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양은 원시 유목민에게 고기와 젖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추위를 막아주는 가죽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이들은 양이나 다른 짐승을 붙잡기 위해 양의 머리를 잘라 머리 위에 쓰곤 했는데 그 모습이 바로 ‘아름다울 미’자의 기원이 됐다는 것이다.

원시사회의 유목민은 양을 비롯한 짐승에 의존해 살아갔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고 찬미했다. 그런 만큼 유목민들에게 있어 양은 곧 공리적인 아름다움의 대상이었다. 나중에 ‘미’는 본래의 의미를 떠나 양과는 무관하게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뜻하는 글자로 그 의미를 확대해 나갔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미’는 재산목록 1호로서의 양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유목민에게 있어 양은 여전히 공리적인 아름다움의 대상이다. 네이멍구 자치구의 평원에서 양떼를 모는 유목민에게 양은 삶의 전부다. 그들은 과연 알까. 양떼를 모는 자신들의 모습이 심미적 아름다움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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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는 항복이 아닌 자유의 상징

 

이탈리아 반도 건너편 아드리아 해의 동쪽 연안에 자리한 라구사는 기원전부터 동방의 물품을 베네치아로 실어 나르는 해상 무역 루트의 중간 거점으로 번성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해 있다가 지금은 크로아티아의 중심 도시가 된 두브로브니크가 바로 라구사다.

해양 도시가 오랫동안 번성한 데는 남다른 비결이 있었다. 바로 ‘백기(白旗) 무역’이다. 이들은 군비 증강을 마다하고 무역선단을 조직, 저마다 백기를 달고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볐다. 백기 위에는 라틴어로 ‘리베르타스(자유)’라고 썼다. 한마디로 자유무역의 원조인 셈이다. 백기를 단 배는 해적도 건드리지 못했다. 라구사 지도자들의 외교력 덕분이었다. 그렇게 해서 전 세계의 물품이 라구사로 흘러들었고 이곳을 통해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백기는 결코 항복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입장에 동의하면서 동시에 나의 입장을 관철시켜 나가는 것이기도 했다. 두브로브니크의 오랜 번영은 그 점을 확인시켜 준다

 

 

 

 

 

 

 

 

 

 

 

 

 

음악이 흐르는 아침

타레가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이탈리아 작곡가들도 애용한 악기였으나 길게 보면 단연코 스페인이 본산이다. 중근동 지방에서 유래한 악기로 중세의 스페인은 이슬람 세력권이었기 때문이다. 기타곡이 대체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이처럼 남유럽과 이슬람이 만난 스페인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에 기인한다.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가 있었던 그라나다의 옛 궁전을 찾은 느낌을 묘사한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1896)은 아라비아풍의 정서가 더욱 물씬한 기타 독주곡이다. 멋들어진 트레몰로 주법은 화려한 기교의 과시 대신 과거에 대한 아득한 동경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스페인 작곡가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곡을 썼을까.

요즘 스페인 경제위기를 보면 자신들의 독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서유럽 경제모델을 쫓아가다 덫에 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역시 겉멋보다 몸에 맞는 옷이 건강의 지름길이다.

 

http://youtu.be/KyNevtGB-8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