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iF you don't act, nothing changes.
^^인천시/영흥도·선재도·대부도

영흥도 이력

by SL. 2012. 5. 5.

 

영흥도 설명

 

면적 23.46㎢, 해안선길이 42.2km이다. 1999년 12월 말 현재 674세대에 1,84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영흥대교 야경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26km 해상에 위치한다. 최고봉은 중앙에 솟은 국사봉(國思峰:127.7m)이며, 동쪽에 대부도(大阜島), 북쪽에 무의도(舞衣島), 서쪽에 자월도(紫月島)가 있다. 원래 명칭은 연흥도(延興島)였으나 고려 말 익령군(翼嶺君) 기(奇)가 정국의 불안으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온 식구를 이끌고 이곳으로 피신하면서 익령군의 영(靈)자를 따서 영흥도(靈興島)라고 칭하였다.

1975년과 1984년에 신석기시대의 조개무지와 23점의 빗살무늬토기, 원시농업의 흔적이 엿보이는 농경도구들이 발견되면서 이 때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고, 1018년(고려 현종 9) 수주(수원)에 속군되었으며, 뒤에 인주(인천)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양부에 속하였고, 1914년 3월 1일 경기도 부천군에 소속되었다. 1973년 지금의 옹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인천광역시로 통합, 편입되었다. 1270년(고려 원종 11)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영흥도를 기지로 삼아 70여 일 동안 항몽전을 벌였으며, 6·25전쟁 때에는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로 활용되었다.

해안은 대체로 굴곡을 이루고 있어 어장이 발달하였고, 간조 때에는 넓은 개펄 위로 바지락·굴·소라·낙지 등의 해산물이 풍부하게 채취된다. 산이 낮고 농경지가 많아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지역 특산물로 포도와 흑염소 엑기스가 유명하다. 섬 전체에 상수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십리포해수욕장·장경리해수욕장 등의 해변에는 노송이 우거져 있어 피서철이 되면 사람들로 붐빈다. 2001년에 선재도와 영흥도가 영흥대교로 연결되어 접근이 쉬워졌다. 서쪽 해안에는 영흥화력발전소가 들어서 있다

 

<찾아가는길>

월곳 I.C 에서 시화공단 방향(2차선으로 신호등3번)→옥구고가도로(신동아APT)→오이도(오이도관광단지로 우회전 하시면 안됨)→시화방조제→대부도→대부도삼거리→대부중고앞→선재도→영흥도

 

 

 

토지투자 문의  : 010-2944-5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