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웠던 이름, 아버지
입력 : 2013.05.0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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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성·성우
나는 네 살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다. 어머니는 경제적 능력이 전혀 없었다. 어른들도 변변한 일거?� 찾지 못했던 시절이니 소년 가장인 나로선 어려움이 참 많았다.
하지만 부모님, 특히 아버지를 원망해 본 기억은 없다. 애초부터 부재(不在)했으니, 그리움이나 기대도 없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이념적 선택으로 북으로 갔다가 6·25전쟁이 터지면서 아예 돌아오질 못했다고 말했다. 워낙 바쁘게 살아서였을까. 아버지가 생각나는 건 그저 명절 같은 날일 뿐, 내게 아버지란 대개 낯설고 생소한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내가 처음으로 애틋하게 돌아보게 된 건 15년 전쯤이다. 인터뷰 중이었다. 기자가 불쑥 물었다. "선생님 목소리는 아버님께 물려받은 유산이지요?"
아버지, 유산…. 내겐 지금까지 존재하지도 않고 상관도 없었던 단어처럼 생경하게 들렸다. 눈물이 글썽거렸다. 내게도 아버지가 있었고, 난 그에게 유산까지 물려받았구나. 오랜 세월 아버지를 망각하고 살았던 것이 죄스럽다고 생전 처음으로 느꼈다.
그러고 보면 부모는 그 존재만으로도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물려주는 모양이다. 그게 꼭 큰 땅이나 높은 건물, 막대한 돈이어야만 위대한 유산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처칠이 남긴 이야기에도 비슷한 뜻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였다. 영국 신문에 '윈스턴 처칠을 키운 위대한 스승'이라는 기획 기사가 실렸다. 많은 사람이 그 글을 읽고 칭찬을 늘어놓았다. 연재가 끝나고 처칠은 담당 기자에게 전화했다. "고맙소, 기자 양반.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요. 제게 가장 위대한 스승 두 분을 빼놓으셨더라고요. 내 아버지와 어머니 말입니다."
어제가 어버이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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