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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평창·강릉이야기

상위 1%가 평창으로 간 까닭

by SL. 2014. 6. 21.

2012-03-04

 

최근 한 방송은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 주변 땅들을 상위 1%의 사회지도층이 광범위하게 매입한 사실을 밝혔다. 대기업 총수 및 대주주의 일가족 등 22명은 평창군 일대 임야와 전답 등 23만㎡(7만평)를 사들였는데, 그 땅값이 최고 10배까지 올랐다. 이는 일부일 뿐이다. 최근 5년간 평창지역에 땅을 산 사람 중 70~80%가 외지인이지만, 그 중 리조트 알펜시아가 위치한 곳에선 그 비율이 최고 98%에 달한다. 평창 일대 토지 매입자 전체 683명 가운데 38%인 259명이 서울사람이고 이 중 강남3구 주민이 104명이다.

사회지도층에는 재벌가 사람뿐만 아니라 고위공직자, 연예인, 유명선수 등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투기를 위해 땅을 산 게 아니라고 한다. ‘공기가 좋아서’ ‘용평 마니아’여서 평창 땅을 샀을 뿐이라고 한다. ‘땅을 너무 사랑해서’ 땅을 샀다는 이 정부 초대 환경부 장관 후보자(결국 낙마하고 말았지만)의 발언과 비슷하다. 재벌가 사람들도 수목장, 전원주택, 화훼농원 등을 꾸미기 위해 샀다고 한다. 그간의 비업무용 땅 사재기 방식과 사뭇 다르다.

외지인 투기가 집중된 평창의 땅은 3수 끝에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낙점받은 곳이다. 투기바람이 분 것은 유치선언이 있던 2000년부터지만 재벌가 사람 등이 땅을 본격 사들인 것은 2차 유치전이 뜨겁던 2005~2006년 무렵이다. 일부는 유치 실패 후 샀기에 올림픽과 무관하다고 한다.

하지만 10년에 걸친 올림픽 개최지로서 ‘장소 마케팅’ 덕분에 이곳의 땅은 올림픽 호재에 따른 지가상승 요소가 계속 있었다. 한 채당 20억~40억원 하는 알펜시아 리조트는 1% 상류층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고, 그 주변은 ‘자연을 고가의 상품으로 소비’하는 땅으로서 탁월한 개발가치를 가지고 있다.

땅의 정보는 ‘기획부동산’을 통해 1%의 상류층에게 은밀히 제공되고, 이들의 풍부한 정보력과 자금력은 ‘풍광이 좋아 돈이 될 땅’에 대한 투기적 베팅을 쉽게 했다. 이들의 돈은 평창으로 흘러들었지만 몸은 가지 않았다. 이들 대부분은 ‘가 보지도 않고’ 땅을 매입했다고 한다.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세차익만 남기면 되는 투기의 전형이다. 투기는 불법을 수반한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은 농토를 매입·소유할 수 없다는 농지법의 대원칙과 규정을 어긴 게 대표적인 예다. 속을 들여다보면 명의도용, 공문서 위조, 불법 사용 및 임대, 불로소득 수취, 세금 탈루 등은 물론 농민으로부터 땅을 빼앗고 농업·농촌, 나아가 자연을 황폐화시키는 불법과 부도덕으로 가득하다.

공기가 좋고 땅을 사랑해 갔을지 모르지만, 결국 돈이 되기 때문에 가서는 안될 곳으로 법과 도덕의 경계를 넘어 간 것이다. 땅은 늘 부의 원천으로 여겨지지만 그 중독성은 상류층에게 유독 심하다. 우리나라의 자산순위 1% 부자는 평균 32억3000만원어치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 나머지 99% 계층의 평균 부동산(1억7000만원)에 비해 18배 많다. 부자들은 부동산을 굴려 부를 쌓았고 쌓은 부의 대부분을 부동산에 묶어 두고 있다. 이들이 평창으로 간 까닭은 부동산 부를 더 쌓기 위한 것 외에 쉽게 설명할 길이 없다.

누구나 부를 추구하지만 법과 도덕의 틀 내에서 해야 한다. 사회적 지도급 부유층은 더욱 그러하다. 평창으로 몰려간 상위 1% 사람들은 하나같이 투기를 부인하지만, 그들의 진술 속엔 개인적 매입행위가 가져올 사회적 여파나 폐해에 대한 공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의식’이 전혀 없다. 전형적인 반(反)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전 세계적으로 번진 ‘월가 점령시위’는 1%의 탐욕과 부패에 대한 99%의 규탄과 저항이다. 상위 1%의 평창 땅 투기가 자칫 한국형 1% 대 99% 대결을 촉발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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