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위에 '군림'
군림하는 국회의원
국회의원 국감자료 요구에 학교까지 마비
현오석 부총리, 현안보고하려 5시간 기다려
초등생 지켜보는데 막말 공방, 의원 보좌관들도 덩달아 '갑질'…국회 신뢰도 갈수록 떨어져
전통시장 상생기금 냈더니 "금품 제공 아니냐" 의혹 제기…유통 CEO들 줄줄이 국감 소환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1. 기초연금 공약 축소 논란에 대한 긴급현안질의가 열린 지난 1일 국회 본회의장. 강기정 민주당 의원은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기초연금) 공약을 만들 때부터 쓰레기 공약으로 생각한 것 아니냐”며 “국민은 박근혜 정권을 배신자 정권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쪽에서 “헛소리 하지 마” “그만해”라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민주당 의원들도 “새누리당은 입 다물고 있어”라고 응수했다. 국회 견학을 위해 방청석에 앉아 있던 300여명의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은 이런 추태가 이어지자 인솔 교사들의 손에 이끌려 조용히 자리를 떴다.
#2. 광주의 한 중학교에서 상담교사로 일하는 A씨는 요즘 학생 상담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는 14일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광주교육청을 통해 요구한 자료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 A씨는 “상담한 내용을 학교폭력, 자살 등 주어진 매뉴얼에 따라 정리하지만 의원들은 목록에 없는 이성교제 사항 등을 추가로 요청한다”며 “지금까지 상담한 내용을 일일이 확인해 수치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의원들은 수업 일정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며 “이처럼 학교 사정을 너무 모르는 의원은 뽑지 않아야 한다고 매번 교사들끼리 말한다”고 전했다.
지난 2월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가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사회통합 국민의식 조사를 한 결과 정부·국회·법원·경찰·언론·금융기관 등 6개 주요 공적 기관 가운데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5.6%로 가장 낮았다. 72.8%는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신뢰도에서 언론(16.8%) 정부(15.8%) 법원(15.7%) 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의원들의 특권의식을 잘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총리나 각 부처 장관들을 불러놓고 진행하는 대정부질문, 긴급현안질의 등이다. 총리나 장관에게 ‘막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종시에서 올라온 공무원들을 몇 시간씩 기다리게 하는 것도 다반사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2회계연도 결산안과 2013~201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고하기 위해 2일 국회 기획재정위에 출석했으나 보고하기까지 5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회의는 오전 10시40분 시작됐지만 강길부 기재위원장과 야당 간사 김현미 의원이 지난달 30일 기재위가 열리지 않은 이유를 놓고 다투느라 오후 3시30분이 돼서야 현 부총리의 보고를 받았다.
행정부를 견제할 목적인 국정감사는 의원들의 ‘군기잡기 장’으로 전락했다. 덩달아 국회의원 보좌관들도 각 부처에 이른바 ‘갑질’을 하는 시기다. 이번 정기국회 국정감사는 14일 시작해 20일간 진행된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의원이나 보좌관이 몇 년치 자료를 몽땅 달라고 할 때 곤혹스럽다”며 “준비하려면 밤을 새우기 일쑤”라고 말했다. 그는 “한번은 대외비라서 제출할 수 없다고 하는데도 보좌관이 막무가내여서 한 여자 사무관이 운 적이 있다”고 전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보좌관이 우리 국장들 위에 있다. 보좌관이 ‘어이 국장’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며 “절대권력이 따로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교육부 관계자는 “낮에는 국감 자료 준비하고 저녁에는 의원, 보좌관들과 술자리를 해야 한다”며 “낮에는 깨지고(혼나고) 밤에는 술시중 들고 정말 죽을 맛”이라고 했다.
홍종학 민주당 의원은 4일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기재부에 요구한 국감 자료를 담당자가 휴가를 가는 바람에 받지 못했다”며 “누가 어떤 이유로 휴가를 갔는지 모두 제출하라”고 무리한 요구를 했다.
국감 때문에 피곤한 것은 중앙 부처뿐만이 아니다. 일선 학교도 교육부나 교육청을 통해 내려오는 국감 자료 요구에 응하느라 업무가 마비되고, 민간 기업도 최고경영자(CEO)를 국감 증인으로 호출하려는 의원들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정무위는 이번 국감에 일감 몰아주기와 ‘갑의 횡포’ 실태 등을 파악한다는 이유로 삼성전자의 권오현 부회장과 신종균 사장,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사장 등을 부르기로 했다. 국토교통위도 4대강 사업 담합, 일감 몰아주기 등과 관련해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근거로 기업인을 증인으로 신청하는 일도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허인철 이마트 사장, 노병용 롯데마트 사장 등 유통업계 오너와 CEO들을 15일 열리는 중소기업청 국감 증인으로 채택할 계획이다. 유통업체들이 점포를 내는 과정에서 주변 상인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상인 대표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것이 이유다. 박완주 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일부 상인단체에 거액의 돈을 건넸다”며 “상인회 임원들에게 별도의 뒷돈을 줬다”고 주장했다.
'빈껍데기' 윤리특위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책에 귀태라는 표현이 있다.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이 태어났다는 뜻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귀태의 자손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한 말이다. 분명 도를 넘은 발언이다. 새누리당은 곧바로 홍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했다.
하지만 홍 의원에 대한 징계안이 윤리특위를 통과할 것이라고 보는 여야 의원은 거의 없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이후 윤리특위를 통과한 징계안은 단 한 건. 이 한 건의 징계도 18대 국회에서 강용석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여대생들에게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고 말했다가 ‘30일간 국회 출석정지’를 받은 게 고작이었다. 1948년 제헌국회부터 김영삼 정부 이전까지 가결된 의원 징계안은 총 5건이다.
윤리특위에서 의원들의 징계안이 처리되지 않는 이유는 여야 모두 징계안을 가결시키는 것에 정치적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제식구 감싸기다. 한 여당 의원은 “야당 의원의 징계안 처리에 찬성하면 우리 당 의원 징계안이 올라올 경우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강 전 의원에 대한 징계안도 그가 한나라당을 자진 탈당해 무소속이 된 후에야 가결됐다. 징계안을 제출하는 당사자들도 실제 징계를 기대하기보다는 해당 의원을 면박주기 위한 ‘정치쇼’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징계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여야가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위해 ‘일단 징계안을 내고 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16대 국회 때 제출된 징계안은 13건에 불과했지만 17대 국회는 37건, 18대 국회는 54건으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19대 국회 들어 지난 6일까지 윤리특위에 제출된 징계안은 26건이다. 19대 회기가 1년4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18대 국회 4년간 제출된 징계안의 절반 가까운 건수가 제출된 상태다. 의원들의 막말이 그만큼 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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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위해 '봉사'
개인 보좌관 없이 의정활동…거의 매일 야근
노동강도 센 스웨덴 의원, 의원직 재도전 포기 30% 달해
8월 빼고 의회 문 여는 영국, 회기중 週 4일 대정부질문 참여
네덜란드 의원 200명 중 운전기사 둔 의원 한명도 없어
지난달 13일 스웨덴 의회의사당에서 만난 여란 페테손 중도당 의원의 사무실은 한눈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았다. 사무실 크기는 5평(약 16.52㎡) 남짓. 한국 국회의원 사무실(45평·142.14㎡)의 9분의 1 정도 크기다.
보좌관이나 비서 자리는 없었다. 스웨덴 의회의원은 의원 2명당 보좌관 1명을 두고 있어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만 보좌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법안 준비는 물론 이메일 확인이나 일정 조정 같은 사소한 일까지도 의원 본인들이 스스로 해야 한다. 심지어 정부보조금 사용 내역은 단돈 1원까지도 영수증을 첨부해 의회 사무처에 직접 내야 한다.
군인 출신인 페테손 의원은 “법안을 준비할 때 기초 자료 수집은 보좌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이것만으론 한계가 있다”며 “금융이나 재정처럼 전문 분야 법안을 준비할 때는 의원 스스로 전문가를 초청해 그들의 의견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스웨덴 의회의원들 입법 열정
스웨덴에서 의회의원직은 힘든 업종으로 꼽힌다. 1년에 두 달 정도를 제외하고는 의회가 계속 열리기 때문이다. 야근하는 의회의원이 수두룩해 의원 회관은 매일 불야성을 이룬다. 식사시간이 부족해 점심·저녁은 의회 직원식당에서 해결하는 의원이 부지기수다. 2006~2009년 4년 동안 의원 1인당 평균 법안제출 건수는 119.8건이다. 의원 한 명이 1년에 30건 가까운 법안을 낸 것. 단순히 ‘양’만 많은 게 아니다.
법안의 ‘질’도 우수하다. 한국에선 의원들이 기존 법안에 문구 몇 개만 바꿔 개정안을 내거나 내용도 제대로 모른 채 다른 의원이 만든 법안에 자기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지난해 기준으로 94%에 달한다. 하지만 스웨덴 의원들은 법안 하나를 내기 위해 철저한 연구와 준비기간을 거친다. 페테손 의원은 “힘들게 만든 법안이 빛을 보지 못할 때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정부 지원이 풍족한 것도 아니다. 휴대폰 요금을 지급하지만 개인 용도의 통화료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차량 유지비도 없다. 출퇴근 교통비를 지원해주지만 버스, 지하철 등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 이용만 가능하다. 업무로 해외 출장을 갈 경우 임기 내 5만크로나(약 839만원) 한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다. 연금을 받기 위한 조건은 12년 이상 의원직 유지다. 한국은 3개월 이상만 의원직을 유지해도 연금을 받는다. 페테손 의원은 “그럼에도 일부 국민은 의원들의 특권이 많다고 비판한다”고 말했다.
노동 강도가 워낙 세다 보니 임기가 끝나면 의원직 재도전을 포기하는 비율이 30% 가까이 된다. 이 때문에 스웨덴 정당들은 새로운 정치인을 영입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정당 홈페이지에서 ‘능력 있는 신인 정치인을 찾습니다’라는 광고를 흔히 볼 수 있다.
◆일하는 문화 지배적인 영국
영국 의회도 일하는 문화가 지배적이다. 8월 한 달을 빼고 매달 의회가 열린다. 의원들은 법안 검토 외에도 의회 회기 중 매주 4일간 총리, 장관들을 상대로 현안을 묻는 대정부질문을 준비하고 참여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정기국회와 임시의회 때 3~4일간 대정부질문이 열린다. 지난해에는 10회를 넘기지 못했다. 금융투자업체 노브스그룹의 마이크 머피 대표는 “물론 모든 의원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서도 스웨덴처럼 의회의원이 청바지 차림에 자전거를 타고 등원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200여명의 의회의원 중 자가용 운전기사를 둔 의원은 한 명도 없다
"스웨덴 의원 유일한 특혜는 자녀 유치원"
“스웨덴 의회에는 의원 자녀를 위한 유치원이 있습니다.”
클라즈 무테손 스웨덴 의회 입법처장(사진)은 의회의원에게 주는 주요 혜택으로 유치원을 꼽았다. 스웨덴 의회는 두 명의 유치원 교사를 고용해 의원들 자녀를 의회 일정 동안만 돌봐준다. 야근이 잦고 일이 많은 스웨덴 의원에게도 다른 국민처럼 최소한의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 유치원을 만들었다. 무테손 처장은 “국민이 납득하는 특혜 수준이 의사당 내 유치원을 두는 정도”라며 “의원들이 더 원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 국민이 요구하는 의원의 의정 활동 수준이 높고 각종 혜택에 대해서도 엄격하다고 강조했다. 의원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정치적 수준도 의회 문화를 만드는 주요 요인이라는 얘기다. 무테손 처장은 “스웨덴 의원이 받는 대우가 다른 나라에 비해 좋지 않지만 일부 국민은 여전히 의원의 임금이 많다고 비판한다”고 말했다.
의원의 사소한 의정 활동까지 샅샅이 공개하는 것도 ‘일하는 의회’를 만드는 중요 요인이다. 의원별로 국고보조금 이용 내역부터 사안별 투표 현황, 처리 문서까지 누구든 확인이 가능하다. 일은 얼마나 하는지, 돈은 어디에 쓰는지 국민이 감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고 스웨덴 의회에 권력 남용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테손 처장은 “최근 가장 논란이 된 의회 스캔들은 2011년 당시 제1야당 사회민주당의 호칸 유홀트 대표의 주거비 유용 사건”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정부는 지방에서 올라온 의원에게 한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의 집만 지원한다.
다른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집의 평수를 늘리려면 추가 주거비용은 의원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유홀트 대표는 보조금으로 2명이 살 수 있는 집을 구해 그의 여자친구와 4년 넘게 지냈다. 그는 관련 법을 잘 몰랐다고 토로하고 지원받은 주거비용 16만크로나(약 2692만원)를 반납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사민당의 지지율은 떨어졌고, 3개월 뒤 그는 대표직을 사임했다.
그는 스웨덴 사민당 역사상 제일 짧은 임기를 지낸 대표가 됐다. 무테손 처장은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높은 스웨덴 국민에게는 지금도 논란이 되는 큰 사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영국, 과속벌점 떠넘긴 '거짓말 의원' 퇴출
의회 윤리 규범을 위반한 의원에 대한 선진국 의회의 징계는 강력하다. 의회가 국민의 대표 기관으로 스스로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자정 장치다.
미국은 의원을 징계할 수 있는 권한이 헌법 제1조 제5항에 명시돼 있다. 의원의 잘못에 대한 형사상·민사상 책임과는 별도로 의원으로서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했을 경우 의회로부터 징계를 받는다.
1964년 상원, 1967년 하원에 윤리위원회를 설치해 의회 차원에서 의원 비리를 조사하고 징계하기 시작했다. 의회 내의 질서를 어긴 의원은 재적의원이 아닌 재석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로 의원직을 박탈당한다. 지금까지 2002년 뇌물 수수와 탈세로 문제가 된 제임스 트르피칸트 하원의원 등 3명이 제명됐다. 제명된 의원이 적은 것은 비리에 연루된 것이 밝혀지면 의회가 나서기 전에 본인이 미리 사임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한국보다 규제 기준이 높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09년 의회 연설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거짓말’이라고 고함을 친 공화당의 조 윌슨 하원의원은 하원이 바로 통과시킨 ‘부적절한 언어사용 행위에 대한 비난 결의안’을 통해 혹독하게 비난받았다.
영국 의회는 의회 내의 질서 유지와 품위, 예의 준수 등을 강하게 요구한다. 징계로는 제명, 자격 박탈, 직무 정지, 호명 등이 있다. 1954년 공문서를 위조한 죄로 제명된 데이비드 베이커 의원 등 지금까지 총 3명이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의원 불체포 특권은 없다. 회기와 관계없이 경찰이 의회 안에 들어오지는 못하지만 어디서든 체포할 수 있다. 지난 2월 영국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자유민주당의 크리스 휸 의원은 2003년 과속 운전 벌점을 아내에게 떠넘긴 혐의로 법정에 서야 했다. 결국 그는 8개월의 형량을 받아 교도소에 수감됐다. 휸 의원은 자민당 차기 대표로 꼽혔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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