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iF you don't act, nothing changes.
^^공간이야기/세상살이이야기

“돈 있는 데 이혼 있다”

by SL. 2015. 5. 23.

 2015.05.11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혼인과 이혼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조선시대 평균수명은 35세였던지라, 남녀 모두 빨리 결혼해 빨리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이 필요했다. 당연히 조혼(早婚)이 일반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평균수명이 짧으니 소박을 당하거나 사별하더라도 혼자 살아야 할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다. 그러니 수절을 강요하는 유교 사상도 그 시대의 사회적 배경상 큰 부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건강 상태가 좋아지고 평균수명도 2배 이상 길어졌다. 2011년 현재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은 남자 77세, 여자 84세다. 이제는 평균수명 100세를 바라보고 있다. 수명이 늘어나 오래 살게 되면서 혼인과 이혼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만혼(晩婚)이 일반화하고, 재혼(再婚)과 이혼,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 일부종사나 수절을 미덕으로 여기고 강요하는 일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가장 큰 원인은 단연코 경제적 이유가 될 터다. 특히 점점 늘어가는 이혼 가정에서의 경제적 잣대는 처절할 정도다.

철없던 시절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만나 가정을 이뤄도 10년, 20년 혼인생활을 하다 보면 각자의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고 이성을 만나는 기회도 많아진다. 이성을 보는 잣대나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부부간 갈등도 커진다. ‘가족을 위한 희생’보다 ‘자신의 행복’을 더 크게 생각하는 시대적 특징도 부부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적인 행복’에는 경제적 이유가 매우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배우자가 경제력이 없어 비전이 없다’ ‘너무 가난해서 못 살겠다’고 말하는 젊은 부부가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혼인 기간이나 연령을 불문하고 이혼하는 부부에게는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자녀양육비가 가장 큰 다툼 요인으로 떠오르곤 한다.

부모 이혼 부추기는 자녀들

또 평균수명 증가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더 길다는 생각은 경제적 어려움을 심각한 이혼 사유로 고민하는 경우가 늘어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 않아 이혼한 70대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미 고전이 됐다. 가정폭력이나 외도에 시달리는 아내 가운데도 모든 재산이 자기 명의로 돼 있거나 상당한 액수의 재산이 있으면 이혼 대신 참고 사는 쪽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모든 재산이 남편 명의로 돼 있는 상태에서 남편이 외도하며 생활비를 주지 않거나 사귀는 여자에게 재산을 조금씩 넘겨주는 경우에는 남아 있는 재산이라도 보장받기 위해 결혼한 자녀들이 어머니를 앞세워 이혼을 요구하곤 한다. 이혼을 통해서라도 아버지의 재산을 확보하지 않으면 어머니의 노후를 자식들이 책임져야 하고, 자신들의 상속 재산에도 적신호가 켜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자녀들이 의리가 있어서 이혼소송이 벌어지면 폭력적이거나 외도를 일삼는 등 이혼 사유를 제공한 아버지 또는 어머니를 적대시하고, 약자이자 피해자인 쪽 편에 서서 증언하거나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자녀들도 지나치게 영리해져버렸다. 부모 중 경제력을 가진 쪽을 드러내놓고 지지하거나, 심지어 양심에 반해 거짓 진술까지 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자녀조차 이혼소송이 시작되면 큰 집에 살거나 맛있는 고급식당에 데려가는 아빠 또는 엄마 쪽과 함께 사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재혼하면, 재혼한 부모의 행복이나 정서적 안정보다 그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올 상속 재산이 줄어드는 것을 더 걱정하는 경향도 확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치매에 걸리거나 중환자실에 입원한 노령의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딸이 새어머니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하거나 혼인무효소송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60대 아들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93세 아버지 이름으로 10년 넘게 재혼생활을 해온 새어머니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사건, 치매에 걸린 76세 회사 대표인 아버지와 50대 여비서와의 혼인신고를 둘째아들이 무효라고 주장해 혼인무효판결을 받은 사건 등이 그 전형적인 사례다. 아버지의 경제력과 자신들의 상속 재산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이런 소송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혼이혼을 하고자 하는 이는 대부분 상당한 재산을 갖고 있으며, 재산분할로 나눌 것이 없거나 물려받은 상속 재산이 없으면 황혼이혼율도 낮은 게 현실이다.

 

만혼·이혼·재혼 흔들리는 가정

이러다 보니 젊은 층 사이에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얼마 전 만난 30대 중반 남성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유를 묻자 “대학 졸업하고 수년간 취직을 못 하다가 몇 년 전 겨우 취직해 한 달에 150만 원 정도 번다. 이 돈으로 언제 집을 마련하고, 집도 없는데 누가 결혼을 해주겠나. 혼자 먹고살기도 힘든데 남편이나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어 결혼은 오래전 포기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사회가 힘들어지고 결혼이 갖는 의미나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결혼이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나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돼가고 있는 셈이다.

힘들게 결혼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출산을 기피해 2013년 현재 출산율이 1.18명에 그친다. 결혼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는 후배가 “맞벌이 부부로 밤낮 없이 회사 일에 치어 사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나. 나처럼 힘들게 사는 사람을 한 명 더 만드느니, 차라리 두 사람이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 있게 살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두 사람이 만나 자녀 2명은 낳아야 현재 인구가 유지되는데, 서울은 출산율이 0.968명으로 1명도 출산하지 않는 부부가 많아지고 있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데이비드 콜먼(David Coleman)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2100년에는 우리나라 인구가 현재의 절반이 되고, 2300년에는 이 지구상에서 우리나라 인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건강한 사회는 건강한 가정과 정서적 안정에서 시작된다. 수명이 길어지고 가족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사회가 변하면서 경제적 가치가 그 어느 가치보다 소중한 것으로 급부상하게 됐다. 우리 가정을 지탱해오던 전통 미덕이나 가치관이 많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취업 불안, 경기 불안, 고물가, 주택난 등 수많은 문제가 경제 문제로 귀결되는 현실에서 팍팍한 삶에 염증을 느끼고 경제적 가치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 변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과연 경제적 가치가 최고 가치가 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 문제로 인한 끝없는 정서적 갈등과 가정파탄에 따른 엄청난 기회비용을 우리 사회 모두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혼과 출산 기피, 이혼과 재혼의 증가는 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흔들리는 가정을 바로잡아야 사회도, 국가도 안정될 수 있다.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15/05/08/201505080500010/201505080500010_1.html

 

 

 

“내 몫 내놔” 툭 하면 송사

 

‘남보다 못한 사이’ 안 되려면 유언장 작성 등 ‘사전 예방’ 충실해야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고 형을 형이라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다 그냥 ○○○ 씨라고 부르죠. 분위기요? 말 그대로 살벌합니다.”

상속 관련 분쟁 사건을 많이 맡아온 강치훈 법무법인 정앤파트너스 변호사가 혀를 내두르며 한 말이다. 그는 “법정에서 서로 잘잘못을 다투고 ‘내 몫’ ‘네 몫’을 챙기다 보면 가족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것 같다”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최소한 소송에 뛰어든 가족 사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이러한 가족 내 소송이 크게 늘고 있다. 특히 가장(家長) 사망 후 유산을 두고 남은 식구들끼리 다투는 사례가 빈발한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다 받지 못했다며 다른 상속인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는 ‘유류분(遺留分) 반환 청구 소송’이 최근 9년 새 5배 이상 늘었다(2005년 158건→2014년 811건).

유류분은 상속인이 유산 중 일정 비율을 법률상 반드시 취득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로, 통상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에 해당한다. 만약 A씨가 배우자 B씨와 자녀 C씨를 남긴 채 사망했다면 B씨의 유류분은 현행법상 배우자 법정상속분 ‘2.5분의 1.5’에서 2분의 1인 ‘5분의 1.5’가 된다. 유산이 1억 원일 경우 최소 3000만 원은 B씨 몫이라는 뜻이다. 자녀 C씨는 법정상속분 ‘2.5분의 1’에서 2분의 1인 ‘5분의 1’, 즉 2000만 원을 유류분으로 확보한다. 만약 A씨가 이를 무시하고 재산 전체를 B나 C에게 남길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부모 사망 후 남은 형제자매가 많으면 분쟁 여지도 커진다. 일단 소송이 시작되면 당사자들은 재판정에서 “형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재산을 독차지했다”거나 “어머니가 내 몫까지 부당하게 받아갔다”며 다툰다. 경태현 법무법인 천명 변호사는 “특히 요즘에는 부모를 상대로 유류분 반환을 청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부모 형제 안 가리는 재산 다툼

경 변호사에 따르면 ‘좀 부당해도 가족 사이니까 내가 참자’라는 문화도 사라지고 있다. 2011년 서울 서초구에 사는 D씨는 아버지 사망 후 형이 자신보다 재산을 더 많이 받아갔다며 146만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E씨는 상속 재산을 둘러싼 소송 과정에서 “아버지에게 매달 30만 원씩 생활비를 지급하고 가전제품 등을 사줬다”며 재판부에 기여분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아버지를 매주 병원에 모시고 다녔다”는 이유로 더 많이 상속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자녀도 있다.

이 밖에도 크지 않은 액수를 놓고 법원 문을 두드리는 가족이 적잖다. 한 변호사는 “종종 ‘홀로 되신 아버지가 새로 만나는 여성에게 재산을 넘겨줄 것 같다. 돌아가시기 전에 재산을 미리 확보해둘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유류분은 피상속인 사망 후 발생하는 권리로, 그전에는 자기 몫을 주장하는 게 불가능하다.

분명한 건 과거에는 재벌가의 일로나 여겨지던 형제간 재산분쟁이 대중화했다는 점이다. 2012년 전국 법원에 접수된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의 평균 소송가액은 1억2681만 원으로, 2002년의 1억7458만 원에 비해 오히려 27.4% 줄었다. ‘가족 사이라도 내 몫을 빼앗기는 건 참을 수 없다’는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단면이다(상자기사 1 참조).

피도 눈물도 없는 재벌가 가족 전쟁

그동안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 분쟁이 주로 벌어졌던 곳은 재벌가다. 현재 형제간 다툼이 가장 치열한 곳은 금호가(家). 2009년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금호아시아나(금호산업,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와 금호석유화학으로 분리된 후에도 갈등과 송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01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사망 후 장남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사이에 경영권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왕자의 난’도 형제간 재산 다툼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현대가에서는 2003년 정몽헌 회장이 사망했을 때 부인 현정은 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또 한 번 일전을 벌인 일이 있다.
삼성가의 경우 2012년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형제간 다툼이 전면에 드러났다. 두산그룹에서는 고 박용오 전 회장이 동생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긴 뒤 형제간 공방이 벌어졌다. 인터넷 재벌 정보 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4년 공정거래위원회 자산 기준 우리나라 40대 재벌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7곳에서 혈족 간 분쟁이 발생했다.

상속 재산을 둘러싼 가족 사이 법적 분쟁이 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는 친생부인(親生否認) 소송 건수다. 피상속인 사망 후 재산을 분할하는 과정에서 주로 제기되는 이 소송은 2009년 186건에서 지난해 536건으로 역시 크게 늘었다.

2006년 남편 사망 후 아들을 상대로 친생부인 소송을 제기한 F씨 역시 상속 재산에 대한 다툼 때문에 법원 문을 두드렸다. F씨는 남편의 전처소생인 G씨가 남편의 친자식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품었고, 그 사실이 확인되면 유산을 나눌 필요가 없을 것으로 여겨 유전자 감정을 의뢰했다. 결과는 G씨의 아버지가 남편이 아닌 제3자라는 것. 이를 근거로 F씨는 ‘G씨가 남편의 친자식이 아님을 확인해달라’는 취지의 친생부인 소송을 법원에 냈다.

대법원이 매년 통계를 모아 발간하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상속을 둘러싼 소송은 최근 꾸준히 늘고 있다(2004년 2만1709건→2013년 3만5030건). 전문가들은 고령화가 지속되고, 노년층의 재산이 중·장년층에 비해 많은 상황이 지속되는 한 상속 관련 소송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내다본다.

지난해 6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이혼시 장래퇴직금 재산분할 소송 공개변론장에 양승태 대법관이 입장하고 있다.

유언장의 법적 효력

하나금융연구소가 1월 발표한 ‘상속 시장 분석 및 고객 세분화 방안’ 보고서도 국내 상속 자산 규모가 2016년 89조 원에서 2020년 108조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상속분쟁이 늘고 있음에도, 사회적 인식이 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H씨와 I씨가 어머니 사망 후 유언장의 효력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인 사건이 한 사례다. 두 사람의 어머니는 사망 전 ‘모든 재산을 H에게 준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쓴 뒤 작성연월일, 주민번호, 이름을 쓰고 날인했다. H씨와 I씨는 이후 ‘어머니가 사망할 경우 I는 상속 재산에 대한 권리와 유류분 반환 청구권을 전부 포기한다. 그 대가로 H는 4500만 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하고, 실제로 H씨가 I씨에게 4500만 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어머니가 사망하자 I씨는 상속을 주장했다. 어머니가 유언장에 정확한 주소를 쓰지 않고 ‘○○동에서’라고 행정구역 명만 기재한 게 문제가 됐다.

이어진 소송에서 1, 2심은 H씨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민법 제1066조 1항 규정에 따라 유언자가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모두 자서하고 날인해야만 효력이 있고, 자서(自書)가 필요한 주소는 반드시 주민등록법에 의해 등록된 곳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으로서 다른 장소와 구별되는 정도의 표시를 갖춰야 한다’며 ‘이 유언장은 주소의 자서가 누락돼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나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유언장의 효력이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최근 이러한 유언장 관련 분쟁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분쟁이 빚어질 때마다 대법원은 ‘민법이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므로 민법에서 정하는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아무리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는 판결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날인이 돼 있지 않거나 날짜, 주소 등이 제대로 기재되지 않은 자필 유언은 무효로 본다. 전문가들은 사망 후 자식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는 걸 방지하려면 생전에 유언장 작성 요령을 숙지해 법적 요건에 맞는 유언을 남겨야 한다고 조언한다(상자기사 2 참조).

부모가 돈이 없어도 법적 다툼은 발생한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부모가 자녀에게 부양료 지급을 요구하는 부양료 지급 청구 소송이 대표적이다. 우리 민법 제947조에 따르면 직계비속인 자식들은 직계존속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 1955년 민법 제정 당시부터 있었으나 사실상 사문화 상태였던 이 조항이 최근 법정에서 적극적으로 다퉈지는 분위기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2003년 127건이던 부양료 지급 청구 소송은 2013년 250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자식을 상대로 부양료를 요구하는 부모 가운데 상당수는 자녀 부양 과정에서 재산을 모두 써버린 이들이다. 2012년 2월 한 어머니가 아들을 상대로 제기한 부양료 지급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아들은 어머니에게 매월 6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면서 ‘아들은 안정된 직업과 재산을 갖고 있으며, 그 기반이 상속에서 비롯됐다. 반면 어머니는 수입과 재산이 없어 곤궁하다’고 이유를 들었다. 김상용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처럼 평생 자식 뒷바라지를 하고 재산까지 모두 물려준 뒤 생활비가 없어 고통받는 부모가 적잖다”며 “자식에게 재산을 준다고 훗날 자식들이 노후를 책임져주는 게 아닌 만큼 재산 증여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족 소송은 변호사업계 ‘블루오션’

상속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 다툼이 법정으로 향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최근 법조계는 이러한 가족 간 법률분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은 지난해 가사·상속 사건 전담팀을 만들었다. 2013년 허영섭 전 녹십자 회장의 재산 상속 사건을 대리한 김상훈 변호사가 주축이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세종, 율촌, 로고스 등에도 가사 관련 법률서비스 전담팀이 있다. 이런 로펌들은 수백억~수천억 원대 상속 다툼이나 이혼 및 재산분할 사건을 담당한다.

개인 변호사는 고액의 수임료를 부담하기 어려운 중산층, 서민을 대상으로 관련 업무를 확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최근 증가하는 가족 간 ‘극한 소송’의 배후에 변호사 수 급증을 맞은 우리 법조계의 현실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우리나라에 2만 번째 변호사가 탄생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1990년부터 2013년까지 소속 회원들이 수임한 소송 건수와 변호사 수 증가 추이를 분석한 결과, 사건 수가 6만9878건에서 25만1655건으로 260.1% 늘어나는 동안 변호사 수는 1253명에서 1만476명으로 736.1% 늘었다. 이에 따라 서울에서 활동 중인 변호사 한 명의 연간 평균 수임사건 수는 2009년 32.8건에서 지난해 24건으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 간 분쟁은 법조계의 ‘블루오션’일 수 있다.

법률 환경 변화도 가족 간 소송전을 부추긴다. ‘2014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3년 접수된 11만5292건의 이혼 사건 중 결혼 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가 3만2433건으로 전체의 28.1%를 차지했다. 이에 대해 박현정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는 “최근 법원이 재산 형성에 대한 배우자의 기여를 높이 평가하는 추세다.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한 전업주부의 경우 배우자 사망 후 상속으로 받는 돈보다 이혼을 통해 재산분할로 받는 돈이 더 많을 수 있다. 최근에는 연금까지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돼 황혼이혼 소송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의 경우에도 일단 소를 내면 얼마라도 돌려받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때문에 가족 간 법률분쟁을 막으려면 ‘사전예방’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상용 교수는 “경제적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한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가족 간 소송이 남의 일이 아니다. ‘가족끼리인데 뭘’ 하며 가벼이 여기다 가족이 풍비박산 나는 일을 막으려면 재산 증여 전, 사망 전 철저히 법적 요건을 따져 분쟁 여지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15/05/08/201505080500008/201505080500008_1.html

 

 

 

“쪽팔리는 가족사를 공개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고위직 공무원이었고, 엄마는 호남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첩의 딸이었다. 아버지는 1950년대 말 미국에서 유학하고 국내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지성인이고, 엄마는 고등학교 중퇴 학력을 갖고 있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큰 흉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부부 사이에는 지적 성향의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안에서 아버지의 직업도 번듯하고 자식복도 많아 아들을 넷씩이나 두었다. 딸이 없어 아쉬울 수 있었지만 딸 넷만 있는 경우와는 다르게 모두 얼마나 든든하냐고 부러워했다’(박태영의 ‘가정이 웃어야 나라가 웃는다’ 중에서).

‘그’라는 3인칭을 썼지만 이것은 박태영(55·사진) 교수 집안의 이야기다. 사실 여기까지는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 아니 오히려 남이 부러워하는 가정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가 들려주는 ‘발가벗은 가족사’는 세상에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가족의 호칭은 4형제 중 막내인 박 교수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발가벗은 가족사

친척들의 질투를 살 만큼 예뻤던 엄마는 평생 불안증에 시달렸고 신경정신과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 엄마는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쥐고 흔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아버지와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부부싸움을 할 때는 마치 누구 하나가 죽어 나갈 듯이 격렬했다.

아버지는 가정과 일에서 늘 최선을 다하는 분이었고 돌아가신 후에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또 자식들에게는 보통의 아버지보다 120% 아버지 노릇을 했다고 자신할 만큼 성실했다. 하지만 ‘성적(性的) 행동’이 문제였다. 술에 취해 귀가한 날이면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를 건드렸다. 엉덩이를 쓰윽 만지고 껴안는 것은 물론, 새벽마다 가정부가 자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들은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체했다. 엄마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였다. 아버지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탄로 나면 가정부는 쫓겨났고 새로운 가정부가 들어왔다. 한 번은 아버지가 엄마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엄마는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따귀를 때리며 “네가 인간이냐, 개새끼!”라고 욕을 퍼부었다.

엄마의 바람기도 친척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정숙하다’는 말과는 거리가 먼 엄마는 자식들이 학교에 간 사이 늘 누군가를 만나러 나갔다. 아들의 가정교사, 담임선생, 자식들이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는 젊은 남자까지 ‘엄마의 남자’는 다양했다. 엄마는 다른 사람과 타협할 줄 몰랐다. 자기 고집대로 해야 선이고 자기 뜻을 어기면 악이었다.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했다. 아버지는 말이 없는 성격인데 엄마는 얼굴을 봤다 하면 잔소리를 하며 사람을 달달 볶다 못해 ‘돌게’ 만들었다.

다음은 4형제 이야기다. 엄마는 어려서 폐병을 앓아 몸이 약한 큰형을 편애했고 한 살 터울의 둘째형에게는 매정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쌀밥에 불고기 반찬을 싸서 가정부 손에 들려 큰형의 학교로 갖다 준 반면, 둘째형에게는 보리밥과 김치만 싸줬다. 둘째형은 보리밥이 싫다고 수십 번 도시락을 집어던졌지만 엄마는 끝끝내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그 아들은 성장한 후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큰형과 둘째형을 차별하는 엄마의 방식은 손자들을 대할 때도 똑같았다. 결국 둘째형이 엄마에게 한이 맺힌 것처럼 둘째손자도 할머니에게 한이 맺혔다. 신기하게도 엄마가 자식과 손자들을 차별하는 방식은 외할아버지가 사용했던 방식과 똑같았다.

엄마와 밀착관계였던 큰형은 알코올중독과 도박중독에 빠졌고 여자 문제로 두고두고 속을 썩였다. 둘째형 역시 도박꾼으로 이름을 날리며 재산을 야금야금 날렸다.

셋째형은 효자이자 보호자이며 엄마의 남편 노릇을 대신했다. 부부싸움을 하면 엄마는 셋째형의 등에 얼굴을 대고 흐느꼈고 남편 흉을 봤다.

막내아들은 부모의 자랑이자 희망이었다. 박 교수는 자신을 ‘전시용 아들’ ‘엄마의 기쁨조’ ‘마마보이’라고 했다. 딸 없는 집안의 막내인 터라 딸 노릇까지 했다. 엄마의 불안과 그의 불안이 연동돼 엄마의 불안을 감소시켜야 그의 불안도 줄어들었다. 엄마가 빨간색을 파란색이라고 하면 파란색인 줄 알 만큼 무조건 복종했다. 심리학 용어로 ‘자아분화’가 덜 됐다.

그래서 병적 수준의 간섭조차 엄마의 사랑인 줄로만 알았다. 엄마는 모든 것을 지시했다. 심지어 결혼식을 앞두고 그에게 이런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성관계는 한 달에 한 번만 해라.” “왜?” “왜긴. 넌 몸이 약하니까 그렇지!” 그럼에도 그는 엄마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엄마의 지나친 사랑이 그를 돌게 만들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는데 저 집은 더하네’

박 교수는 인터뷰 내내 ‘엄마’라고 했다. 그는 강의실에서도, 방송에 출연해서도, 책을 쓰면서도 ‘엄마’라고 불렀다. 50대 중반 대학교수인 남성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스스럼없이 ‘엄마’라고 하는 것이 낯설게 들렸다.

“엄마는 부부싸움을 하거나 남자와 헤어진 후 아들인 내게 ‘죽고 싶다’고 했죠. 그로 인해 늘 불안했고 이런 불안을 다스리려고 저는 엄마와 밀착된 관계를 추구하고 과도한 역할을 하게 된 거죠. 결혼해서도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고 팔베개를 하는 아들이었어요. 6년 반의 유학 기간 엄마와 물리적으로 분화되지 않았다면 그런 삶이 계속됐겠죠.”

그러나 그의 가족이 유학생활을 마치고 다시 ‘엄마 집’으로 들어갔을 때 ‘위기’가 닥쳤다. 아내가 암에 걸린 것이다. 네 식구의 가장이었지만 그는 경제적 능력이 없어 독립할 수 없었고 아내는 시어머니에게 생활비를 타 써야 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분가시키려 했지만 엄마가 막았다. 막내아들을 데리고 살고 싶은 욕심이었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시어머니의 뜻을 따랐으나 그 대신 위 속에 암세포를 키웠다. 위암 판정을 받던 날 그는 “나 당신이랑 결혼한 거 후회했다” “어머니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꽉 막혀”라던 아내의 말이 하나씩 떠올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

가족의 치부를 시시콜콜 털어놓는 박 교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렇게 다 공개해도 되는 걸까 되레 듣는 이가 머쓱해진다. 그가 쓴 ‘가정이 웃어야 나라가 웃는다’는 더욱 가관이다. ‘가족치료 권위자 박태영 교수의 고백-우리 가정 치유記(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그는 아버지의 화병, 엄마의 고독사, 알코올중독과 도박중독으로 재산을 탕진한 형제,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 그대로 미처 몰랐던 아들의 만성불안증, 그리고 조부모의 내력까지 다 털어놓는다.

“책이 나온 뒤 형의 원망을 듣기도 했죠. 그러나 수업시간에도 늘 저희 가족 이야기를 사례로 들었기 때문에 책에 쓴 내용이 새로울 건 없어요. 상담 전 제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상대의 마음도 열게 됩니다. ‘나도 그랬는데 저 집은 더하네’라고 위로받는 거죠.”

스스로 ‘쪽팔리는 우리 가정’이라고 할 만큼 문제 많은 가정에서 성장한 것이 그의 가족치료 연구와 상담 활동에는 오히려 도움이 됐다. 그는 책에서 이런 말도 했다.

‘우리 집이 가족치료 교과서에 나오는 집안이고, 교과서에 나오는 엄마가 우리 엄마였구나. 분화가 안 되고 상대편을 완전히 돌아버리게 하는 표현 방식이 우리 엄마의 것이었구나.’

박 교수가 20년 가까이 가족치료를 하면서 상담한 가정은 1000곳이 넘는다. 4인 가족으로 치면 4000명이다. 문제 원인을 찾으려면 최소한 3대를 봐야 한다는 그의 치료 방식에 따라 친가, 양가 조부모까지 상담하면 그 수는 곱절로 늘어난다.

가족치료는 평균 15세션(session)으로 이뤄지고 세션당 1시간이 기본이다. 하지만 봇물 터지듯 나오는 내담자의 말을 막지는 않는다. 때로는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문제 원인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점쟁이 다 됐어요. 이야기를 듣다 중간 중간 질문 몇 개 던지면 딱 원인을 알아요.”

가족치료의 개념으로 보면 일반적인 가정은 두 가지 문제를 갖고 있다. 하나는 자녀 문제이고 또 하나는 부부 문제다. 박 교수는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정 문제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쉬쉬 하고, 참으라고 강요하고, 그런 것쯤은 문제도 아니라고 덮어버렸다.

그러나 겉으로 화목해 보이는 가정이라 해도 ‘위기’가 들어오면 잠복해 있던 문제가 드러난다. 행복했던 가정이 깨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가장이 실직하거나 병으로 경제적 능력을 상실했을 때, 배우자의 외도가 드러났을 때, 아이의 성적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죽고 싶다고 말할 때 같은 상황은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위기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신체적 질환, 정신적 질환, 반사회적 성격장애 등 3가지 문제적 상황이 벌어진다. 특히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가족 문제가 가족의 어려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가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묻지 마 살인’ 또는 지하철이나 문화재 방화사건 등 이유 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바로 반사회적 성격장애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병은 가정에서 시작하고 가족의 아픔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박 교수의 말에 밑줄을 긋는다. 가족치료의 출발점은 우리 가정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15/05/11/201505110500007/201505110500007_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