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입력 2012.07.31 10:03
청라지구 소송 사태,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
불꺼진 아파트마다 하우스푸어들의 눈물
[이코노미세계]
인천 청라지구는 대한민국 '하우스 푸어'들의 고뇌를 상징하는 곳이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한국의 베니스'로 불렸던 청라지구는 그러나 지금 '눈물바다'로 변했다.
평균 경쟁률 20~30대 1을 뚫고 당첨된 계약자들의 환호는 더이상 들리지 않고 땅이 꺼질 듯한 한숨소리만 들린다. 계약자들만 고통을 받는 건 아니다. 건설사들도 입주가 지연되면서 자금사정이 악화된데다 입주자단체로부터 무더기 소송을 당하는 등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주목받던 청라지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청라지구는 2003년 송도, 영종과 더불어 국내 최초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됐을 때만 해도 '희망의 땅'이었다. 1778만㎡ 면적에 인구 9만명을 수용하는 국제도시로 총 사업비 6조원을 투입, 동북아 금융 레저의 중심지로 키운다는 청사진이 있었다.
LH공사 고분양가가 단초 제공
분양이 시작된 2009년만 해도 청라지구는 인기 절정이었다. 모델하우스마다 수만명의 인파로 북적거렸으며 경쟁률이 298대 1에 달하는 곳도 있었다. 3년 후 상황은 급변했다. 아파트를 사려는 이는 간데없고 매물만 쌓이는 퇴락지가 됐다. 2012년 7월 현재 청라지구의 입주율은 40%를 겨우 넘긴 상태로 불 꺼진 아파트가 더 많다.
청라지구가 애물단지로 변한 것은 부동산 경기 침체의 여파도 있지만 분양 당시 약속된 기반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탓이 더 크다. 제3 연륙교, 7호선 연장 등 주요 사업들이 줄줄이 취소, 연기 되면서 도시 기능을 잃은 때문이다. 여기에다 LH 공사는 토지 조성원가를 과도하게 책정해 고분양의 단초를 제공했다.
LH공사는 당시 3.3㎡당 30만원이 채 안 되는 가격에 땅을 사들여 800만~900만원에 택지를 공급했다. 지나친 폭리가 아니냐는 비판에 LH 공사는 "토지 공급가는 수급에 따른 시장논리 측면에서 봐야 한다"라며 일축했다. 청라지구 입주자들은 LH측의 이런 태도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땅 장사를 통해 엄청난 시세 차익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기반 시설 확충에는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청라국제도시입주자연합회는 현재 15개 건설사를 상대로 소송 중이다. 연합회측은 "건설사들이 광고한 개발 계획 중 하나라도 제대로 지켜진 것이 없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자들이 져야 할 판인데 책임지겠다는 데가 한 곳도 없는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한다.
청라지구의 문제는 현재로선 뾰족한 해법이 없다. 원안대로 개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재정 적자에 허덕이는 인천시나 LH공사의 형편을 감안하면 당장 해결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송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예측을 불허한다.
청라입주자연합회 생존 걸린 소송나서
소송에서 계약자들이 승소하면 하우스푸어를 면할 수 있다. 반면 건설사는 심각한 내상을 입게 된다. 건설사가 계약금을 반환해줘야 할 뿐만 아니라 계약자 명의로 빌린 대출 이자까지 건설사가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건설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운 건설사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계약자들이 패소해도 지옥이 기다리는 건 마찬가지다. 분양계약서상에는 입주 시기가 지나면 연 24%의 연체 이자를 내야 한다. 집값이 뚝뚝 떨어지는데 고율의 이자 폭탄까지 맞으면 소득이 어지간한 중산층이라도 견디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하우스푸어도 모자라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은행은 예외다. 대부분의 은행은 아파트를 담보로 중도금 대출을 해준다. 중도금 비율은 분양가의 60% 정도이므로 집값이 그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손해를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청라국제도시의 문제는 청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실제로 청라지구사태와 유사한 소송이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사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누구 손을 들어주더라도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우스푸어 문제를 사법부의 몫으로만 돌리기에는 우리 경제에 미치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청라의 눈물'은 인천시와 정부출자기관인 LH공사가 합작해 띄운 고무풍선을 믿고 매달린 결과다. 고무풍선에 바람이 빠져 뛰어내리고 싶은데 그럴 수조차 없어 더 고통스럽다.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DTI 규제 완화, 가계 부채 심화 우려
직장인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하우스 푸어 발생 원인으로 ▶'정부의 불안정한 부동산 정책 때문(50.9%)'을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으로 ▶개인의 과도한 투자 욕심 (36.5%) ▶세계적인 경제 불황(11.2%) 등을 꼽았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투기 조장보다 집값 안정에 더 비중을 뒀으면 지금처럼 수많은 하우스푸어를 양산하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다.
주목할 대목은 향후 부동산 정책 방향이다.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들은 정부가 '집값 부양책을 써야 한다'는 의견(12.7%) 보다 '모든 지역의 집값을 더 내려야 한다'는 의견(40.3%)이 더 많았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은 19.9%에 불과해 아직도 집값에 거품이 끼어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부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조치를 내놓았다. 청와대의 이번 조치는 내수시장 활성화 및 부동산 연착륙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이지만 과연 현 시점에서 적절한 정책인지 의문이다.
가계 부채가 1000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DTI 규제를 완화하면 금융부실이 한층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스페인 등의 예에서 보듯 그 어떤 나라도 거품이 잔뜩 낀 상태에서 부동산 연착륙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 가계부채가 나라 경제에 얼마나 위협적인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이미 입증됐다. 정부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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