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09
600년 서민골목의 재탄생 / 지하에 제2의 피맛골 조성
문득 어린 시절 봤던 지하도시에 관한 SF영화가 떠오른다. 영화 제목은 가물가물하지만 당시 어린 눈에 비친 지하도시는 충격 그 자체였다. 지하지만 음침하거나 어둡지 않고 지상만큼 화려하고 밝았다. 자동차가 없어 매연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상관없다. 지하도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현대 도시는 매우 각박하다. 심각한 환경오염과 에너지 부족문제를 비롯해 인구과밀화와 교통체증으로 그 안에 살고 있는 도시인들은 점차 병들어 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지상에 얽매여서는 곤란하다. 지하공간의 활용이 더욱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현대의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청진동 일대에도 대규모 지하공간이 개발 중이다. 종각역에서 광화문역까지 지하로 문화 보행거리를 조성하는 '청진동 명품거리 조성사업'이 바로 그것. 특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청진동 피맛골의 화려한 재탄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피맛골 지하에 '청진동 명품거리' 조성
서울시 종로구는 광화문에서 종각역을 잇는 '종각역-광화문역 지하연결보행로'를 조성 중이다. 지난 2월 기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으며 2015년 완공 예정이다.
이 사업은 청진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다. 특히 청진구역 지상부에는 600년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종로의 전통미를 상징하는 근린공원(르메이에르빌딩 뒷편)이 조성된다.
현재 광화문역에서 종각역을 잇는 청진동 일대는 도시환경정비사업을 통해 낡은 해장국 골목과 옛 피맛골 상가 등이 높은 신축빌딩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서민의 애환이 서린 피맛골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 하기도 하지만 불량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면서 피맛골 고유의 분위기를 유지하겠다는 게 시와 구의 방침이다.
사업이 마무리되면 총 19개의 대형빌딩이 들어선다. 그랑서울과 시그나타워(옛 스테이트타워광화문)는 이미 완공됐고, 나머지 빌딩들도 2015년까지 신축될 계획이다. 아울러 새롭게 세워지는 건물들의 지하를 서로 연결해 종각역과 광화문역을 하나로 잇는 총 605m(면적 3630㎡)의 지하보도를 조성하겠다는 게 구의 복안이다. 또 지하보행로에는 휴게·상업시설과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돼 굳이 지상으로 나오지 않아도 지하에서 자유롭게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꾸밀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종로구청 관계자는 "지하공간을 개발하면 각 빌딩의 가치가 높아짐은 물론이고 지하에서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재탄생할 것"이라며 "추후 예치해야 할 사업비 500여억원 전액을 민간자본으로 유치해 예산도 절감했다"고 말했다.
◆해외사례 통해 엿본 '청진동 명품거리'의 미래
그렇다면 청진동 명품거리의 미래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해외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이를 가늠해볼 수 있다.
먼저 일본 오사카 '크리스티 나가호리'는 일본 최대 복합 지하상가로 도심 교통문제 해결과 부족한 주차공간을 확보해 지하공간 활용의 성공사례로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면적 8만1765㎡(주차장포함), 폭 37.2m, 길이 730m 규모로 5개 지하철역으로 직접 연결돼 편리한 교통접근성을 자랑한다.
패션타운·식도락타운 등 다양한 구역으로 구성돼 100여개의 점포가 입점해 있다. 또한 벽화·기념 조각물 등 예술작품을 주요공간에 배치하고 휴식공간에서 각종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특히 전체 구간 중 약 3분의 1 구간에 천장을 내 자연채광을 끌어들인 것이 눈에 띈다.
캐나다 토론토의 유니온역 역시 지하공간 개발을 통해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면적 2787만㎡, 총길이 27㎞에 달하는 규모부터 남다르다. 5개의 지하철역과 30개 이상의 건물, 20개소의 주차장과 3개의 호텔, 1000개가 넘는 소매점과 2개의 백화점, 시청사 등을 연결해 명실상부한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국내에도 지하공간을 활용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강남역처럼 오피스 밀집지역에 건물지하와 연결된 형태도 있고, 동대문스포츠지하상가 등과 같이 특화된 업종으로 구성돼 지하보도와 연결된 곳들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자연채광 같은 시설은 전무하며, 지하철역과 연결됐다고 하더라도 단순 환승형 지하보도와 점포나열 중심의 지하보도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지하공간을 구성할 때는 동적(보행)인 공간과 정적(휴식)인 공간이 상호 간에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며 "이용자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체류형·휴게형 지하보도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국내 지하보도의 경우 자연채광을 유도하는 곳이 없어 지하라는 공간의 단절성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화된 콘셉트'·'사업자 간 갈등해소' 필수
청진동 명품거리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일단 국내의 일반적인 지하공간 모델에서 벗어나기 위한 특화된 콘셉트가 필요하다. 19개 건물과의 보행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키려면 단순히 보행편리성만 부각시켜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피맛골로 유명한 청진동의 경우 음식테마 공간을 조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때 음식점 업종구성의 특화는 물론 지하라는 공간의 특성상 환기 등의 배려도 필수다.
설계 측면에서도 미흡한 부분이 보인다. 지하 보행로의 폭이 6.5~7.8m로 협소한 것이 대표적. 이로 인해 지하공간 활성화를 위한 특색 있는 상가와 휴게공간을 조성하는 데 한계가 따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사업비 분담과 시공사 선정 등 사업자 간의 갈등도 해소해야 할 부분이다. 지난 2008년 시작된 사업이 이제야 첫 삽을 떴는데 사업지연으로 인해 사업자들의 자금부담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시공사 선정 등을 둘러싼 크고 작은 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일부사업자는 종로구청이 GS건설과 대림산업 등 대형건설사에 시공권을 주기 위해 무리한 사업인가를 냈다며 구청을 상대로 인가취소 소송을 내기도 했다. 물론 구청은 지난해 말 5개 사업자가 협의체를 구성해 합의에 도달한 만큼 현재로선 문제가 해소됐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해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 사업자와 구청 간 갈등은 재발할 수 있다.
지하상권이 형성됨에 따라 축소되는 지상상권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지하상권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조성되는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사업이 완료되면 자연스럽게 지하통행이 늘면서 지상상권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하상권과 일부 지상상권과의 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선 대표는 "한정된 수요만으로 소비가 채워진다면 상권을 나눠 먹기 하는 현상을 피할 수 없다"며 "결국 특화된 거리조성에 성공해 유입인구를 늘리는 게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http://www.moneyweek.co.kr/news/mwView.php?no=2014073107038056330&outlin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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