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속 폐지 줍는 노인들 “가만히 있으면 누가 돈 주나…”
20120809 경기일보
“집에만 있으면 병나. 몸이라도 성하니까, 박스도 주울 수 있는거야.”
폭염이 이어진 7월 하순 이른 아침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에서 4년째 살고 있는 이흥순 할머니(79)를 만나 동행했다.
이 할머니를 만나기 전, 골목 사이사이 세워진 손수레나 유모차들을 먼저 볼 수 있었다. 평소에는 새벽부터 송죽동 곳곳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이른 아침 내린 비에 모두들 임시휴업에 들어간 듯 보였다. 담벼락과 지붕에 가려 젖지 않은 폐지들만이 송죽동의 골목 한켠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 할머니의 첫 모습은 박스가 수북히 쌓인 카트를 골목골목 운전하며, 쓰레기더미 속에서 마른 폐지들을 골라 싣는 모습이었다.
“오늘 나도 늦게 나온 편인데, 비가 와서 그런지 아무도 없네. 이럴 때 하나라도 더 챙겨놔야 돼.”
저소득 독거노인으로 정부에서 최소 생활비를 지원받고 있지만, 이 할머니는 2년째 이른 아침이면 길을 돌아다니며 폐지를 줍고 있다.
이 할머니는 경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부모님을 따라 중국 용강성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이후 오랜 시간 중국에서 살다가 65세의 나이로 95년 돌아와 지금까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다행히 할머니의 호적이 남아있어 한국인으로 인정돼, 최근에는 저소득 독거노인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
오전9시께 만석공원 배드민턴장 옆 벤치에 도착한 이 할머니는 2시간만에 처음으로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두겹으로 낀 목장갑을 벗은 할머니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냈다. 이 할머니는 한국에 와서도 맘편히 쉬어보지 못했다고. 막노동부터 식당일까지 번갈아가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써주는 곳이 없어져 몇년 전부터 할머니는 이렇게 폐지를 줍게 됐다고 했다.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 써주는 데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누가 돈이라도 준데?”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내내 주위를 살피던 이 할머니는 박스부터 캔까지 모두 카트에 담았다.
한 식당 앞에 버려진 14㎏짜리 고추장 금속통을 발견한 할머니의 표정이 밝아졌다. 바로 옆 전봇대에는 봉투에 담긴 소주병 십여개가 버려졌기 때문. 할머니는 하나라도 떨어질 새라 카트에 모두 담고는 검정색 굵은 고무줄로 이들을 꼭 묶었다.
“요새 소주병이고 맥주병이고 보기가 힘들어. 이런 게 종이보다 더 돈이 되는데….”
송죽동만 해도 십여명의 노인들이 매일 거리로 나와 폐지를 줍고 있다.
그러다보니 노인들 사이에는 암묵적으로 자신들의 구역이 정해져 있다. 이 할머니와 동행하던 중 한 편의점 앞에서 폐지를 두고 노인들 간의 다툼도 목격할 수 있었다.
편의점이 있는 길을 주로 다닌다는 Y할머니(78)는 “저 인간이 자기 구역도 아니면서 나타나 행패를 부린다”며 씩씩거렸고, 상대방 S할머니(77)도 “먼저 봤으니깐, 내거야!”라며 화를 냈다.
두 노인 간의 폐지전쟁은 평소 친분이 있던 이 할머니의 중재로 폐지를 동등하게 나누면서 마무리됐다. Y할머니는 화가 덜 풀렸는지, 폐지를 싣고 떠나면서 연신 욕을 내뱉었다.
오전11시께 되어서 이 할머니의 카트는 각종 폐지와 폐품들로 가득찼다. 폐지를 모으는 동안 할머니는 도로로 이동하는 적이 없었다. 고물상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만석공원을 가로질러 안전한 인도를 통해 카트를 몰았다.
“늙은 사람은 아무 때나 죽어도 된다지만, 그래도 조심해야지.”
지난해 겨울, 이 할머니는 친한 친구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어두운 밤 폐지가 가득한 손수레를 끌고 도로로 이동을 하다 차에 치어 변을 당했다고. 이 할머니도 그 일 이후 부피가 큰 손수레 대신 운반하기에 쉬운 카트를 이용한다고 했다.
고물상에 도착한 이 할머니는 고물상 주인과 실랑이부터 시작했다. 평소보다 많이 모아왔으니 잘 쳐달라는 할머니만의 애교였다. 철판으로 이루어진 저울에 폐지 무게를 재자 56㎏이 나왔다. 고물상 주인은 카트 무게 6㎏을 제외한 채 50㎏의 폐지 가격만을 쳐주었다. 최근 폐지 시세는 1㎏당 120원으로 이 할머니는 하루 노동의 대가로 6천원을 받을 수 있었다.
고물상에는 이 할머니 이외에도 많은 노인들이 모여 있었다. 가끔 소일거리로 고물을 모은다는 P할아버지(81), 개인 손수레가 없어 고물상에 손수레를 빌리러 온 K할아버지(69), 허리가 굽어 유모차에 몸을 기댄 채 폐지를 줍는 L할머니(72) 등 많은 노인들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동행했던 길을 돌아 할머니의 집에 도착하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있었다. 할머니가 세들어 사는 집 마당 한켠에는 일부 폐지와 폐품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살고 있는 쪽방에는 중국 국적자로 여전히 용강성에 살고 있는 자식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가족들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 할머니는 “하루에 몇 천원씩 겨우 버는데, 이렇게 돈 벌어서 언제 가족들 보러 가겠어? 보고 싶어도 참아야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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