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21
전세는 금융이다
이미 많이 알고 있듯이 전세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임대차 제도다. 전세제도가 비효율적이라는 비판도 많지만 100년 이상 유지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수요자 입장에서 메리트가 크기 때문이다.
가장 큰 메리트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다. 대체로 주거비는 전세가 가장 싸고, 그다음 자가(自家), 마지막으로 월세다. 선진국 사람들 시각에서는 집값의 70~80%를 주인에게 맡겨놓고 조마조마하게 살고 있는 전세세입자들의 행태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나름대로 주거비를 아끼려는 경제논리가 반영된 것이다.
문제는 전세시장은 작은 수급의 변화만으로도 너무 자주 요동을 친다는 점이다. 전세시장은 '전세난'과 '역전세난'을 반복한다. 전세공급이 모자라 수요자인 세입자들이 고통을 겪는 것이 전세난이라면, 공급이 넘쳐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것이 역전세난이다.
반면 월세시장은 이처럼 변동성이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대체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인다. 가령 보증금 1000만원에 월 60만원의 임대료를 받던 집주인이 갑자기 1000만원에 70만원으로 올려 받기는 쉽지 않다. 왜 전세시장만 유독 불안한 움직임을 보일까.
전세는 임대수익 개념보다는 금융, 특히 사금융에 더 가깝다. 말하자면 전세의 불안정성이 큰 것은 그 자체가 금융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전세제도가 확산된 배경에는 지난 197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생겨난 금융시장의 왜곡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수출기업에 자금을 배정하기 위해 소비자 금융을 통제하면서 개인들은 돈을 빌릴 방법이 없었다. 이러다보니 집주인들은 세입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었고,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보증금은 곧 무이자 은행대출 역할을 한 것이다.
이처럼 전세는 주거공간을 매개로 개인끼리 돈(보증금)을 주고받는 사금융이나 대출 개념이 강하다.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에 따르면 금융의 가장 큰 특성은 불안정성이다. 금융시스템은 안정된 균형점이 없으며, 습관처럼 불안한 주기를 형성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사실 금융은 '자금 융통'의 약자다. 즉 금융은 곧 신용(빚) 창출과정이다. 금융은 공장처럼 뚜렷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서 신용을 창출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금융시장은 실물경제와는 달리 뚜렷한 실체가 없어 작은 변화에도 수시로 출렁인다. 어떻게 보면 전세시장은 금융을 닮아 불안정성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아파트 입주단지에서는 전세가격이 많게는 주변시세의 반토막 수준으로 급락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2~3년이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회복하면서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한다.
전세는 태생적으로 불안정성을 안고 있으므로 지속적인 안정도 쉽지 않는 구조다. 더욱이 전세는 마치 김치나 라면, 쌀처럼 생필품과 같아 단기적인 수요조절도 어렵다.
매매시장에서는 수요자들이 미래에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매입시기를 미룬다. 하지만 전세거주자들은 전세가격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길바닥에 텐트를 치고 잘 수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정부가 전세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아도 단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전세시장 안정대책은 적어도 2~3년을 내다보고 선제적인 대처가 필요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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