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끼 먹겠다는 그, '삼식이 남편' 최후 모르는 걸까
대기업에 다니다 50대 후반에 은퇴한 A씨는 '밥때' 때문에 아내와 사이가 영 껄끄럽다. 은퇴 세미나에 부부가 함께 참석한 A씨는 "하루 세 끼를 안 먹고 어떻게 살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아내의 설명은 달랐다. "나는 평생 하루 두 끼를 먹고 살았어요. 저 사람은 자기가 아침 밥상 꼬박꼬박 받아먹었다고 나도 매일 아침 먹은 줄 아는데, 남편 출근하면 바로 애들 등교 준비시키느라 나는 매일 남은 밥으로 아침 겸 점심을 때웠다고요."
매주 두세 차례 은퇴 세미나를 진행하다 보면 부부의 갈등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부부 사이의 갈등은 소소한 생활 패턴을 둔 충돌에서 시작해 '은퇴 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확대되고 결국 말싸움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수십년 동안 각각 다른 생활을 하다 보니 직장 동료(남편)나 옆집 아줌마(아내)보다도 부부가 이질적인 삶을 살게 된 탓이다.
나는 각종 세미나에서 부부에게 '공동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의 명단)'를 만들어보라고 주문한 적이 있는데 쉽게 써 내려가는 부부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얼마 전 한 세미나에서 있었던 일이다. 50세를 넘긴 모 기업 대표는 버킷리스트를 열심히 써 내려갔다. 남편은 금세 10개를 다 채웠다. 리스트에는 파리 루브르, 바티칸, 이집트, 국립 러시아박물관, 국립 독일박물관, 대영박물관 등 박물관과 유적지 이름이 빼곡했다.
박물관 여행에 합의를 보았는지 물어보니 부인은 표정이 뾰로통했다. 아내는 산과 나무, 풍경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텃밭을 가꾸고 조경을 하는 것이 꿈이다. 가부장적인 남편의 성격에 맞춰 작성한 일방적인 '박물관 투어' 계획 통보에 아내는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은퇴 상담을 받으러 온 60대 부부는 손녀를 보는 문제로 각을 세웠다. 남편은 중소기업 사장 출신으로 수십년 만에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모습이었다. 퇴직금 중 일부를 떼어내 시골에 전원주택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부인은 "난 못 가는데…"라고 시큰둥했다. 딸과 사위가 둘 다 일을 하기 때문에 세 살 난 손녀의 육아는 '친정 엄마' 몫이었다. 남편은 맞벌이를 핑계로 육아를 엄마에게 맡기는 딸이 계속 얄미운 터였다.
그러나 아내는 "당신은 참 정(情)도 없다. 손녀가 재롱부리면 얼마나 예쁜데, 당신과 둘이 지내는 것보다 백배는 낫다"고 물러설 기미가 아니었다. 결국 남편의 '전원주택 꿈'은 보류됐다.
은퇴 전까지 한국 부부의 공동 목표는 거의 두 가지밖에 없다. 자녀 키우기와 돈 벌기다. 자녀가 다 크고 어느 정도 재산을 축적한 후 새로운 목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부부는 은퇴가 막막하다.
부부 사이의 '은퇴 괴리'를 좁히기 위해 은퇴 워크숍을 가져보면 어떨까. 은퇴 후 삶을 시뮬레이션 해보면 생활에서 충돌하는 요소가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집에서 해도 좋지만, 자식과 업무에서 뚝 떨어질 만한 장소로 1박2일 짧게라도 워크숍 겸 여행을 떠난다면 더욱 즐겁다.
은퇴에 대해 부부가 동상이몽(同床異夢)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은퇴를 맞이하는 출발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즐거운 은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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