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4
세계적 문구업체 파버카스텔, 명품 연필로 250년간 일자리 창출
"최고의 장인·기술력 키우자" 마이스터 양성에 `올인`
500만원 고가에도 없어 못팔아…연 매출 8조원 훌쩍
밀레·젠하이저…직원 대부분이 20~30년 장기근속
문방구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대표적 사양산업이다. 그러나 독일 뉘른베르크 인근 소도시 슈타인을 방문하면 문방구가 사양산업이라는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진다. 이곳에는 수백 년 동안 연필류(색연필 등 포함)를 만들면서 세계적 명품 연필 제조업체로 성장한 파버카스텔이 있다.
1761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해만 59억유로(약 8조2000억원) 매출을 올린 전형적인 기술집약형 중견기업이다. 파버카스텔 본사는 창업자인 카스파르 파버가 살던 성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기업이 커지면 본사를 대도시로 옮기고 공장을 인건비가 싼 해외로 이전하는 다른 기업과 달리 파버카스텔은 250년 넘게 여전히 고향을 지키는 지역경제의 버팀목이다.
높은 기술력의 정점은 파버카스텔이 만든 `그라폰 파버카스텔 퍼펙트 펜슬`이다. 파버카스텔은 이 프리미엄 브랜드를 생산하면서 매년 올해의 펜을 제작한다. 이 펜은 550만원에 한정 판매되는 등 소비자로부터 필기구의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500만원이 넘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재구매율이 높다는 사실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파버카스텔 본사에서 만난 산드라 수파 홍보 책임자는 "파버카스텔의 강점을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한 끊임없는 혁신, 가족경영을 통한 장기적 투자, 철저한 직업교육을 통한 우수 인재 확보"라고 정리했다.
전형적인 독일식 히든챔피언의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독일의 히든챔피언은 평균 업력이 61년이고 수출 비중이 62%다. 이들 기업은 마이스터라는 숙련된 기술인력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높여가면서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 싼 임금만 앞세우는 개발도상국 기업들이 쉽사리 따라할 수 없는 전략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핵심 경쟁력을 유지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큰 흐름은 가족경영이 보편화돼 있는 전통 있는 기업과 중견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파버카스텔도 8대에 걸쳐 가족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현 회장인 안톤 볼프강 파버카스텔 회장도 창업자의 후손이다. 가족경영의 장점을 묻자 파버카스텔 회장은 "상장 회사는 할 수 없는 과감한 투자와 의사 결정의 자유로움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근로자를 고용하고 훈련시킬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밝혔다. 단기 실적으로 평가받는 전문경영인보다 꾸준하게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정진할 때 좋은 일자리도 만들 수 있고 혁신과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밀레 역시 4대째 가족이 경영하고 있는 구조이고 헤드폰 분야의 명품으로 유명한 젠하이저 역시 가족경영을 통해 장인정신과 근로자 장기 고용, 숙련된 근로자 양성에 회사의 전력을 쏟고 있다.
1945년 설립된 젠하이저의 주요 제품은 고성능 마이크와 헤드폰이다. 이 회사 생산라인에 근무하는 여성 근로자 중 20년 이상 근무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밀레는 전 세계에 1만7000명 직원이 있지만 이직률이 1% 미만으로 안정돼 있다. 급격하게 근로자를 늘리지 않지만 꼭 필요한 인재를 선발한 뒤 맞춤형으로 육성하기 때문에 업무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 회사 직원은 2006년 1만6000명이었지만 올해 초 기준은 1만7000명이다. 이 중 25년 이상 장기 근속자는 1만여 명에 달한다.
자비네 쿰렌 밀레 인사담당 팀장은 "비용 절감을 위해 협력업체의 활용 비중을 높이거나 인력을 구조조정하는 데 관심이 없다"며 "제품을 구성하는 핵심 분야에서 혁신을 실천하는 숙련된 생산직 근로자와 장인, 높은 기술력을 가진 연구원을 길러내는 데에만 역량을 집중한다"고 강조했다. 파버카스텔도 근로자가 대체 가능한 인력이 아니라 모두를 최고 전문가로 키우겠다는 신념이 확고한 회사다.
30년 이상 근무한 뒤 퇴직한 근로자에게는 안내원이나 경비원 등 어떤 형식으로든지 계약직 근로가 가능하도록 배려한다. 은퇴 직원과 신입 직원 간 인수인계는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꼼꼼하다. 보통 6개월 이상 진행되고 1년까지 이 과정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결국 `느리고 꼼꼼하게 가는` 인력관리와 철저한 직업훈련을 통해 지속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선순환구조가 정착돼 있다는 얘기다.
김강식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장기적 관점에서 근로자에게 투자하는 독일 중소기업은 해외에서도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이들은 2000년과 2010년 사이 수출액이 30% 가까이 늘어나면서 독일 경제의 턴어라운드를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독일의 대기업 일자리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8년에서 2011년 사이 약 2.4% 줄었지만 중소기업 일자리는 이 과정에서도 1.6% 늘었다"며 "우리도 중견ㆍ중소기업이 일자리 시장에서 선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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